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3일 화요일

미국 대형 서점 보더스 드디어 문 닫다...

미국의 대형 서점 보더스(BORDERS)가 드디어 문을 닫았다. 미국 전역에 있는 보더스 서점 체인은 9월 말까지 모두 문을 닫는다는 계획 하에 지난 7월 말부터 파산으로 인한 점포정리 세일을 해 왔다. 이렇게 해서 40년 역사의 미국에서 두 번째 규모의 대형 서점이 셔터를 내렸다.

보더스는 매주마다 한 번씩은 들릴 정도로 내가 자주 갔던 곳이다. 특별히 살 책이 없어도 그냥 지나치면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드는 데가 서점이라서, 보더스 앞을 지날 때마다 안에 들어가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 가량 이것 저것들을 둘러보고 나오곤 했다.

내가 지금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오기 이전에 다른 주에 살던 때에도 즐겨 찾았던 곳이 바로 보더스 서점이었다. 그 중 하나가 하와이 와이켈레(Waikele)에 있던 보더스 서점이었다. 넓은 규모에 커피샵, 뮤직 스토어까지 딸려 있었던 곳이었는데, 솔직히 CD는 거기서 몇 개 산 게 없는 듯 하지만 책은 소설, 매거진부터 시작해서 많이 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보더스가 문을 닫는다니 섭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옮겨타면서 종이책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지만, 대형 서점 중 하나가 문을 닫는다니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보더스가 점포정리 세일을 시작한 7월 말부터 문을 닫기까지 거의 매주마다 보더스를 찾아가 점점 초라해져 가는 보더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2011년 7월22일

점포정리 세일이 시작했던 7월22일엔 한마디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도 붐볐다. 세일 첫 주말엔 20~40% 세일이 전부였고, 그나마 40% 세일도 매거진 등에만 국한되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미스테리 책은 20% 세일이고(왼쪽), 매거진은 40% 세일(오른쪽)인 게 보인다.



◆2011년 7월30일

세일 둘 째주에도 재고가 풍부했던 덕분에 문을 닫는 가게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 차이가 있었다면, 자물쇠로 잠가뒀던 DVD/블루레이 진열장이 텅 비어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래 사진 참고). 진열장은 활짝 열려있었고 안에 들어있던 DVD와 블루레이는 대부분 팔렸거나 사람들이 쉽게 고를 수 있도록 밖에 있는 진열대로 옮겨져 있었다.



DVD/블루레이 뿐만 아니라 CD 진열대도 텅 비어있었다.



◆2011년 8월6일

8월 초로 접어들자 텅 빈 공간들이 서서히 눈에 띄었다.

어린이용 책들이 가득 꼽혀있었던 어린이 섹션은 가구 판매 코너로 둔갑했다 (아래 이미지▼). 보더스는 재고정리 뿐만 아니라 책장, 진열대 등 가구들 역시 처분하고 있었다.



또한 세일 폭도 커졌다. 7월 말엔 미스테리 책이 20% 할인이었는데 8월 초엔 25%로 바뀌었다(아래 사진 왼쪽). 오른쪽 사진은 자질구레한 포스터들. 사진에 보이는 'Vampire Diaries' 포스터는 며칠 전까지 팔리지 않고 남아있었다.



◆2011년 8월20일


8월 말이 되자 블루레이는 50% 할인이었다. 쓸 만한 영화들은 대부분 다 팔린 이후였지만 이 때만 해도 DVD/블루레이 재고가 제법 남아있었다.



아마도 이 날 바로 이 장소에서 소녀시대의 노래를 녹화했을 것이다. 점포정리 중인 가게에서 한국 노래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보더스에서 한국노래를 들은 것은 아마도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2011년 8월26일

1주일 뒤에 다시 찾아갔더니 블루레이가 60% 세일 중이었다 (아래 사진 왼쪽). 유명한 타이틀들이 여전히 몇 개 남아있었지만, 이전 주에 비해 수가 부쩍 줄어있었다.

블루레이 이외의 다른 상품들은 50%~70% 세일로 할인 폭이 더 커졌다 (아래 사진 오른쪽).



또 한가지 차이점은, 책이 아닌 여러 가지 잡동사니 상품들이 잔뜩 나와있었다는 점이다. 타월, 인형, 장난감 등부터 시작해서 액자 등등 여러 다양한 잡동사니들이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망가(Manga)도 위치를 바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맨 앞 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원래는 CD가 진열돼 있던 곳이었던 것 같은데 50% 할인판매 중인 만화책에 자리를 내줬다 (아래 이미지▼).



◆2011년 9월9일

9월이 되자 세일 폭이 더 높아졌다. 미스테리 책은 70% 세일 중이었고 (아래 사진 왼쪽), 나머지 상품들은 70%~90% 세일이었다 (아래 사진 오른쪽).

그렇다. 그디어 90% 세일이 떴다.



90% 할인을 시작했다는 건 세일이 끝날 때가 거진 되었다는 의미였다. 아니나 다를까, 빈 책장들이 줄줄이 눈에 띄었다.




컴퓨터 관련 책들을 보러 갈 때마다 내가 항상 서 있었던 장소도 텅 비어 있었다. 'COMPUTER & TECHNOLOGY'라는 팻말만 달려 있었을 뿐 책장은 텅 비어있었다 (아래 이미지▼).



어린이용 서적을 팔던 코너에선 아예 'FIXTURE SHOP'이라는 싸인과 사진들을 붙여놓고 여러 종류의 가구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는 사진은 팔린 가구들이다 (아래 이미지▼).



"Where are the FUN STUFFS???" (아래 이미지▼)



문 닫는 서점의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진열된 글렌 벡(Glenn Beck)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BROKE..." (아래 이미지▼)



책들이 이미 많이 팔린 이후라서 점포 내부는 썰렁한 창고 분위기가 났고, 서점의 한쪽 구석에만 아직 남아있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날 유독 눈에 띈 책은 미국 숏트랙 국가대표 선수 아폴로 오노(Apollo Ohno)가 쓴 책 'Zero Regrets: Be Greater Than Yesterday'였다 (아래 이미지▼). 70% 할인 판매 중이었는데, 일반 버전과 오노의 친필싸인이 있는 버전이 있었다.

나는 이녀석이 책을 낸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베티 화이트(Betty White)의 달력 (아래 이미지▼).

누드모델 달력도 벽에 걸어놓을까 말까인데 할머니 사진 달력을???



◆2011년 9월12일

자, 드디어 문 닫는 날이 왔다.



마지막 날은 전 품목 90% 세일이었다. 전 품목이라고 해봤자 책 몇 권을 빼면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모조리 90% 세일이었다.

전부 다 90% 할인이라면서 할인가격을 계산하기 쉽게 가격표까지 붙여놨더라 (아래 이미지▼).



미스테리 책들도 이젠 90% 할인이었고, 미스테리 책이 진열된 책장도 함께 판매 중이었다 (아래 이미지▼). 책과 책장을 동시에 판매하는 서점은 이제껏 처음 본 것 같다.



DVD와 블루레이로 가득했던 코너는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아래 이미지▼). 8월 말 바로 이 장소에서 소녀시대 노래를 녹화할 때만 해도 영화들이 제법 보였는데, 9월 들어 그쪽 코너를 완전히 폐쇄시켰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엔 무슨 노래가 나왔을까?

텅 빈 DVD 코너를 지나가는 순간 색다른 음악이 뒤에 들어왔다. 이번엔 일본음악이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Asian Kung-Fu Generation이라는 일본 락그룹이 부른 '月光'이라는 곡이었다.


그럼 책들은 얼마나 남아있었을까?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미 팔릴 만한 책들은 다 팔린 이후였기 때문인지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 90% 세일인 만큼 약간이나마 흥미가 끌리는 책이라면 구입하려 했는데, 별 게 없었다.



이렇게 보더스는 텅 비어갔다.



그리고 으리으리했던 보더스 서점도 'HISTORY'가 되었다.

앞으로 서점에 갈 일이 생기면 보더스가 아닌 반스 앤 노블(Barns & Nobel)로 가야 한다. 거리 상으로는 비슷하므로 크게 손해볼 것은 없어 보이지만, 항상 가던 데로 계속 갈 수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어지간한 책들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전자책으로 보면 되는데 굳이 서점에 갈 일이 있냐고?

그래도 있다. 소설을 비롯한 일반 서적의 경우엔 굳이 서점에 갈 이유가 적을지 모르지만 매거진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동네에 있는 수퍼마켓에도 매거진 섹션이 있긴 하지만 거기에 들어오는 매거진은 한마디로 평범한 것들이 전부다.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그러므로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매거진, 해외 매거진 등을 구경하고 싶다면 싫든 좋든 서점에 가는 수밖에 없다. 매거진도 요샌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볼 만한 매거진들이 더러 남아있다. 그러므로 단지 책을 직접 고르고 뒤지는 재미 하나 때문에 서점에 가는 것이 아니다.

보더스가 나가는 자리에 새로운 서점이 들어오면 참 좋겠지만 현재로썬 야무진 희망일 뿐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좀 어색/불편하더라도 반스 앤 노블스로 가는 수밖에...ㅡㅡ;

보더스가 문을 닫게 되어 참 섭섭하다.

댓글 6개 :

  1. 그래도 다른 곳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한국은 서점은 그냥 교보,영풍,반디 3군데의 대형서점
    체인점과 인터넷 서점 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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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얼마 전만 해도 서점이 무지하게 많았는데 요샌 구경하기 힘듭니다.
    서점도 음반가게처럼 대부분 문을 닫게 될 운명인 듯 합니다.
    종이가 좋아서 전자책을 외면했던 저도 이젠 대부분의 책을 전자책으로 읽는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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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 큰 서점이 책장만 휑하니 남게 되니,
    엄청 더 넓어 보이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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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와이에 있던 건 저것 보다 더 컸으면 컸지 작지 않을 겁니다.
    음반, 비디오, 종이책 등 갈수록 안 팔리게 돼 있는 것만 팔았으니 저렇게 된 듯 합니다.
    90년대만 해도 저 3개가 모두 잘 팔렸으므로 그 때만 해도 보더스가 망할 거라곤 생각 못했었죠.
    문닫기 직전에 갔더니 썰렁한 게 창고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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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흑인 동네 사시나 봐요.. 안씁;;; 그리고, 님 처럼 책 사지도않는데 괜히 한 두시간씩 죽떄리는 사람들 떄문에 문 닫는겁니다.. 아싸리 가지 않으면 보안관련해서 비용이라도 덜 들어 갔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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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서점이 죽때리는 사람들 때문에 문 닫는다는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대형서점엔 죽때리라고 무선 인터넷에 커피숍, 벤치까지 마련해놨는데 말이죠.
    그것 보다 서점에 아예 안 가게 되는 게 더 문제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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