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5일 수요일

마틴 캠벨 "007 콴텀 오브 솔래스는 형편없는 영화"

영화감독 마틴 캠벨(Martin Campbell)이라고 하면 본드팬들은 '골든아이(GoldenEye)'와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일부 본드팬들은 캠벨이 "우리 세대의 테렌스 영(Terence Young)"이라면서, 그가 여러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연출을 맡길 기대하고 있다.

캠벨이 본드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연출한 두 편의 영화 모두 지금까지 나온 22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중에서 몇 안 되는 수작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든아이(1995)'는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제임스 본드 영화 중 유일하게 잘 된 영화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두 번째 007 영화 '카지노 로얄(2006)'은 전체 007 시리즈 중에서 한 손에 드는 수작으로 꼽힌다.

마틴 캠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 주말 그의 영화가 개봉한다.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 주연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 '그린 랜턴(Green Lantern)'이다.

개봉일이 다가와서 인지, 영국의 영화 매거진 토탈 필름(Total Film) 7월호 커버도 '그린 랜턴'이 장식했다.



그런데 매거진 겉표지에 어디서 많이 보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위의 이미지를 잘 보면 라이언 레이놀즈의 얼굴 오른쪽에 흰 글씨로 'BOND'라고 써있는 게 보일 것이다. 서점에서 매거진 섹션을 지나가는데 저 글자가 왜 그리도 크게 보이던지...ㅡㅡ;

(이래서 나는 경제신문을 못 본다. 'BOND'만 나오면 벌렁거려서...ㅋ)

아무튼, 토탈 필름 7월호에 실린 제임스 본드 기사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골든아이'였다. TF CLASSIC 코너에서 1995년작 '골든아이'를 소개한 것이다. 커버는 '그린 랜턴', TF CLASSIC엔 '골든아이'가 실렸으니 토탈 필름 7월호는 '마틴 캠벨 스페셜 이슈'라고 해도 될 듯 하다.



하지만 '골든아이' 기사는 대부분 다 아는 얘기였을 뿐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가서 아주 흥미진진해졌다. 마틴 캠벨 감독이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진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에 대한 생각을 밝힌 것이다.

뭐라고 했을까?

'The truth was it was a lousy film." - Martin Campbell

마틴 캠벨은 '콴텀 오브 솔래스'가 아주 형편없는 영화였다면서, '카지노 로얄'로 잘 차려놓은 걸 다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캠벨 감독은 '본드23' 연출을 맡은 샘 멘데즈(Sam Mendes)가 잘 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번엔 망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얼마 전 인터넷에 나돌았던 마틴 캠벨 감독과 토탈 필름의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 기사를 매거진을 사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점에서 그 매거진이 쉽게 눈에 띄길래 한 권 집어와서 읽어봤다.

자, 그렇다면 마틴 캠벨 감독의 '콴텀 오브 솔래스' 비판에 일리가 있는지 생각해볼 차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리 있다. '콴텀 오브 솔래스'가 '카지노 로얄'이 차려놓은 것을 날려버린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카지노 로얄'은 기초로 삼을 원작이 있었으며, 어떤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와 방향도 뚜렷했다. 그러나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이 모든 게 없었다. '카지노 로얄'을 울궈먹을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이 결과 '콴텀 오브 솔래스'는 제임스 본드가 주먹질을 많이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본드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곤 영락없는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 영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다니엘 크레이그/제임스 본드가 죽어라 치고박고 싸우는 격렬한 액션 씬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 '카지노 로얄'에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보여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맘에 든다", "잘 한다"고 해줬더니 후속작에선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이것 하나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웃기게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다. 과연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007 시리즈는 참고할 원작이 있거나, 제작진에 뚜렷한 아이디어가 있거나, 아니면 다른 영화배우를 주연으로 예상하고 만들거나 했을 경우에만 수작이 나온다. 원작이 있거나, 아이디어가 뚜렷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사고이거나 셋 중 하나일 때에만 멋진 영화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수준이 떨어지는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나온다. 제작진이 방향을 잃으면 항상 정해진 곳만 맴도는 버릇이 있어서다. '카지노 로얄'에선 모든 게 분명해 보이다가 '콴텀 오브 솔래스'에선 'HERE-WE-GO-AGAIN'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007 시리즈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과연 007 시리즈가 이번엔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글쎄올시다"다. 007 제작진도 '콴텀 오브 솔래스'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인정하고 '본드23'에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가 나돌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소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카지노 로얄'로 업됐다가 '콴텀 오브 솔래스'로 다운된 007 시리즈를 '본드23'로 다시 업시키기 위해 샘 멘데즈에게 연출을 맡겼다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멘데즈와 007 시리즈를 연결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물론 맨데즈가 유명한 영화 감독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멋진 제임스 본드 영화를 연출한다는 법은 없다. 네임밸류보다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가 앞서야 하는데 멘데즈가 얼마나 '007 전문가'인지 파악이 잘 안 된다.

무엇보다 불안한 건 스토리다. "007 시리즈는 원작을 기초로 하지 않으면 죽을 쑨다"고 하면 제작진은 "원작이 다 떨어졌는데 무엇으로 만드냐"고 궁시렁대는데, 원작이 다 떨어졌으면 그와 비슷한 오리지날 스토리를 제대로 만들면 해결될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똑바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원작 없이는 안 된다"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이다. 지난 번엔 "원작의 제임스 본드는 터프가이였다"는 점 하나만을 강조하면서 '격렬한 액션 씬의 반복 =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는 괴상한 논리를 들이대는 데 그쳤는데, 과연 이번엔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 되는 만큼 나름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이긴 한다. 이번에도 지난 40주년 기념작이었던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와 같은 몬스터같은 녀석을 또 내놓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기지만, 이번엔 좀 잘 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 부분 만큼은 마틴 캠벨과 같은 생각이다:

"I just hope to God they don't mess it up..."

댓글 6개 :

  1. CR로 리부팅 제대로 했으니 제목은 달리 하더라도 원작을 계속 이어가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감독이 훌륭해도 영화가 개판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던 어빈 커쉬너도 NSNA 만들고 완전 맛이가지 않았습니까?
    미세스 브로콜리와 미스터 윌슨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꼭 하나 제대로 나오면 몇편씩 죽을 쑤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본드 시리즈 감독은 테렌스 영이 훌륭했고, 가이 해밀턴도 나쁘지 않았고... 루이스 길버트는 시리즈를 산으로 가게한 원흉이시라서 정말 싫고... 그 후 난세의 영웅이 계셨으니 존 글렌과 마틴 캠벨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본드를 가장 잘 이해하고 만들수 있는 감독은 현재로서는 마틴 캠벨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드 무비 이외의 다른 영화를 만들면 죽만 쑤는 마틴 형 제발 돌아와 주세요~^^

    답글삭제
  2. 제목을 바꾸고 원작들을 헤쳐모여 식으로 흩어놨다 다시 조립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건 007 제작진에겐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죠.
    이전에도 계속 이렇게 해왔으니까요.
    80년대 본드 영화에서 해답을 찾으면 될 듯 한데...
    원작이 다 떨어진 이후 나온 90년대 브로스난 영화들이 어땠는지 생각하면 기대가 안 됩니다.

    저도 루이스 길버트의 본드 영화는 전부 안 좋아하는데요,
    그가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문레이커로 다 죽어가던 시리즈를 살려놓은 건 인정해야할 듯 합니다.
    덕분에 황금총의 슬럼프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으니까요.
    미스터 본드가 황금총 맞고 죽을 뻔 했죠...ㅋ
    하지만 두 번 산다는 왜 그 모양이 되었는지 잘 이해가...^^

    제 생각에도 현재로썬 마틴 캠벨이 가장 이상적인 본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007 시리즈가 한번 반짝하고 바로 찌그러진다는 걸 아는 듯 합니다.
    그래서 연속으로 맡지 않으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본드가 바뀌면 뭐 알아서 돌아오겠죠...^^

    답글삭제
  3. 전 카지노로얄이 영화로 나왔기에 그대로 소설을 현재 느낌으로 재구성하면서 흘러가나 했는데..

    갑자기 퀀텀.....

    답글삭제
  4. 저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ㅎㅎㅎ
    제대로...
    감독과 본드가 잘 만나면 훌륭해지겠죠 ..

    답글삭제
  5. @Anonymous:
    이미 영화로 옮겨졌던 플레밍의 소설들을 다시 만들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프로듀서(윌슨)가 직접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카지노 로얄 다음부턴 그들이 알아서 해야했죠.
    내년 개봉하는 본드23도 마찬가지일텐데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답글삭제
  6. @KEN:
    지난 번엔 참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이 양반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번엔 지난 번처럼 이상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