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6일 금요일

김연아, "The Girl with the Golden Medal"

제임스 본드 메들리로 숏 프로그램 신기록을 세웠던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The Girl with the Golden Medal'이 됐다.

굳이 번역하자면 '황금 메달을 가진 지지배'가 될 것이다.

아 잠깐! '퀸'한테 '지지배'라고 하면 안 되는 거라고?

Sorry Ma'am!

사실 나는 피겨 스케이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한국에 김연아라는 훌륭한 피겨 스케이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경기장면을 일일히 찾아 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김연아가 숏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사용된 음악들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동계 올림픽 금메달 유력후보라는 한국 선수가 그 많은 음악 중에서 제임스 본드 테마를 숏 프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선택했다는 게 흥미를 돋군 것이다.

이와 함께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도 남의 얘기가 아닌 게 돼 버렸다. 제임스 본드 메들리로 시작했으니 '골든 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걸 보고싶어진 것이다. 다른 종목은 둘 째 치더라도 이것만은 꼭 금메달을 따는 걸 보고싶어졌다.

Yup, now it's personal.

김연아의 경기 동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한 건 이 때 부터다.



나의 관심은 007 시리즈 주제곡을 사용한다는 숏 프로그램에 쏠렸다. 그런데 주제곡 메들리는 아니었다. 일부 기사에서 '007 시리즈 주제곡'이라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봤더니 '사운드트랙 메들리'였다.

주제곡 메들리가 아니라서 약간 실망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내가 보기에도 우승을 위해 만들어진 수퍼 프로그램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음악과 안무에 들인 정성부터 시작해서 김연아의 깜찍하면서도 섹시한 본드걸 연기에 이르기까지 기록적인 점수가 안 나올 수 없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연아의 제임스 본드 메들리 숏 프로그램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신기록을 경신했다.



사실 TV로 김연아의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본 건 이번 동계 올림픽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세계 챔피언이라지만 19살밖에 안 된 지지배가... 아니 '퀸'이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얼음판에서 뒹구는 걸 라이브로 보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숏 프로그램 퍼포먼스를 마친 직후 "네가 지금 날 걱정했냐?"는 듯한 김연아의 차가운 표정이 무섭기까지 하더라.



그런데 이 빌어먹을(?) 피겨 스케이팅이란 종목은 숏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메달을 주지 않는다. 프리스타일 프로그램 점수까지 합산해 메달을 주기 때문이다. '숏 프로그램 하나로 메달을 주면 어디 덧나냐'는 불만이 미친 듯이 솟구쳤지만 어쩌랴! 한 번 더 멋진 퍼포먼스를 펼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프리스타일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이 왔다.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날이 온 것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이번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옆으로 째려보면서 프리스타일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도 걱정할 필요 없겠구나' 싶었다. 무시무시한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골든아이(GoldenEye)'였다.



그녀의 프리스타일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김연아 이후에도 세 명의 스케이터가 더 남아있었지만 이미 모든 게 결정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노래가 하나 있었다.

미국 여가수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이 부른 007 시리즈 제 10탄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주제곡 'Nobody Does It Better'다. 아카데미 주제곡상은 아쉽게 놓쳤지만 007 시리즈 주제곡 베스트5에 속하는 곡이기도 하다.

가사 내용도 구구절절 남의 얘기 같지 않다.

"Nobody does it better...
Makes me feel sad for the rest...
Nobody does it half as good as you...
Baby, you're the best..."

제임스 본드 메들리로 시작해서 'The Girl with the Golden Medal'이 된 만큼 기회가 온다면 한 번쯤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해서 'MISSION COMPLETE!'

피겨 스케이팅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손에 땀을 쥐면서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본 것도 머리에 털나고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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