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7일 수요일

2016년 미국 대선이 흥미진진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의 X-팩터 때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것을 예상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보다 연예인 이미지가 강한 트럼프를 진지한 대선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를 기록하며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주지사, 상원의원 등 쟁쟁한 베테랑 정치인들을 모두 격파하고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는 사실 뿐 아니라 트럼프가 일으킨 정치 돌풍도 놀라웠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이처럼 돌풍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무기력한 공화당과  RINO(Republican in Name Only) 진영에 이골이 난 보수성향 미국인들이 공화당 주류 정치인에 반감을 갖고 외부 후보를 밀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화당 주류에 속하는 베테랑 정치인들은 겉으로 보기엔 제법 정치인다운 폼이 나지만, 보수성향 미국인들은 더이상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말만 그럴 듯하게 잘 늘어놓을 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으며, 겉과 달리 속으론 정치 성향이 뚜렷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게 전부라고 비판했다.

물론 공화당 주류에서 대선 후보를 뽑았다면 트럼프보다는 보다 정치인다운 후보를 선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친 표현으로 논란만 만들고 다니는 트럼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정치인다운 후보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성향 미국인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는 미지근한 중도-온건 공화당 정치인으론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도-온건-미지근-RINO 성향 공화당 정치인을 대선 후보로 세우면 트럼프보다는 욕을 덜 먹겠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또 맥없이 패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공화당 주류 세력이 아니며 논란을 무릎쓰면서도 강경한 정책과 그들만의 뚜렷한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공통점을 지닌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Ted Cruz)가 공화당 경선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와 크루즈는 둘 다 공화당 주류 세력이 원하지 않는 후보였으나 이들 2명이 경선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사실상 심장 박동이 멎은 것이나 다름없던 공화당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거칠고 즉흥적인 말들로 많은 논란을 생산했지만, 허약하게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던 공화당 주류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테드 크루즈를 비롯한 다른 공화당 경선 후보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쉽게 이길 수 있는데도 도널드 트럼프가 제발등 찍는 데 바빠서 대선 승리 놓치게 생겼다"고 주장한다. 또한,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공화당 정치인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라고도 한다. "이번 대선은 민주당 대 민주당", "가짜 공화당, 가짜 보수주의자가 공화당을 하이재킹했다"는 비판도 터져나왔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쏟아놓은 거친 표현들이 무기력함에 지쳐있던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열광시키는 효과를 불러왔으나, 이와 동시에 많은 논란에 휘말렸던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가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려 하면서 공화당 쪽과 지나칠 정도로 대립한 것도 사실이다. 공화당의 과거와 현재를 비판하는 건 문제될 게 없으나 트럼프는 마치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특히 트럼프가 경선 경쟁 상대였던 젭 부시(Jeb Bush)를 공격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공격했다는 점도 공화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샀다. "공화당 후보가 어찌된 게 민주당 후보처럼 말하느냐"는 비판도 이 때부터 본격화됐다.

따라서 트럼프가 진정한 공화당 후보가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본다. 또한, 그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강경하게 밀고 있는 이민 등 몇 가지 이슈로 주목받고 있지만, 트럼프의 전반적인 성향은 끽해야 중도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건 최근 들어서의 일이며, 그 이전까진 줄곧 민주당 성향이었다. 이렇다 보니 보수성향 미국 유권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그렇게 싫다면서도 클린턴 부부와 오랫 동안 가까운 사이로 지냈고 클린턴 재단에 기부도 했던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는 상당히 멍멍이 같은 시츄에이션에 처했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둘 중 누가 더 맘에 드나"가 아니라 "둘 중 누가 더 싫은가"를 정하는 선거다. 지금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누가 더 비호감도가 높은가" 대결이 가장 치열하고 흥미진진하다. 따라서 트럼프가 더 싫다면 군소리 말고 힐러리를 찍는 수밖에 없고, 힐러리가 더 싫다면 군소리 말고 트럼프를 찍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수성향 미국 유권자 중 상당수가 아직도 트럼프를 거부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현재로썬 대안이 없다. 현실적으로 해볼 만한 제 3의 옵션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라도 하겠지만, 없는 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집권 3기를 원하지 않고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군소리 말고 트럼프를 찍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힐러리-오바마-민주당이 더 꼴보기 싫은가, 아니면 트럼프와 "새로운" 공화당이 더 꼴보기 싫은가를 놓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일부는 여전히 힐러리와 트럼프 모두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한다. 힐러리를 찍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트럼프도 지지할 수 없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마도 많은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번 공화당 후보를 찍어왔으나 이번엔 좀 힘들 것 같다"고 말하는 미국인들도 주변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자동차에 "STOP NOBAMACARE"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새로운 스티커로 바꾼 유대계 미국인 의사도 트럼프 얘기를 꺼내면 고개만 저었다. 힐러리를 찍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지만 트럼프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를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For now"라는 전제를 달았다. 트럼프가 굉장히 맘에 안 들어도 나중엔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었다. 트럼프가 아무리 꼴보기 싫어도 오바마 집권 3기에 결사 반대 입장이라서 막상 투표를 하러 가면 트럼프를 찍지 않겠냐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듯 하다. 지난 10년 전 부시 정권 시절부터 열성적인 공화당 지지자였던 미네소타 출신 백인 여의사도 "트럼프가 싫지만 망설임없이 공화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힐러리-오바마-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중도-온건 성향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을 그냥 건너뛰겠다고 하고, 트럼프보다 민주당 쪽에 대한 반감이 더 강한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트럼프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경선 때 테드 크루즈를 지지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를 절대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던 미국의 보수논객 마크 레빈(Mark Levin)도 결국은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찍을 것이라고 생각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한 말과 행동에 전부 찬성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듯 하다. 또한, 트럼프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 중이라는 점도 생각을 바꾸는 데 영향을 줬을 듯 하다.

계속 쏟아지는 힐러리 클린턴 관련 스캔들 또한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확고한 보수주의자인 마크 레빈의 경우엔 아무리 트럼프가 싫더라도 힐러리를 찍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므로 힐러리 스캔들의 영향을 덜 받았을 것이지만, 공화당 지지 성향을 띠면서도 '논란 제조기' 트럼프에 거부감을 갖고 힐러리 쪽으로 기울던 중도-보수 유권자들은 힐러리 스캔들이라는 계속되는 강펀치를 맞고 다시 트럼프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트럼프에 반대했던 보수성향 미국인들이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면서 뭉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한 건 도널드 트럼프가 몰고온 'X-팩터'다.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선거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미국인들을 대선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가 공화당과 충돌을 벌이면서 전통적인 공화당 표를 상당수 잃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트럼프 측은 그들이 빠져나간 빈 공간을 채울 새로운 지지층을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지지 정당이 없는 미국인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미국의 좌파-리버럴 메이저 언론들과 이들의 기사를 성경처럼 맹신하며 열심히 옮겨적기에 바쁜 해외언론들은 "공화당/트럼프 지지자는 낙오되고 불만에 가득한 저학력-저소득-변두리 지역 백인"이라는 맹꽁한 소리만 녹음기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민자, 소수인종이 밀집된 지역만을 좁은 시야로 관찰하고 그 일대 전체가 모두 다 그런 것처럼 떠들기도 한다. 이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도 시내에서 약간 벗어나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동하면 공화당을 지지하는 고학력-고소득-중산층 백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이런 점을 지적하면 좌파-리버럴들은 "그러니까 공화당은 백인 부자들만을 위한 정당"이라고 말을 바꾼다. 좌파-리버럴들은 누구를 상대로 선전-선동을 하나에 따라서 공화당 지지자들을 무식하고 가난한 백인들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공화당을 백인 부자들만을 위한 정당이라고도 한다. 어떻게든 인종, 학력, 소득 등을 이용해 공화당과 보수진영을 비판하려는 것이 전부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이런 식으로 인종, 학력, 소득 등을 들먹이며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게 좌파들이면서도 항상 분열의 모든 책임은 보수-우파-백인들에게 있다고 뒤집어씌운다.

좌파들이 계속 이러니까 여기에 넌더리가 난 백인들이 "이젠 백인들도 타인종과 마찬가지로 수비와 방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많은 백인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흑인들 중에서도 "왜 '블랙 프라이드'는 되고 '화이트 프라이드'는 안 되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인종평등이 아니라 백인 불평등 사회로 기우는 게 아니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에서 백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백인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듣기 시작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흑인 남성과 결혼했다 이혼한 백인 여성은 "전 남편은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모든 걸 백인 탓, 인종차별 탓으로 돌렸다"며 고개를 젓는 것도 봤고, 역사적인 사건부터 현재진행형 이슈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백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지긋지긋하다며 이빨을 드러내며 불쾌감을 나타낸 백인 미국인 교사도 만나본 적 있다. 그는 9/11 테러가 미국 자작극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안티-공화당 성향이 강한 백인 리버럴이지만, "걸핏하면 백인 탓, 무슨 날만 돌아오면 또 백인 탓, 소수인종의 불행도 모두 백인들의 잘못이고 백인들은 전부 인종차별자라는 소리를 듣는 게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역증을 냈다.

그러나 자기 반성이란 걸 모르는 좌파-리버럴들과 미국 사회문제에 까막눈인 해외언론들은 분노한 백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덮어놓고 "신 나치주의", "백인 우월주의"라고 맹비난하기에 바쁘다. 일부 해외언론들은 "타인종에 밀려 전성기가 지난 백인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이죽거린다. 오랫동안 일방적인 관용과 양보를 요구받아온 백인들에게 쌓인 스트레스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주도권에서 밀려나니까 반발한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다. 얼마나 생각이 짧고 시야가 좁으며 이기적인가를 엿볼 수 있다.

걸핏하면 인종차별 운운하며 보수진영을 몰아세우는 게 죄파-리버럴의 주특기이므로 놀라울 것은 없다. 이들은 비판을 쏟아놓으며 맹공을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파-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듯 하다 싶으면 무조건 "극우 반대!"를 목청껏 외치기만 하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극우세력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보다 더 중요하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점차 극우화되지 않도록 미리 관리를 잘 하는 정부가 뛰어난 정부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극우-포퓰리즘 진영이 득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좌파들은 이 책임을 전부 우파와 우파 정치인들에게 전가시키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둔 좌파들의 책임이 더 크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보수-우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좌파들의 편협함이 만들어낸 사태라는 것이다. 좌파-리버럴의 가치를 포기할 때가 있더라도 눈치껏 보수-우파의 입장도 고려해줬어야 하지만, 좌파-리버럴들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면 "나치", "KKK", "파시스트", "성차별자", "인종차별자", "게이혐오자"로 매도하는 데 바빴다. 그러자 좌파들의 이러한 독선과 아집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우파-포퓰리즘 정당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자꾸 극단적인 쪽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붙잡아둘 줄도 알아야 하지만, 좌파-리버럴들은 맹비난을 제외하곤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보수우파들은 무기력하게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이럴 때 나타난 도널드 트럼프가 싫든 좋든 해결사 역할을 맡은 건지도 모른다.

만약 힐러리가 집권하면 미국 좌파-리버럴 세력의 독선과 아집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여기에 불만을 품은 미국인들은 더더욱 극우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힐러리가 중도로 이동하면서 중도-보수 포용책을 쓸 것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만, 힐러리와 민주당과 그 주위에 모여있는 좌파-리버럴 세력에 이골이 날대로 난 사람들에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우파-포퓰리즘 세력은 힐러리가 당선되면 끊임없이 힐러리 정권을 비판하면서 지지기반을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이동시킬 것이다. 미국 양당 체제에 종말이 왔다는 얘기도 꾸준히 나오므로 영국의 UKIP과 비슷한 제 3당이 창당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평생 프랑스 우파 정치인 마린 르 펜(Marine Le Pen), 독일의 우파-포퓰리즘 정당 AfD 등의 주장에 동의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지만, 요새는 이들이 "우리편"처럼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지긋지긋한 좌파-리버럴과 무기력한 기회주의자일 뿐인 보수우파 양쪽 모두에 환멸을 느끼다 보니 UKIP, 르 펜, AfD가 가려운 데를 확실하게 긁어준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현재 미국서 벌어진 트럼프 돌풍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따라서 현시점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다소 부적격으로 보여도 성난 보수우파 진영을 진정시키고 계속되는 사회 분열을 중단시키는 데는 힐러리보다 낫다고 본다. 힐러리가 되면 "HERE-WE-GO-AGAIN"이 될 것이고, 상황이 계속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힐러리는 정치 신념이 뚜렷한 편인 베테랑 정치인이라서 좌파-리버럴 스타일의 독선과 아집의 결정판이 될 가능성이 큰 반면 트럼프는 그의 핵심 공약이 된 이민 문제 등 몇 가지 이슈를 제외한 나머지에선 융통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힐러리는 당선이 되더라도 그녀의 스타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트럼프는 당선이 된 이후부턴 붉은 얼굴로 술취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베테랑 정치인인 반면 선거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나, 트럼프는 선거 유세는 거칠게 했어도 정치 경험이 없어서 통치 스타일은 반대로 소프트할 수도 있다.

또한 트럼트는 "Conventional Wisdom", 즉 일반적인 통념을 깨는 대선 후보다.

이미 여러 미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는 정통 공화당원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 지지를 망설이고 있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화당 스타일과 온도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공화당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제 3당 후보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이 이번 대선의 상당한 변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가 전통적인 공화당 표를 잃을 수도 있지만 그 대신 상당수의 인디펜던트 표를 끌어왔으며,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트럼프에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억만장자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어 블루컬러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은 얼마 없었겠지만, 트럼프의 열성 지지층이 백인-남성-블루컬러 계층이 되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던 지역에서 트럼프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우세를 보여온 주에선 거의 변함없이 트럼프가 우세를 보일 것이고,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우세를 보여온 주에선 이번에도 변함없이 힐러리가 우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덴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데 주저하고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도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데 주저하고 있는 데다 '트럼프 X-팩터'까지 가세한 바람에 기권표가 많이 나오거나 공화당 지지 지역에서 힐러리 표가 많이 나오고 민주당 지지 지역에서 트럼프 표가 많이 나오는 뒤바뀜 현상도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엔 과거 대선에서 했던 그대로 똑같이 계산해서 예상을 내놓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현상은 대선마다 매번 격전지로 꼽히는 오하이오 주에서도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클리블랜드닷컴(Cleveland.com)에 따르면, 힐러리는 논란 거리만 생산하는 트럼프에 이골이 난 공화당 지지자들을 공략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여러 사회 문제에 불만을 품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공략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바람에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증이 보다 전통적인 대선 후보인 힐러리를 선호하고,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비정통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트럼프 쪽을 선호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층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Democratic presidential nominee Hillary Clinton and her Republican rival Donald Trump are trying to win over some unlikely Ohioans. The Democrats are after suburbanites who typically vote Republican but are turned off by Trump's controversial rhetoric. The Republicans appear to be targeting disaffected Democratics who like Trump's message. 
It's backwards. 
It's unclear whether the effort will affect the outcome of the election, or if this shift could actually flip counties from blue to red, or red to blue. But one thing's clear: the political strategizing driving Election 2016 rejects the norm. 
Conventional wisdom dictates that blue-collar folks in the Mahoning Valley vote for the Democrats. And many suburbanites who live near cities like Columbus and Cincinnati vote for the Republicans. But these Ohioans may not vote the way they have in the past. 
Trump — the outsider whose unorthodox campaign has rewritten all of the rules — may attract working class people who usually vote Democratic. And Clinton — more of the traditional party nominee — may appeal to well-educated, wealthy Republican voters turned off by Trump’s divisive rhetoric.


월 스트릿 저널도 'President Trump Isn't Farfetched'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무리한 얘기가 아니며 충분히 당선 가능한 위치에 있다고 했다.

힐러리는 계속 이어지는 스캔들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반면 트럼프는 언론, 공화당 등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던 데서 벗어나 선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이미지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월 스트릿 저널은 여전히 트럼프가 불리한 상황이란 점엔 변화가 없지만 트럼프의 당선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면서, 그 근거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시건,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치열하게 경합 중인 주에서 힐러리와의 격차가 좁혀진 점을 들었다. 이어, 플로리다에선 오차 범위로 좁혀졌으며 노스 캐롤라이나와 애리조나 주에서도 해 볼만한 상태라고 했다.

So can Donald Trump win? Although he is at a clear disadvantage in the electoral college, evidence suggests that he can. Polls in the past week in Michigan, Wisconsin and Ohio show the race tightening. Florida is within the margin of error. North Carolina and even potentially Arizona, states that once seemed out of reach, remain in play. - The Wall Street Journal


월 스트릿 저널은 콜로라도와 버지니아가 힐러리 쪽으로 기운 듯 하므로 트럼프는 경제 이슈로 미국 중서부 지역을 집중 공략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머슨(Emerson)의 9월2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에서 클린턴이 겨우 1% 차로 앞섰다고 한다. 이머슨은 클린턴이 버지니아 주 출신 상원의원, 팀 케인(Tim Kaine)을 부통령으로 지명했으나 버지니아 주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썼다.

버지니아가 여전히 힘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8월 중순 12~19% 차로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많이 좁혀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트럼프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과의 대결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고 있다.

물론 선거 결과는 힐러리의 싱거운 압승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트럼프의 역전승으로 끝날 수도 있다. 트럼프가 불리해 보이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누가 '페이버릿'이고 누가 '언더독'인지 분간 못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건, 과연 트럼프가 역전승을 거둘 수 있는가다.

좌파-리버럴들은 다 끝난 경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변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일부 해외언론들도 미국 각 주별 선거인단 수를 거론하며, 힐러리가 유리하다는 남들 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눈물겨운 '자위 행위'를 하느라 바쁘다. 절대 이변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처럼 보여 때론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오죽 불안하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어디서 이기면 힐러리 가 이긴다"는 기사를 내보내는지 그들의 심리 상태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자위 행위' 하면 실제로 이긴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 헐리우드 전문 매체를 보니 "헐리우드 리버럴들이 트럼프와 힐러리의 격차가 좁아져서 패닉 상태"라던데, 다른 쪽에선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선거 다 끝나서 승리가 확정된 것처럼 거진 오보에 가까운 수준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헐리우드 리버럴들이 미국 대통령 선출 방식을 몰라서 걱정한다고 생각하나?


이러니까 놀림을 받는 것이다.

일각에선 "좌파-리버럴들은 한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트럼프에 뒤지는 것으로 나오면 바로 그 다음날 힐러리가 다시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부랴부랴 발표해 힐러리가 여전히 앞서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비꼰다. 여론조사 결과에 목숨을 건 듯한 좌파-리버럴들을 놀리는 것이다. 실제로, 좌파-리버럴들은 "힐러리가 계속 안정적으로 앞서고 있고 트럼프가 역전하는 이변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문처럼 외우고 있다. 그런다고 이기는 게 아닌데도 조마조마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듯 하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격차가 줄어드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지만, 헐리우드 리버럴들이 "Freaked Out" 했다는 기사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어떻게든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웃기고, 여러 미국 언론사에 들어가면 지도와 함께 볼 수 있는 여론조사 결과 각 후보별 선거인단 확보 인원 수를 놓고 승패가 이미 결정난 것처럼 설레발을 치는 것도 웃긴데, 헐리우드 리버럴들은 "Freaked Out"?

오버하고 설치면서 코맹맹이 소리 내는 데는 아무튼 프로급인 듯 하다.

이런 식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힐러리가 이긴다, 이긴다 떠들어서 실제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힐러리가 당선되길 바란다면 여론조사 결과만 보고 "힐러리가 이긴다", "힐러리가 유리하다"고 어린 아이처럼 우기려 들 게 아니라 힐러리의 지지도가 왜 떨어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9월7일 미국 NBC TV를 통해 방송된 토론회에서 리버럴 성향 앵커, 맷 라우어(Matt Lauer)가 힐러리에 맹공을 퍼부었다. 아주 잘한 것이다. 좌파-리버럴들은 맷 라우어가 힐러리를 불공평하게 공격했다고 비난을 쏟아놓고 있으나,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맷 라우어는 힐러리에게 호락호락하게 놀아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바짝 정신차리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힐러리는 앞으로 조심하지 않으면 진짜로 가는 수가 있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최근 들어 힐러리가 언론을 피해다녔고 오랜만에 기자들과 만나서도 어려운 질문을 받지 않았다며 보수진영으로부터 조롱을 받았던 만큼 맷 라우어로부터 받은 맹공이 힐러리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된 건 없다. 라우어가 힐러리를 몰아붙인 건 사실이지만,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정면 돌파를 해야 할 문제이므로 같은 편끼리 감싸고 돌고 쉬쉬거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 가지고 맷 라우어를 탓하는 건 쓴약 먹기 싫다고 징징거리며 우는 어린아이 수준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만 알아서, 힐러리를 비판하는 건 반역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서로 오냐오냐 하면서 끼고돌기만 해선 욕을 할테면 하라는 맷집 좋은 트럼프를 절대 당해내지 못한다. 모든 룰을 다 깨며 맹공을 펼치는 "터프가이"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데, 자기네 편끼리 열심히 감싸고 껴안아서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비록 지금 현재는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가 트럼프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선 토론회 등 아직도 주요 이벤트가 많이 남아있으므로 힐러리가 트럼프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터프한가를 테스트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트럼프 스타일로 계속 힐러리를 몰아붙일 것이 뻔하므로, 이 정도가지고 맷 라우어가 너무 지나쳤다고 할 거면 대선 집어치우는 게 낫다.


그렇다. 왠지 요즘엔 자신만만하던 힐러리 지지층과 좌파-리버럴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선거가 다 끝난 것처럼 앞서가는 기사를 쓰는 것도 그렇고, 힐러리와 트럼프의 격차가 좁아졌다고 헐리우드 리버럴들이 "Freaked Out" 했다는 것 모두가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쪽에선 선거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다 이겼다고 큰소리 탕탕치고, 다른 쪽에선 "Freaked Out"을 할 이유가 없다.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만큼 약해진 것으로 보일 뿐이다. 리드를 지키며 도망가야 하는 힐러리 측의 불안감과 조바심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예상했던대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는 걸까?

아니면, 영국을 브렉시트로 이끈 나이절 패러지(Nigel Farage)의 말처럼 트럼프가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극복하고 역전승을 거둘 수 있을까?

나이절 패러지는 브렉시트도 영국에서 안 된다는 언론 보도와 여론조사 결과가 꾸준히 이어졌으나 실제 국민투표 결과는 브렉시트 찬성이었다면서, 트럼프도 마찬가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대통령에 당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미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2016년 가을은 매우 재밌고 익사이팅한 가을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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