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8일 금요일

'로빈 후드', 리들리 스콧의 영화인 것만은 분명했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과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가 함께 '로빈 후드(Robin Hood)'를 만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는 다른 '로빈 후드'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로빈 후드' 트레일러를 처음 보면서도 속으로 '그럼 그렇지' 했다.

그렇다. 2010년작 '로빈 후드'는 이전에 나온 다른 '로빈 후드'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영화였다. 이번 '로빈 후드'는 전설상의 영웅, 로빈 후드의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그린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판 '조로(Zorro)'나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수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 러셀 크로우의 2010년작 '로빈 후드'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래서 였을까? '로빈 후드'를 보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영화는 다름아닌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었다.

왜 '카지노 로얄'이냐고?

이언 플레밍(Ian Fleming) 원작의 세계로 되돌아간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이 개봉했을 당시 "007 시리즈답지 않은 영화"라면서 투덜댔던 사람들이 있었다. 과장된 스토리, 요란스러운 가젯과 '본드카' 등 007 시리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들을 '카지노 로얄'에선 모두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 후드'도 마찬가지였다. '카지노 로얄'이 전통적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 포뮬라에서 벗어난 영화였다면, 2010년 '로빈 후드'는 전형적인 로빈 후드 영화 포뮬라에서 벗어난 영화 였다.



사실 '로빈 후드'와 '카지노 로얄'의 공통점은 여러 개 된다.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우)가 로빈 후드가 되기 이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도 '카지노 로얄'과의 공통점 중 하나다. 제임스 본드가 갓 00 에이전트가 되었던 시절로 돌아갔던 '카지노 로얄'처럼 '로빈 후드'는 그가 히어로가 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프리퀄이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돌아간 영화는 '카지노 로얄' 하나가 전부가 아니다. '배트맨 비긴스(Batman Begins)', '엑스맨 오리진스(X-Men Origins)' 등 찾아보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배트맨 비긴스' 이후 이와 비슷한 영화들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덕분이다. 이번 '로빈 후드'도 이런 영화들 중 하나라는 얘기다.

또한,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마초가이' 로빈 후드도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제임스 본드와 겹쳤다. 근육질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는 턱시도에 잘 어울리는 남자가 전부가 아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엔 러셀 크로우가 그만의 새로운 로빈 후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 크레이그보다 러셀 크로우가 더 성공적일 지 모른다. 크레이그는 터프가이라 불리기엔 너무 섹시한 편이지만, 크로우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3:10 to Yuma' 등에서 보여줬듯이 터프가이 역할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초적인 면이 약간 지나친 감이 있었다. 건장한 사나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무기를 휘두르는 지극히도 평범한 마초영화로 보였기 때문이다. 로빈 후드를 거칠고 매우 사실적인 캐릭터로 묘사한 것 까지는 맘에 들었지만 무기를 휘두르며 포효하는 로빈 후드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줄 때엔 눈을 감고싶었다. 워낙 유치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성격상 건장한 워리어들의 배틀씬이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포효하는 러셀 크로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씬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줄 필요가 굳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리들리 스콧이 이런 스타일의 시대극+에픽 배틀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런 씬은 영화를 촌스럽게 만들 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놓친 듯 했다.

이 영화의 최대 볼거리라 할 수 있는 배틀씬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미 수백만 번 이상 본 것을 또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색다른 로빈 후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로빈 후드 영화에 도대체 왜 이런 배틀씬이 나와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인 만큼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할 필요없이 편리하게 리들리 스콧스러운(?) 영화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일까?

로빈 후드가 히어로가 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지껏 보아왔던 것과 다른 다른 모습의 로빈 후드를 보여주려 한 것까지는 좋았다. '변화'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에 기대했던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무조건 문제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었다. 거칠고 격렬한 로빈 후드 영화를 만들려던 게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또 하나의 중세 배경의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색다르고 스타일리쉬한 로빈 후드 영화'가 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리들리 스콧 영화스럽다'는 평을 면키 힘든 영화가 되고 말았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영화는 그런대로 볼만 했다. 눈을 뗄 틈을 주지않는 익사이팅한 논스톱 액션 스릴러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따분해지거나 '도대체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있는 거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한 영화는 아니었다.

유머도 부족하지 않았다. 액션에만 올인하고 유머에는 소홀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유머에도 신경을 쓴 듯 했다. 유머가 아주 풍부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서 이 정도면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로빈 후드가 매리언(케이트 블랜칫)과 티격태격하다가 "Ask me nicely!"라고 하던 씬이 기억에 남는다. 러셀 크로우의 카리스마 덕이 컸는 지도 모르겠지만...

케이트 블랜칫(Kate Blanchett)도 오케이 였다. 처음엔 그녀가 매리언 역으로 잘 어울릴 지 의심스러웠으나 생각했던 것 보다 러셀 크로우의 로빈 후드와 잘 어울렸다. 로빈과 매리언의 관계가 이전 영화들과 약간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이번 커플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나 여름철 영화로써는 글쎄올시다 였다. 다른 여름철 영화들처럼 화려하지도, 스타일리쉬하지도 않은 올드스쿨 스타일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로빈 후드 캐릭터를 소개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특별하다 할 만한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속편에선 보다 로빈 후드다워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렇다. 유니버설이 로빈 후드 시리즈를 구상중인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근육질의 제임스 본드로 늙어가던 제임스 본드 프랜챠이스를 되살려 놓았던 것처럼 유니버설은 러셀 크로우의 터프한 로빈 후드 캐릭터로 시리즈를 만들어보려는 것 같았다.

WHY NOT?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는 힘든 파트는 일단 지났으니 속편에선 보다 스타일리쉬하고 로빈 후드 영화다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나올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가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 쪽으로 조금씩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것처럼 러셀 크로우의 새로운 로빈 후드 시리즈도 다음 번 작품부터 조금씩 로빈 후드 영화다워지기 시작한다면 이번 영화보다 더욱 멋진 걸작이 나올 수도 있다.

2010년 '로빈 후드'는 걸작이라 부르기엔 살짝 곤란한 영화였지만, 만약 나온다면, 속편에 한 번 기대를 걸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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