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1일 화요일

돌아온 '하와이 파이브-0', 어딘가 어색했다

CBS의 클래식 TV 시리즈 '하와이 파이브-0(Hawaii Five-0)'가 돌아왔다. 재방송이 아니다. 새로운 얼굴과 스토리, 콘템프러리 세팅 등으로 새단장한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했다.

이처럼 클래식 TV 시리즈를 리런칭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방송을 탔던 NBC의 '바이오닉 우먼(Bionic Woman)',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er)'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컴백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바이오닉 우먼'은 시즌1을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막을 내렸으며, '나이트 라이더'는 시즌2까지 이어졌으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실패원인은 물론 여러가지가 되겠지만, 요즘 젊은층의 눈높이에 맞춰 리메이크하는데 실패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클래식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만큼 "역시 구닥다리"라는 소리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여기에 신경을 너무 쏟다 보니 웃기지도 않는 청춘 뮤직 비디오가 돼버렸던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CBS의 '하와이 파이브-0'도 이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

이제야 첫 회가 방송된 만큼 조금 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왠지 NBC의 '나이트 라이더'와 자꾸 겹쳐졌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바닷가를 거니는 하와이의 경치와 함께 힙합이 쿵쾅거리고 락음악이 징징거리는 게 딱 '나이트 라이더' 분위기였기 때문인 듯 하다. 캐릭터나 줄거리 모두 진지하지 않고 밝고 경쾌하다는 점도 '나이트 라이더'와 겹치는 점 중 하나였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싱겁고 유치해 보였다.

호주 배우, 알렉스 올러플린(Alex O'Loughlin)도 메인 캐릭터 스티브 맥개럿 역에 그리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가 연기한 스티브 맥개럿은 "Annapolis, 5 years Naval Intelligence, 6 with the SEALs..." 출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해군 사관학교를 나와 5년간 해군 정보부에 근무하고 6년간 SEAL로 활동했다는 얘기인데, 아무리 봐도 올러플린에게서 이에 어울리는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화려한 이력 소개가 나오지 않았다면 덜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해군 정복을 입고 나타난 올러플린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핸썸해 보이긴 했어도 아무리 봐도 그에게서 '훈련받은 자', 'Authority'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1997년작 제임스 본드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해군 정복을 입고 나타난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 없어 했던 기억만 되살아났을 뿐이었다.




물론 얼굴이 순하고 곱상하게 생겼다고 실제로 장교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영화나 TV 시리즈에선 군 장교 출신 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해야 덜 어색해 보인다. 아무나 군복입고 인상쓴다고 전부 다 군 출신 터프가이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곱상한 얼굴의 'Pretty Boy'들은 액션물을 해선 안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장교나 형사 등 터프가이 리딩맨으로는 되도록이면 안 나오는 게 덜 망신당하는 길이다.

007 제작진이 피어스 브로스난을 대신할 제 6대 제임스 본드 후보를 물색할 당시 올러플린이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스크린테스트를 받았던 적이 있다. 짧게 말하자면, 올러플린도 제임스 본드 후보 리스트에 올랐던 배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친구는 아닌 것 같다. 싫지 않은 얼굴의 핸썸보이인 것은 사실이지만, 핸드건을 다루는 모습이 영 어색해 보이는 배우는 제임스 본드 역으로 곤란하다. 제임스 본드와 같은 캐릭터는 핸드건이 마치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핸드건과 잘 어울리는 배우가 맡아야 하는데, 올러플린은 이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강한 훈련을 받고 실전경험까지 가진 군인 출신으로는 너무 순하고 소프트해 보인다는 점도 문제다.

올러플린이 차기 제임스 본드 자리를 노려볼 만한 배우인 만큼 '하와이 파이브-0'를 제임스 본드 오디션 용으로 이용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현재로써는 "글쎄올시다"다. 액션 히어로 타잎 캐릭터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또 한가지 문제는 올러플린이 하와이에서 태어나 성장한 '로컬 보이'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봐도 하와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친호 켈리 역의 대니얼 대 킴(Daniel Dae Kim)은 종영한 ABC의 인기 TV 시리즈 '로스트(Lost)'를 촬영하면서 하와이에서 오랫 동안 생활해서 인지 '로컬 보이'가 다 된 듯 했지만, 올러플린에게선 하와이언 분위기가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그렇다. 올러플린은 본토에서 온 'Haule'로 보일 뿐이었다.

'Haule'는 원래 하와이 말로 외국인이라는 뜻인데 주로 백인을 칭할 때 쓰이며, 흑인은 'Popolo'라 한다. 하와이는 미국 본토와 달리 인종차별이 물구나무선 곳이라서 소수계인 백인이 그리 좋지 않은 대우를 받는다. 하와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학교 식당에서 백인 학생들이 한쪽 구석에 몰려 앉아 눈치만 슬슬 보던 모습이 기억날 것이다. "하와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으려 한다"며 투덜대는 백인들도 여럿 봤다. 이러한 까닭에 하와이에서 어느 정도 생활한 백인들은 "나는 더이상 본토에서 온 'Haule'가 아니다. 이제 나는 하와이언이다"라면서 자신이 '로컬'임을 강조하곤 한다.

'하와이 파이브-0'의 올러플린이 딱 이렇게 보였다. 극중 설정은 하와이에서 태어난 '로컬 보이'였지만, 억지로 로컬인 척 시늉하는 백인처럼 보였을 뿐 'Genuine'으로 보이지 않았다.



올러플린이 어색하게 보였기 때문일까? 본토에서 온 형사이자 맥개럿의 파트너인 대노 역을 맡은 스캇 칸(Scott Caan)이 보다 자연스럽게 보였다. 얼떨결에 맥개럿의 파트너가 된 대노 역을 맡은 스캇 칸은 영화배우 제임스 칸(James Caan)의 아들로, '하와이 파이브-0'에서 코믹 릴리프 역할을 맡았다. '하와이 파이브-0' 메인 캐릭터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인물이 바로 대노인 듯 하다. 올러플린은 어색했고 대니얼 대 킴은 평범했지만, 스캇 칸은 그 중에서 제일 나았다.

물론 비키니 몸매를 뽐낸 그레이스 박(Grace Park)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가 극중에서 맡은 코노는 그리 흥미로운 캐릭터로 보이지 않았지만, 와이메아 베이(Waimea Bay)를 배경으로 한 비키니 씬은 'NOT-TOO-BAD'이었다.



이 씬을 보면서 생각난 노래가 하나 있다. 바로 'Bob Bob on the Beach'다. 여기서 "밥 밥"을 "박 박"으로, "캘리포니아"를 "하와이"로 바꾸면 딱이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씩 따져보니 맘에 드는 것 보다 들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액션맨으로 썩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 배우가 리딩 롤을 맡았는데 액션 비중이 생각보다 컸다는 점 등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부분들이 많았다. 'CSI' 시리즈 등 CBS의 수사 드라마에 익숙치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돌아온 '하와이 파이브-0' 첫 에피소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캐릭터, 액션, 유머, 그리고 명성 등 모든 걸 갖춘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게 CBS의 의도로 보이지만,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ABC의 수사 드라마 '캐슬(Castle)'과 정면대결을 벌일 만한 수준이 될 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아직은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FOX의 '휴먼 타겟(Human Target)'도 첫 에피소드는 조금 아리송했지만 갈수록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와이 파이브-0'도 앞으로 차차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인 시청자들이 보기엔 다소 바보스럽고 아동틱한 스타일에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만큼 크게 기대되진 않는다. 그렇다고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다. 메인 타이틀 곡이 이전에 공개되었던 것에서 바뀐 것은 맘에 들었다. 이전 버전은 평범한 전자기타 사운드가 전부였지만, 새로운 '오피셜' 버전은 클래식 오리지날 메인 테마와 비슷해졌다. 이전 것보다는 새로운 버전이 훨씬 나은 것 같다. 한 번 들어보자.
또한, 반가운 하와이 풍경도 맘에 들었다. 진주만(Pearl Harbor)이 나오는 씬에선 내가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들까지 나왔다. 저 동네에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고 있다. 바로 저기가 내 '홈타운'이었는데 TV 시리즈에서나 보고 앉아있다니 콧물 나온다 콧물 나와...
아주 오랜만에 보는 하와이언 에어도 반가웠다. 하와이언 에어는 미 서부 몇몇 도시들과 호주 등 태평양 주변만 맴돌 뿐 미국 동부로는 날아오지 않는 바람에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동네에선 공항에 가도 볼 수 없다. 가끔 L.A 등 서부에 갈 일이 생겼을 때 공항에서 하와이언 에어를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갑던지...ㅋ L.A 공항에서 타든, 시애틀에서 타든, 아니면 라스베가스에서 타든 일단 하와이언 에어 비행기에 오르기만 해도 집에 다 온 것 같았는데 요샌 탈 일이 없구려... 혹시나 동부에도 오나 해서 하와이언 에어 홈페이지를 확인해 봤더니 역시 이 동네는 안 온다. 그런데 한국(인천, 부산)엔 가네... 거긴 또 언제부터 들어간 거냐?
한국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하와이 파이브-0'에서 눈길을 끈 게 또 하나 있다: 야자수가 서 있는 포항이다. 자막은 분명히 'POHANG, SOUTH KOREA'라고 되어있는데 웬 야자수가...ㅡㅡ; 어렸을 적에 포항에 한 번 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저렇지 않았다. 역시 지구온난화가 무섭긴 무서운...ㅋ
자,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를 계속 보게 될까 생각해 볼 시간이다. ESPN의 먼데이 나잇 풋볼과 겹치기 때문에 풋볼시즌 기간엔 천상 녹화를 해서 보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풋볼시즌엔 어찌되었든 풋볼 중계방송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ABC의 '캐슬'을 녹화하느냐, 아니면 CBS의 '하와이 파이브-0'를 녹화하느냐다. 물론 굳이 녹화하지 않더라도 둘 다 온라인으로 볼 수 있으므로 '녹화'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는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될까? 돌아온 '하와이 파이브-0'가 썩 맘에 들진 않지만 이제 막 시작한 시리즈라서 인지 이쪽으로 약간 쏠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캐슬'을 어찌 배신할 수 있겠수? '본드걸' 출신 여배우 스타나 캐틱(Stana Katic)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리즈인데 말이다.

댓글 2개 :

  1. 날카로운 관전평이 정말 인상적이네용 ㅎㅎㅎ

    나름 재밌는 점도 많이 있으니 그래도 마니마니

    싸랑해 주세욧~

    한여름에 딱 맞는 미드 ocn에서 매주

    수요일 밤11시에 방송하고 있으니 많은 시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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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시즌2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스트에서 존 로크로 나왔던 테리 오퀸이 출연한다 해서 더더욱 기대됩니다.
    시즌1은 마지막에 좀 바빠지는 바람에 에피소드 몇 개 놓친 걸 빼곤 거진 다 봤구요.
    궁시렁대면서도 볼 거 다 봤다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차차 괜찮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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