2016년 8월 11일 목요일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토리부터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난장판

최근 들어 헐리우드 캐릭터들이 너무 물렁해졌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영화 제작진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을까 지나치게 조심하는 바람에 영화 캐릭터들도 몸을 사리며 눈치만 보는 따분한 캐릭터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코미디언들도 불만이 많다. 별 것 아닌 농담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 농담하기 힘들어졌다고 불평한다. 미국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Jerry Seinfeld)는 미국 대학교에서 공연을 하지 않는다면서, 미국 대학생들의 지나친 'Political Correctness'를 비판한 적도 있다. "똑똑하던 학생이 미국 대학교에 들어가면 바보가 돼서 나온다"는 우스겟 소리가 나돌기도 했으므로 크게 놀랄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메인 캐릭터를 모두 악당으로 꾸린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악당들을 메인 캐릭터로 세우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항상 진지하게 바른 말과 행동만 하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캐릭터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20세기 폭스의 '데드풀(Deadpool)'이 R 레이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뛰어 넘는 흥행 성공을 거둔 점도 고무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데드풀'의 메인 캐릭터 데드풀은 악당은 아니지만 정의를 위해 싸우는 터무니 없이 진지한 수퍼히어로는 절대 아니라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2016년 여름 개봉한 워너 브러더스의 수퍼히어로/안티히어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도 '데드풀'과 비슷한 성격의 영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엔 윌 스미스(Will Smith), 마고 로비(Margot Robbie), 제리드 레토(Jared Leto), 제이 코트니(Jai Courtney), 에드왈레이 아키누이-아그바제이(Adewale Akinnuoye-Agbaje), 제이 허난데즈(Jay Hernandez), 카라 델러빈(Cara Delevingne), 캐린 후쿠하라(Karen Fukuhara), 조엘 키너맨(Joel Kinnaman), 스캇 이스트우드(Scott Eastwood), 바이올라 데이비스(Viola Davis) 등이 출연했다. 윌 스미스, 마고 로비, 제이 코트니, 에드왈레이 아키누이-아그바제이, 제이 허난데즈는 특수 능력을 지닌 범죄자들로 구성된 '수어사이드 스쿼드' 멤버로 출연했으며, 제리드 레토는 조커, 조엘 키너맨과 스캇 이스트우드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함께 작전을 펼치는 미군 특수부대원, 캐린 후쿠하라는 특수부대원 릭 플래그(조엘 키너맨)의 바디가드 카타나, 카라 델러빈은 마녀가 빙의된 고고학자 준 문,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든 아만다 월러 역으로 각각 출연했다.

연출은 L.A 지역 범죄 수사영화로 유명한 데이빗 에이어(David Ayer)가 맡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정부 관리 아만다 월러(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매우 위험한 미션에 투입하기 위해 범죄자들과 특별한 능력을 지닌 멤버들로 구성된 '수어사이드 스쿼드'라 불리는 팀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멤버 중 하나인 준 문(카라 델러빈)에 빙의한 마녀 인챈트리스가 팀을 배신하고 몬스터들을 소환해 도시를 파괴하자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다는 줄거리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앞서 공개된 DC 코믹스 수퍼히이로 영화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수퍼맨 v 배트맨(Superman v Batman)'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영화였다. DC 코믹스도 마블 코믹스처럼 같은 세계를 공유한 수퍼히어로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새로울 건 없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러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스토리였다.

코믹북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코믹북 시리즈의 스토리가 어떻게 영화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줄거리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스토리가 아니라 '머미(The Mummy)'와 '고스트버스터즈(Ghostbusters)'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 멤버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파트까지는 그럭저럭 볼 만했으나 스토리가 "도시에 나타난 유령 소탕" 쪽으로 기울면서 김이 샜다. 스타트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누더기가 돼갔다. 고고학자의 몸에 빙의된 마녀가 도시 한복판에서 몬스터를 소환하며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는 플롯은 '고스트버스터즈'에 더욱 잘 어울리지 수퍼히어로 영화에 어울리는 스토리가 아니었다. 이 바람에 매우 어렵고 위험한 미션을 맡기기 위해 창설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귀신 잡는 "Who you gonna call?" 고스트버스터즈가 돼버렸다.

또한, 1984년 영화 '고스트버스터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수어사이즈 스쿼드'의 마지막 파트가 상당히 낯익어 보였을 것이다. '고스트버스터즈'의 마지막 파트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찌된 것이,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앞서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 2016'보다 더욱 '고스트버스터즈' 영화처럼 보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마지마 파트를 머릿 속에 떠올리면서 아래의 1984년작 '고스트버스터즈' 이미지를 보면 어렵지 않게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들이 주인공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고스트버스터즈 엔딩'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1984년작 '고스트버스터즈'의 마지막 파트

스토리에 이어 크게 실망스러웠던 점은 캐릭터였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메인 캐릭터들은 거칠고 개성이 뚜렷한 범죄자들이므로 다른 건 몰라도 캐릭터 하나 만큼은 볼 만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매우 위험한 범죄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인 만큼 상당히 거칠고 포악한 캐릭터들이 인정사정 없이 폭력을 휘두르며 삐뚤어진 유머 감각을 과시할 것을 기대했으나, 패밀리-프렌들리 레이팅인 PG-13을 받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폭력과 유머부터 시작해서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전부 싱겁고 밋밋했다. 'Political Correctness'를 박살내는 통쾌함이 어느 정도 느껴질 것을 기대했으나, 의외로 그런 파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베테랑 배우 윌 스미스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Fast & Furious)' 시리즈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썰렁한 연기를 보여주는 데 그쳤으며, 괴상한 화장을 한 마고 로비의 '미친년' 연기도 얼마 오래 못가서 지겨워졌다. 상당히 거칠고 코믹한 캐릭터에 잘 어울릴 것 같았던 카라 델러빈도 포텐셜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마녀에 빙의돼 징징대다 끝났고, 부머랭을 집어던지는 캡틴 부머랭 역을 맡은 제이 코트니와 카타나 역을 맡은 캐린 후쿠하라는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관심이 쏠렸던 제리드 레토 버전 조커도 기대했던 것보다 비중이 작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출연진 중에서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이올라 데이비스였다면 아무래도 출연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스토리와 캐릭터가 포텐셜을 살리지 못하고 빗나갔으나 제작진은 어떻게든 영화가 쿨하게고 스타일리쉬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만 집착했다. 배경음악을 쿵쾅쿵쾅 틀어놓고 똥폼을 잡는 등 스타일을 살리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스타일이 없었다. 쿨하고 스타일리쉬하게 보이기 위해 열심히 폼을 잡았지만 장난하는 것 같았다. 유치해 보였을 뿐 멋져 보이지 않았다. DC 코믹스 시리즈의 '묵직함'과 '패스트 앤 퓨리어스' 시리즈 스타일의 '가벼움'을 오가며 스타일을 살려보려 했으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폼만 그럴 듯 하게 잡으며 분위기를 띄우려 했을 뿐 무엇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쿨하고 스타일리쉬하게 만들겠다는 뚜렷한 비전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매우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난장판으로 뒤죽박죽된 것 같았을 뿐 제대로 된 부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못봐줄 정도로 유치하고 한심하거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 지루함이 밀려올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러나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영화 내내 무표정으로 팔짱끼고 앉아있다 끝나는 영화였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영화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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