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일 수요일

내가 제임스 본드 마티니를 더이상 마시지 않는 이유

"제임스 본드 시리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술이 있다. 그렇다. 바로 보드카 마티니(Vodka Martini)다. 영화에서 본드가 항상 "Shaken, not stirred."로 주문하는 바로 그 칵테일이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을 읽었거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두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보드카 마티니 이외로 본드가 즐겨 마시는 또 하나의 마티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바로 '베스퍼 마티니'다. 이것은 보드카+버무스(Vermouth)가 전부인 보드카 마티니와 달리 진(Gin), 보드카, 키나 릴레이(Kina Lillet)를 3:1:1/2 비율로 섞은 칵테일이다.

사실 내가 폭탄주와 칵테일이 헷갈릴 정도로 술과 살짝 거리가 있는 사람이므로 칵테일 만드는 법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겠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왜 술 얘기를 꺼낸 거냐고?

내가 이 빌어먹을 베스퍼 마티니를 만들어 먹은 이후로 시름시름 앓고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2008년 개봉한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제공했다. 아니 이 망할 미스터 본드가 베스퍼 마티니를 여섯 잔씩이나 마시더란 말이다. 그래서 나도 여섯 잔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물론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지 실제로 여섯 잔에 도전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세 잔만 마셔도 바닥에 뒹굴기 일보직전까지 가던데 어떻게 여섯 잔을 마실 수 있겠수?

그런데 문제는 '분위기' 였다. 마티니를 만들어 마시다 보니 괜시리 분위기가 괜찮아 보였다. 내가 원래 '안 그럴 것 같다가도 분위기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타잎'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제임스 본드 마티니 분위기'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매일 밤 베스퍼 마티니 파티였다. 매일같이 베스퍼 마티니를 두 세잔씩 마시다 보니 두어달 남짓 사이에 진, 보드카, 릴레이를 각각 두 명씩 비워버렸다. 술이 거의 떨어지자 바로 나가서 3라운드(진, 보드카, 릴레이 각각 1병씩)를 또 사왔다.

그.러.나...

3라운드는 뜯지도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모셔두고 있다.

(사진참고: 술들은 2009년초에 산 것 그대로이고 레몬만 새로 사온 것임)



왜?

계속 이러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하루 종일 피곤이 가시지 않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상태가 영 아니었다.

영화 '카지노 로얄'의 이 장면이 남의 얘기같지 아니더라니까...





제임스 본드 라이프스타일 중에서 흉내라도 한 번 내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슬프게도 술푸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한 번 해봤는데 이것도 도무지 안 되겠더라.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골골...ㅠㅠ

사실 내가 마지막으로 술먹으러 나간 지가 10년이 넘었다. 아는 사람들과 모여서 술을 먹기위해 마지막으로 나갔던 게 1999년 아니면 2000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래방도 그 때가 마지막이다. 아마 지금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 거꾸로 잡을 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알코올을 단 한방울도 안 삼킨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술을 먹기위해 나가는 것과 공항과 같은 데 지나가다 맥주 한 두병 정도 마시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술문화, 밤문화에서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베스트 프렌드'였던 담배까지 끊은 지 벌써 3년인가 4년인가 흘렀다.

그렇다고 내가 '건강제일주의자'인 건 절대 아니다. 난 아직도 '내일은 없다 주의자'이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주연의 1997년 제임스 본드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가 개봉했을 때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아서 "내가 가서 '투모로우'를 죽이고 오겠다"고 조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베스퍼 마티니는 더이상 못마시겠다.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남은 술들을 시원하게 끝내버릴까 했는데 '내일'이 두려워 못마시겠다니까...ㅠㅠ

댓글 2개 :

  1. 007을 다시 한번 보다 베스퍼 마티니가 궁금해 여기까지 흘러왔네요 맛이 정말 궁금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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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사먹어 본 적은 없고 집에서 제가 만들어 마신거라서 맛에 대해선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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