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4일 목요일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 맨 정신으론 글쎄...

데일 댄튼(세스 로겐)은 소송 관련서류를 배달하는 'Process Server'다. 데일은 마리화나 딜러, 사울(제임스 프랭코)에게서 구입한 마리화나를 밥 먹듯이 피우는 몽롱한 생활을 즐긴다.

사울과 데일은 마약딜러와 고객의 사이일 뿐 '베스트 프렌드'는 아니다. 하지만, 레드(대니 R. 맥브라이드)로부터 구했다는 '피인애플 익스프레스'라는 마리화나를 같이 피울 정도는 된다. 절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아도 새로 나온 양질의 마리화나를 함께 나눠 피울 정도는 되는 것.

사울과 데일이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서로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테드 존스(개리 콜)라는 이름이 나온다. 데일은 테드 존스에게 배달할 서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울도 테드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안다는 것이다. 레드에게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라는 마리화나를 공급한 사람 이름이 테드 존스라는 것.

이 때만 해도 사울과 데일이 말한 테드 존스라는 인물이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데일이 테드 존스의 집으로 서류 배달을 갔다가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는 데일과 사울이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마약딜러와 경찰에게 쫓기게 되면서 벌어지는 우왕좌왕 스토리를 그린 액션/코메디다.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목격한 데일, 그에게 마리화나를 판 바람에 얼떨결에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 사울과 레드 3명의 대책 안 서는 녀석들이 좌충우돌하는 난장판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건 데일역을 맡은 세스 로겐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외모의 배우지만 이마에 '나는 코메디언'이라는 딱지를 붙인 배우들의 오버하는 코믹 연기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억지로 우스꽝스러운 짓이나 표정을 짓지 않고 정신없이 까불거리지도 않으면서 평상시처럼 대화를 하는 데도 웃음이 터지게 하는 아주 웃기는 친구였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해리 오스본으로 출연했던 제임스 팰코의 코믹 연기도 그런대로 O.K였다. 세스 로겐 만큼 끼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마리화나나 피고 팔고 하면서 멍하게 사는 캐릭터를 비교적 리얼하게 연기했다.

특히,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엄지 손가락으로 자G를 내민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면에선 웃지않을 수 없었다. 고무로 실물처럼 만든 여자용 장난감(?)을 지퍼 사이에 끼우고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인가...?ㅋㅋ



하지만 '파인애플 익스프레스'의 재미는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무지하게 단조로운 스토리에 금새 흥미를 잃으면서 바보스러운 액션과 조크에도 무덤덤해졌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토리로 뻔할 뻔자식 액션/코메디 패턴에 맞춰 만든 또 하나의 영화로 보였을 뿐이었다.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는 설정은 액션/스릴러 영화에서 수없이 봐왔으며, 다소 과격한 액션과 바보스러운 유머 콤비도 새로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수퍼배드'와 같은 고등학생들의 섹스 라이프 이야기는 하이스쿨 시절을 추억하면서 키득거리는 맛이라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린 대책 안서는 두 녀석과 총에 아무리 맞아도 죽지않는 한 녀석이 마약딜러와 전쟁(?)을 벌인다는 황당한 스토리를 무슨 맛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파인애플 익스프레스'가 아주 못봐줄 정도라는 건 아니다.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유치한 영화인 것도 아니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는 들어갈 재료는 다 들어간 영화다. 다만, 맛이 별로라는 게 문제다. 액션/코메디에 어울리는 스토리와 배우, 그리고 액션과 유머가 그런대로 잘 버무려졌지만 맛은 지극히도 평균수준이었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다 집어넣었다고 무조건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과격한 장면이 나오면 '워우~!' 하고 웃기지도 않는 유치한 씬을 보면서 낄낄거릴 수 있을 만큼 밝게(?) 사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젠 이런 코메디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 않더라.

내가 갈수록 웃음에 인색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코메디 영화가 갈수록 유치해지는 것일까?

난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거든...

아, 마리화나를 한 대 피우고 봐야 하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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