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7일 금요일

나는 눈이 싫다...

나는 눈이 싫다.

눈이 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후 처리문제가 싫다.

4계절이 없는 1년 12달 여름이던 곳에서 10년 살다가 눈이 내리는 미국 동부로 이동했다는 것도 '눈 처리문제'를 싫어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리라.

사실, 싫어하고 좋아하고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눈 처리를 할 준비가 안 돼있는 게 가장 큰 문제기 때문이다. 눈을 치워 본 역사가 없는 덕분에 차를 뒤덮은 눈을 치우는 솜씨부터가 심각한 수준이다.

장비라도 괜찮으면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눈치우기용 장비들은 사지 않게 되더라. 매년 겨울마다 눈만 왔다 하면 눈 치우느라 고생을 하면서도 '장비 업그레이드'를 안하게 되더란 것이다.

몇 년째 사용중인 유일한 눈치우기 장비는 밥주걱 사이즈의 아이스 스크래퍼(Ice Scraper)가 전부다. 브러시 같은 것도 없다. 앞, 뒤, 좌, 우 유리에 붙어있는 눈과 얼음만 떼어내면 일단 급한 건 해결했다고 볼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할 수 있는 데 필요한 도구 하나만 달랑 있는 것.

때문에, 난 겨울이 오면 '눈 오지 말라'는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 눈과 씨름할 것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눈이 오고야 말았다.

크아아아! 또 눈 치워야 하는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차를 끌고 나가고 싶다면 차를 덮고있는 눈을 치워야 하는 거다.

좋다 이거다. 치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눈이 많이 온 것 같지 않았는데 막상 치우려니까 꽤 되더라. 하지만, 불평한다고 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그냥 닥치고 눈이나...ㅠㅠ

열나게 눈을 치우고 있는데 동네 흑인 꼬마녀석들 셋이 지나갔다.

'나도 너희들 나이때엔 눈 오면 좋아했다고!'

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 그래봤자 10살 전후지만 -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라. 전에 만난 적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눈 치우는 걸 도와주는 것이다. 이 녀석이 날 도와주기 시작하자 나머지 둘도 합세했다. 셋 모두 장갑까지 끼고 있었기 때문에 지붕, 유리 할 것 없이 차 위에 쌓인 눈을 손으로 쓸어버리더라.(참고: 난 장갑도 없는 팔자다)

혼자서 밥주걱만한 스크래퍼로 끄적거리면 꽤 오랫동안 눈과 씨름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 덕분에 시간이 부쩍 짧아졌다.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슬쩍 한번 쳐다보며 싱긋 웃고는 계속 눈을 치우더라.

녀석이 지붕에 쌓인 눈을 밀어낸다는게 죄다 나한테 쏟아졌다. 그러자, 곧바로 날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하더라.

내가 지금 그런 것 가지고 사과를 받을 입장이 아닌 것 같은데...?

눈을 다 쓸어내자 아이들은 그냥 자리를 떴다. 고맙다고 다시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합류하더니 금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들한텐 눈 치우는 게 일이 아니라 놀이 정도일지도 모른다. 어른들한텐 눈 치우는 게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한텐 '눈놀이'를 하는 또다른 방법 중 하나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순수히 '돕겠다'는 것보다 '함께 놀자'던 것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냐! 도움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수? 도와주려던 것이든 눈놀이로 생각했든간에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도 눈치우는 걸 도와줬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냔 거다.

눈을 다 치운 뒤 운전석에 앉자 왠지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

'웬 아시안 녀석이 눈을 치운다면서 작은 스크래퍼를 들고 설치는 게 녀석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으면 도와줄 생각을 했을까'

아무래도 장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것 같지?

이래서 나는 눈이 싫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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