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7일 금요일

평범한 수준에 그친 '골든 콤파스'

징글징글한 '징글벨 시즌'이 돌아왔다.

징글시즌이 돌아왔으니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도 컴백해야겠지?

작년엔 말하는 드래곤이 나오는 '에라곤'이 있었다. 그렇다면 금년엔 뭐냐?

뭐라고?

말하는 북극곰?

말하는 애완동물?

잠깐! 애완동물이 아니라 디몬(Daemon)이다.

디몬은 겉으로 보기엔 애완동물처럼 보이지만 인간과 연결된 - 사실상 하나인 것이나 다름없는 - 존재다. 인간과 디몬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멀리 떨어지면 안될만큼 붙어다니다시피 해야 한다.

한마디로, 애완동물 사업이란 건 불가능한 세계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갑옷으로 무장한데다 말까지 할 줄 아는 북극곰, 하늘을 나는 마녀, 어린아이들을 납치하는 고블러(Gobblers)라 불리는 미스테리한 단체, 음침한 구석이 있는 거대 종교단체 매지스테리움(Magisterium), '북쪽의 빛(Northern Light)'이라고 불리는 북극 오로라를 통해 보이는 또다른 세계의 도시와 쏟아져 내리는 정체불명의 '더스트(Dust: 먼지)'.

그리고, 사실을 가르쳐 주는 황금 나침반.

방향이 아니라 '사실'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이다. 마법사가 크리스탈 구슬을 문지르면서 주문을 외우면 알고 싶었던 게 구슬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간단하게 말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나침반이다.

하지만, 사용법을 모르면 아무 쓸모 없으니 사용할 줄 아는 캐릭터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게 누구나고?

바로 라이라(다코타 블루 리차드)다.



말괄량이 라이라는 미스터 본드...가 아니라 아스리엘(다니엘 크레이그)의 조카다.

아니지, 조카인줄 알고 있었다고 해야 정확하려나...?



그리고, 라이라를 쫓아다니는 컬터(니콜 키드맨)라는 아줌씨가 있다.

니콜 키드맨은 몇 달 전 개봉한 '인베이션(Invasion)'에 이어 금년 들어 두 번째로 다니엘 크레이그와 같은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라일라만이 아니라 다니엘 크레이그도 스토킹 하는 모양이다.



미스터 본드를 뒤쫓는 여배우는 니콜 키드맨이 전부가 아니었다.

'카지노 로얄'에서 본드걸 베스퍼로 나왔던 에바 그린까지 쫓아온 것!

에바 그린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활을 쏘는 마녀, 세라피나로 나온다.



항해에 익숙한 집시들도 빼놓을 수 없다. 얼핏보면 영락없이 '카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튀어나온 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풍선이 달린 비행선을 모는 '텍사스 카우보이' 리 스코스비(샘 앨리엇)도 메인 캐릭터 중 하나.



그리고, 판타지 영화에 어김없이 나와 살벌한 표정 한번 지어주는 반가운 얼굴, 크리스토퍼 리!

옛날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리를 보면 '드라큘라'를 떠올리지만 요즘 사람들은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을 떠올린다. 물론, 제임스 본드 팬들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스카라망가가 제일 먼저 생각나겠지만...

갈수록 역할이 작아지는 것 같지만 크리스토퍼 리를 못보고 지나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리 이외로 '판타지 영화' 하면 생각나는 배우가 하나 더 있다.

이언 맥켈렌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로 나오고 '스타더스트'에선 나레이션을 맡는 등 영국산 판타지 단골배우가 된 이언 맥켈렌은 갑옷으로 무장한 북극곰 이오렉(Iorek)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것이 바로 영국작가 필립 풀맨(Philip Pullman)에 의해 탄생한 '골든 콤파스(The Golden Compass)'의 세계다.

그렇다. '골든 콤파스'는 판타지 소설을 영화로 옮긴 또다른 판타지 영화다. '해리 포터', '스타더스트', '에라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에 이어 이번엔 필립 풀맨의 '골든 콤파스'가 영화화 된 것.

'고블러'로 알려진 미스테리한 단체가 어린이들을 납치하자 라이라와 그녀의 동료들이 납치된 어린이들을 구출하고 납치 배후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골든 콤파스'의 줄거리는 꽤 흥미진진한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소설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는 것.

아쉽게도 영화버전 '골든 콤파스'는 소설의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금년 여름 개봉한 '스타더스트'처럼 소설의 내용을 영화로 옮기는 것에만 목을 매는 바람에 '줄거리 잇기 놀이'를 하다가 끝나는 데 그쳤다. 대사 몇 줄 더 집어넣고 조금만 차분하게 진행했더라도 날림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 테지만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줄거리만 진행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문제들은 소설을 각색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소설을 영화로 제대로 옮기는 데 실패하한 영화들 말이다. '골든 콤파스' 역시 이런 영화 중 하나에 속한다. Best Adapted Screenplay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클라이맥스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또다른 아쉬운 점이다. 소설의 플롯 순서를 바꿔가면서 스펙타클한 클라이맥스씬을 준비하고자 노력한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가 밋밋해 보이는 것까지 바꿔놓지 못했다.

물론, 북극곰들의 결투와 하늘을 가득 메운 마녀들의 전투씬 등은 볼만하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만하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특수효과는?

'골든 콤파스'도 3D 특수효과가 화려한 영화 축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특수효과씬은 '스타더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에어쉽 비행장면이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디몬(Daemon)들이 전부 3D 캐릭터인만큼 특수효과에 인색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와 3D 디몬이 서로 박자가 제대로 맞지 않을 때가 있어 디몬을 쓰다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어색한 목소리 연기문제까지 겹쳤다.

가장 어처구니 없었던 건 북극곰 이오렉의 목소리. 육중한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할아버지 목소리'일 줄이야!!!

이언 맥켈렌에게도 한자리 내주기로 한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에게 이오렉 목소리 연기를 맡기면 어쩌자는 거냐! 곰이 왜 간달프처럼 말을 하는 건데?

우직하면서도 코믹한 곰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우가 이오렉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더라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적어도 이오렉과 라이라가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처럼 보이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다니엘 크레이그와 니콜 키드맨은 괜찮지 않냐고?

강인함이 느껴지는 건장한 사나이, 아스리엘과 소프트하면서도 우아한 미모의 컬터 부인에 크레이그와 키드맨이 잘 어울린 건 사실이다. 니콜 키드맨은 우아하게 보이면서도 괴팍스러운 컬터 부인을 훌륭히 연기했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는 '포스터 모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연기한 아스리엘의 출연시간이 짧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수퍼스타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를 끌어들였다는 것 하나로 재미를 보려던 게 본 속셈이 아니었나 한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카지노 로얄'에 함께 출연했던 에바 그린까지 '골든 콤파스'에 나오는 게 우연일리 없겠지?

가뜩이나 크레이그의 출연분량이 적은데 하필이면 그가 나오는 부분이 잘려나가기까지 했다.

왜 잘려나갔을까? 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종교논란.

크리스챤들은 무신론자인 필립 풀맨이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소설이 영화화 됐다면서 '골든 콤파스'를 보이콧해야할 영화로 규정했다. 영화화 되기 이전부터 풀맨의 소설 시리즈가 크리스챤들의 타겟이었다는 걸 알고있던 영화 제작팀은 안티 크리스챤적인 부분을 많이 걸러냈다. 하지만, 크리스챤들은 '영화를 본 어린이들이 소설을 읽고싶어하면 어쩌냐'면서 '원천봉쇄'를 주장하고 있다. 아이들이 풀맨의 소설을 읽고 무신론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

바로 이런 논란 덕분에 소설까지 읽게 됐다. 대체 이런 논란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 것. 이것도 노이즈 마케팅이 통한 것으로 볼 수 있을려나?

아무튼, 필립 풀맨의 '골든 콤파스' 소설은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골든 콤파스'는 필립 풀맨의 'His Dark Materials' 트릴로지 1권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용 판타지 소설인데다 홀리데이 시즌에 맞춰 영화까지 나왔다보니 서점에서도 '골든 콤파스' 영화관련 상품들을 제법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사진설명: 왼쪽은 카드게임, 오른쪽은 제작과정 이야기 등이 담긴 오피셜 영화 안내 책자)

자 그렇다면, '골든 콤파스'는 안티 크리스챤 소설일까?

영화에서는 안티 크리스챤적인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음흉한 종교단체의 명칭 '매지스테리움'이 캐톨릭 관련어라는 것부터 시작해 Holy Church, Bishop, Priest, Vatican, Baptism 등 캐톨릭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덕분에 매지스테리움이 캐톨릭에 빗대어 만든 가상의 종교단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캐릭터들의 이야기에서도 안티 크리스챤 분위기가 묻어난다. 아스리엘은 매지스테리움의 교리를 부정하는 캐릭터로 '수도원, 수도승, 수녀 등을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며, 컬터 부인은 포악하기로 소문난 북극곰왕 이오퍼(Iofur)에게 '크리스챤이 되도록 세례를 받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나온다.

캐톨릭과 캐톨릭의 신을 대놓고 공격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그런 의미 아니냐'고 해석하기에 충분한 것만은 사실이다.

좋다. '골든 콤파스'가 안티-크리스챤 소설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게 그렇게 엄청난 문제인가?

프로-크리스챤 소설이 있다면 안티-크리스챤 소설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신을 숭배하는 소설이 있다면 신을 부정하는 소설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모든 소설 또는 영화가 종교를 좋게 묘사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모든 소설 또는 영화가 프로-크리스챤이어야 한다는 법도 물론 없다.



예를 들어보자.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Chronicles of Narnia)'엔 '아담의 아들, 이브의 딸'이란 대사가 나오고 사자왕 아슬란이 부활할 때는 예수를 연상시켰다. 반면, '골든 콤파스'는 신을 부정하고 종교집단을 악당으로 묘사했다. 하나는 크리스챤과 그들의 신을 찬양하는 영화고 다른 하나는 신을 부정하는 영화다.

C.S 루이스의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와 필립 풀맨의 '골든 콤파스' 사이엔 유사한 점이 많다. 다른 세계, 말하는 동물들, 북극곰, 아이들이 주인공이란 점 등 서로 비슷한 데가 많은 것. 하지만,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는 친-기독교 영화고 '골든 콤파스'는 반-기독교 영화라는 것. 바로 이 차이점 때문일까? '골든 콤파스'는 '크로니클 오브 나니아'를 리버스로 틀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크리스챤들이 쓴 '골든 콤파스' 비판글을 보면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로 위장한 무신론 선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C.S 루이스의 나니아 시리즈는?

그대로 뒤집어 보면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로 위장한 예수교 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한쪽은 괜찮고 다른 한쪽만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와 무관한 데서까지 악착같이 종교타령을 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크리스챤이고 무신론자고 닝기미고 다 좋다고 하자.

가장 중요한 건 '골든 콤파스'를 보고 나서 속편이 기다려졌냐는 것이다. '골든 콤파스'가 끝나자마자 2편이 기다려질 정도였냐는 것. 이번에 개봉한 '골든 콤파스'가 트릴로지 1편인만큼 '골든 콤파스를 본 뒤 2편이 얼마나 기대되냐'는 건 상당히 중요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YES or NO?



나는 기다려진다. '골든 콤파스'가 싱거운 수준에 머문 건 사실이지만 영화가 싱거운 것이지 원작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크리스챤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종교적인 부분은 제외한 'His Dark Materias' 트릴로지의 스토리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까지는 인정하자는 것이다.

다만, '골든 콤파스'의 엔딩이 바뀌었다는 게 약간 걸리긴 한다. 줄거리가 이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변함없지만 '골든 콤파스' 하나로 종결시켜도 무방해 보이도록 엔딩을 바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2편 제작이 확정된 상태가 아닌 듯.

과연, 귀여운 우리 라이라가 모험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한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속편은 보다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골든 콤파스'가 아주 재미없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나은 것을 기대했다. 최근들어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들과는 어딘가 다를 줄 알았다. 제작비용이 2억불 이상이나 들었고 다니엘 크레이그, 니콜 키드맨 등 유명배우들까지 출연하는만큼 여러 면에서 높은 수준인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저 평범한 수준의 판타지 영화인 게 전부였다. MPAA로부터 PG-13을 받았지만 PG 영화처럼 보일 정도로 생각보다 심하게 아동틱한 평범한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였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 영화제작에 노우하우가 부족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 같다.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비한 분위기가 나는 사운드트랙으로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 꽤 유명한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성인관객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아주 뻔해 보이는 몇 가지 룰에 맞춰 어설프게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골든 콤파스'가 '반지의 제왕'에 버금가는 판타지 대작이라고 하던데?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계속 나아진다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골든 콤파스' 1편만으로는 동의하기 힘들다.

비교할 것을 비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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