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앤토니 호로위츠(Anthony Horowitz)의 새로운 책 '포에버 앤 어 데이(Forever and a Day)'로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다.
영국에서 2018년 5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11월에 출간된 '포에버 앤 어 데이'는 2015년 출간된 '트리거 모티스(Trigger Mortis)'에 이은 앤토니 호로위츠가 집필한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이다.
'포에버 앤 어 데이'는 제임스 본드가 어떻게 00 에이전트가 되었으며, 007이 된 이후 본드가 맡았던 첫 번째 미션에 초점을 맞춘 "프리퀄" 성격의 소설이다. 1953년 출간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는 본드가 이미 00 에이전트인 것으로 묘사되었으므로, '포에버 앤 어 데이'가 '카지노 로얄'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출간된 호로위츠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트리거 모티스'가 1959년 출간된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 '골드핑거(Goldfinger)'와 줄거리가 이어지는 속편이었으므로,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포에버 앤 어 데이'는 프리퀄로 선택한 듯 하다.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세계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이언 플레밍이 발표한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의 세계를 연장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속편"과 "프리퀄"로 이어붙이기를 한 것으로 보면 된다.
'포에버 앤 어 데이'는 007이 프랑스 남부에서 살해당하자 새로운 007이 된 제임스 본드가 프랑스 남부로 파견되어 코르시카 범죄조직 등이 연루된 사건을 조사한다는 줄거리다.
앤토니 호로위츠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포에버 앤 어 데이'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무성의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메인 스토리에는 흥미가 끌리지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려는지 안 읽어도 뻔히 알 수 있는 줄거리였다. 다른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본 듯한 비슷비슷한 이것저것들을 여기저기에 배치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포에버 앤 어 데이'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오마쥬였다. 마치 이언 플레밍의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 소설과 007 영화 시리즈 오마쥬 몇 가지를 엉성하게 조립한 숏스토리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카지노 로얄', '골드핑거', '문레이커(Moonraker)', '힐데브랜드 레어리티(Hildebrand Rarity)', '옥토퍼시(Octopussy)',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 등 여러 편의 제임스 본드 소설과 영화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낯익은 설정과 캐릭터만 눈에 띄었을 뿐 제임스 본드 장편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마쥬로 범벅이 된 짧고 무성의한 숏스토리 정도가 전부였다. 줄거리부터 시작해서 등장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본드 장편소설 스케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 소설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클래식 제임스 본드 소설과 영화의 오마쥬로 범벅을 했는데도 "007 효과"가 신통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읽기 어려운 어린이용 어드벤쳐 소설 같았다. 내용부터 보잘 것 없었고, 캐릭터들간의 대화는 초등학생 학예회 연극 수준이었다. 긴장감과 진지한 분위기가 다른 부분에 비해 강하게 느껴져야 하는 M과 본드의 대화 파트에서부터 50년대 영국 정보부 오피스 대화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유치해지면서 분위기가 깨지기 시작하더니, 007 영화 시리즈에서조차 보기 어려워진 "One-Liner"까지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이렇다 보니 소설 전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자체가 애초부터 진지하게 읽을 만한 스파이 소설이 아니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아이들 장난하는 것처럼 만들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영화 시리즈에서는 영화의 특성상 유치한 씬들을 어느 정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소설에 그런 파트가 등장하면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가 아무리 싱거운 소설이라고 해도 어처구니 없어 보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머릿 속에서 007 영화 시리즈를 그리면서 제임스 본드 소설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호로위츠가 '포에버 앤 어 데이'에서 한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호로위츠는 이렇게 눈에 쉽게 띄는 가벼움과 무성의함을 "50년대 배경"과 "카지노 로얄의 프리퀄"이라는 점으로 덮어보려 했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등장 캐릭터들도 스토리 만큼 진부했다. 빌런들은 코믹북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았고, 그들이 꾸미는 음모 역시 어디서 여러 번 본 듯한 낯익은 내용이었다. 미국의 해외분쟁 군사개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는 캐릭터의 등장은 21세기 현재 미국의 정서와 맞물리면서 흥미가 끌렸다. 그러나 5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에 21세기의 현재진행형 이슈를 의도적으로 오버랩시키면서 눈길을 끌려던 것이 전부였을 뿐 심도있게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차라리 이런 이슈를 전면에 꺼내놓고 깊이있게 다루는 쪽으로 스토리가 전개됐다면 보다 흥미로운 소설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포에버 앤 어 데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린 아이들 장난하는 식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매우 가볍고 유치한 뻔할뻔자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비교적 짧은 소설이었기에 그나마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었지, 만약 길었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이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포에버 앤 어 데이'는 '카지노 로얄'의 프리퀄이라는 유일한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 하나를 제외하면 볼 것 없는 소설이었다. "본드가 어떻게 00 에이전트가 되었고, 그의 첫 번째 00 미션은 무엇이었나"에 흥미가 끌리면서 서점에서 집어들게 만드는 "낚시용" 책이었다.
여기에 맞춰 '포에버 앤 어 데이'는 "본드가 마티니를 SHAKEN NOT STIRRED로 마시는 이유", "본드가 몰랜드(Morland) 제품 담배를 즐겨 피우게 된 계기" 등 제임스 본드 오리진 스토리에 기대할 수 있는 뻔한 몇 가지를 준비해 놓았다.
이런 유치한 "프리퀄 놀이"가 전부인 소설이 바로 '포에버 앤 어 데이'다.
낚시용 책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낚여서 돈과 시간을 소비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별 것 없더라도 그저 호기심에 재미삼아 읽어보겠다면 별 문제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익사이팅한 제임스 본드 소설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권장하기 어려운 책이다. '포에버 앤 어 데이'는 후한 점수를 주기 불가능한 제임스 본드 소설 중 하나다. 2008년작 '데블 메이 케어(Devil May Care)' 수준으로 퇴보했기 때문이다. 50년대 배경의 제임스 본드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21세기에 출간된 "가짜" 말고 실제로 50년대에 출간된 "진짜" 제임스 본드 소설을 찾아서 읽어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5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한 플레밍의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 소설의 속편 또는 프리퀄로 울궈먹기도 이제는 한계가 드러난 것 같았다. 뚜렷한 비젼 없이 단지 오리지날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연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5060년대 시대 배경을 고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이언 플레밍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구질구질하게 붙들고 늘어지지 말고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계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 시리즈를 선보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소설 시리즈도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를 할줄 아는 요령과 실력을 갖춘 작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본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의 시대 배경을 50년대로 하겠다는 작가들은 자격미달로 제외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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