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5일 월요일

'데트', 볼 만 했지만 훌륭한 스파이 영화로는 조금 부족

헐리우드 스파이 영화 중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에 대한 영화는 드물다. 최근엔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 '뮌헨(Munich)'이 있었고, 미국의 소설가 다니엘 실바(Daniel Silva)의 모사드 에이전트를 주인공으로 한 스파이 스릴러 시리즈가 곧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모사드를 다룬 영화는 여전히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모사드를 다룬 스파이 스릴러 영화가 하나 개봉했다. 헬렌 미렌(Helen Miren), 샘 워딩턴(Sam Worthington), 톰 윌킨슨(Tom Wilkinson), 제시카 채스테인(Jessica Chastain), 키어런 하인즈(Ciarán Hinds), 마튼 초카스(Marton Csokas) 주연의 '데트 (The Debt)'가 바로 그것이다. '데트'는 이스라엘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라고 한다.

그럼 줄거리부터 살짝 훑어보기로 하자.

지난 60년대 모사드는 동독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진 나치 전범 의사 보겔(예스퍼 크리스텐슨)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로 압송하는 작전에 레이첼(제시카 채스테인), 데이빗(샘 워딩턴), 스테판(마튼 초카스) 등 젊은 에이전트 세 명을 투입한다. 작전은 실패로 끝나지만, 이들 세 명은 보겔을 죽인 것으로 거짓말을 하기로 말을 맞춘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90년대에 와서 보겔이 아직 생존해 있다는 증거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중년이 된 레이첼(헬렌 미렌), 데이빗(키어런 하인즈), 스테판(톰 윌킨슨)이 곤란한 상황에 놓인다.



실패로 끝난 작전을 성공한 것으로 조작했다가 30년이 지나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었어도 흥미를 끌 만큼은 됐다. 메인 캐릭터들의 성격부터 시작해서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등장하면 삼각관계가 빠지지 않는다'는 지긋지긋한 룰까지 충실하게 따르는 등 진부한 드라마 쟝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화였지만, 간만에 나온 나름 진진하고 사실적인 스파이 스릴러였기 때문인지 심하게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지 어렵지 않게 넘겨짚기가 가능했으므로 스토리에 푹 빠져드는 건 불가능했지만, 60년대 동독을 무대로 벌어지는 젊은 모사드 에이전트들의 나치 전범 납치 작전은 그런대로 볼 만 했다.

그렇다. '데트'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60년대 배경이었다. 영화의 메인 줄거리는 냉전과 거리가 있었지만, 제작진은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의 동독을 배경으로 한 우울하고 칙칙한 무드의 냉전시대 스파이 영화 흉내내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영화 '데트'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는 스파이 영화다운 스파이 영화로 보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60년대 회상 씬으로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냉전시대 스파이 소설을 떠올리도록 하는 효과를 내는 것엔 그럭저럭 성공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60년대 회상 씬이 너무 길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60년대 동독에서 세 명의 젊은 모사드 에이전트들이 펼치는 작전은 나름 흥미진진했어도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3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30년 후에 나타난 나치 전범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는데, 영화가 과거 회상 파트 쪽으로 너무 기운 듯 보였다.

반면 헬렌 미렌 일행의 90년대 파트는 샘 워딩턴 일행의 60년대 파트에 비해 볼 게 많지 않았다. 전체 출연배우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헬렌 미렌이 버티고 있었으며, 전체적인 줄거리 흐름 상으로 보더라도 60년대 회상 파트보다 90년대/현재 파트가 더욱 중요하고 흥미진진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60년대 회상 씬은 누가 보더라도 냉전시대 스파이 영화 흉내내기로 분위기를 잡는 역할일 것이 분명했으므로 90년대 파트에 더 큰 기대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스토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지는 처음부터 쉽게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새삼 다시 문제삼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더 스릴넘치고 익사이팅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데트'는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스라엘 영화의 리메이크가 의외로 간만에 보기 드문 훌륭한 스파이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눈여겨봤던 영화였는데, 썩 맘에 들진 않았어도 아주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대로 볼 만 했지만 훌륭하진 않았다. 조금만 다듬고 고쳤더라면 제법 괜찮은 스파이 영화가 될 수도 있었지만, '데트'는 훌륭한 스파이 영화로는 조금 부족한 영화였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B- 정도?

댓글 10개 :

  1. 그래도 가볍게 즐기기엔 나쁘지 않은 모양이군요.
    국내에 개봉하면 한 번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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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나치 전범, 죄책감 등으로 좀 무겁지만,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가볍게 즐기기엔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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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60년대야 말로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대라서 어느 정도만 만들어도 영화가 사는 것 같습니다.
    헬렌 미렌 할머니가 나오신다니 한번 봐야겠군요~^^

    그나저나 이제 본드카, 주제곡 소문이 슬슬 나올 시기기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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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거기에다 다른 데도 아니고 동독이니 그 때 분위기 딱이죠...^^

    영국 가수 아델이 주제곡 경쟁에 뛰어든 모양이더군요.
    아델은 저도 후보로 꼽았던 가수 중 하나인데,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델이 부른다면 대충 상상이 가는 풍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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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최근에 인터넷 검색하면서 포스터를 본것 같은...
    어떤 영화일지 궁금해 지네요..
    검색해 보니 언피니시드란 이름으로 개봉 예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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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언피니시드... 말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인데 액션이 아닌 드라마 쪽에 비중을 둔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007 시리즈는 실제와 크게 다르다"면서 리얼한 첩보소설/영화들이 나왔었는데요,
    이런 작품들은 제임스 본드처럼 수퍼 스파이의 액션 어드벤쳐가 아니라,
    평범한 정보부 직원들의 따분하고 외로운 삶과 스파이 행위에 초점을 맞췄죠.
    존 르 카레의 소설들이 대표적입니다.
    언피니시드도 이런 류의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런 쪽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한 티가 나더라구요.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볼 만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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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A+ 영화들은 뭐가 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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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스라엘 영화 리메이크라니, 생소하군요.
    배우들도 거의 모르겠고, ㅎㅎㅎ
    끝나지 않은 거짓작전완료란 건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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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냉전시대 첩보영화와 뮌헨을 섞은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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