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와이에 있을 때만 해도 하와이 대학(University of Hawaii) 풋볼팀은 볼 게 없었다. 몇 번 알로하 스테디움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이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2007년 하와이 대학 풋볼팀은 내가 기억하던 팀이 아니다.
12승무패로 시즌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정규시즌동안 1패도 하지 않은 것. 미국 동부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을 때까지 하와이의 마지막 정규시즌 경기를 보느냐 정신 못차린 보람이 있었다.
하와이 대학이 속한 WAC(Western Athletic Conference)이 약체라는 건 안다. 스케쥴 역시 힘들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NCAA 기록을 갈아치우기에 바빴던 쿼터백 콜트 브레난(Colt Brennan)과 UH의 패싱공격을 과소평가하는 건 곤란하다. 불안했던 수비도 금년시즌엔 전국 탑35에 랭크됐다고 들었다.
(사진: 하와이 QB 콜트 브레난)
UH 풋볼팀 헤드코치 준 존스(June Jones)도 빼놓을 수 없다. 준 존스는 아틀란타 팰컨스 헤드코치를 지낸 NFL 경력이 있다. 하와이 대학팀의 성격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준 존스는 공격전문 코치다. NFL 시절부터 Run and Shoot 오펜스로 유명했던 코치다.
그러나, BCS는 냉정했다. 하와이가 무패행진을 이어가도 '스케쥴이 쉽다'는 이유로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것. 하와이는 BCS 랭킹 15위 근처를 오르내릴 뿐 BCS 보울 경기 출전권이 주어지는 탑12에 들지 못했다. 무패행진을 이어간 팀이 전국에서 하와이 하나뿐이었지만 '스케쥴이 쉽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주 보이지 주립대(Boise State University)를 꺾으면서 가까스로 12에 랭크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조건이 붙었다: 전승을 하지 않는 이상 BCS 보울은 힘들다는 것.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서 패한다면 하와이는 BCS 랭킹 탑12에서 밀려나면서 BCS 보울 경기 출전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BCS 보울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마지막 경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 부담 탓이었을까?
하와이 풋볼팀은 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1쿼터에 삽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심하게 삽질을 해댔다. 21대0이 뭐냐!
다행히도 2쿼터에 하와이가 21점을 득점하면서 28대21로 따라붙으며 전반을 마쳤다.
3쿼터는 양팀 모두 한 게 별로 없다.
드디어, 운명의 4쿼터.
4쿼터 절반이 지났을 때 콜트 브레난의 장거리 터치다운 패스가 성공하며 28대28 동점이 됐다.
자, 이제 워싱턴 공격을 막고 한번 더!
경기종료 40여초를 남기고 하와이가 역전 터치다운을 하는 데 성공!
스코어는 35대28, 하와이.
자, 이젠 워싱턴 공격을 막고 끝내자!
그런데... 그런데...
하와이 수비가 40초를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워싱턴 공격이 하와이 골라인 코앞까지 온 것!
어딜 자꾸 오는 거냐! Freeze muthafukaz!ㅠㅠ
워싱턴이 터치다운을 하면 오버타임이었다. 시계는 12초 정도 남았는데 워싱턴 공격이 6야드까지 전진한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막판 동점 터치다운을 내주는 게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좋다! 오버타임을 준비하자!
그러나...
하와이가 워싱턴의 마지막 패스를 인터셉트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3초 뒤 경기가 끝났다.
하와이 승리! 12승무패!! 퍼펙트!!!
(사진: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 메인 페이지 캡쳐)
미국 동부에서 하와이 시간으로 생활하기 참 힘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시계는 하와이 시간으로 맞춰놓는 버릇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버릇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금 하와이 주민들은 얼마나 흥분해 있을까. 동네마다 맥주파티 벌어졌을 것 같은데 거기에 한다리 못 끼는 게 한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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