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들이 많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은 이해가 되었는데 '콴텀 오브 솔래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본드팬들이 많은 것.
이렇게 생각한 본드팬들은 전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을 읽지않은 사람들일까? 플레밍의 원작 스타일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까?
아니다. '콴텀 오브 솔래스'가 제목을 제외하곤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다.
007 제작진은 '이언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는 매우 어두운 캐릭터'라고 합창을 하고 다녔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색다른 제임스 본드가 원작 캐릭터의 성격이라는 걸 알리려 한 것이다. 사실, 이건 틀린 말은 아니다. 원작의 제임스 본드가 매우 어두운 캐릭터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007 제작진은 '카지노 로얄'에 새로운 줄거리를 이어붙여 '썬더볼(Thunderball)',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트릴로지처럼 만들고자 했다. '스펙터' 대신 '콴텀', '트레이시' 대신 '베스퍼'로 바꿔 끼워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여기까지도 좋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 틀렸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암울해지고, 가젯에 의존하지 않으며, 피를 흘릴 정도로 자주 얻어터진다는 것까지는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007 제작진이 생각한 '플레밍의 원작'은 어처구니 없게도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격렬한 액션'으로 메꾸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플레밍의 소설은 무시무시한 에이전트가 다 때려부수고 다니는 내용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무뚝뚝한 제임스 본드의 격렬한 논스톱 액션만으로 원작 생색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다 보니 '콴텀 오브 솔래스'가 플레밍 원작의 제임스 본드 영화로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콴텀 오브 솔래스'는 플레밍의 원작을 제대로 살리는데 실패했다. 시도를 한 것까지는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진정으로 제대로 된 플레밍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게 있다: 007 제작진은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계속 한다면 가망없다. 제작진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제대로 만들 생각을 갖는다면 이언 플레밍 원작을 참고하거나 각색하지 않고도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영화 스크립트를 충분히 만들 수 있겠지만 유행을 좇으며 흥행성공할 생각만 머릿 속에 가득한 제작진에게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본드23'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어설픈 '원작 살리기'는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다. 진정한 플레밍 원작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어설픈 스토리에 큰 기대를 할 수 없고, 플레밍의 원작으로 돌아가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부터 다시 만드는 것은 제작진이 내키지 않아 하는 분위기이니 그 중간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로써는 제임스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성격에 맞춰 점잖은 젠틀맨 캐릭터로 묘사하면서 격렬한 액션씬의 횟수를 줄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전환하는 게 최선책으로 보인다. Q, 가젯, 본드카가 나오는 전통적인 007 포뮬라로 돌아가는 대신 제임스 본드만은 실없는 플레이보이 이미지가 없는 점잖고 진지한 캐릭터로 묘사하는 것이다. 원작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는 건 이래저래 기대하기 힘들어 보이니 플레이보이 기질이 덜한 점잖은 캐릭터 하나 정도만 남겨놓고 '카지노 로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살인면허' 만기일을 앞당기고 싶지 않다면 '본드23'는 바뀌어야만 한다. 007 제작진도 이것 만큼은 잘 알고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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