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4일 금요일

별볼일 없는 '나는 전설이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다 죽어버리고 나 혼자서 유일한 생존자로 남는다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못견딜 것이라고 한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이런 생각을 꽤 많이 해봤다.

자동차 소리도 없고 떠드는 소리도 없을 것이다. 귀찮게 이리와라 저리가라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성질 돋구는 싸가지 없는 녀석들도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매일같이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스트레스 받던 생활과 '굳바이'다. 게다가, 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란 것도 거래할 일이 있어야 가치가 있지 나 혼자서 사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무인도로 이사갈 필요 없이 편리하게도 사람들이 사라져주니 이것이야 말로 내겐 꿈같은 얘기다.

이쯤 되면 '나는 전설이다'가 아니라 '나는 왕이다'라고 외쳐야 맞을 것이다. 전세계가 모두 내 것이니까.

하지만,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는 특별할 게 없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생존자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 죽어 외톨이가 되고나니까 외롭다'는 것만큼 징그러울만치 당연하면서도 평범한 얘기가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



'나는 전설이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많은 사람들이 좀비와 뱀파이어의 중간쯤인 '좀파이어' 상태가 되자 주인공 로버트 네빌이 좀파이어들의 계속되는 공격속에 문제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을 찾기위해 연구를 계속한다는 게 전부다.

이 정도의 설명만 보더라도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대충 감이 잡힌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줄거리는 이처럼 볼 게 없을 정도로 뻔한 내용이다.



그렇다고 '전설'적인 액션영화인 것도 아니다.

얼핏 보기엔 액션이 많은 시원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액션영화다운 액션씬은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좀파이어와 같은 몬스터들이 나오지만 '나는 전설이다'는 주인공이 이들과 맞서 싸우는 내용의 영화가 아닌 덕분이다.



그렇다고 공상과학 영화인 것도 아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람들이 모두 죽는 바람에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린 뉴욕시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대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것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전부다. 재앙이 휩쓸고 간 이후의 '순수한' 생존 이야기에 포인트가 맞춰진 게 아닌 덕분이다. 인류가 멸망하다시피한 지구를 배경으로 몇 안되는 생존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맛보여주기 정도에 그치고 곧바로 좀파이어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나, 좀파이어들이 나온다고 무조건 공포영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좀파이어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공포영화 분위기가 나지만 공포영화다운 공포는 없다. 어떻게 보면 공포영화처럼 보이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렇다고 공포영화로 분류시킬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전설이다'의 쟝르는 무엇일까?

액션 찔끔, SF 찔끔, 공포 찔끔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이렇게 정신을 못차리는 이유는 영화가 대재앙 -> 인류멸망 -> 좀파이어 공격순으로 이어지는 덕분이다. 세 가지를 한곳에 모으려고 한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인지 헷갈리게 하면서 흥미를 잃게 만든다.

텅빈 도시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게 메인이면 이쪽에 무게를 두고, 좀파이어와의 대결이 메인이면 그쪽을 확실하게 보여줬어야 이해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설이다'는 영화의 성격을 파악하기 힘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영화처럼 보이는 데 그쳤다.



금년 여름에 개봉했던 니콜 키드맨 주연의 '인베이션(Invasion)'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외계인의 지배를 받게 된 사람들이 좀비처럼 몰려다닌다는 내용의 영화다. 결국은 문제의 외계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을 찾으며 끝난다.

금년 가을에 개봉했던 조쉬 하트넷 주연의 '30 데이즈 오브 나잇(30 Days of Night)'은 거진 야생동물에 가까운 뱀파이어들이 30일간 밤이 지속되는 알래스카의 한 마을을 습격한다는 내용의 공포영화다.

그렇다. '인베이션'과 '30 데이즈 오브 나잇'을 합치면 '나는 전설이다'가 나온다.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과 좀비처럼 몰려다니는 인간들, 여기에 야행성 야생동물처럼 사람들을 습격하는 뱀파이어들이 나오는 게 '인베이션'와 '30 데이즈 오브 나잇'을 떠올리게 했다.

제아무리 윌 스미스가 실력있는 인터테이너라지만 '나는 전설이다'처럼 엉성한 영화를 혼자의 힘으로 살려놓는 건 불가능했다. 액션도 아니고 SF, 호러도 아닌 미적지근한 영화에서 윌 스미스 특유의 위트넘치는 유머와 조크도 없이 무엇으로 영화를 살려놓을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다. 유머도 무지하게 부족했다. 유머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별 볼일 없는 수준에 불과할 뿐 영화내내 제대로 웃겼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없었다. 대부분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수준의 가벼운 유머가 전부였다.

'나는 전설이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둡고 진지하고 유머에 인색한 영화였다.

하지만, 다른 것으로 대신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로버트 네빌이 겪는 '외로움', '슬픔', '공포', '분노'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게 영화에 나온 것까진 알겠는데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로버트 네빌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마네킹과 대화를 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해가 지면 출몰하는 뱀파이어들을 두려워 하고, 떼로 몰려드는 뱀파이어들을 향해 자동차로 돌진하기도 하지만 줄거리 진행을 위해 마디마다 장식용으로 집어넣은 것처럼 보일 뿐 제대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한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어디였냐고?

TV에서 암을 치료했다 어쨌다며 떠들다가 3년후 풍경으로 넘어갔을 때다. TV에선 인류의 앞날이 창창한 것처럼 떠들었는데 3년뒤 뉴욕시의 풍경이 워낙 다르다보니 웃음이 터져나왔던 것.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코믹한 장면이 이것이었다면 뭐...



화려한 액션과 함께 윌 스미스 특유의 유머가 넘치는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나는 전설이다'에 실망할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어둡고 진지할뿐만 아니라 지루하기까지한 영화다.

신나는 SF 액션영화를 원한다면 '나는 전설이다'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나는 전설이다'는 이런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SF영화인지 공포영화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턱걸이 평균 수준의 별볼일 없는 미적지근한 영화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면 가서 봐라.

내 생각엔 윌 스미스의 클래식 히트곡 'Boom! Shake the Room' 뮤직비디오를 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은데...

Pump it up, PRINCE!!

댓글 2개 :

  1. 저도 처음에는 님 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혹시나 하는마음에 이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고 정보를 모으니, 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 영화를 원작에 더 충실해서 만들어 졌다면, 보다 더 훌륭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인터넷에 '나는 전설이다'의 또다른 엔딩씬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참고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ㅎ^^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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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원작이 있다는 건 알고있는데 읽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원작보다 못한 데가 많겠죠.

    또다른 엔딩은 미국서 곧 출시되는 DVD에 포함된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보긴 봤는데 글쎄요...
    공포도 아니고 SF도 아닌데 쓸데없이 진지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홀로 남았다는 고독감이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전체적으로 썩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Alternate Ending만으론 좀 부족한 감이...

    아, 그리구요.
    홈페이지 주소 입력할 때 http://를 넣지 않으면 주소가 엉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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