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0일 금요일

'스타더스트', 동화같은 판타지 스토리

로버트 드 니로, 미셸 파이퍼, 클레어 데인스, 피터 오툴.

마녀와 에어쉽, Sky Pirates, 그리고 유니콘!

거물급 배우들과 판타지 비디오게임이 만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근사해 보인다.

근사하길 바랬다.

작년에 나온 '에라곤(Eragon)' 이후로 이렇다할 판타지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스타더스트(Stardust)'에 건 기대가 컸다. 금년엔 '카리비안의 해적 3'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전형적인 판타지 영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판타지 영화 다운 판타지 영화'를 기다려왔다. 판타지 RPG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판타지 영화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런 카테고리에 가장 가까운 영화가 '스타더스트'였으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일단 스토리부터 대강 훑어보기로 하자.

'스타더스트'는 돌담을 경계로 잉글랜드와 다른 세계가 마주보고 있는 마을에 살고있는 청년, Tristran을 주인공으로 한다. Tristran은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빅토리아라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어느날 밤 그들의 머리 위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게 되고 Tristran은 그 별을 찾아 빅토리아에게 주겠다고 한다.

너무 로맨틱하다고? 동화같다고?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별똥별이 떨어진 데가 돌담 건너 편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가 아닌 '다른 세계' 쪽에 떨어진 것. 별똥별이 떨어진 데까지 가려면 당연히 담을 넘어 다른 세계로 가야하는데 돌담 주변에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걸 막는 노인이 지키고 있다.

Tristran이 별똥별이 떨어진 데 도착해보니 이상하게 별은 안보이고 웬 여자가 쭉 뻗어있는데...

그녀가 바로 '별똥녀(?)', Yvaine이다.



주인공 Tristran과 '별똥녀'가 만나는 데 까지는 오케이다. 왕자와 마녀가 각자 다른 이유로 '별똥녀'를 추격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는 것도 '굳'이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엔진이 꺼진 것처럼 맥이 풀려버린다. 갑자기 산만해지더니 곧 지루해진다. 볼만한 액션씬 같은 것도 있어야 덜 지루하겠지만 줄거리만 진행될 뿐 기억할만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줄거리를 진행하면서 언덕도 나오고 커브도 나와야 덜 지루한데 계속 곧바로 달리기만 한다. 계속 달리긴 하는데 커브도 없는 곧바로 뻗은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란 것이다.

클라이맥스 직전까지는 Tristran과 '별똥녀'가 왕자들과 마녀에게 쫓기는 얘기인데 볼거리가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있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지만 별로다. 좀 더 짜릿한 맛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밋밋하게 줄거리나 진행시키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맹탕인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흘러가는대로 멍하니 쳐다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신 바짝차리고 스크린을 노려보도록 만들 정도는 아니다.



Tristran이란 캐릭터가 성장해나가는 과정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지나간다. Tristran은 처음엔 별볼일 없는 청년이었다가 나중엔 히어로로 성장한다. 판타지 소설이나 비디오게임을 해본 사람들에겐 하나도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스타더스트'의 Tristran도 이런 루트를 따라가는데, 문제는 Tristran이라는 캐릭터가 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Tristran이 분명히 주인공이고, 애송이에서 히어로가 됐다는 것까진 줄거리 진행상 알긴 알겠는데 그게 직접 느껴지지 않는다. 비디오게임에 비유하자면 '레벨업 노가다'를 한 보람이 있어야 할텐데 그게 영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라곤'에선 농촌소년에서 드래곤 라이더(Dragon Rider)로 성장하는 과정이 보이는데 '스타더스트'의 Tristran은 이전보다 조금 강해지고 세련돼졌다는 것까진 알겠지만 훌륭한 전사로 성장했다든가 하는 맛이 없다.



하지만, 절대로 딱딱한 영화는 아니다. 유머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꽤 웃기는 데가 몇 군데 된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나사가 살짝 풀려있는 게 '카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와 비슷하다.

아, 물론 '스타더스트'에도 해적이 나온다. 캡틴도 있다. 바로, 캡틴 셰익스피어! '카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캡틴 잭 스패로우가 있다면 '스타더스트'에는 캡틴 셰익스피어가 있다.

이 양반이 '스타더스트'에서 확실하게 망가진다. 처음엔 살짝 주책없는(?) 정도인 것 같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사실 너무 지나친 것 같기도 하지만 드 니로가 코믹연기를 하면 왜 그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스타더스트'에서 그나마 볼만한 건 드 니로가 나오는 대목이다.



말빨 좋고 사기성도 있는 데다 검술도 뛰어나고 유머감각도 남다른 캡틴 셰익스피어는 '카리비안의 해적'의 캡틴 잭 스패로우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캡틴 셰익스피어의 '연세'가 위지만 분위기는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드 니로가 갑자기 쟈니 뎁 흉내를 내는 것 같지만 드 니로가 못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캡틴 셰익스피어가 제대로 활약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카리비안의 해적'과 '스타더스트'의 캐릭터를 1대1로 비교해서 Tristran이 윌 터너, Yvaine이 엘리자베스라고 했을 때 캡틴 셰익스피어가 캡틴 잭 스패로우만큼 비중있는 캐릭터였다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으론 Tristran과 Yvaine이 주인공이라지만 이들 둘의 별다른 어드벤쳐가 없기 때문에 드 니로의 캡틴 셰익스피어가 허전한 부분을 많이 메꿔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캡틴 셰익스피어는 줄거리 진행상 중요한 캐릭터인 건 맞지만 영화에서는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드 니로가 살짝 이상한 해적 선장으로 망가졌다면 미셸 파이퍼(Michelle Pfeiffer)는 수백년을 산 마녀로 망가진다.

옛날에 한가닥 하던 배우들이 '스타더스트'에선 다들 망가지기 바쁘다.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마녀, Lamia는 악역이지만 아주 심각한 악당은 아니다. '스타더스트'에 그런 악당은 나오지 않는다. 다들 건들거리는 악당들이 전부지 살기등등한 심각한 친구들은 없다. Lamia도 살짝 맛이 간 마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Lamia는 '카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나온 Tia Dalma와 겹치는 데가 있다. 수리수리 마수리 분위기도 그렇고 약간 괴짜인 것도 비슷하다. 그렇고보니, 여러모로 '카리비안의 해적'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영화다.

Lamia는 '스타더스트'에서 거진 유일하다시피한 악당이기 때문에 드 니로의 캡틴 셰익스피어보다는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다지 악랄한 마녀는 아니고, 까놓고 말해 살짝 주책없는 아줌마지만 그래도 마녀는 마녀니까 마법공격도 할 줄 안다.



'스타더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은 피터 오툴(Peter O'Toole).

피터 오툴은 일곱 명의 골치아픈 왕자를 둔 왕으로 나온다. 하지만, 왕자들만 이상한 게 아니라 왕부터 문제가 있는 '콩가루 왕가'다. 피터 오툴과 일곱 왕자들은 그다지 유쾌한 캐릭터들은 아니다. 피터 오툴은 아주 잠깐 나오는 게 전부기 때문에 길게 얘기할 게 없지만 그의 아들들은 엄밀히 따지면 악당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더스트'의 악당들이 말이 악당이지 웃기러 나온 친구들이다. 이들 왕자들은 영화 마지막까지 주인공들을 쫓아다니며 웃기다가 끝난다.



여기에다 간달프...가 아니라 영국배우, 이언 맥켈렌이 나레이션을 맡았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나 게임에 저런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자주 나오지만 이상하게도 '스타더스트'에서의 것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여기에 로맨스까지 곁들여진다. '스타더스트'는 시작부터 꽤 로맨틱한 영화다. 러브스토리가 여기저기 얽혀있기 때문이다. Tristran의 부모 이야기도 그렇고 그가 '별똥녀'를 만나게 된 것도 빅토리아를 향한 사랑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별똥별을 찾아나선 덕분이므로 'LOVE'가 키워드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타더스트'의 메인테마는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스꽝스러운 판타지 영화일 뿐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꽤 로맨틱한 영화다.



'스타더스트'는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다. 하지만, 기대했던만큼은 아니다. 유머도 좋고 로맨스도 좋고 다 좋다지만 도중에 맥이 빠지지 않게 만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만 잘 다듬었더라면 괜찮았을 것 같지만 어쩌랴!


큰 기대 할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므로 판타지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째려볼만 할 것이다. 다만, 화끈하거나 화려한 것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해두시라. '스타더스트'는 화려한 판타지보다는 수수한 동화에 가까운 영화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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