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4일 일요일

'그린 존', 제목만 봐도 무슨 얘기 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기록적인 폭설로 삽질노동을 시켰던 지긋지긋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눈과의 전쟁'이 끝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린그래스(Greengrass)가 돌아왔다.

'본 수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으로 유명한 영국인 영화감독, 폴 그린그래스가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스타, 맷 데이먼(Matt Damon)과 함께 만든 새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은 '그린 존(Green Zone)'.

그렇다. 온통 '그린' 천지다.

하지만 '그린 존'은 새싹이 돋아나는 '푸르른 봄'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전투가 한창이던 이라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편의 제이슨 본 영화에서 함께 했던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이라크 전쟁영화로 다시 뭉친 것.

그래서 인지, 제이슨 본 시리즈와 비슷한 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내부의 적과의 싸움을 그린 내용이라는 것에서부터 '아무렴 그렇지' 싶었다. 폴 그린그래스, 맷 데이먼의 이라크전 영화인데 어련하시겠나 생각했던 사람들은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스톤'도 컴백했다. 제이슨 본 트릴로지엔 '트레드스톤(Treadstone)'이 나오더니 '그린 존'엔 '파운드스톤(Poundstone)'이란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더라.

그렇다고 '그린 존'에 제이슨 본 시리즈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액션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R 레이팅을 받은 이유도 폭력이 아니라 대사에 욕설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욕설만 걸러냈다면 PG-13 레이팅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이라크전을 다룬 영화인 만큼 액션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이슨 본 시리즈와 비교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 '그린 존'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은닉장소를 발견하지 못하고 매번 실패만 거듭하면서 정보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된 미군장교 로이 밀러(맷 데이먼)가 결국 그 뒤에 네오콘의 음모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는 줄거리의 폴리티컬 드라마다.



그렇다. 길고 지루했던 '부시 터널'을 빠져나온 지 꽤 지난 2010년에도 그린그래스와 데이먼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수 만번도 넘게 들은 듯한 '명분없은 이라크전' 타령을 이제와서 또 하고있으니 말이다. 제이슨 본 포뮬라에 맞춘 이라크전 영화를 만들려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제와서 'WMD 어디로 갔나' 코메디를 뒤늦게 재탕하는 바람에 신선도가 떨어졌다.

만약 이 영화가 '본 얼티메이텀' 대신 2007년에 개봉했더라면 제법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에 보기엔 너무 늦은 감이 들었다. 계속 복습하는 것도 좋다지만 제목과 트레일러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빤히 보이는 지난 얘기를 이제와서 또 해서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이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Shaky Cam'도 맘에 들지 않았다. 이번엔 병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 임베디드 기자들이 촬영한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 것으로 보였지만 추격씬 등에서 카메라가 지나치게 흔들리는 바람에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긴박한 분위기를 내고자 한 것 같았지만 카메라가 너무 흔들렸다. 특히 영화 막지막 부분에선 "You gotta be kidding me!"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액션씬을 보다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는 지 모른다. 카메라를 흔들지 않으면 '그린그래스'가 아니라 '옐로우그래스' 영화가 되므로 죽자살자로 흔들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흔드는 것도 좀 정도껏 해야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도 로이 밀러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은 "WMD Where Are You?"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바그다드를 헤매고 다니는 미군 역할에 잘 어울렸다.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맷 데이먼과 잘 어울리는 'Typical Matt Damon Movie'였기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영화도 그럭저럭 볼만 했다. 무엇을 얘기하려는 지 빤히 보였고, 스토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제이슨 본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새롭거나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도중에 따분하단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흥행성공은 힘들 것 같다. 얼핏보기엔 '이라크로 간 제이슨 본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린 존'은 흥행성공을 노리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전쟁 스트레스에서 회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린 존', 'WMD'라는 지겨운 단어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면 고개를 돌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액션영화 팬들을 만족시킬 만큼의 액션도 충분치 않았고, 맘만 먹으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욕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R 레이팅까지 받았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시 뭉친 영화라지만 이번엔 제이슨 본 시리즈의 성공을 재현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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