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2일 목요일

'드라이브', 스타일로 문제점을 커버한 범죄 드라마

자동차 영화라고 하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더러 있다. 그 중엔 웃기고 유치한 자동차 액션영화들도 있고,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주연의 '블릿(Bullit)'과 같은 클래식 중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걸작들도 있다.

라이언 거슬링(Ryan Gosling) 주연의 '드라이브(Drive)'도 자동차 영화 중 하나다. 제목부터가 '드라이브'인 만큼 자동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줄거리부터 살짝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드라이버(라이언 거슬링)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파트 타임으로 헐리우드 스턴트맨과 범행 후 도주를 돕는 겟어웨이 드라이버 노릇을 하는 청년이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한 성격의 평범한 청년이지만 탁월한 운전실력을 가진 친구다. 드라이버(주인공은 항상 '드라이버' 아니면 '키드'로만 불릴 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같은 아파트의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여자 아이린(캐리 물리갠)과 그녀의 아들과 가까워지는데 수감돼있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오스카 아이잭)가 출소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지역 갱단이 스탠다드를 폭행하고 협박하는 광경을 목격한 드라이버는 강제로 전당포를 털 수밖에 없게 됐다는 자초지종을 스탠다드로부터 전해 듣고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아이린과 어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스탠다드를 도와줘야 한다고 판단한 드라이버는 겟어웨이 드라이버를 맡아 스탠다드의 도주를 도와주기로 한다. 그러나 전당포 털기가 크게 잘못 되면서 드라이버는 본의 아니게 전당포에서 훔친 돈가방을 든 채 갱들과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드라이브'는 이웃을 위해 위험한 게임에 뛰어든 이름 없는 청년의 이야기다. 스토리만 놓고 따지면 특별할 것이 없는 편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친숙한 얘기였으므로 스토리가 어디로 흘러갈 지, 어떤 결말이 나올 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어도 제목이 '드라이브'인 만큼 자동차 영화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숨 막히게 하는 카 체이스 씬도 기대했던 수준이 아니었고, 자동차 영화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스티브 맥퀸의 '블릿'처럼 자동차 엔진소리만 들어도 운전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만들지도 않았다. 메인 캐릭터와 줄거리가 자동차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을 뿐 기억에 남을 만한 자동차 씬은 없었다.

액션도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폭력 수위는 제법 높은 편이었으며 액션 씬에선 항상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으나 화려하거나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씬은 없었다. '드라이브'는 '노 컨트리 포 올드맨(No Country for Old Men)'과 매우 비슷한 분위기의 범죄 드라마였지 화려한 액션에 포커스를 맞춘 액션영화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영화가 싫지 않았다. 상당히 스타일리쉬했기 때문이다.

첫 째로 라이언 거슬링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우수, 반항기, 날카로움 등이 묻어나는 눈빛의 거슬링은 네오-느와르 '드라이브'의 메인 캐릭터 드라이버 역으로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울렸다. 거슬링이 분위기 있는 범죄 드라마에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다.

거슬링 뿐만 아니라 그가 맡은 드라이버도 상당히 쿨한 캐릭터였다. 물론 이웃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는 캐릭터는 웨스턴 영화에서 - 앨런 라드(Alan Ladd) 주연의 '셰인(Shane)' - 자주 봐왔으므로 크게 새로울 건 없었다. 하지만 전갈 그림이 새겨진 잠바를 입고, 입에는 이쑤시개 물고, 손에는 운전장갑을 낀 드라이버의 모습은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면서도 여전히 쿨하고 스타일리쉬해 보였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매력이 라이언 거슬링 하나가 전부인 것은 아니다.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매력이 있다 - 바로 80년대 영화의 향수다.

'드라이브'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객들은 마치 80년대에 제작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 이유는 일렉트로 배경음악과 핑크색 자막 때문이다. 영화의 첫 부분에 프랑스 하우스 뮤지션 Kavinsky의 'Nightfall'이라는 일렉트로 곡이 흐르면서 단조롭고 나름 촌쓰럽기도 한 핑크색 네온싸인 스타일의 자막이 나타났을 때 이 모든 것이 절대 우연일 리 없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특히 80년대 영화와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놓칠 수 없을 정도다. 80년대에 유행했던 신드팝(Synthpop)과 톰 크루즈(Tom Cruise)의 80년대 히트작 '리스키 비스니스(Risky Business)'와 '칵테일(Cocktail)'에서 보았던 핑크색 자막을 보는 순간 80년대의 기억이 바로 되살아날 테니 말이다.

그렇다. '드라이브'는 눈에 띄는 문제점들을 스타일로 커버한 범죄 드라마였다. 스토리를 비롯해 여러모로 신선도가 떨어지고 조금 부족한 데가 있는 영화였지만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출연진의 좋은 연기 덕분에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루한 줄 몰랐다. '드라이브' 출연진들이 여러 영화 시상식에서 연기상 후보에 오르더라도 놀랄 일이 아닐 듯 하다. 영화 시상식 시즌이 되면 이 영화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덴마크 영화감독 니콜라스 레픈(Nicolas Refn)의 이름도 자주 눈에 띄지 않을까 싶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A- 정도?

댓글 2개 :

  1. 우리나라는 상당히 늦게 11월에 개봉하는 군요.
    쿨, 시크 캐릭터 맘에 듭니다.
    챙겨보기 전에 일단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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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화가 스타일리쉬한 게 볼만 하더라구요.
    크으, 시크... 아주 시크한 표현을 쓰셨군요.
    사실 제가 잘 사용하지 않게 되는 외래어 중 하나가 시크인데요,
    시크라고 쓰니까 자꾸 종교가 먼저 떠올라서 말이죠...^^
    그 다음으로 안 쓰는 게 피처링...
    피처가 들어가니까 맥주집 아니면 야구가 먼저 생각나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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