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7일 월요일

그린 베이 패커스 수퍼보울 우승!

2005년 NFL 드래프트...

탑10에 들 것으로 기대되었던 유망주 쿼터백이 1 라운드가 거진 끝나가는 데도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UC 버클리 출신 쿼터백 애런 로저스(Aaron Rodgers)가 바로 그였다. 방송 카메라는 실망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앉아있는 로저스를 수시로 잡았다.

1라운드 24번 째 차례에 드디어 그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테이블만 긁고 있던 로저스를 지명한 건 다름 아닌 그린 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였다.

그린 베이 패커스?

당시 패커스엔 브렛 파브(Brett Favre)라는 수퍼스타 쿼터백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파브가 그 당시 이미 30대 중반이었으므로 패커스는 그의 뒤를 이을 쿼터백을 드래프트한 것이었다.

파브가 버티고 있었던 덕분에 로저스는 그가 2007년 시즌을 끝으로 패커스를 떠날 때 까지 후보 신세였다. 파브가 은퇴를 발표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뉴욕 제츠(New York Jets) 유니폼을 입는 쇼를 했던 2008년 시즌 애런 로저스는 드디어 그린 베이 패커스의 주전 쿼터백이 될 수 있었다.

많은 풋볼 팬들은 로저스가 브렛 파브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린 베이 패커스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잇 말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애런 로저스에게도 브렛 파브의 뒤를 이어 패커스의 주전 쿼터백이 되었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파브가 패커스를 떠나느 과정도 깔끔하지 않았으며, 2009년 시즌엔 파브가 패커스의 디비젼 라이벌 미네소타 바이킹스(Minnesota Vikings)의 유니폼을 입고 패커스를 상대로 2전 전승을 거두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오프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애런 로저스의 그린 베이 패커스는 2008년 시즌 와일드카드 라운드에서 아리조나 카디날스(Arizona Cardinals)와 오버타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다.

그러나 2010년 시즌엔 달랐다. 브렛 파브로부터 그린 베이 패커스 주전 쿼터백을 물려받은 지 3년만에 수퍼보울 챔피언에 올랐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 불운도 2009년 얘기일 뿐이었다. 2010년 시즌엔 6 번째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와일드카드 라운드서부터 모든 경기를 원정 승리로 장식하며 수퍼보울에까지 올라와 챔피언이 되었으니까.

애런 로저스는 수퍼보울 챔피언 쿼터백이 되면서 브렛 파브의 그늘에서 확실하게 벗어났다. 브렛 파브가 세운 여러 패싱 기록들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적어도 수퍼보울 우승에서 만큼은 파브에 뒤쳐지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브렛 파브는 지난 1996년 시즌 그린 베이 패커스로 수퍼보울 우승을 한 바 있다.

재미있는 건, 브렛 파브가 달성하지 못했던 것을 로저스가 이룬 게 하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수퍼보울 MVP다. 패커스가 1996년 시즌 수퍼보울에서 우승했을 때 MVP는 쿼터백 브렛 파브가 아닌 킥/펀트 리터너 데스몬드 하워드(Desmond Howard)가 차지했다. 그러나 2010년엔 달랐다. 이번 수퍼보울 MVP는 그린 베이 패커스 쿼터백 애런 로저스 였다.





그렇다면 경기 내용은 어땠을까?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와 그린 베이 패커스 모두 수비가 강한 팀이었으므로 경기 초반엔 예상했던대로 펀트 대결이었다. 하지만 그린 베이 패커스 오펜스가 스틸러스 디펜스를 먼저 무너뜨리고 터치다운을 했다. 애런 로저스가 패싱 터치다운을 성공시킨 것이다.

문제는 스틸러스 오펜스 였다. 패커스의 애런 로저스는 패싱 터치다운을 했는데 스틸러스 쿼터백 벤 로슬리스버거(Ben Roethlisberger)는 앞으로 터치다운을 하지 않고 뒤로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다. 그린 베이 패커스 세이프티, 닉 콜린스(Nick Collins)가 로슬리스버거의 패스를 인터셉트해 바로 리턴 터치다운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린 베이 패커스는 1쿼터에 14대0으로 앞서나갔다.

아래 이미지는 닉 콜린스의 인터셉션 리턴 터치다운 순간.



벤 로슬리스버거와 스틸러스 오펜스는 전반에 한 게 사실상 거의 없었다. 로슬리스버거는 전반에만 인터셉트를 2개씩이나 당했고, 2개 모두 패커스의 터치다운으로 연결되었다.

그런데 패커스에 불운이 닥쳤다. 넘버1 와이드리씨버 도널드 드라이버(Donald Driver), 주전 코너백 찰스 우드슨(Charles Woodson) 등 빠져선 안 될 중요한 선수들이 2쿼터 후반에 부상으로 드러누운 것이다. 패커스는 2010년 시즌 내내 주요 선수들의 부상에 시달렸는데 가장 중요한 경기이자 제일 마지막 경기인 수퍼보울에서도 주요 선수들의 부상에 또 얻어맞은 것이다.

아래 이미지는 콜라본을 다친 찰스 우드슨이 슬링을 하고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



그러나 패커스 주요 선수들의 부상은 스틸러스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드라이버와 우드슨의 부상으로 패커스가 공수 모든 면에서 사기가 꺾인 틈을 타고 스틸러스는 21대10으로 점수차를 좁히며 전반을 마쳤다.

스틸러스의 상승세는 후반으로 이어졌다. 전반엔 그린 베이 패커스의 일방적인 우세였는데 후반엔 180도 달라졌다. 전반엔 발티모어 레이븐스(Baltimore Ravens)가 일방적인 경기를 하다가 후반엔 스틸러스가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며 승리했던 디비져널 플레이오프 매치가 떠오를 정도였다. 스틸러스가 리드를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착실하게 점수차를 좁혀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몇 주 전 벌어졌던 레이븐스와의 디비져널 매치처럼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아니었다.

4쿼터가 시작하자마자 스틸러스 러닝백 라샤드 멘덴할(Rashard Mendenhall)이 펌블을 한 것이다.

그렇다. 스틸러스 오펜스가 또 턴오버를 당한 것이다.

아래 이미지는 스틸러스 러닝백 라샤드 멘덴할이 패커스 라인배커 클레이 매튜스(Clay Matthews)의 태클을 받으며 공을 놓치는 순간.



하지만 스틸러스도 끈질겼다. 스틸러스 오펜스는 4점차로 따라붙었다가 다시 11점차로 벌어졌지만, 또다시 터치다운 + 2 포인트 컨버젼을 성공시키며 28대25, 3점차로 또 따라붙었다.

그러나 스틸러스의 추격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패커스는 경기 종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필드골을 하나 추가하며 31대25, 6점차로 도망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터치다운을 해야만 스틸러스가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만약 여기서 스틸러스 오펜스가 극적인 역전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더라면 마지막에 아주 재미있어질 뻔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번 경기는 스틸러스가 이기는 경기가 아닌 것 같았으므로 그러한 짜릿한 플레이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그랬다. 스틸러스 오펜스는 네 차례의 공격기회에 퍼스트 다운을 하는 데 실패하고 공격권을 패커스에 넘겨주고 말았다. 패커스가 수퍼보울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아래 이미지는 다리 부상으로 후반부터 사이드라인을 지켜야 했던 베테랑 와이드 리씨버, 도널드 드라이버가 경기 종료 5초를 남겨 두고 승리가 확정되자 감격어린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



파이널 스코어는 패커스 31, 스틸러스 25.

수퍼보울 트로피는 70년대를 풍미했던 전 달라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 수퍼보울 MVP 쿼터백 로저 스터바크(Roger Staubach)가 들고 들어왔다. 수퍼보울 경기가 벌어진 곳이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홈구장이기 때문이었는지 전 카우보이스 쿼터백이 수퍼보울 트로피를 들고 들어왔다.

카우보이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경기 중계방송을 맡았던 트로이 에익맨(Troy Aikman)도 전 달라스 카우보이스 수퍼보울 MVP 쿼터백 출신이다.

아래 이미지는 로저 스터바크가 시상식을 위해 수퍼보울 트로피를 들고 들어오자 패커스 선수들이 주위에 모여 트로피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는 모습.




이번 수퍼보울 우승으로 가장 기뻐할 만한 선수들이 있다면 아마도 찰스 우드슨과 도널드 드라이버가 될 것이다. 두 선수 모두 이젠 노장들이라서 언제 또다시 수퍼보울 우승에 도전할 기회가 올 지 모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큼 이 두 선수들이 수퍼보울 경기에서 가장 열심히 뛸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들이 팀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은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노장들인 만큼 수퍼보울 우승에 누구보다도 욕심이 생겼을 테니까.

특히 우드슨은 더욱 수퍼보울 우승에 대한 욕심이 컸을 것이다. 그가 오클랜드 레이더스(Oakland Raiders) 소속이었을 당시 한 번은 AFC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그의 칼리지 팀 메이트였던 톰 브래디(Tom Brady)의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에 덜미를 잡혀 수퍼보울 꿈이 무산됐고, 그 다음 번엔 수퍼보울까지 올라가는 것은 성공했으나 승리를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번엔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전반 종료를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콜라본을 다친 우드슨은 슬링을 하고 사이드라인에 서 있었고, 발목을 다친 드라이버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둘 다 경기를 절반만 플레이 한 뒤 바로 환자 모드로 전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풍경이 이렇다 보니, 드라이버와 우드슨이 수퍼보울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왠지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쪽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패커스는 수퍼보울 우승에 가장 굶주려있었던 두 선수가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녹여버리고 수퍼보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와 함께 우드슨과 드라이버도 수퍼보울 한을 풀게 됐다. 두 선수 모두 수퍼보울 우승반지를 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선수들인 만큼 수퍼보울 우승을 축하해주고 싶다.

아래 이미지는 시상식이 끝난 뒤 찰스 우드슨이 패커스 팬들을 향해 수퍼보울 트로피를 들어보이는 모습.


이렇게 해서 그린 베이 패커스는 팀 통산 네 번째 수퍼보울 우승을 달성했다. 수퍼보울 MVP 쿼터백 애런 로저스는 브렛 파브를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었고, 찰스 우드슨과 도널드 드라이버는 은퇴하기 전까지 꼭 이루고 싶었던 수퍼보울 우승을 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한 번 그린 베이 패커스의 수퍼보울 우승을 축하한다.

지금 위스콘신 주 그린 베이는 늦은 새벽이지만, 아마도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댓글 6개 :

  1. 저도 경기 잘 봤습니다.
    제 친구가 그린 베이에 사는데요.
    지금 그 촌동네 난리 났답니다.^^
    더군다나 유일한 전국구 프로팀이 팩커스 한 팀이고, 거의 시민구단의 성격이라 정말 정말 온 타운이 난리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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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패커스가 워낙 역사가 깊은 팀인 데다 팬들이 NFL 최고 수준이니 아마 그린 베이 난리났을겁니다...^^
    제 생각엔 그린 베이가 절대 질 수 없었던 경기였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이겨야 할 팀이 이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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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 어제 기사에서 봤어요.
    그린 베이가 우승했다는 ㅎㅎㅎ
    역시 우승할만한 팀인가 보네요. 으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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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내년 수퍼보울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다네요
    콜츠가 홈에서 우승하면 좋겠네요 ^^ 보러가면 더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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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0년 스틸러스는 여전히 콘텐더였지만 수퍼보울까지 오를 만한 팀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런데도 수퍼보울까지 올라왔지만 우승하긴 힘들다고 봤죠.
    반면 패커스는 정규시즌에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였어도 포스트 시즌엔 몬스터 수준이었죠.
    뿐만 아니라 선수 평균 연령이 상당히 낮아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열려있는 팀입니다.
    별 이변이 없는 한 그린 베이는 다음 시즌에도 수퍼보울 콘텐더로 꼽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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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년 수퍼보울이 인디아나폴리스에서 열리죠...
    콜츠가 홈에서 우승을 노려볼 만 할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전력이 되겠는 지 궁금합니다.
    콜츠는 피크를 찍고 내려가는 팀으로 보이거든요.
    지난 2000년대 강팀들의 쇠락이 눈에 띄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패트리어츠도 왠지 이젠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본은 있으니 어느 정도는 하겠지만 끝까지 오르기는 힘들 것 같은 팀들 중 하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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