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8일 일요일

'인셉션', 흥미로운 아이디어 하나가 전부였다

'메멘토(Memento)'와 '배트맨 비긴스(Batman Begins)',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두 편의 배트맨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새 영화가 개봉했다. 바로 '인셉션(Inception)'이다.

하지만 '인셉션'은 기억상실도,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도 아니다.

그럼 이번엔 무엇에 대한 영화냐고?

꿈이다. 잠을 자면서 꾸는 바로 그 꿈(Dream)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인셉션'은 남의 꿈에 침투해 꿈속에서 다른 꿈으로 이동까지 해가며 비밀을 빼내는 게 직업인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SF 영화다.



왠지 이해하기 복잡한 영화처럼 보인다고?

얼핏보기엔 그렇다. 꿈속에서 또 잠이 들면서 새로운 꿈으로 이동하는 데다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 헷갈리도록 만든 영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말이 나온 김에 줄거리를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돈 캅(레오나도 디카프리오)은 꿈을 이용해 비밀을 빼내는 게 직업인 사나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 때문에 그의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처지다. 이 때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일본인 사업가 사이토(켄 와타나베)가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의 요구란, 사이토의 라이벌 기업 회장의 아들 로버트 피셔 주니어(킬리언 머피)의 꿈에 침투해 아버지가 세운 기업을 말아먹게끔 만들라는 것. 그의 꿈에서 정보를 빼오라는 게 아니라 그의 마음을 바꾸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이토의 제안을 수락한 캅은 동료 아더(조셉 고든-레빗)와 함께 이 작전에 함께 참여할 멤버 리쿠르트에 나선다. 꿈에서 또다른 꿈으로 몇 차례 이동을 해야하는 고난이도 미션인 만큼 전문가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캅과 아더는 '타겟'을 끌어들일 꿈의 세계 디자인을 맡은 애드리아네(엘렌 페이지), 꿈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약을 제조하는 여서프(딜립 라오), 꿈속에서 다른 이로 변장해 '타겟'을 속이는 역할을 하는 에임스(톰 하디)를 리쿠르트해 사이토까지 합해 모두 여섯 명의 '꿈 도둑놈' 팀을 만든 다음 '타겟'인 피셔 주니어에 접근한다.

그렇다. '인셉션'은 꿈을 훔친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오션스 11(Ocean's 11)' 시리즈와 아주 비슷한 영화다. '매트릭스(The Matrix)'와 '오션스 11'을 합치면 '인셉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타겟'을 꿈의 세계로 유인한 뒤 그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공작을 벌인다는 건 제법 흥미진진해 보인다고?

처음엔 그렇다. '꿈 도둑질'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설명해주는 부분은 그런대로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재미는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꿈의 세계에서 음모를 꾸민다'는 '아이디어'까지는 괜찮아 보였지만 그것 하나가 전부였을 뿐 나머지는 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부터 나름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받쳐줄만 한 수준이 되지 않았다. 영화의 분위기는 대단히 요란스러워 보였지만 스토리는 딱 코믹북, 비디오게임 수준으로 보였을 뿐 진지하게 볼만 한 정도는 아니었다. 겉으로는 무언가 대단한 게 있는 듯 그럴싸해 보였고 제법 복잡한 플롯 구조를 갖춘 듯 했지만, 내용과 짜임새 모두 기대에 못 미쳤다. 코믹북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아닌 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보였다. 퀄리티가 그 근처를 맴돌았다는 것이다.

'인셉션'도 흔해빠진 여름철 블록버스터 중 하나일 뿐인데 너무 스토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이 '꿈과 현실을 오간다'는 아이디어였던 만큼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여름철 블록버스터에 비해 클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기대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영화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만 매달렸다.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게 현실세계인지 헷갈리게 만들면서 짜임새 허술한 스토리라인을 가리려 한 것이다.

레오나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를 캐스팅한 덕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작년에 개봉한 미스테리 스릴러 '셔터 아일랜드(The Shutter Island)'도 환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봉한 디카프리오의 영화 두 편이 내리 약간 헷갈리는 영화라는 것이다. '인셉션'에서의 디카프리오를 보면서 '셔터 아일랜드'가 떠오를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해야 할 듯 하다.

그러나 무엇이 꿈이고 어떤 게 현실세계인지 분간하기 아주 힘들 지 않았다. 헷갈길 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쪽엔 관심이 크게 쏠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장난치려는 속셈이 빤히 보이는데 일부러 낚여줄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꿈속에서 또 잠들어 또다른 꿈의 세계로 이동한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이 모든 꿈의 세계들이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1차, 2차, 3차 작전 등으로 서로 모두 연계되어 있다는 점은 스파이, 범죄영화에서 누군가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여러 개의 다른 속임수를 준비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으므로 크게 새롭다고 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금새 지치게 만들었다. 사실상 장소이동 효과가 전부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캐릭터들이 직접 여러 곳들을 찾아가지 않는 대신 꿈에서 꿈으로 이동하면서 완전히 다른 장소와 환경에서 액션이 벌어지도록 한 게 전부로 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게 현실세계가 아닌 미리 준비해 놓은 꿈속의 세계였으므로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던 도시가 갑자기 무중력 상태가 되어도, 느닷없이 눈덮인 산속에 위치한 비밀기지로 장소가 바뀌어도 아무런 문제될 게 없었다.

How convenient!

물론 꿈의 세계를 이동하는 것으로 장소이동 효과와 함께 여러 가지 색다른 조건에서 벌어지는 액션씬까지 넣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 모든 액션씬들이 전부 꿈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관객들이 보기엔 격렬한 액션씬 모두가 실제상황인 것 같지만 영화상에선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에서 죽더라도 실제로 죽는 게 아니라 꿈에서 깨는 게 전부였다.

물론 꿈에서 죽으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게 되므로 끝까지 버텨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인셉션'의 핵심은 '꿈을 이용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였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액션씬들을 진지하게 보기 힘들었다. 눈요깃 거리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액션 없이 만들어야 했을 영화에 액션씬을 억지로 집어넣은 것처럼 보이는 등 어색하고 엉뚱하게 보였다.




그 중엔 제임스 본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씬도 있었다. 그렇다. 바로 여기서 약간의 제임스 본드 오마쥬가 몇몇 눈에 띄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게 바로 제임스 본드 오마쥬인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보면서 성장한 007 팬이기 때문이다. 놀란은 자신이 만든 거의 모든 영화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으며, 오마쥬 역시 의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크 나이트'가 개봉했을 때에도 영화에 사용한 007 오마쥬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으며, '인셉션' 개봉을 앞두곤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베껴놓고 오리발 내미는 자들도 있지만 놀란은 "좋아하니까 따라한 것"이라고 까놓고 말하는 '팬보이 타잎'이다. 가장 좋아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로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을 꼽더니 '인셉션'에 눈사태 씬을 집어넣는 '한다면 한다'는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인셉션'과 가장 비슷해 보였던 건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아니었다. 바로 일본 게임회사 코나미가 플레이스테이션 2 포맷으로 개발했던 액션 호러 비디오게임 '사일렌트 힐 2(Silent Hill 2)' 였다.

갑자기 웬 '사일렌트 힐 2' 타령이냐고?

나온 지 거진 10년이 되어가는 이 게임이 생각난 이유는 '인셉션'과 비슷한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공통점으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사별한 부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인셉션'의 주인공 캅(레오나도 디카프리오)의 부인 맬(마리온 코디아르)이 바로 그녀다.

맬은 캅의 꿈에 계속해서 나타난다.



'사일렌트 힐 2'에선 아내와 사별한 캐릭터, 제임스가 주인공이다.

'사일렌트 힐 2'는 제임스가 사망한 부인, 매리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사일렌트 힐이라 불리는 타운으로 향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사일렌트 힐에서 제임스를 기다리는 건 매리가 아니라 거진 붕어빵 수준으로 닮은 마리아라는 미스테리한 여성.



'인셉션'과 '사일렌트 힐 2'의 공통점은 '사별한 부인' 하나가 전부가 아니다. 이밖에도 아내의 죽음에 대한 남편의 죄책감, 변치않은 사랑, 그럼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는 설정을 추가로 꼽을 수 있다.

맬이 '림보(Limbo)'라는 곳에 머무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인셉션'에서 맬이 머무르고 있다는 꿈의 세계 '림보'는 비디오게임 '사일렌트 힐 2'의 사일렌트 힐(타운)과 완벽하게 겹쳐진다.

결론적으로, 캅과 맬에 대한 사이드 스토리 거의 전체가 '사일렌트 힐 2'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캅과 맬의 사이드 스토리 만큼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리지날 아이디어'가 아닌 듯 하다.



'사일렌트 힐 2' 얘기가 나온 김에, 오랜 만에 E3 트레일러를 보고 넘어가자.

2001년 5월이었던가? E3 코나미 부스에서 이 트레일러를 지켜보던 관람객들이 트레일러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3 코나미 부스에 설치된 빅 스크린 앞엔 항상 관람객들로 붐볐는데, 그 이유는 '사일렌트 힐'과 '메탈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시리즈 트레일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셉션'이 '사일렌트 힐 2'와 여러모로 비슷해 보였기 때문일까? '인셉션'을 보면서 '만약 이 영화가 호러영화였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물론 '인셉션'은 SF영화이지 호러영화는 아니었지만 방향을 조금만 틀었다면 호러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호러영화 분위기도 느껴졌다는 것이다.

차라리 공포영화로 만들었더라면?

더욱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인셉션'은 무중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눈덮인 산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SF영화보다 호러영화에 보다 잘 어울렸을 것이다. '꿈', '환영', '림보' 등의 테마와 잘 어울리는 쟝르는 호러지 SF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호러로 만들었다면 지나치게 '사일렌트 힐 2'와 비슷해질 수도 있었지만, '인셉션'은 SF가 아닌 호러영화로 만들었어야 옳았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사실 '인셉션'은 '메멘토(Memento)' 스타일의 '아이디어'에 배트맨 시리즈의 '자본'을 결합시킨 SF영화를 만든다는 데서 출발한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여름철 블록버스터급 자본을 하나로 합쳐보자는 것이었다. 이 또한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왠지 억지로 만든 블록버스터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아이디어'와 '자본'이 들어갔다는 건 알겠는데 맛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멘토'와 '다크 나이트'를 합친 영화라고 하면 흥분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이런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 또한 많겠지만 '인셉션'은 그럴싸한 아이디어와 막대한 제작비용을 들여 만든 그렇고 그런 수준의 영화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금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쓸만 한 영화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그 중에선 제일 낫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인셉션' 역시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영화내내 지루하진 않았다. 그럭저럭 볼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는 찬사를 쏟아놓을 정도의 걸작은 아니었다. 코믹북, SF영화 매니아들이 생각은 어떨 지 모르겠어도, 아주 잘 만든 흥미진진한 SF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거창하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영화였다. 아이디어 하나는 괜찮았다고 할 수 있어도, 그것 하나를 제외하곤 대단하다고 할 게 없었다.

어떻게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스타일 때문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무언가 특별하고 대단한 작품을 만들려 하고, 대단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이도록 거창하게 치장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다크 나이트'에서도 배트맨이 나오는 수퍼히어로 영화를 너무 장엄하고 거창하게 꾸민 티가 났었는데 '인셉션'에선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영화 분위기에 쉽사리 압도당하는 관객들에겐 걸작처럼 보일 수 있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알맹이는 없는데 심하게 오버를 하는 유치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엔 신경쓰지 않은 듯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그의 바람대로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을 맡는다면 아주 잘 할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걱정되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그가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을 맡으면 단번에 베스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다간 매우 유치하고 썰렁한 영화가 될 위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셉션'을 보면 놀란 감독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머릿속에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는 티가 나는데, 만약 제임스 본드 영화를 '인셉션'처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것이다.

언젠가 적어도 한 번쯤은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을 맡게 될 영화감독으로 보이는 만큼 그의 영화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007 시리즈 연출을 그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007 시리즈를 맡기면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처럼 분위기만 우중충한 게 전부인 영화를 만들어 놓을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바로 그쪽으로 가까히 다가갔다는 점도 걱정을 키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매우 재능있는 젊은 영화감독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제임스 본드를 맡을 때는 아직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영화 '인셉션'에서 '꿈 도둑놈들'이 잠이 들면서 꿈의 세계로 갈 때 사용하는 기계가 있었다.



이 기계를 보면서 생각난 노래가 하나 있었다.

그렇다. 마지막은 노래로 하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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