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9일 토요일

'스타 트렉', 나쁘지만은 않은 출발

Time travel... Destiny... Sound familiar?

ABC TV의 '로스트(Lost)'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만 설명해도 'J.J. 에이브라함스의 작품'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2009년도 극장판 '스타 트렉(Star Trek)'은 J.J. 에이브라함스와 데이먼 린델로프(Damon Lindelof), 다시 말하자면 '로스트' 프로듀서들이 제작과 연출을 맡은 영화다. JJ가 연출을 맡았던 '미션 임파시블 3(Mission Impossible 3)'가 그의 TV 시리즈 '에일리어스(Alias)'와 아주 비슷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타 트렉'에선 '로스트'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스타 트렉'도 배트맨, 제임스 본드, 그리고 최근의 엑스맨처럼 처음으로 되돌아가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 하는 것은 좋았는데 새롭다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이야기(비기닝)를 어떻게(JJ 스타일) 전개시키려 하는 지 금새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트렉'은 틴에이져들을 겨냥한 여름철 공상과학 영화인 만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그럴 수도 있다. 스토리가 밋밋하고 뻔한 데다 때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유치하기도 했지만 6~70년대 클래식 캐릭터 캡틴 커크(Kirk), 스파크(Spock) 등을 21세기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이런 영화는 요즘 청소년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면 그대로 실패하게 되어있는 만큼 젊었을 적 캡틴 커크를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플레이보이로 묘사하고, 칼리지 캠퍼스 분위기를 살리는 등 60년대 캐릭터들을 현대화하는 데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윌리엄 섀트너(William Shatner)와 레오나드 니모이(Leonard Nimoy)를 빼고 '스타 트렉'을 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앞으로 프랜챠이스를 이끌 캡틴 커크, 스파크 등 '신세대' 승무원 소개는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모든 캐스트가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우선, 자카리 퀸토(Zachary Quinto)는 신세대 스파크로 합격점을 줄만 하다. 신세대 캡틴 커크 역의 크리스 파인(Chris Pine)은 약간 걱정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NOT-TOO-BAD이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유쾌한 성격의 말썽꾸러기 'College Kid' 버전은 우려했던 만큼 나쁘지 않았다. 자칫하면 단조롭고 썰렁해질 수도 있는 영화인 만큼 '애송이 커크'를 유머가 풍부한 캐릭터로 묘사한 것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러시아 태생 미국인 영화배우, 앤튼 옐친(Anton Yelchin)을 러시아인 승무원, 체코브 역으로 캐스팅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러시아어를 전혀 할 줄 모르고, 앤튼 옐친의 러시아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러시안 액센트가 상당히 리얼하게 들렸다. 러시안 액센트 때문에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에서 웃지 않을 수 없더라. 앤튼 옐친에게도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듯.

하지만, 히카루 술루(Hikaru Sulu) 역을 맡은 존 조(John Cho)는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으로는 오케이였으나 검을 휘두르는 액션씬에는 영 아니올시다 였다. 똥폼 잡는 액션씬에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패스시켜줄 수 있겠지만 그가 '펜싱'을 하는 장면은 더이상 보고싶지 않다. 캡틴 커크부터 유머감각이 풍부한 데다, 영국 코메디언 사이먼 페그(Simon Pegg) 등 코믹연기에 능한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 바람에 존 조의 신세대 술루의 성격을 결정짓기 애매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술루 역시 코믹 릴리프를 맡는 게 현명할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스타 워즈(Star Wars)' 캐릭터들 만큼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캡틴 커크와 스파크도 '스타 워즈' 캐릭터 못지 않게 유명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스베이더, 핸 솔로 정도는 아니다. 반드시 그 정도까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스타 워즈'에 비해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부분들을 메꿔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수퍼스타 캐릭터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스타 트렉' 세계와 어울리는 좋은 스토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캐릭터들이 흐지부지하면 큰 인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스타 트렉' 제작진은 이번 영화를 통해 캡틴 커크, 스파크 등이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캐릭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글쎄올씨다 다. '스타 트렉 2009'는 요즘 불고있는 프리퀄 유행을 타고 '스타 워즈'와 '로스트'를 슬쩍 리믹스한 게 전부였는데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동안 따분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으니 아주 재미없게 봤다고 하긴 힘들겠지만, 영화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만한 스페셜한 무언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고, 영화도 이 정도면 여름시즌 틴에이저용 SF영화로써는 그런대로 넘어갈 만 한 데다, 이번 영화를 통해 신세대 버전 '스타 트렉'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것도 그런대로 성공한 듯 하지만 '마이크 타이슨 펀치'는 없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크게 실망스럽진 않았다. 비록 얼굴은 달랐지만 캡틴 커크와 스파크 등 낯익은 클래식 캐릭터들도 반가웠고, 영화도 전체적으로 그런대로 볼만 했다. 캐릭터, 스토리, 스케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스타 워즈'가 한 수 위라는 생각을 바꿀 정도는 못되었지만 최고는 아니어도 합격할 만한 점수를 줄 만 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여지껏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느냐에 '스타 트렉'의 성사가 달렸다고 했는데,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초-중-고-대학생들보다 머리가 희끗한 50대들이 더 많았다. 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까지 터져나왔다. 순간 신세대보다 구세대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50대인 분들이 학생시절에 즐겨봤던 추억의 TV 시리즈와 그 때 그 캐릭터들이 돌아왔기 때문일까? 제작진의 의도는 '틴에이저 프렌들리'가 분명해 보이는데 3~40년전 틴에이저들까지 열광할 줄은...

2탄부터는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한번 기대해 보겠다.


댓글 2개 :

  1. '에피소드 1'에 비하면 초우등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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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피소드 1'은 좀 그랬죠...ㅋ 꼬마 애나킨이 레이스를 하는 것 빼곤 기억나는 게 별로...

    하지만, '에피소드 1'엔 다스베이더, 핸 솔로 등 낯익은 캐릭터들이 안 나왔으니 직접 비교하기는 좀... '에피소드 1'은 패트릭 스튜어트의 '스타 트렉'과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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