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1일 월요일

힙합 콘서트의 추억

어렸을 적에 로컬 갱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이런 문제아 녀석들과 어울려 다닌 적이 있었다.

새삼스럽게 갱 이야기를 하고싶진 않지만 나도 한 때 이런 것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오...ㅡㅡ;

나와 함께 몰려다녔던 녀석들은 주로 흑인과 멕시칸이었고, 해프 코리언을 포함한 아시아계 혼혈도 더러 섞여있었다.


갱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힙합이다. '갱스터 랩'부터 시작해서 힙합이란 힙합은 죄다 듣고 다녔다.

하지만, 듣는 것 만으론 부족했다. 라이브 공연에 직접 가서 보고싶어진 것이다.

그 때 당시 꽤 유명했던 힙합 그룹 싸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이 있었는데, 이들이 내가 살던 근처에서 공연을 한다는소식을 들었다. 사이프레스 힐 단독이 아니라 'Jump Around'으로 유명한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과 'Ring the Alarm'이란 곡으로 당시 유명했던 Fu Schnickens도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녀석들과 거기에 가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우선 이들의 곡을 살짝 맛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싸이프레스 힐의 'How Could I Just Kill A Man'


▲하우스 오브 페인의 'Jump Around' 뮤직비디오


▲Fu Schnickens의 'Ring the Alarm' 뮤직비디오

그런데, Fu Schnickens는 오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들이 왜 안 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콘서트홀에 모였던 팬들은 '갱들의 싸움판이 될까봐 무서워서 도망갔다'며 'P-U-S-S-Y'!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실제로 콘서트홀을 메운 관객들 대부분이 갱멤버였다...ㅋㅋ

먼저 무대에 오른 건 하우스 오브 페인이었다. 당연히 'Jump Around'이 빠질리 없었겠지?

공연 이외의 볼거리도 있었다. 바로, 비키니 콘테스트!

비키니 콘테스트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리콘 밸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보고나니까 알겠더라.

실리콘 밸리는 만지라고 만든 것이었다...

▲하우스 오브 페인(왼쪽), 실리콘 밸리(오른쪽)

싸이프레스 힐은 멤버 중에 갱과 관련있는 친구들도 있는 데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싸이프레스 힐은 마리화나 관련 매거진 표지에 'High Life' 어쩌구 하면서 자주 나오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콘서트 도중에 마리화나를 무대 위에 수북히 쌓아놓더니 관객들에게 '불 좀 달라'고 하더라. 그러자 수십 개의 성냥과 라이터가 무대로 날아드는데...

자기네들만 피우는 게 미안했는지 무대 위에서 마리화나를 태우기도 했다.


▲사이프레스 힐 공연 장면

한가지 잊을 수 없는 건 무대에서 공연이 한창일 때 관객들이 양손을 치켜들고 갱 사인(Gang Sign)을 그리던 풍경이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블러드, 크립스 같은 미국 갱 이야기를 하고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쪽 친구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진 않았지만 자기네 갱끼리 뭉쳐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패싸움' 분위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콘서트 막판이 되자 싸움이 터졌다. 공연이 정상적으로 끝났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싸움이 터졌던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난다...ㅡㅡ;

콘서트홀을 빠져나오자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오고 앰뷸랜스 소리가 요란했다.

우리는 싸움과 전혀 무관했으므로 아무 일 없는 듯이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검정색 카메로 한대가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더니 길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흰색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녀석 2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우리더러 거기 그대로 서 있으라고 했다.

뭐냐 씨바...

알고봤더니 경찰이었다. 흰색 티셔츠 안쪽에서 목걸이처럼 걸고있던 경찰 배지를 꺼내 보여주더라.

경찰은 우릴 일렬로 세우더니 콘서트홀에서 나오는 걸 봤다면서 '어디서 왔냐', '어느 갱 소속이냐'는 질문을 쏟아댔다. 우린 '콘서트 보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소집품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갖고있던 건 싸구려 카메라와 몇 푼 안되는 돈이 전부였다.

소집품 검사가 끝나자 우리더러 양손 모두 앞으로 내밀라고 했다. 손등 먼저, 그 다음엔 손바닥 순서로 보여달라는 것이다. 다른 한 경찰은 플래시로 우리의 손을 비췄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손을 비교적 꼼꼼하게 살폈다.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검사할 정도였으니까...

문제삼을 게 없는 것으로 밝혀지자 경찰 중 하나가 우리더러 '미안하게 됐다. 너희들이 나온 공연장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갱인 줄 알았다'면서 빨리 집에 가라고 하더니 자동차에 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경찰이 사라진 뒤 한 녀석에게 경찰이 손을 검사한 이유를 물었다. 손금 봐주려던 것도 아니고 생뚱맞게 손을 검사한 게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스프레이 페인트 흔적'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하더라. 갱들이 벽에 낙서할 때 사용하는 스프레이 페인트가 손에 묻었는지 검사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때 우리 일행중 하나가 스프레이 페인트를 갖고있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그 녀석을 돌아봤더니 한참 전에 버렸다면서 '가지고 있었더라면 골치아프게 될 뻔 했다'며 씨익 웃더라.

그 이후에도 힙합 콘서트에 몇 번 더 갔다. 많이 간 것은 아니지만 Black Sheep, Snoop Dogg 등의 콘서트에 갔던 기억이 난다.


▲Black Sheep의 'Choice is Yours' 뮤직비디오

그 때엔 아무 일 없었냐고?

아니 그럼 갈 때마다 무슨 일이 생겼길 바란단 말씀이오?

댓글 2개 :

  1. 제가 고등학교 무렵(94~96년), 이 힙합, 특히 갱스터랩에 푹 빠져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그때까지 사실 한국 남자 고딩은 메탈을 듣는게 더 일상적인 시절이었고요.

    그러다가 한 친구가 '홍대쪽에 흑인들이 가는 힙합 랩 전용 클럽이 생겼다. 근데 좀 험악할 걸.' 이라고 해서 가 봤죠.

    '뭐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덴데....' 라고 생각하면서요.

    대강 좀 차려입어 주시고...ㅡㅡ; 갔슴다.

    이건 딱 들어가니 분위기가 '여차하면 머신건 꺼내서 난동질 할 분위기' 더군요. 죄다 미군 소속 군바리 들일텐데 진짜 '여기서 잘못하면 죽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흑인 친구 만들어서 '이봐 형씨, 우리 한번 시를 읊어보고 즐겨볼까나' 는 커녕 도망치듯 나왔슴다....ㅡㅡ;

    요즘은 힙합 안듣고요. 지금 힙합은 죄다 '나 돈 ㅈㄴ 많고 ㅈㄴ 잘났고 벤틀리 간지 작살' 이런거나 '엉덩이 ㅈㄴ게 흔들어보아효' 이런 것들밖에 없어서....ㅡㅡ;

    비스티 보이즈, RATM, 등이나 과거 마키 마크, 슈가힐 갱 같은 고전물(??)을 주로 듣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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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요샌 힙합은 별로...ㅋㅋ 힙합을 전혀 안 듣는 건 아니지만 즐겨듣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한 철인가 봅니다...

    그 때 당시에 3~40대 이상 되던 흑인들은 힙합/랩을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라면서 듣지 않더라구요.

    전 힙합을 애들음악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예전만큼 좋아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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