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1일 토요일

댄젤 워싱턴의 '세이프 하우스', 모방과 짜깁기가 유난히 눈에 뜨는 스릴러

CIA에 쫓기는 CIA 로그 에이전트. 그를 둘러싼 비리와 음모. 그리고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수?

바로 이러한 액션 스릴러 영화가 또 하나 개봉했다. 댄젤 워싱턴(Danzel Washington),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 주연의 '세이프 하우스(Safe House)'가 바로 그것이다.

스토리는 한마디로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뒤죽박죽이기도 하다.

로그 에이전트로 수배된 전직 CIA 에이전트 토빈 프로스트(댄젤 워싱턴)가 남아공에서 프로페셔널 킬러들에게 쫓기던 중 피할 데가 마땅치 않자 미국 영사관으로 뛰어든다. 그러자 CIA는 영사관으로 뛰어든 토빈을 신참 맷(라이언 레이놀즈)이 관리자로 근무하는 세이프 하우스(안가)로 데리고 간다. 맨날 벽만 보며 따분한 나날을 보내던 맷이 갑자기 들이닥친 메이저급 범죄자를 보고 크게 놀란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CIA는 토빈을 안가로 데려오자 마자 느닷없이 워터보딩 물고문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킬러들이 습격하면서 CIA 비밀 안가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맷과 토빈은 얼떨결에 함께 안가를 탈출해 모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대체 킬러들이 CIA 비밀 안가를 어떻게 알고 들이닥쳤냐고?

뻔한 것 아니겠수?

그럼 누가 정보를 흘렸냐고?

이것 또한 너무나도 뻔하게 가르쳐준다. 영화 초반부터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힌트를 주길래 설마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처구니 없게도 실제로 그렇게 결말이 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세이프 하우스'의 플롯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음모에 연루된 CIA 에이전트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깨 너머로 본 남의 것들을 어설프게 짜깁기한 것이 전부였다. '음모' 타령을 하는 흔해 빠진 스파이 스릴러를 이제와서 어설프게 또 만들려 했다는 것 부터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었다.

신선도 또한 '제로'였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은 CIA 말단이자 비밀 안가 관리자인 맷은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주연의 70년대 스파이 스릴러 '3 Days of the Condor'의 조 터너를 빼다 박은 듯 했다. 캐릭터 뿐만 아니라 말단 CIA 직원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휘말려 CIA HQ에 연락을 하지만 도움을 받긴 커녕 되레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점, 언론에 폭로하면 스캔들 감이 될 비밀을 둘러싼 음모라는 점 등 스토리 면에서도 '3 Days of the Condor'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았다.

라이언 레이놀즈와 댄젤 워싱턴? 신참 vs 베테랑? 이것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댄젤 워싱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겼던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와 바로 겹쳐졌다.

안티-CIA 스릴러? 이것 또한 '세이프 하우스'가 처음이 아니다. 왜냐, 맷 데이먼(Matt Damon) 주연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안티-CIA 영화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액션 씬을 비롯해  '세이프 하우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영화 역시 제이슨 본 시리즈다.

수갑찬 범죄자를 이송하는 도중에 생기는 사건? 이것 또한 흔한 컨셉이다.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주연의 액션 코메디 '미드나잇 런(Midnight Run)'이나 러셀 크로우(Russel Crow) 주연의 웨스턴 '3:10 투 유마(3:10 to Yuma)' 등 도망자와 추적자가 얼떨결에 콤비가 된다는 설정의 영화는 많다.


그렇다. '세이프 하우스'는 이런 다른 액션 쟝르 영화들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를 기초로 허술한 줄거리를 짜맞춰 놓은 게 전부였다. 물론 돌고 도는 게 헐리우드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세이프 하우스'는 모방과 짜깁기가 유난히 눈에 띄는 영화였다.

그래도 액션 씬은 그럭저럭 볼만했다. 액션 씬 거의 대부분이 제이슨 본 시리즈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으므로 새로울 건 하나도 없었지만, 영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관객들이 긴장을 늦추도록 유도하다가 갑자기 쾅 하면서 난리가 나는 뻔할 뻔자 수법을 반복하는 바람에 피식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액션과 서스펜스가 허술한 스토리에 신경 쓸 틈을 주지 않도록 하는 맡은 바 역할은 제대로 해냈다.

만약 영화의 줄거리를 'CIA가 어쩌구', '음모가 저쩌구' 하면서 어설프게 비틀지 말고 스트레이트로 나갔더라면 나름 괜찮은 액션 영화가 될 뻔 했다. 천상 액션이 먼저, 스토리는 나중이었고 제대로 된 미스테리도 나오지 않는 영화였던 만큼 쓸데 없이 다른 영화 흉내내면서 영화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대단한 음모와 미스테리가 나올 것도 아니었고, 작가가 그러한 스토리를 스타일리쉬하게 완성시킬 만한 소질이 없어 보였다면 괜히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생각할 게 아무 것도 없으면서 마치 그런 게 있는 것처럼 억지로 그럴싸하게 꾸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별 생각없이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엔 나쁘지 않았다. 허술한 스토리에 신경을 쓰지 말고 흘러가는 줄거리를 아무 생각없이 그저 따라가기만 한다면 제이슨 본 시리즈 등과 같은 음모 중심의 심각한 분위기의 액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로 보였다. 댄젤 워싱턴, 라이언 레이놀즈를 비롯한 출연진은 화려했고, 남아공의 경치도 볼만 했다.

그럼에도 '세이프 하우스'는 기껏해야 평균 수준의 영화일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는 순간 머리에 떠오른 단어들이 '식상', '모방', '짜깁기' 등이었으니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출연진도 훌륭하고 스토리도 스파이 비스무레한 쪽 이야기인데다 오랜만에 눈에 띈 R 레이팅 액션영화였던 만큼 '혹시나' 했지만 평균 수준 이상은 아니었다. 만약 이 영화에 댄젤 워싱턴마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C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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