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일요일

존 르 카레의 '나잇 매니저' 영화로도 성공할까?

얼마 전 브래드 핏(Brad Pitt)의 프로덕션이 영국의 유명한 첩보소설 작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소설 '나잇 매니저(The Night Manager/1993)'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나잇 매니저'는 냉전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존 르 카레의 첫 번째 첩보소설이다.

그렇다면 존 르 카레는 무엇을 소재로 첩보소설을 썼을까?

'나잇 매니저'의 줄거리는 스위스 고급호텔의 나잇 매니저, 조나단 파인(Jonathan Pine)이 리처드 온슬로우 로퍼(Richard Onslow Roper)의 무기밀매 조직과 얽히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번엔 불법 무기밀매 조직을 적으로 삼은 것이다.

호텔 매니저가 불법 무기밀매 조직과 얽힌다는 내용이라면 영국 정보부에 포섭된 호텔 매니저, 조나단이 불법 무기밀매 조직 보스, 리처드 로퍼에 접근해 기밀을 빼낸다는 언더커버 에이전트 이야기가 분명하다는 것을 한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호텔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제목이 '나잇 매니저'다 보니 로퍼가 호텔에 머무는 동안 조나단이 그의 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서류들을 몰래 뒤져보는 식의 호텔내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읽어보니 영국 정보부에 포섭된 주인공이 호텔 매니저 출신이라는 게 전부였을 뿐 호텔과는 무관했다.

아니, 그렇다면 호텔 매니저가 호텔이 아닌 데서 어떻게 로퍼를 스파잉할 수 있냐고?

호텔 매니저를 집어치우고 로퍼의 조직에 들어가면 되겠지?

아니, 호텔 매니저를 그렇게 깊숙히 침투시킬 수 있냐고?

조나단이 신분을 바꾸는 등 로퍼의 조직에 침투하기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책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전의 조나단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위험한 언더커버 미션에 자원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물론 있다. 조나단이 이집트의 호텔에서 근무할 때 로퍼의 비밀거래를 추적하던 여자 스파이와 우연히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가 로퍼일당에 의해 살해당하자 이를 복수하기 위해 정보부에 협조하게 된 것이다.

대충 훑어보면 그런대로 그럴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나단이 언더커버 에이전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긴 바람에 지루했고, 로퍼의 신임을 얻어 그의 조직에 침투하는 방법도 너무 드라마틱하고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어디서 봤을까?

바로 1989년 제임스 본드 영화,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제임스 본드를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으나 냉전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나잇 매니저'는 달랐다. 등장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적의 조직에 침투하는 방법 등 여러모로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007 시리즈가 '라이센스 투 킬'에서 남미의 마약왕, 산체스를 냉전시대 이후의 새로운 적으로 소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존 르 카레도 리처드 로퍼의 무기밀매 조직이라는 새로운 적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첩보조직 대 첩보조직의 이야기가 아니라 범죄조직에 침투한 언더커버 에이전트의 이야기가 되어버리자 모양새만 첩보소설일 뿐인 범죄소설처럼 보였다. 영국 정보부 명칭이 '서커스(Circus)'에서 '리버하우스(River House)'로 바뀐 것을 보면 존 르 카레 소설이 분명해 보이는 데도 그의 지난 소설들에서 느껴지던 그 '맛'이 덜했다. 왠지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고 할까? 거대한 범죄조직에 언더커버 에이전트를 심는다는 줄거리만으로는 첩보소설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고, 영국으로 넘어간 기밀이 다시 로퍼에게 새나간다는 설정도 새로울 게 없었다. 전체적으로 '나잇 매니저'는 제임스 본드 영화 '라이센스 투 킬'과 'Tinker, Tailor, Soldier, Spy'를 포함한 존 르 카레의 클래식 첩보소설들을 섞어놓은 게 전부로 보였다.

그런데 '서커스', '리버하우스'가 무슨 소리냐고?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읽으려면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서커스'란 60년대 SIS(또는 MI6) 본부가 있었던 케임브리지 서커스(광장)를 줄여서 부른 표현이다. '리버하우스'는 90년대 들어 MI5와 MI6가 본부를 템즈강변으로 옮긴 사실과 무관치 않을 테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나잇 매니저'가 영화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

영화로 어떻게 옮기냐에 달린 것 같다. 조나단이 언더커버 에이전트가 되어 침투하기까지의 과정을 크게 줄이는 대신 조나단이 로퍼의 저택에서 비밀리에 정보수집을 하는 쪽에 포인트를 맞춘다면 그런대로 스릴넘치는 영화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칫하다간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작에 아주 느슨하게 영화로 옮기면서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액션/스릴러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꾼다면 또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원작에 비교적 충실하게 영화로 옮기고자 한다면 조나단이 로퍼를 스파잉하는 부분과 언더커버 에이전트라는 정체가 탄로나는 과정을 원작보다 더욱 스릴넘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또, 누가 조나단 파인 역에 어울릴지도 궁금해 진다. '나잇 매니저'의 주인공, 조나단 파인은 존 르 카레 버전 제임스 본드라고 할 만한 캐릭터다. 고급 호텔 매니저의 모습 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으로 복무한 터프가이 군인의 모습을 모두 갖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조나단, 리처드 로퍼, 그리고 로퍼의 정부, 제드(Jed)가 '나잇 매니저'의 메인 캐릭터들이라고 해야겠지만 조나단을 로퍼의 조직에 침투시키는 '오퍼레이션 림핏(Limpet)'을 진두지휘하는 전직 에이전트 출신, 레오나드 버(Leonard Burr) 역을 누가 맡을 것인지도 궁금하다.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는 만큼 누가 어떤 역을 맡느냐도 생각보다 중요할 것 같다.

하지만, 현재로썬 2011년 개봉예정이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영화화 발표가 나온지 얼마 되지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누가 캐스팅되었는지만 알아도 상상해보기가 약간 수월할 것 같지만 아직 알려진 게 하나도 없으니 어쩌랴!

책을 썩 재미있게 읽진 않았지만 재미있는 스파이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역시 존 르 카레 소설은 클래식이 최고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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