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뮤지션이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 무대에 오른 것도 2003년 시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 때엔 퍼프 대디(Puff Daddy), 넬리(Nelly) 등의 래퍼들이 공연을 했었는데, 랩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기를 손으로 쥐는 시늉을 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 상대방의 것을 서로 만진 것도 아니고 자기 것을 만진 게 전부인 걸 문제삼았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했지만, 성인 스트립 클럽에서 스트립 댄서가 춤을 추면서 가슴 등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라는 얘기를 이전에 들은 바 있어서 인지 공중파 방송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면 충분히 문제가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 두 사건이 같은 해프타임 쇼에서 벌어졌다는 점이었다. 래퍼들이 자신들의 성기를 주무르고 나니까 바로 이어서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같이 노래를 부르던 자넷 잭슨의 오른쪽 가슴을 훌러덩 꺼내놓았던 것이다. 이 바람에 댄스, 힙합, 여가수는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에서 퇴출당했다. 2004년부터 2009년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 공연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같은 원로 남성 로커들이 연속으로 맡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만지고, 튀어나오고 하는 쪽과는 거리가 있는 뮤지션들만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금년엔 바뀌었다. 이젠 조금 풀어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엔 여자 멤버가 포함된 힙합 댄스그룹에 해프타임 쇼 공연을 맡겼다.
이번엔 별 일 없었냐고?
아쉽게도(?) 없었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여성 멤버, 퍼기는 미식축구 선수들이 보호장구로 착용하는 숄더 패드(Shoulder Pad)에서 착안한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별다른 볼거리(?)는 없었다.
퍼기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노래 뿐만 아니라 8~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락그룹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을 불렀다. 연주는 게스트로 등장한 건스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가 맡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슬래시를 본 것 까지는 좋았는데, 퍼기가 도대체 왜 이 노래를 불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건스 앤 로지스 리드 싱어, 액슬 로스(Axl Rose)가 했던 것처럼 계속 "야이야~"거리긴 했지만 노래는 "아니야" 였다.
사실 퍼기가 멋진 클래식 락음악을 망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지도 모른다. 얼마 전엔 폴 매카트니가 불렀던 1973년작 제임스 본드 영화 주제곡 'Live and Let Die'를 화끈하게 망쳐놓은 적이 있어서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들어봅시다. 일단 이걸 듣고 나면 수퍼보울 버전 'Sweet Child O Mine'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싸악~ 가실 걸?
여자가 부른 'Sweet Child O Mine'은 역시 셰릴 크로우(Sheryl Crow) 커버가 최고다. 애덤 샌들러(Adam Sandler) 주연의 90년대말 코메디 영화 '빅 대디(Big Daddy)'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곡이었는데, 그 때 즐겨 들었던 곡 중 하나다.
말이 나온 김에 이것도 듣고 넘어가자.
그래도 한가지 분명했던 것은, 이번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가 완전한 춤판이었다는 것이다. 슬래시 뿐만 아니라 미국의 R&B 가수 어셔(Usher)까지 게스트로 등장하는 등 수퍼보울 해드타임 쇼 무대는 논스탑 댄스파티 분위기였다. 이번 해프타임 쇼는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와 같은 원로 로커들만 연달아 공연했던 이전의 것과 달리 많이 젊어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위기로 만들고자 한 의도가 분명히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달라졌다는 건 알겠는데 나아진 건 없어 보였다. 댄스, 힙합, 여가수들이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제외하곤 더 나아졌다, 재미있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라이브 공연은 라이브로 봤을 때 흥을 제대로 돋굴 줄 아는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라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블랙 아이드 피스는 아니었다. 이들의 음악은 더이상 힙합이 아닌 일렉트로 댄스 팝인데 굳이 무대에서 힘들게 라이브로 부를 이유가 있었는지 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해프타임 쇼 공연인 만큼 라이브로 해야 하는 게 옳은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쟝르/스타일의 음악은 그룹 멤버들이 웃기지도 않는 의상을 입고 무더기로 무대에 올라 어색한 율동을 하면서 힘겹게 부르는 것 보다 DJ를 불러 음악을 틀어놓는 쪽이 보다 듣기에 편하다. 클럽뮤직은 DJ가 돌려야 제 맛이 나지 가수가 마이크 잡고 무대에 올라 궁뎅이 흔들면서 부르면 좀 곤란해진다는 얘기다.
만약 이들의 음악이 과거처럼 힙합다운 힙합이었다면 라이브로 공연을 해도 맵시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랩과 일렉트로 하우스를 접목시킨 이런 어중간한 중학생용 댄스곡들을 라이브로 부르는 모습은 왠지 조금 어색해 보였다. Will.I.Am을 비롯한 블랙 아이드 피스 멤버들이 상당한 재능을 가진 뮤지션이라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곡들이 그들과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해프타임 쇼를 춤판으로 만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것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DJ를 초대하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음악 쟝르와 특색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라이브 무대만을 고집하는 건 좀 시대에 뒤처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라이브 공연을 꼭 해야겠다면 라이브에 잘 어울리는 쟝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부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젊은층에 인기가 있는 락/얼터네이티브 밴드를 부르던지 라이브 실력을 인정받은 가창력 있는 가수를 부르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댄스와 힙합 쟝르를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건 아니다. 분위기를 살짝 바꿀 겸, 흥을 돋굴 겸 해서 도중에 게스트로 잠깐 등장하는 건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해프타임 쇼 메인 퍼포머 역할을 맡기는 건 조금 곤란해 보인다.
그래도 원로 락밴드에서 모던 팝그룹으로 세대교체를 했다는 점은 인정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문제가 드러난 만큼 내년 수퍼보울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보완한 보다 완벽해진 해프타임 쇼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태자면, 미국 국가를 부를 가수를 선정하는 것도 보다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다. 이번 수퍼보울에선 미국 여자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귈레라(Christina Aguilera)가 미국 국가를 불렀는데,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가사를 틀리게 부른 것이다! 아귈레라는 이를 만회하려고 했는지 온갖 기교를 다 부리며 국가를 불렀는데, 이것 역시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물론 긴장 탓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런 식으로 할 바엔 아예 국가를 부르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국가 가사를 틀린 건 심했네요.
답글삭제일반 노래도 아니고 말이죠.
아길레라를 몰아내야 될 것 같은 ㅋㅋㅋ
글쎄말이에요...ㅋㅋㅋ
답글삭제그 친구 아무래도 욕 좀 먹을 것 같습니다.
오우~ 빅대디에서 봤던 스윗 차일드 오 마인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군요~^^
답글삭제예전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 때 우리 폴 옹께서 "Live and Let Die"를 멋드러지게 불러주셨을때 너무너무 좋았습니다.ㅋㅋ
폴 매카트니의 수퍼보울 해프타임 쇼는 정말 멋있었습니다.
답글삭제LIVE AND LET DIE로 피를 끓게 한 다음 HEY JUDE로 이어졌었죠.
그런데 퍼기가 부른 LIVE AND LET DIE는... 거진 고문 수준입니다...ㅡㅡ;
아.... 블랙아이드 피스가 공연했었군요..^^
답글삭제저도 실시간으로 봤으면 좋았을텐데.. 크흑..ㅠㅠ;
이제 계속해서 좋아지지 않을까요?^^
다음 번엔 좀 더 흥미진진한 해프타임 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답글삭제이번 블랙 아이드 피스 공연은 이전과 다르다는 걸 빼곤 좀 별로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