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의 TV 시리즈 '로스트(Lost)'가 여섯 번째 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상한 섬에 추락한 여객기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6년만에 완전히 끝난 것이다.
'로스트'가 이처럼 인기 시리즈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로 6개 시즌을 울궈먹을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시작만 있고 끝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로스트'를 만든다고 믿고있었는데 내가 틀렸나보구려...
ABC는 일요일 저녁 7시(미국 동부시간)부터 2시간짜리 '로스트' 스페셜 다큐멘타리를 방송했고, 저녁 9시부터 11시30분까지 파이널 에피소드를 방송했다. 모두 합해 장장 4시간30분 동안 논스톱으로 '로스트'를 방송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6년간이나 계속됐던 '로스트'의 최종결말은 무엇일까?
여기서 경고를 하나 하자면,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더이상 읽지 말기 바란다.
시즌6의 최대 궁금증은 플래시 사이드웨이(Flash Sideways) 세계의 정체였다.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까지는 이해가 됐지만 시즌6에 느닷없이 등장한 플래시 사이드웨이는 좀 애매한 세계였다. 처음엔 시즌5 피날레에서 수소폭탄이 폭발하면서 모든 게 리셋된 결과로 생겨난 세계처럼 보였으나 가면 갈수록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서로 완전히 무관한 세계인 게 아니라 플래시 사이드웨이 세계의 캐릭터들이 섬에서 겪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전부였을 뿐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플래시 사이드웨이 세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저세상이었다. 조금 황당해도 사실이다. 플래시 포워드의 세계는 이미 죽은 자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모이는 장소였다. 플래시 포워드의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고, 이렇게 해서 플래시 사이드웨이 세계의 정체가 드러난다.
제작진은 시리즈 초기에 한창 나돌았던 "여객기 생존자들이 섬에 갖힌 게 아니라 실제로는 죽어서 저승을 헤매는 것"이라는 주장을 180도 뒤집은 결론을 내놨다. 6년간 섬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시즌6의 플래시 사이드웨이 세계의 내용만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로스트' 제작진은 "6년간 섬에서 열나게(?) 고생했는데 눈을 떠보니 모든 게 꿈이었다"는 식의 허무한 엔딩은 피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문제의 섬에 있었던 캐릭터들끼리 함께 모여서 떠나냐고?
잭(매튜 폭스)의 아버지, 크리스챤(존 테리)의 설명은 이렇다:
"The most important part of your life was the time that you spent with these people."
간단히 말하자면, 시리즈 초반에 일찍 죽은 캐릭터들까지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로스트' 캐릭터 전원이 모두 죽으면서 끝나냐고?
그건 아니다. 생존자는 있다. 다만, 플래시 사이드웨이는 마지막 생존자까지 모두 죽은 이후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약간 코믹하기도 하다. 제일 일찍 죽은 캐릭터는 제일 오래 산 캐릭터가 죽을 때까지 떠나지도 못하고 대기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혼자 떠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시리즈 피날레 에피소드에 모두가 집결해야 하니 먼저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 플래시 사이드웨이는 전적으로 '로스트' 엔딩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막말로, 다들 보내버리면서 끝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 X(Final Fantasy X)'의 엔딩과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로스트' 시리즈 미스테리의 핵심은 섬에 있다. 제작진이 플래시 사이드웨이로 산만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섬의 미스테리지 플래시 사이드웨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섬에선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됐을까?
아쉽게도 별로 놀라울 게 없었다. '로스트' 시즌6는 플래시 사이드웨이로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데 올인한 시즌이었을 뿐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쪽엔 소홀했다. 새롭거나 충격적인 내용이 새롭게 드러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이콥(마크 펠레그리노)과 검은 옷의 사나이(타이터스 웰리버)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대로 흥미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흰색 옷을 입는 제이콥이 무조건 '선'이고 검은색 옷을 입는 검은 옷의 사나이(이 친구는 이름이 없다)는 '악'이라는 것에 수긍이 가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 다시 말해 연기 몬스터(일명 스모키)가 섬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왜 잭을 비롯한 생존자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지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러나 제이콥은 와인병에 들어있는 와인을 스모키에 비유하면서 자신은 와인이 새지 않도록 막은 코르크라고 했다. '악'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스모키가 그리 사악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제작진은 로크/스모키(테리 오퀸)가 선&진을 비롯한 메인 캐릭터 일부를 죽음에 이르도록 하게끔 만든 듯 하다. 잭과 나머지 일행이 로크/스모키에 맞설 뚜렷한 모티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로스트'가 시즌6까지 왔는데 스토리를 이렇게밖에 마무리할 수 없었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즌1부터 'White vs Black', 'Good vs Evil'이 나왔던 만큼 제이콥과 스모키의 대결이 '메인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결국 섬에서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이 다들 알고있거나 예상하고 있었던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서 그쳤다.
시리즈 피날레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플래시 사이드웨이의 사후세계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얼렁뚱땅 마무리지어버렸다. '로스트' 관련 이전 포스팅에서 6년을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는 엔딩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랬다.
그렇다고 시리즈 피날레 에피소드가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다. 파이널 에피소드만 놓고 따지면 꽤 잘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6년간 지속돼 온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로써는 실망스러웠다. 핵심은 소홀히 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공을 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로스트' 아닌가.
그래도 막상 끝나니까 아쉽지 않냐고?
그렇긴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다. 시리즈가 계속되더라도 내가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을 게 분명하므로 아쉬울 것도 없다. 비록 만족스럽진 않았어도 이렇게나마 끝나서 후련하다.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