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시리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술이 있다. 그렇다. 바로 보드카 마티니(Vodka Martini)다. 영화에서 본드가 항상 "Shaken, not stirred."로 주문하는 바로 그 칵테일이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을 읽었거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두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보드카 마티니 이외로 본드가 즐겨 마시는 또 하나의 마티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바로 '베스퍼 마티니'다. 이것은 보드카+버무스(Vermouth)가 전부인 보드카 마티니와 달리 진(Gin), 보드카, 키나 릴레이(Kina Lillet)를 3:1:1/2 비율로 섞은 칵테일이다.
사실 내가 폭탄주와 칵테일이 헷갈릴 정도로 술과 살짝 거리가 있는 사람이므로 칵테일 만드는 법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겠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왜 술 얘기를 꺼낸 거냐고?
내가 이 빌어먹을 베스퍼 마티니를 만들어 먹은 이후로 시름시름 앓고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2008년 개봉한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제공했다. 아니 이 망할 미스터 본드가 베스퍼 마티니를 여섯 잔씩이나 마시더란 말이다. 그래서 나도 여섯 잔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물론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지 실제로 여섯 잔에 도전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세 잔만 마셔도 바닥에 뒹굴기 일보직전까지 가던데 어떻게 여섯 잔을 마실 수 있겠수?
그런데 문제는 '분위기' 였다. 마티니를 만들어 마시다 보니 괜시리 분위기가 괜찮아 보였다. 내가 원래 '안 그럴 것 같다가도 분위기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타잎'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제임스 본드 마티니 분위기'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매일 밤 베스퍼 마티니 파티였다. 매일같이 베스퍼 마티니를 두 세잔씩 마시다 보니 두어달 남짓 사이에 진, 보드카, 릴레이를 각각 두 명씩 비워버렸다. 술이 거의 떨어지자 바로 나가서 3라운드(진, 보드카, 릴레이 각각 1병씩)를 또 사왔다.
그.러.나...
3라운드는 뜯지도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모셔두고 있다.
(사진참고: 술들은 2009년초에 산 것 그대로이고 레몬만 새로 사온 것임)
왜?
계속 이러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하루 종일 피곤이 가시지 않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상태가 영 아니었다.
영화 '카지노 로얄'의 이 장면이 남의 얘기같지 아니더라니까...
제임스 본드 라이프스타일 중에서 흉내라도 한 번 내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슬프게도 술푸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한 번 해봤는데 이것도 도무지 안 되겠더라.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골골...ㅠㅠ
사실 내가 마지막으로 술먹으러 나간 지가 10년이 넘었다. 아는 사람들과 모여서 술을 먹기위해 마지막으로 나갔던 게 1999년 아니면 2000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래방도 그 때가 마지막이다. 아마 지금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 거꾸로 잡을 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알코올을 단 한방울도 안 삼킨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술을 먹기위해 나가는 것과 공항과 같은 데 지나가다 맥주 한 두병 정도 마시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술문화, 밤문화에서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베스트 프렌드'였던 담배까지 끊은 지 벌써 3년인가 4년인가 흘렀다.
그렇다고 내가 '건강제일주의자'인 건 절대 아니다. 난 아직도 '내일은 없다 주의자'이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주연의 1997년 제임스 본드 영화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가 개봉했을 때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아서 "내가 가서 '투모로우'를 죽이고 오겠다"고 조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베스퍼 마티니는 더이상 못마시겠다.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남은 술들을 시원하게 끝내버릴까 했는데 '내일'이 두려워 못마시겠다니까...ㅠㅠ
007을 다시 한번 보다 베스퍼 마티니가 궁금해 여기까지 흘러왔네요 맛이 정말 궁금합니다ㅋ
답글삭제저도 사먹어 본 적은 없고 집에서 제가 만들어 마신거라서 맛에 대해선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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