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9일 화요일

서점에서 제임스 본드한테 걸리면 돈이 줄어든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원작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 시리즈다. 영화로 제작되기 이전에 먼저 소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은 1953년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부터 1964년 사망할 때까지 12개의 제임스 본드 소설과 2개의 숏스토리 콜렉션을 발표했다.

플레밍이 남긴 12개 제임스 본드 소설은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리브 앤 렛 다이/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문레이커(Moonraker)',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닥터노(Dr. No)', '골드핑거(Goldfinger)', '썬더볼(Thunderball)',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다.

2개의 숏스토리 콜렉션 '포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와 '옥토퍼시(Octopussy)'엔 'For Your Eyes Only', 'Octopussy', 'From a View to a Kill', 'The Living Daylights', 'Quantum of Solace' 등 영화팬들에게 친숙한 제목의 숏스토리 9편이 수록되어있다.

지난 2008년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가 개봉했을 때 제임스 본드 소설을 퍼블리싱 하는 펭귄(Penguin)은 9편의 숏스토리를 한데 모은 콜렉션 '콴텀 오브 솔래스'를 새로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펭귄 시리즈가 내가 구입한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은 아니다. '카지노 로얄',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위기일발', '닥터노', '문레이커' 등 몇몇 제임스 본드 소설은 한국에 있을 때 한글판으로 읽었다.

'카지노 로얄'과 '문레이커'는 제목과 내용 모두 영문 오리지날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닥터노'와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위기일발'은 약간 달랐다. '닥터노(살인번호?)'는 삽화가 들어간 어린이용 책이었으므로 약간 톤다운된 버전이었고,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위기일발'은 무슨 영문인지 제목이 '정사탈출'로 바뀐 바람에 제목만 봐선 제임스 본드 소설인지 알아볼 수 없었던 게 기억난다.

어린 나이에 '정사탈출'이란 책을 들고 교X문고 계산대를 돌파하는 작전을 감행했던 게 내 어릴 적 추억 중 하나란다. 다른 때엔 계산대에 여직원이 있으면 기분이 좋았는데, 그 날 만큼은 여직원이 밉더라. 내가 들이민 책을 보더니 "어머머머... 얘좀 봐! 너 정사가 뭔지나 아니?"라며 '째째째째~' 거렸던 그 때 그 교X누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니까. 그냥 계산만 해주면 어디 덧나냐니까!

아무튼 그건 그렇고...

플레밍 소설 이외로 존 가드너(John Gardner)가 쓴 제임스 본드 소설도 한글판으로 2권 읽었다. 내가 한글판으로 읽은 책은 가드너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Licence Renewed'와 두 번째 소설 'For Secret Services' 였다. 한글판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제목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Licence Renewed' 제목이 아마도 '멜트다운 작전'이 아니었나 한다. 2권을 함께 교X문고에서 샀었는데 이상하게 제목이 하나밖에 기억이 안 난다. 플레밍 사후 다른 작가들이 쓴 제임스 본드 소설들엔 별다른 애정이 없어서인 듯 하다.

미국에 와서 감탄(?)했던 것 중 하나는, 어지간한 규모의 서점이라면 어디에서나 제임스 본드 소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제임스 본드 소설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미국에선 그렇지 않았다. 이 덕분에 한국에서 읽지 못했던 플레밍의 나머지 제임스 본드 소설들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내 손에 처음 잡혔던 건 영문판 제임스 본드 소설은 버클리(Berkley)에서 출판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였다. 지금은 찾아보니 2~3권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버클리 시리즈로 대부분의 클래식 플레밍 제임스 본드 소설들을 읽었다.



이 때 부터 수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서점에서 제임스 본드 책이 눈에 띄기만 하면 일단 사게 되는 것이었다. 이미 읽은 책이더라도 출판사 또는 커버 디자인 등이 다르다 싶으면 무조건 손이 갔다. 진지하게 수집할 생각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서점에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책들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이 덕분에 버클리 시리즈 이외의 다른 퍼블리셔가 출판한 제임스 본드 소설들도 더러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책을 샀어도 관리 부주의로 찢어지거나 물에 젖어서 버린 책들도 있었다. 이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아직도 여행가방 밑이나 이사할 때 사용했던 박스 속에 몇 권이 더 숨어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펭귄이 페이퍼백 버전으로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발매했을 때 14권 전체를 모두 다 샀다. 이렇게 해서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을 처음으로 풀세트로 갖게 됐다.

아래 사진이 그 증거다. 왼쪽에서부터 15번째 책인 '콴텀 오브 솔래스'는 위에서 말했던 9편의 숏스토리를 모두 한데 모은 콜렉션이다.



얼마 전엔 펭귄이 새로운 커버 디자인의 하드커버 판을 선보이면서 또다시 나를 유혹했다. 내 수집욕을 자극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공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무슨 도서관도 아니고 14권의 하드커버 책들을 더 꽂아놓을 틈이 없어 보였다. 짐을 줄이기 위해 음악 CD, 영화 DVD 등을 디지털화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판국에 읽지도 않고 그저 모셔놓을 게 전부인 14권의 하드커버 책들을 산다는 게 약간 이치에 맞지 않아 보였다. 수집도 좋지만 계속해서 수북하게 쌓아놓기만 하는 짓도 잠시 중단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표, 동전 등 부피가 작은 것이라면 또 몰라도 14권의 하드커버 책들은 조금 너무 '하드'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갖고있는 제임스 본드 콜렉티블은 액션 피겨, 다이캐스트 모델 등등 하나같이 부피가 큰 것들이 전부다. 그래서 아무래도 하드커버 14권은 패스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하드커버 구입의 유혹을 잘 뿌리치고 있다. 아마존닷컴 같은 데서 예상치 못했던 순간 갑자기 제임스 본드 하드커버 책들이 눈에 띄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눈이라는 게, 감으면 보이는 게 없더라니까.

그.러.나...

지난 주말 동네 서점에 들렸다가 '미스터 본드'에 또 걸렸다.

서점에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추리소설 코너를 항상 훑곤 하는데, 아이그마니나, 하필이면 제임스 본드가 눈에 띄는 것이었다. 최근에 발매되었다는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 펭귄 잉크 시리즈(The Penguin Ink Series)와 3편의 소설을 한데 모은 '블로펠드 트릴로지(The Blofeld Trilogy)' 였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 펭귄 잉크 시리즈는 마치 코믹북처럼 보이는 새로운 커버아트 등 기존의 펭귄 페이버백 버전보다 팬시한 디자인의 책이다.

아래는 펭귄 잉크 시리즈의 이미지들이다.




아래는 기존의 페이퍼백 버전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의 이미지.



'블로펠드 트릴로지'는 제임스 본드와 그의 숙적 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Ernst Stavro Blofeld)의 범죄조직 스펙터(S.P.E.C.T.R.E)와의 싸움을 그린 '썬더볼(Thunderball)',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3권을 한데 모은 콜렉션이다.

아래 이미지는 최근 발매된 '블로펠드 트릴로지'.



다음 이미지는 '블로펠드 트릴로지'에 포함된 '썬더볼', '여왕폐하의 007', '두 번 산다'.



결국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 펭귄 잉크 시리즈와 '블로펠드 트릴로지'를 샀냐고?

위에 있는 사진을 전부 내가 찍은 건데, 그럼 저 책들을 안 샀으면 훔치기라도 했단 말이오?

하필이면 저 책들을 추리소설 코너에 꽂아놓을 필요가 있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사장 나오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야...

2권을 샀더니 가격은 세금까지 합해서 $39.22가 나왔다.

그렇다. 이 빌어먹을(?) 돈 먹는 하마, 제임스 본드에 또 당했다. 이래서 내겐 제임스 본드가 골목을 지키며 지나가는 아이들 돈을 빼앗는 불량배처럼 보인다. 걸렸다 하면 무조건 빼앗기니 이거 뭐...

바로 이 불량배 '미스터 본드'가 내년에 서점으로 돌아온다. 최근에 'DOUBLE-OH' 바통을 넘겨받은 미국의 스릴러 소설가 제프리 디버(Jeffrey Deaver)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이 내년에 출간되기 때문이다.

디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댄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과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주연의 영화 '본 콜렉터(The Bone Collector)'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 콜렉터'를 쓴 작가가 바로 디버다. 바로 이 양반이 현재 '프로젝트 X'로 알려진 새로운 제임스 본드 소설을 집필중에 있다.

그렇다. 본드팬들은 읽을 게 참 많다.



댓글 5개 :

  1. Awesome~~
    오공님 존경합니다.
    매니아 수준을 가히 뛰어넘으시는 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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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직 멀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죠...^^
    콜렉터도 아니면서 수집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좀 피곤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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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맞습니다. 전 한국에서 예전 펭귄 판으로 다 구했는데요.
    그것과 그다음에 일러스트레이티드 북이 있더군요.
    여러 이미지와 영화를 다시 책으로 출판한 그래픽 노블의 장면을 담은 책도 샀고...
    가장 후회되는 건 세바스천 폭스의 책입니다.
    이건 뭥미...ㅜㅜ

    거기다가 사운드트랙 30주년 CD, 40주년 CD, 개별 사운드트랙 (CBS클래식에서 나온 마이클 케이먼 오리지널 스코어의 라이센스 투 킬은 못 구했습니다.^^), 요즘 나온 영화들의 CD 싱글 버전들, 각각의 DVD들, 그담에 외전 이라고 할수도 없겠지만 네버세이네버어게인, 존 휴스턴 버전의 카지노 로얄... 등등 끝이 없네요.
    아 시계도 있군요. 본드 영화가 나올때 마다 출시되는 오메가 시매스터 컬렉션 (다행히 전 돈이 없어서 그냥 시매스터만 가지고 있습니다. 오메가의 한정판 시계는 너무 많이 만들어서 한정판의 의미가 없기에...)

    이제 블루레이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

    나중엔 브리오니 턱시도, 돔페리뇽... 결국 애스턴 마틴과 벤틀리까지 손을 댈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도 애스턴 마틴, 벤틀리는 못사니 그냥 같은 영국의 비슷한 분위기인 재규어로 가야 하나요?^^

    에구구 전 본드 홀릭은 아니지만 저도 괴로운데, 본드홀릭들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좋은 포스팅 즐겁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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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잇힝~ 로터스도 있었군요.
    애스턴 마틴, 벤틀리는 넘사벽이고, 대신 아쉬운대로 다이캐스팅을 사고... 직접 몰고 다니는 건 같은 영국 오리진인 재규어, 로터스라도 타고 다녀야 할지도...ㅋㅋ

    그렇지만, 대세는 일본차 독일차고, 영국차는 너무 품질관리가 허술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요~

    암튼 브리오니 턱시도입고, 카지노에서 마티니 마시고, 호텔방에서 미모의 여인과 클래식 돔페리뇽 한모금만 마셔보는게 소원아닌 소원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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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책 시리즈 종류가 무지 다양하죠...ㅡㅡ; 스페셜 디자이너가 만든 한정판 커버아트 판 등등 골치아픕니다. 책이나 DVD나 똑같은 걸 계속 재탕, 삼탕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할 수 없죠. DVD 얼티메이트 콜렉션 박스 세트는 아직 뜯지도 않았습니다. 낱개로 산 싱글 디스크 에디션으로 다 볼 수 있으니 굳이 뜯을 이유가...

    이렇다 보니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해서 사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이것저것 차이가 있다고 선전하지만 결과적으론 똑같은 건데... 수집가치가 있다면 눈감고 사겠는데, 이것도 아닌 것 같구요. 그래서 이젠 적어도 책과 DVD는 중복구입을 피하려고 합니다. 2000년도에 나왔던 스페셜 에디션 DVD는 미국판, 영국판으로 모두 모았었는데요, 이젠 이렇게 안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러.나... '5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하면 아무래도 또 사게 되겠죠...ㅡㅡ; 원수같다니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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