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영화제목이 왜 '투어리스트'인가 했더니...

헐리우드 수퍼스타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와 쟈니 뎁(Johnny Depp)이 만났다. 소니 픽쳐스의 로맨틱 스릴러 '투어리스트(The Tourist)'에서다.

영화제목을 보니 관광객이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인 것 같다고?

맞다. 미국의 수학교사 프랭크(쟈니 뎁)가 유럽 여행을 갔다가 열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미모의 여성 엘리스(안젤리나 졸리)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국제수배당한 범죄자 알렉산더 피어스의 애인인 엘리스가 그들을 뒤쫓는 수사관들을 속이기 위해 프랭크를 성형수술한 알렉산더로 오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엘리스도 성형수술 이후의 알렉산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현재 모습을 모르지만, 편지를 통해 알렉산더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가 시키는대로 따른다.

알렉산더와 엘리스의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수사관들은 프랭크를 성형수술한 알렉산더로 판단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수사관들 뿐만 아니라 알렉산더의 뒤를 쫓는 러시아 범죄조직에게까지 정보가 흘러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되는 바람에 프랭크와 엘리스는 수사망을 좁혀오는 인터폴 뿐만 아니라 러시아 범죄조직에게까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제법 근사해 보인다고?

얼핏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영화를 조금 보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투어리스트'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 째는 스토리다. 얼핏 보기엔 제법 스마트한 스토리인 듯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관객들이 이것저것을 추측하게 만드는 '생각하면서 보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제작진의 목적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미스테리가 엉성하고 단순했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결국은 이러이러한 얘기 아니냐'는 게 빤히 보였으니 반전과 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었다. 영화관객들은 이미 미스테리를 다 풀었는데 영화 속에서만 못 풀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영화들이 더러 있는데, '투어리스트'도 그런 영화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썰렁한 스토리도 안젤리나 졸리와 쟈니 뎁이라는 헐리우드 수퍼스타들이 출연하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 수퍼히어로는 지구를 지키라고 있고, 수퍼스타는 이런 영화 커버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투어리스트'의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안젤리나 졸리와 쟈니 뎁이었다. 이들도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투어리스트'는 액션 스릴러라기 보다 로맨틱 러브스토리 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는 영화다. 액션이 볼거리인 영화가 아니라 엉뚱한 사건에 휘말렸다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프랭크(쟈니 뎁)와 엘리스(안젤리나 졸리) 커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쟈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는 아무리 봐도 프랭크와 엘리스로 보이지 않았다. 쟈니 뎁은 '캐리비언의 해적들(Pirates of the Caribbean)'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했고, 안젤리나 졸리는 '살트(Salt)'에서의 모습 그대로 였다. 프랭크와 엘리스가 아니라 캡틴 잭 스패로우와 에블린 살트로 보였다는 것이다. 왠지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프랭크는 영락없이 시간여행을 한 캡틴 잭 스패로우처럼 보였고, 제법 터프한 액션걸 엘리스는 전형적인 안젤리나 졸리 액션 캐릭터였을 뿐 엘리스가 아니었다. 졸리가 영국식 액센트를 구사하는 것을 보며 '툼 레이더(Tomb Raider)' 시절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까지 생각나더라.

이런 판에 프랭크와 엘리스의 러브스토리가 제대로 와 닿을 리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우연히 만난 프랭크와 엘리스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인데, 아무리 봐도 '이 친구들이 진짜로 사랑에 빠진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어색해 보였다. 사실 어색한 정도가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진지한 씬에서조차 솟구치는 웃음을 억눌러야 했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패로디 코메디 영화로 만들었다면 크게 웃을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투어리스트'는 진지한 러브스토리였다. 그런데 진지해서 더 웃겼으니 더이상 길게 말할 게 없을 듯 하다.

이쯤 되자 영화제목이 왜 '투어리스트'인 지 감이 잡혔다.

그렇다. 로케이션 경치나 감상하라는 의미였다. 영화관객들을 '투어리스트'로 만드는 영화였던 것이다. 스토리와 주연배우 모두 횡설수설이었지만, 아름다운 경치 하나는 볼만 했으니 말이다.




그럼 '투어리스트'는 로케이션의 멋진 경치를 빼면 볼 게 없는 영화라는 거냐고?

본드걸 출신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출연한 프랑스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라길래, 영화가 재미있으면 오리지날 프랑스 영화도 찾아서 보려고 했는데 모든 계획 취소다.

'본드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본드팬들에겐 '투어리스트'를 나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있다. 제임스 본드 영화 오마쥬 천지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생각난 영화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이었다. 소니 에릭슨(Sony Ericsson) 핸드폰 등 소니 전자제품이 눈에 띄었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열차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베니스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 등이 '카지노 로얄'과 그대로 겹쳤다.

아래 이미지는 열차씬 비교. 윗 이미지가 '투어리스트'이고 아래가 '카지노 로얄'이다.




다음은 베니스씬 비교. 윗 이미지가 '투어리스트', 아래가 '카지노 로얄'이다.




여기에 섹시한 블론드 에이전트로 마무리까지 하더라.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007 시리즈 사상 첫 번째 블론드 제임스 본드였다는 걸 잊진 않았겠지?



그러고 보니, 안젤리나 졸리도 '카지노 로얄' 본드걸 후보였던 여배우다.

만약 그녀가 '카지노 로얄'의 리딩 본드걸, 베스퍼 역을 맡았더라면 영화가 더 멋졌을 수도 있겠지만, 터프걸 이미지가 강한 졸리에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묘하게도 '투어리스트'에서 베스퍼 린드의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 린드와 '투어리스트'의 엘리스 워드의 배경 스토리에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인지, 마치 베스퍼가 주인공인 '카지노 로얄'을 보는 듯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본드걸도 본드걸이지만, '투어리스트'의 졸리를 보면서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



'007 시리즈 커넥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 범죄조직 두목 역을 맡은 스티븐 버코프(Steven Berkoff)는 1983년 제임스 본드 영화 '옥토퍼시(Octopussy)'에서 소련군 장군 역을 맡았던 배우다.



아래 이미지는 '옥토퍼시'에서 올로브 장군(스티븐 버코프)과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가 만나는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지붕 위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루프탑 체이스 씬도 빠지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액션 스릴러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루프탑 체이스 씬인 만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투어리스트'에선 프랭크(쟈니 뎁)가 호텔에 괴한들이 들이닥치자 창문을 열고 건물 지붕으로 뛰어들면서 루프탑 체이스가 벌어진다.



1987년 제임스 본드 영화 '리빙 데이라트(The Living Daylights)'를 본 사람들은 루프탑 체이스 씬이 왜 007 시리즈와 관련있는 지 알고있을 것이다. 암살범으로 몰린 제임스 본드(티모시 달튼)가 지붕 위로 올라가 도주하던 씬을 기억할 테니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제작진은 '리빙 데이라이트'에서 지붕 위를 달리는 아슬아슬한 스턴트를 직접 소화했던 제임스 본드,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까지 모셔왔다. 그렇다. 루프탑 체이스 씬 뿐만 아니라 제임스 본드까지 아예 세트로 데려온 것이다. 기왕 루프탑 체이스 씬을 넣는 김에 '리빙 데이라이트'의 바로 그 씬에 나왔던 제임스 본드까지 함께 등장시키기로 한 게 아닌가 싶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아주 오랜만에 빅스크린으로 보는 티모시 달튼의 모습에 감동 또 감동!

아래 이미지는 달튼의 2010년 모습(위)과 1987년 제임스 본드였을 당시의 모습(아래).




꼼꼼하게 더 찾아보면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오마쥬가 몇 개 더 있을 것이다. 사실, '투어리스트'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 뿐만 아니라 여러 액션 스릴러 영화 클리셰로 가득한 영화다. 거의 모든 씬들이 어디서 본 듯 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와 쟈니 뎁이라는 수퍼스타의 명성에 전적으로 의존한 영화에 무언가 색다른 걸 기대하면 도둑놈이다.

그런데 유독 왜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오마쥬만 추렸냐고?

소니 픽쳐스가 최근 선보인 '살트', '투어리스트' 등을 보면 미스터 본드의 맛을 못 잊은 것 같아서다.

그럼 다시 찾아가면 된다. 미스터 본드가 지금 'AVAILABLE'이거든.

소니 픽쳐스는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의 디스트리뷰션을 맡았지만 두 편을 끝으로 007 시리즈와의 관계를 정리한 상태다. 그러나 MGM이 '본드23'를 직접 디스트리뷰트할 수 없으므로 소니 픽쳐스가 원한다면 다시 007 시리즈에 손을 댈 수도 있다. 아직은 누가 '본드23'의 디스트리뷰터가 될 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소니 픽쳐스도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워너 브러더스, 파라마운트 등도 007 시리즈 디스트리뷰션에 흥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거저먹기는 힘들 듯 해도 과거에 007 팀과 함께 일한 경험이 소니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니 픽쳐스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대신할 영화를 찾으려 하지 말고 제임스 본드를 픽업하는 데 올인하는 게 어떨가 싶다. 소니 전자제품 PPL이 조금 심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소니 픽쳐스가 일을 아주 잘 한 것 같은 데다, 지금처럼 '본드23'가 불안한 상황에는 007 제작진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이전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투어리스트' 영화 얘기하다가 '본드23'로 옮겨타면 어쩌냐고?

에이, '투어리스트'보다 '본드23'가 더 중요하잖수? 이해해!

마지막은 '투어리스트'의 엔드 타이틀로 사용된 Muse의 'Starlight'으로 하자. 대개 이런 실망스러운 영화를 보고 나면 끝나기 무섭게 궁뎅이를 드는데 예상치 못했던 친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끝날 때까지 앉아있었다.

노래제목이 'Starlight'이 아니라 'Starpower'였어야 영화와 보다 잘 어울렸을 것 같지만, 그래도 'Star'가 들어갔으니...ㅋ



댓글 9개 :

  1.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워낙에 죠니뎁 올아버니를 좋아해서 죠니뎁씨가 나오는 영화는 항상 극장가서 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안젤리나 졸리 언니랑 나와서 더 기대하고 있는...!!
    캐리비안해적4 찍고 있다는 애기도 있던데.. 하루빨리 나와줬으면 하는..ㅋㅋ

    아무생각없이 보기 위해 본문은 읽지 않았어요...ㅜㅜ;;
    나중에 극장에서 볼때 본드 시리즈의 오마쥬를 요심히 찾아보며 봐야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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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임스 본드이야기부터 읽었다능..;;
    근데 댓글 수정 어떻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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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휴~~ 이제서야 접속이 되네요...
    토요일부턴가 계속 오공님 블로그만 접속이 안되서 무지 답답했었어요...
    그래서, 다음뷰 메세지만 적었거든요.
    댓글을 달 수도 없으니까요...
    아무튼 다행이예요. 오공님 보고 싶었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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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구글 블로그에선 댓글 수정이 안 됩니다...ㅡㅡ;
    저도 이것 때문에 삭제했다 새로 쓰는 걸 반복한 적이 많습니다.
    좀 불편하죠.

    그럼 영화를 보시고 나서 소감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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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접속장애가 있었다는 걸 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씀 듣고 방문자수를 확인해보니까 미국시간으로 금요일부터 이상이 있었더라구요.
    어제가 최악이었던 것 같았고, 오늘은 정상화가 된 듯 합니다.
    뭐 그래봤자 워낙 한가한 데라서 별 차이도 없더라구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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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미 결말을 알아버려서...ㅜㅜ 영화는 재미없겠네요.ㅋ
    근데, 솔직히 본드 시리즈에 길들여져서 이제 이런 영화들 어지간히 잘많들지 않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새삼 느끼는게 본드 시리즈가 정말 어떤 장르를 만들고, 본드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는 것 입니다.
    오랜만에 본드는 다봤고, 좀 약하지만 잭 라이언 시리즈 영화나 리뷰해봐야겠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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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얘기가 이러이러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딱 티가 나거든요...ㅡㅡ;

    그리고, 맞습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쟝르로 봐야하는 것 같습니다.
    파라마운트가 톰 클랜시 시리즈를 새로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 이후엔 어찌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라마운트가 '미션 임파시블'을 뜯어고치는 걸 보니,
    잭 라이언 시리즈도 알려졌던 대로 많이 바뀔 것 같긴 한데...
    클랜시의 원작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거라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본드 탬플릿 + 알파 (예: 제이슨 본 시리즈) 류의 영화를 노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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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본드걸 출신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 라니... 완전 소피마르소의 굴욕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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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뭐가 완전 굴욕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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