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8일 금요일

CW의 '니키타', 틴에이저용 시리즈 티가 한 눈에...

1990년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Luc Besson)의 영화 'La Femme Nikita'로 탄생한 캐릭터, 니키타(Nikita)가 2010년 미국의 TV로 돌아왔다. CW가 지난 9월초 시작한 TV 시리즈 '니키타'가 바로 그 '니키타'다. 90년대초 헐리우드 리메이크작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No Return)', 90년대말 제작된 TV 시리즈에 이어 2010년 니키타가 또 한 번 TV로 컴백한 것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010년판 니키타가 아시안이라는 점이다. '미션 임파시블 3(Mission Impossible 3)', '다이 하드 4(Live Free or Die Hard)' 등 헐리우드 액션영화에 출연했던 하와이 태생 아시아계 여배우 매기 큐(Maggie Q)가 니키타 역을 맡았다.

액션영화가 되는 여배우라서 인지, 이 친구가 핸드건을 들고 있으니 제법 폼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친구가 앉아있는 암체어가 제일 탐난다. 암체어 다리가 뭔지 잘 보시구랴. 그런데 저렇게 폼잡고 앉아있다가 왼손으로 총을 집어들면 자빠질 것 같지 않수?



사실 니키타는 소설 '디스트로이어(The Destroyer)'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캐릭터일 것이다. 니키타가 '디스트로이어'의 주인공과 아주 큰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디스트로이어'?

미국 스파이 스릴러 소설 '디스트로이어'는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은 경찰관이 비밀 정보부에 의해 레모 윌리암스(Remo Williams)라는 이름의 스파이로 변신해 제 2의 삶을 살게 된다는 소설이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서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딸을 둔 악당이 첫 소설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아도, 레모가 그 딸에 접근했던 것 같다. 내가 읽었던 게 시리즈 첫 번째 소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책에서 주인공이 사형집행당해 죽은 것으로 가장해 완전히 다른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는 파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읽었고, 하도 오래 전 일이기 때문에 이 정도밖에 기억에 남은 게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여기에서 레모 윌리암스를 여성으로 교체하는 등 조금만 변화를 주면 바로 니키타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레모 윌리암스라는 이름이 친숙하게 들린다고?

아마도 80년대에 개봉했던 영화 '레모 윌리암스'가 기억나서가 아닐까...?



그런데 2010년 '니키타'는 배경 스토리가 조금 달라졌다. '사형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비밀 정보부에 리쿠르트되어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니키타가 조직을 배신한 로그(Rogue) 에이전트로 나온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니키타는 자신을 리쿠트르했던 비밀조직 '디비젼'에 배신당한 뒤 이들을 무너뜨리려 한다.

게다가 '디비젼' 내부에 니키타를 도와주는 스파이까지 있다. 과거의 니키타와 마찬가지로 '디비젼'에 의해 리쿠르트되어 에이전트 훈련을 받고있는 알렉스(린지 폰세카)다. '디비젼'은 자신의 일을 자꾸 방해하는 니키타를 없애려 하지만, 알렉스가 그들의 HQ 내에서 정보를 빼내 니키타에 넘겨주곤 한다.

스토리가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인 시청자들이 진지하게 볼 만한 시리즈는 못 된다. 매기 큐가 '액션걸'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리는 배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만, 틴에이저 드라마 범위에서 벗어나기 힘든 시리즈라는 게 아쉬운 점이다. 틴에이저용 시리즈 티가 한눈에 난다는 것이다.

2010년 '니키타'를 틴 드라마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주범은 디비젼'에서 훈련을 받는 젊은 에이전트들이 나오는 파트다 . '디비젼'에서 함께 훈련받는 젊은 남녀 캐릭터들의 콩닥거리는 이야기가 '니키타'를 틴 드라마 쪽으로 끌고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하나(알렉스)가 니키타에 정보를 빼주는 내부 스파이로 설정되었으므로 쉽게 없앨 수도 없는 파트다.



그래도 '디비젼'이라는 조직 안에 몰(Mole)을 심어넣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다. 덕분에 스파이 스릴러 분위기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또한, '디비젼'의 최고 책임자 이름이 퍼시(Percy)인 것도 왠지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몰 헌팅 스파이 소설 'Tinker, Tailor, Soldier, Spy'를 슬쩍 모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몰이 하필이면 나이가 어려 보이는 지지배(알렉스)인 바람에 분위기가 깨졌다. 스파이 TV 시리즈 분위기를 낼 것이면 제대로 했어야 옳았지만, 제작진은 애초부터 틴 드라마를 구상했지 그럴싸한 스파이 시리즈를 만들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용 드라마를 주로 방송하는 CW의 프로그램이니 더이상 길게 불평할 건 없을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오는 11월 시즌2로 돌아오는 FOX의 액션 시리즈 '휴먼 타겟(Human Target)'을 주인공만 여자로 바꿔놓으면 '니키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두 시리즈 모두 워너 브러더스 텔레비젼이 제작하는 시리즈이며, McG가 프로듀서라는 공통점도 있어서인 듯 하다. 캐릭터, 플롯 등등을 하나씩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들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휴먼 타겟'도 틴 드라마라는 얘기냐고?

액션 TV 시리즈가 다 거기서 거기지만, '휴먼 타겟'은 '까놓고 틴 드라마'는 아니다. 적어도 '휴먼 타겟'엔 틴에이저 정도로 보이는 캐릭터들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지 FOX의 '돌하우스(Dollhouse)'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고?

그렇다. 지금까지 네 편의 '니키타' 에피소드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시리즈가 시즌2로 막을 내린 FOX의 '돌하우스'였다. 두 시리즈 모두 유머감각이 풍부한 터프걸 여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 시리즈라는 점, 비밀조직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리쿠르트된 젊은 에이전트들을 훈련시킨다는 점, 엄밀하게 따지자면 스파이 시리즈라고 할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그쪽 분위기가 많이 느껴진다는 점 등 여러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돌하우스'는 시리즈 초반엔 그런대로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니키타'는 시작부터 뻔할 뻔자 였다. 이미 영화와 TV 시리즈를 통해 익숙해진 스토리를 재탕하는 것인 만큼 신선도가 떨어지리라는 점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매기 큐를 제외하곤 건질 게 많지 않았다.



매기 큐 버전의 니키타는 양자경처럼 치고 받을 줄도 알고,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으면서도 제임스 본드처럼 여유를 부리며 농담할 줄도 아는, 나름 괜찮은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여자판 제임스 본드와 같은 액션걸 캐릭터에 매기 큐가 아주 잘 어울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거기까지가 전부인 것 같다. 제법 근사한 캐릭터가 될 만한 가능성이 보이는 게 전부일 뿐 실제로 '물건'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드라마 자체가 너무 아동틱하고 싱거워 보여서다. 매키 큐를 니키타 역으로 캐스팅한 것까지는 아주 좋은데, 드라마 자체가 매주 꼬박꼬박 찾아보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게 문제다.

CW의 '니키타'도 스파이 TV 시리즈로 분류된 만큼 시리즈 프리미어부터 관심있게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내 취향엔 맞지 않는 것 같다. 당분간은 계속 보게 될 것 같지만,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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