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1일 토요일

007 시리즈는 무조건 전세계를 무대로 삼아야 하나

며칠 전부터 약간 엉뚱한 'SKYFALL' 관련 루머가 눈에 띄고 있다. 007 제작진이 비용절감을 위해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대부분 취소하고 주로 영국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007 프로듀서들이 지난 11월 초 열렸던 제작발표회에서 이번 'SKYFALL'에도 지난 번 수준의 제작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면서 비용 삭감은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영국 타블로이드들은 '경제불황으로 인한 제작비용 삭감' 루머를 계속 내놓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SKYFALL'의 주요 무대가 영국이라는 점이다. 현재 007 제작진은 런던의 여러 곳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영국 이외의 촬영지로는 터키와 중국 샹하이가 있다. 007 제작진은 오는 2~3월경에 터키로 이동해 촬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샹하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한 듯 하지만 실제로 샹하이에서 촬영이 이뤄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007 제작진이 영국에 중국 샹하이 세트를 만들어 촬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상에선 샹하이지만 실제 촬영지는 영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007 제작진이 샹하이 씬을 영국에서 모두 촬영한다면 해외 로케이션으로는 터키 한 곳이 유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007 제작진이 해외여행을 삼가하는 이유는 $$$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007 영화 시리즈가 전세계 관광명소들을 휘젓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다. 007 영화 시리즈는 핸섬맨, 섹시걸, 고급 자동차, 멋진 경치 등 글래머러스한 볼거리 위주의 영화 시리즈이므로 핸섬맨 제임스 본드가 섹시한 본드걸들과 함께 멋진 경치의 세계적 관광지를 찾는 씬이 자주 나왔다. 덕분에 제임스 본드는 여러 나라들을 바쁘게 옮겨다니는 여행습관이 생겼으며, 항공사가 007 시리즈 스폰서 중 하나가 되었다.

문제는 007 시리즈의 성공 이후에 나온 다른 여러 스파이 영화들까지 전세계를 무대로 삼는 것을 따라하면서  '스파이 영화 = 세계여행'이라는 우스꽝스러운 공식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스파이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여러 나라들을 휘젓고 다녀야만 한다는 법은 없으나, 요즘엔 스파이 영화라고 하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필수 요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헐리우드가 전세계를 무대로 한 큰 스케일의 스파이 어드벤쳐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에 나오는 스파이물을 보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다. 굳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도록 설정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데도 '맛'을 내기 위해 일부러 여러 나라들을 오가도록 만든 티가 심하게 나는 경우도 많다.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도 이렇게 유치하고 바보스러운 '스파이 영화 포뮬라'에서 자유롭지 않다. 바로 이러한 스파이 영화 포뮬라를 만든 장본인이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이지만, 007 시리즈 역시 무의미한 세계여행의 바보스러움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007 시리즈는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제임스 본드가 전세계의 멋진 관광명소들을 찾아갔던 덕분에 수려한 경관이 무의미한 세계여행의 썰렁함을 가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선 과거의 멋진 경치가 사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과거처럼 아름다운 경관이 시선을 끌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서 뚜렷한 이유가 없는 억지 설정에 의한 무의미한 여행이라는 점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고 있는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는 "요샌 교통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여행을 다닐 수 있으므로 경치가 좋은 곳을 굳이 찾아다닐 이유가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그렇다면 007 시리즈가 무엇을 하려고 계속해서 세계 여러 곳을 헤집고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간에, 007 시리즈는 원래 전세계를 누비고 다녀야 정상 아니냐고?

꼭 그런 건 아니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소설에선 제임스 본드가 영화 시리즈에서처럼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지 않았다. 플레밍은 매 소설마다 자메이카이면 자메이카, 미국이면 미국, 스위스이면 스위스, 일본이면 일본 등 주로 한 장소를 배경으로 삼았지 제임스 본드가 이곳 저곳을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도록 만들지 않았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예: '골드핑거'),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에 2개 국가 이상이 등장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므로 제임스 본드의 세계여행 습관은 7~80년대에 와서 007 영화 시리즈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다니엘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드는 것을 표방하면서도 쓸데 없는 세계여행을 일삼아왔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은 카지노 씬 만으로는 자칫 따분해 질 수 있었던 만큼 할 수 없이 여러 쓸데 없는 액션 씬과 세계여행을 집어넣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나 2008년작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의 쓸데없는 세계여행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이번 'SKYFALL'에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모양이다. 'SKYFALL' 스크린라이터 존 로갠(John Logan)은 액션 씬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만 나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치고 받으며 뛰어다니기만 하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변화를 줬다는 얘기다. 몸으로 때우는 액션도 중요하지만 그것 하나에만 너무 매달리면 영화가 우습게 된다는 본드팬들의 지적을 받아들인 듯 하다.

해외 로케이션을 한 두 곳 정도로 줄인 것 역시 괜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싸움질만 하는 우스꽝스러운 액션영화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본드의 해외여행 횟수도 액션 씬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하는 쪽으로 바꾼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쓸데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도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다는 얘기도 된다. 온동네를 누비고 다니면서 별 것 아닌 줄거리를 복잡하고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법석을 떨지 않아도 될 만큼 스토리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  제임스 본드가 세계여행을 덜 하는 것이 오히려 희소식일 수 있다. 적어도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세계여행만 하다 끝나는 산만한 영화가 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이번 'SKYFALL' 촬영이 주로 영국과 터키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은 제작비용 삭감으로 규모가 초라해진 것이 아니라 영화의 완성도를 올리겠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SKYFALL'의 줄거리는?

현재로써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러나 제목이 괜히 'SKYFALL'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하늘(SKY)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FALL) 지도 모른다.


루머에 의하면, 'SKYFALL'의 메인 플롯이 추락한 스파이 위성과 관련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루머가 사실이라면 침몰한 첩보선 수습에 관한 영화였던 1981년작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와 살짝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추락한 스파이 위성 수습' 파트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조금 더 두고보기로 하자.

댓글 4개 :

  1. 사실 여러 첩보물이 지나치게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감을 가지고 있어서 영국이 주된 지역이란 사실에
    오히려 반갑군요.

    우리나라 첩보물이랍시고 만들어지는 졸작 아이리스나 아테나도 보면
    아시아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면서 쌈질하는데, 아무런 당위성이 없어요.

    시나리오 상에서 꼭 그 지역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다능... 이건 뭐 딱히 한국의 첩보 드라마랍시고 만들어지는
    졸작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여러 헐리우드 첩보영화들도
    마찬가지지요.



    일단, 샘 멘데스를 믿습니다.
    그런데 전 마크 포스터 감독도 믿었단 말이죠...-ㅅ-;
    오히려 마틴 캠밸 감독을 믿지 않았는데...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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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건 007 시리즈보다 다른 스파이 영화들이 더 큰 문제죠.
    007 시리즈는 원래 그런 영화이고, 어울리는 장소를 못 찾아가는 게 문제라지만,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전세계를 무작정 휘젓고 다니는 다른 스파이물이 더 골치아픕니다.
    영화, 드라마 뿐만 아니라 소설 중에도 마치 007 시리즈 로케이션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첩보소설들이 많습니다.
    무작정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해야 스파이물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합니다...^^
    이렇다할 첩보물 소잿감이 없는 요즘엔 비슷비슷한 액션영화를 찍어내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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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원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물론 영화에서입니다만. 본드의 피지컬한 면보다는 스펙터클과 가젯에 의존하는 빈도가 점점 커져왔기에 로저무어와 피어스 브로스난의 본드는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 주가 되었겠지만, 이제 대니얼 크레이그는 제발 좀 안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로저 무어는 연기도 솔직히 좀 안되고, 피지컬도 안되고, 나이까지 많아서 니밀거리는 이미지로 먹고 살았으니 가젯 및 영상미에 의존하게 되었고, 브로스난도 나름 고뇌하는 본드를 보여준다고 했지만, 비디오 게임 수준 이었으니... 뭐 그렇다 쳐도...
    크레이그의 경우 성공적으로 리부팅하고 본드의 내면세계에 상당히 근접한 인물이니 굳이 쓸데없는 여행은 삼가하고, 좀 더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본드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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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문제는 원작을 참고하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건데요.
    콴텀...을 보면 역시 쉽지 않겠다는 게 보입니다.
    물론 스크린라이터 파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변명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만,
    카지노...보다 발전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죠.
    제작진은 제자리 걸음을 할 생각이었으나 결과는 뒷걸음이었죠.
    현재 SKYFALL을 보더라도 본드 캐릭터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은 보여준 게 없긴 하지만...^^
    만약 이번에도 별다른 발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크레이그의 미래도 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금 다들 크레이그의 본드를 어떻게 만들지 결정을 못했다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본드로 톤을 잡고 거기에 어울리는 세계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현재 크레이그의 본드 영화는 이 두가지 모두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들 이번엔 콴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두고 볼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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