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골든아이'가 개봉하는 날 타워 레코드에 먼저 간 이유

1995년 11월17일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 제 17탄 '골든아이(GoldenEye)'가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날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골든아이'는 6년의 공백기를 거친 뒤 돌아온 제임스 본드 영화다.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의 1989년 영화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을 마지막으로 시리즈가 완전히 끝난 듯 했으나, 007 시리즈는 새로운 얼굴과 함께 6년만에 돌아왔다.

그렇다. 본드팬들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오기까지 무려 6년을 기다려야 했다. 매년마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개봉했던 숀 코네리(Sean Connery) 시절의 6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2년을 기다리는 것도 멀게만 느껴진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번엔 6년이었다.

6년만에 돌아온 제임스 본드 영화였다 보니 '골든아이' 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참 많다. 하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던 나머지 '골든아이'를 영화관에서만 일곱 번 봤던 것부터 기억난다. 그 중 첫 번째는 목요일 밤, 보다 정확하게는 금요일 새벽 0시에 하는 미드나잇 프리뷰 였다. 007 시리즈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건배럴씬을 6년만에 영화관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밤낮 가릴 상황이었겠수?

그렇다면 밤중에 정신없이 영화관으로 달려갔냐고?

그 이전에 먼저 들린 데가 있었다. 바로 타워 레코드(Tower Records) 였다. 늦은 시각이라 다른 곳은 전부 문을 닫았지만 타워 레코드는 밤 12시까지 열었기 때문이다.



밤중에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타워 레코드에 먼저 들린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운드트랙 앨범을 사기 위해서 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사운드트랙을 먼저 구입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째,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시 말하자면 차에서부터 제임스 본드 무드를 잡기 위해서 였다. 영화를 다 보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사운드트랙을 틀어놓고 운전하면 영화의 여운이 계속 이어지므로 영화를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007 시리즈 음악으로 유명한 영국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를 끝으로 시리즈를 떠난 이후 포스트 존 배리 시대의 제임스 본드 음악이 아무래도 불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1977년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의 마빈 햄리쉬(Marvin Hamlisch), 1981년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의 빌 콘티(Bill Conti)는 존 배리 없이도 멋진 제임스 본드 사운드트랙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부터 였다. 마이클 케이맨(Michael Kaman)이 맡았던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의 사운드트랙은 역대 007 시리즈 최악의 사운드트랙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본드팬들은 007 베테랑 존 배리가 다시 시리즈로 돌아오길 원했으나 그는 '골든아이' 음악을 맡지 않았다. 마이클 케이맨의 '라이센스 투 킬' 사운드트랙이 매우 실망스러웠는데, 이번에도 또 존 배리가 아닌 다른 뮤지션이 음악을 맡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되었다 보니 '골든아이'까지 2연속으로 포스트 존 배리 사운드트랙이 죽을 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앞섰다.

결과는 '역시나' 였다. 프랑스 뮤지션 에릭 세라(Eric Serra)의 '골든아이' 사운드트랙은 한마디로 '공포의 총합'이었다. 에릭 세라의 차갑고, 어둡고, 매력없는 사운드트랙은 듣기 괴로울 정도 였다.

그렇다. '골든아이'는 007 시리즈 최악의 사운드트랙이었다.

하지만 티나 터너가 부른 주제곡 '골든아이'는 괜찮은 편이었다. 베스트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 분위기가 묻어났다. 티나 터너의 '골든아이'는 90년대 이후에 나온 제임스 본드 테마곡 중에선 최고라 할 만 하다.

터너의 '골든아이' 싱글 앨범엔 오리지날 에딧(Edit) 버전을 포함해 4개의 트랙이 수록되었는데, 들을 만한 건 오리지날 밖에 없다. 하우스 믹스도 있지만, 농담 수준일 뿐이다.




실망스러운 퀄리티의 사운드트랙은 영화를 보는 데도 방해가 됐다. 당장 건배럴씬에서부터 나오는 쉬어들어가는 듯한 사운드의 제임스 본드 테마곡에 눈쌀을 찌푸려야만 했다. 귓구멍을 닫아보기 위해 정신집중을 했지만 맘처럼 안 되더라. 귓구멍은 왜 맘대로 벌렁거릴 수 없게 되어있는 지 참 원망스럽더라니까.

'오피셜 골든아이 매거진' 말마따나 오랜만에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고, 시대도 바뀌어 'From Russia With Love'가 아닌 'To Russia With Love'로 변한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음악 만큼은 과거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했어야 옳았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골든아이' 사운드트랙은 제임스 본드 음악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경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노력하자 참을 만 했다. 영화는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까지 기대에 못 미쳤더라면 상당히 실망스러울 뻔 했지만 영화관에서 일곱 번이나 보게 만들 정도로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사운드트랙 퀄리티에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어도 영화는 제법 맘에 들었다. 워낙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제임스 본드 영화였기 때문인 지도 모르지만, 영화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골든아이'는 본드팬들 사이에서 피어스 브로스난의 베스트 제임스 본드 영화로 불린다.

'골든아이'를 연출한 마틴 캠벨(Martin Campbell) 감독은 "우리 시대의 테렌스 영(Terence Young)"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틴 캠벨은 2006년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도 연출한 007 베테랑 영화 감독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사운드트랙이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몇몇 유명한 주제곡과 멋진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시리즈였는데, 제작진이 음악에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존 배리가 되돌아오지 않으면 제임스 본드 사운드트랙은 더이상 구입할 가치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007 제작진은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에서 영국 뮤지션 데이빗 아놀드(David Arnold)에 음악을 맡겼다. 당시 많은 본드팬들은 데이빗 아놀드의 사운드트랙에 후한 점수를 줬다. 반복되는 제임스 본드 테마를 빼면 사실상 별 것 없어 보이긴 했어도, 재앙수준이었던 이전 두 편의 영화 사운드트랙에 비하면 훌륭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데이빗 아놀드가 잘 해서가 아니라 마이클 케이맨과 에릭 세라가 오부지게 죽을 쒀놓은 덕을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007 제작진은 작곡가를 교체하지 않고 있다. 아놀드의 음악은 'CHEAP'하게 들릴 뿐인 데도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까지 그에게 맡겼다. 아직 발표는 없지만,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그가 '본드23'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나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 사운드트랙을 더이상 듣지 않는다. CD 사운드트랙은 계속 구입하고 있지만, 듣지는 않는다. 과거 존 배리, 마빈 햄리쉬, 빌 콘티의 손을 거친 제임스 본드 사운드트랙 앨범엔 못해도 한 두 곡씩 기억에 남는 곡들이 꼭 있는데, 포스트 존 배리 시대에 나온 사운드트랙에선 이러한 곡들을 찾아볼 수 없다. 과거엔 제임스 본드 사운드트랙만 듣고 있어도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고, 결국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다시 돌려보게 만들기도 했는데, 요새 사운드트랙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기억에 남는 음악도 없고, 옛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들지도 않는다.

물론 '본드23'에선 달라질 수 있다. 데이빗 아놀드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기대가 별로 안 된다.

댓글 5개 :

  1. 티나 터너 오랜만에 보네요. ㅎㅎㅎ
    피어스 브로스넌도 그렇고요.
    80년대 레밍턴 스틸 생각이 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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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80년대 '레밍턴 스틸'에 출연했을 때 부터 제임스 본드 후보로 오르내렸었죠.
    그리 좋아하는 본드는 아니었지만 한 번 했어야 했던 배우였다고 봅니다.
    근데, 80년대 하시니까 '매드맥스'에 출연했던 티나 터너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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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골든 아이 주제곡은 상당히 괜찮았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주제곡은 여가수가 불러야 제 맛 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최고의 본드 곡은 "Live and Let Die," "Nobody Does It Better," "A View to a Kill"을 꼽지만 말입니다.^^
    또한 마틴 캠벨이 본드 23 감독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스필버그가 맡아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ㅋㅋ
    전 티나터너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 늘씬한 다리와, 매드 맥스 3편 이었던가요? Thunderdome의 주제곡만 생각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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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때 강남역의 랜드마크였던(?) 타워레코드가 생각나네요.
    그땐 메탈에 빠져있어서 CD도 몇장 샀었는데 주로 약속 장소로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레밍턴 스틸은 일요일 오전시간에 방송했는데 아마 브루스 윌리스 나오는 탐정 드라마 후속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포맷이 두 드라마가 비슷했는데 제목이 문... 뭐였는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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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도 본드 주제곡은 여자가 불러야 분위기가 사는 것 같습니다.
    셰릴 크로우, 마돈나는 좀 아닌 것 같지만...^^
    저도 말씀하신 세 곡 + 'For Your Eyes Only'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들인 것 같습니다.

    전 '매드맥스' 티나 터너 하면 각선미보다 살짝 미친 '분' 스타일이었던 게 더 기억에...ㅡㅡ;

    그리고...

    전 타워레코드에서 살다시피 했었습니다...^^
    요샌 아이튠스다 MP3다로 때우니까 음악듣는 재미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던 시리즈는 '문라이팅(Moonlighting)'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셰어의 '문스트럭(Moonstruck)'과 헷갈렸던 기억이...^^
    한국에선 제목이 뭐였더라? '블루문 특급'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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