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7일 일요일

제목만 거창한 '앤젤스 앤 디몬스'

'다 빈치 코드(Da Vinci Code)'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미국 작가, 댄 브라운(Dan Brown)의 또다른 소설을 영화화 했다고?

지난 번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하더니 이번엔 바티칸을 날려버리려 한다고?

게다가, 제목은 '앤젤스 앤 디몬스(Angels & Demons)'?

우워어어~ 열나게(?) 그럴싸 해 보인다고?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게 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가 어떻게 뜰 수 있었을까? 댄 브라운이 천재적인 작가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댄 브라운의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겠지만 댄 브라운은 그다지 훌륭한 작가는 못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이 월드와이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섹시한 소잿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세계적으로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애를 낳았다'는 얘기를 하니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발끈한 종교계가 신들린 듯 댄 브라운과 '다 빈치 코드'를 비판하며 치어리더 노릇을 해주자 책은 더욱 불티나게 팔렸다. 이러한 논란 덕분에 영화버전 '다 빈치 코드'도 전세계적으로 흥행성공을 할 수 있었다.

Controversy. 바로 이것이 '다 빈치 코드'의 엔진이었다.

하지만, '엔젤스 앤 디몬스'는 사정이 달랐다. 예수에서 바티칸으로 스케일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바티칸과 캐톨릭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바티칸에 원한이 있는 비밀단체가 바티칸을 날려버리려 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보니 지난 '다 빈치 코드'만큼 섹시하지 않았다. 캐톨릭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불쾌할 만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고, 실제로 미국의 캐톨릭 리그가 '앤젤스 앤 디몬스'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다 빈치 코드' 수준의 논란거리는 없었다. 그 폭발력이 지난 번보다 약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비밀단체가 등장하고, 로버트 랭든 교수(톰 행크스)가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 않냐고?

책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영화에서도 그러하길 바랬다. 하지만, 영화버전 '앤젤스 앤 디몬스'는 어찌된 게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보다도 흥미롭지 않았다. 비밀단체는 바티칸을 파괴하려는 테러리스트/시리얼 킬러에 불과했고, 랭든이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도 그저 휙 지나가는 게 전부였을 뿐 영화관객들과 함께 미스테리를 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랭든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미스테리를 푼다는 생각이 들도록 관객들의 호기심을 건드려줬더라면 보다 흥미진진했겠지만 그저 잠자코 랭든의 뒤를 따라다니라는 게 전부였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만 보고 즐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밀단체와 미스테리를 제외하고 나면 '바티칸을 파괴하려는 테러리스트의 음모를 저지한다'는 게 전부인 매우 단순하고 흔해빠진 스토리밖에 남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유럽의 한 학자가 '바티칸은 크렘린같은 곳'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바티칸 내부를 조명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었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다. '앤젤스 앤 디몬스'는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았다. 종교와 과학, 바티칸과 일루미나티(Illuminati)에 대한 이야기보다 조금 더 자극적인 줄거리가 필요했다. 바티칸 테러는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흔해빠진 플롯이고, 바티칸과 일루미나티의 대립도 대중적인 호기심을 끌기엔 무리였다. 갈릴레이 이야기보다는 토리노의 성의, 첫 번째 (남장)여성 교황으로 알려진 조앤의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지 않았을까?


▲남장여성 교황 방지차원으로 불X유무를 확인키 위해 만든 의자

그렇다면 왜 '앤젤스 앤 디몬스'의 스케일이 '다 빈치 코드'보다 작아진 것일까?

'앤젤스 앤 디몬스'가 '다 빈치 코드'보다 먼저 출간된 댄 브라운의 소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를 전세계 널리 알린 소설은 '앤젤스 앤 디몬스'의 후속편인 '다 빈치 코드'였다. 바꿔 말하자면, '앤젤스 앤 디몬스'는 '다 빈치 코드'만큼 주목을 끌지 못했다는 게 된다. 그러자 작가 댄 브라운도 종교, 과학, 바티칸, 일루미나티 이야기만으로는 폭발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했고, 후속편인 '다 빈치 코드'에서 이를 갖춘 소잿감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다 빈치 코드'가 '앤젤스 앤 디몬스'보다 먼저 영화화 되었고, 소설도 '다 빈치 코드'부터 읽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앤젤스 앤 디몬스'를 '다 빈치 코드'의 속편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앤젤스 앤 디몬스'를 보고 '전편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들이나, 소설 시리즈의 순서를 알고있는 사람들은 금년에 개봉한 '앤젤스 앤 디몬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다 빈치 코드'만큼 논란에 휩싸이지도 않을 것이며, 박스오피스 실적도 '다 빈치 코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있었을 테니까. '앤젤스 앤 디몬스'가 '다 빈치 코드'의 인기를 한 번 더 울궈먹으려는 영화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줄거리까지 억지로 이어가며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한 번 더 울궈먹었던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래도 '앤젤스 앤 디몬스'는 원작이라도 분명하니까 '콴텀 오브 솔래스'보다는 덜 한심스러운지 모르지만 전작의 인기를 한 차례 더 우려먹으려 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지는 맥그레거(오른쪽)

하지만, 그래도 '콴텀 오브 솔래스'엔 제임스 본드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가 버티고 있었으며,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았어도 액션이라도 볼 게 있었다. 그러나, '앤젤스 앤 디몬스'는 캐릭터보다는 배우(톰 행크스) 중심이었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씬도 없었다. '앤젤스 앤 디몬스'의 주인공, 로버트 랭든 교수는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액션 어드벤쳐 영화를 기대했다는 건 아니다. 스토리는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고, 미스테리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는데 캐릭터의 존재감은 주연배우 톰 행크스보다 못하고, 액션도 볼 게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재미있게 즐기라는 것일까?

캐스팅도 의심스러웠다. 로버트 랭든 역의 톰 행크스와 캐머랜고 역의 이완 맥그레거까지는 좋았는데 여주인공 비토리아 역으로 이스라엘 여배우, 아일렛 주러(Ayelet Zurer)를 캐스팅한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은 사람들 중에 비토리아 역으로 아일렛 주러를 떠올린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다 젊고 유머러스하고 섹시한 라틴계 여배우를 고르지 않고 아일렛 주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이탈리아인이 유대인으로 간혹 오해받는 경우가 있는 만큼 유대인을 이탈리아인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겠지만 굳이 그렇게 일부러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매우 섹시한 비토리아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하다. 그렇다고 아일렛 주러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앤젤스 앤 디몬스'의 비토리아 역으로는 꽝이었다.


▲톰 행크스와 아일렛 주러(오른쪽)

그렇다. 결론적으로, '앤젤스 앤 디몬스'는 그리 잘 된 영화가 아니다. '다 빈치 코드'도 그다지 잘 된 영화는 아니었으나 '앤젤스 앤 디몬스'는 스토리서부터 약간 딸렸기 때문인지 전작보다 더욱 양에 차지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예상했던 딱 그 수준이라고 할까? 비록 '다 빈치 코드' 만큼 섹시한 내용은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제법 괜찮은 수준의 미스테리 스릴러가 충분히 될 만한 포텐셜이 있었지만 '다 빈치 코드 울궈먹기', '논란을 부추켜 노이즈마케팅으로 재미보기'에만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왜 조금 더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렇다고 아주 볼품없는 영화는 아니다.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미미했지만 지루해서 비비꼬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복잡한 암호와 미스테리를 숨막히게 풀어가는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은 영화보다 책으로 읽는 게 더 낫고, 굳이 영화로 보고싶다면 '내셔널 트레져'를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올 9월 댄 브라운의 신작, '로스트 심볼(Lost Symbol)'이 출간된다. 루머에 의하면 이번엔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하는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현재로써는 어디까지나 루머일 뿐 공식적으로 밝혀진 시놉시스가 아니다. 한가지 확실한 건, 로버트 랭든이 돌아온다는 정도. 출판사측은 초판만 수 백만 부를 찍어낼 계획이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바티칸을 떠난 '랭든 시리즈'가 '다 빈치 코드'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로스트 심볼' 또한 영화로 옮겨질 가능성이 높은데, 소니 픽쳐스가 '랭든 시리즈'를 자사의 대표적인 프랜챠이스로 만들고자 한다면 많이 분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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