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일 금요일

'무더기 본드걸'을 돌려다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본드걸이다. 여주인공격인 리딩 본드걸, 서포팅 본드걸, 대사가 몇 마디밖에 안 되는 단역 본드걸, 대사 한 줄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게 전부인 엑스트라 본드걸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본드걸들이 줄어들고 있다.

한 영화에 리딩 본드걸만 2명이 나온 적도 여러 번 되는데 본드걸이 줄어든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대사없는 엑스트라 본드걸들이 007 시리즈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 007 시리즈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가는 곳에 엑스트라 본드걸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면서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무더기 본드걸'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대사도 없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게 전부인 엑스트라일 뿐인데 아쉬울 게 있냐고?

있다. '무더기 본드걸'도 007 시리즈의 전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더기 본드걸'은 언제부터 007 시리즈에 등장한 것일까?

007 시리즈라는 '쟝르'가 만들어졌다는 1964년작 '골드핑거(Goldfinger)'부터다. 리딩 본드걸, 푸씨 갈로어(오너 블랙맨)의 서커스 비행단 여조종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골드핑거'는 리딩(푸씨 갈로어), 서포팅(질 매스터슨, 틸리 매스터슨), 단역(딩크), 그리고 무더기(서커스 비행단 여조종사들)까지 모든 종류의 본드걸이 모두 등장한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골드핑거' 이후부터 '무더기 본드걸'들은 007 시리즈에 단골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67년작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서 일본의 '목욕탕걸'로 나온 여배우들도 '무더기 본드걸'에 속한다.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에는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에 세뇌되어 세균무기를 운반하게 되는 'ANGELS OF DEATH'가 있었다.



'무더기 본드걸'은 몇 개의 영화를 건너뛴 다음 1977년 영화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의 이집트 '사막걸'로 돌아왔다.



1979년 영화 '문레이커(Moonraker)'에는 휴고 드랙스(마이클 론스데일)를 위해 일하는 '드랙스걸'(?)이 있었다.



1981년 영화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에는 곤잘레스의 저택 풀장의 비키니걸들이 있었다. 더욱 멋진 것은, 이중에 성전환 본드걸(아래 사진 맨 왼쪽)까지 있었다는 사실.



1983년 영화 '옥터퍼시(Octopussy)'에는 여주인공 옥터퍼시(마우드 애덤스)의 여성 서커스 단원들이 있었다.



1985년 영화 '뷰투어킬(A View To A Kill)'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이번엔 맥스 죠린(크리스토퍼 워큰)의 파티에 참석한 '파티걸'이다.



1987년 영화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에선 브래드 위태커(조 돈 베이커)의 탄지어(Tangier) 저택에서 '풀장걸'로 먼저 나오고, 제임스 본드가 경찰에 쫓기며 지붕과 지붕사이를 뛰어다니는 씬에도 잠깐 나왔다.





1989년 영화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에선 산체스(로버트 다비)가 고용한 접대부들이 있었다.



1995년 영화 '골든아이(GoldenEye)'에선 '카지노걸'로 나왔다. 카지노씬에 나오는 여배우들 대부분이 '무더기 본드걸'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팜키 얀슨(Famke Janssen)은 제외.




1999년 영화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에는 '속보이는 카지노걸'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전부다. 21세기로 접어든 이후부터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무더기 본드걸'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80년대에 제작된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했던 '무더기 본드걸'이 90년대에 들어서부터 눈에 잘 띄지 않기 시작하더니 21세기 들어서는 아예 사라져버린 것. 007 시리즈 오마쥬로 채워진 40주년 기념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도 '무더기 본드걸'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2006년 영화 '카지노 로얄'에는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호텔 앞을 지나는 여성 2명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이들이 '무더기 본드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달랑 2명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전 007 시리즈에서 여러 명의 본드걸들이 비키니 또는 파티 드레스를 입고 나왔던 것에 비해 효과가 미미했다.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서도 '무더기 본드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키니걸들로 가득찬 풀장씬, 전세계 미녀들을 한데 모은 듯한 화려한 파티씬을 집어넣는 게 그렇게도 힘든 것일까?

이런 것보다 차라리 베드씬 횟수를 늘리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베드씬이 007 시리즈를 우스꽝스럽게 만든 주범 중 하나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007 영화엔 베드씬이 무조건 나와야 한다'는 강박에 의해 집어넣은 듯한 베드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섹스리스(Sexless) 본드'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베드씬으로 영화가 유치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섹스리스가 낫다고 본다. 게다가, 007 시리즈는 패밀리 어드벤쳐 영화이기 때문에 베드씬에 한계가 있다. 물론,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처럼 '주니어판 에로영화'처럼 만들 수도 있지만, 본드팬들 중에 느끼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그러므로, 센슈얼한 씬이 필요하다면 본드가 가는 곳마다 비키니,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엑스트라 본드걸들을 배치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자칫하다간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처럼 될 수도 있지만 007 영화 시리즈에서는 섹시한 주연급 본드걸(들)과 본드가 가는 곳마다 기다리고 있는 민망한(?) 차림새의 '무더기 본드걸'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본드23'에선 제발 '무더기 본드걸'을 돌려다오!!

이 친구들이 없으니까 허전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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