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스카이폴' - 너무 달라진 Q에 앞으로 적응할 수 있을까?

Q가 10년만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돌아왔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를 끝으로 007 시리즈에서 사라졌던 특수장비 전담 캐릭터 Q가 007 시리즈 23탄 '스카이폴(Skyfall)'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스카이폴'로 돌아온 Q는 우리가 알던 Q가 아니다. 그렇다. Q가 달라졌다.

'스카이폴'이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만큼 007 시리즈의 유명 캐릭터 중 하나인 Q가 오랜만에 컴백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와 함께 Q가 과거의 할아버지 Q가 아닐 것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했다. 왜냐, 007 제작진이 이런 식으로 시리즈에 자질구레한 변화를 주곤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Q에서 변화를 주려면 A)여성 B)젊은이 등 두 옵션이 있었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바랐던 것은 여성 Q였다. 지난 1995년부터 007 시리즈에서 M 역으로 출연해온 영국 영화배우 주디 덴치(Judi Dench)가 고령이라서 앞으로 007 시리즈에 계속 출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M이 중년의 남성으로 교체된다고 가정하면 Q가 여성이 되는 게 어울려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에 헬렌 미렌(Helen Mirren)이 Q를 맡으면 어떨까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할아버지에서 할머니로 바뀌는 게 어떻게 보면 그다지 큰 변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Q가 원래 제임스 본드를 철딱서니 없는 아이 취급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와 같은 캐릭터였으므로 할머니 Q가 적합해 보였다.

그러나 '스카이폴'의 Q 역은 1980년생의 젊은 영국 배우 벤 위샤(Ben Whishaw)에게 돌아갔다. 007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보다 나이가 어린 Q가 등장한 것이다.

007 제작진은 왜 옵션B를 택했을까?

아마도 리얼리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과학자가 MI6에서 특수장비를 전담한다면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MI6에서 첨단장비를 다루는 부서엔 벤 위샤처럼 컴퓨터 박사 스타일의 젊은 캐릭터가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007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 세부적인 것까지 말이 되나 안 되나를 꼼꼼하게 따져가며 현실감을 살리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팔순 할아버지였던 데스몬드 류웰린(Desmond Llewellyn)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007 시리즈에 Q로 등장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제임스 본드를 맡은 이후부터 007 제작진이 필요 이상으로 현실감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였으므로 젊은 Q의 탄생은 그다지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젊은 배우에게 Q를 맡긴 것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벤 위샤가 Q 역을 맡은 것으로 처음 알려졌을 때에만 해도 암담했었다. 그런데 '스카이폴'이 007 시리즈처럼 보이지 않아서 였는지, 영화를 보고 나니 최악의 수준까진 아닌 듯 했다. 대단히 어색하고 썰렁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Q로 보이지 않아서 였는지 그다지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 문제는 Q가 Q다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벤 위샤 버전 Q는 그저 Q 브랜치의 직원으로 보였을 뿐 과거에 우리가 알았던 Q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였다. 전통적으로 Q와 본드가 만나는 씬은 단지 첨단 특수장비만 주고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유머도 풍부했다. 왠지 본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 Q가 궁시렁거리면서 본드와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은 항상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곤 했다. 본드는 Q 앞에선 언제나 어린아이 같았고, Q는 완구점 주인이 어린 이에게 장난감을 보여주듯 여러 특수장비들을 소개해주곤 했다. Q의 실험실은 한마디로 완구점이나 다름 없었으며, 영화관객들은 무의식 중에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본드가 Q의 실험실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신기한 장난감으로 가득한 완구점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그러나 벤 위샤 버전 Q에선 더이상 그러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스카이폴'의 Q는 여전히 본드에게  첨단장치들을 제공하긴 했으나 문자 그대로 건조하게 장비만 전달했을 뿐 유머가 따라오지 않았다. 물론 시도를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 어색하게만 보였을 뿐 유머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머 파트는 앞으로 차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유머가 영 안 되겠으면 앞으론 차라리 완전히 없애버리는 밥법도 좋을 듯 하다.

신경에 가장 많이 거슬렸던 것은 Q가 단지 첨단장비 담당인 것이 전부가 아니라 작전상황실의 커다란 화면 앞에서 작전을 지시한다는 점이었다. 과거의 Q는 가끔 필드로 나온 적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그의 실험실에서 본드에게 여러 장치들을 전달하거나 과학 분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이었지 HQ에서 본드와 교신을 하면서 작전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었다. 물론 007 시리즈가 매번 런던을 배경으로 하진 않을 것이 분명한 데다 '스카이폴'에 등장한 MI6 본부가 메인 HQ의 파괴로 인해 임시로 마련한 장소로 보이는 만큼 이와 같은 씬이 다음 번 영화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007 시리즈를 '24' 등과 같은 TV용 스파이 시리즈처럼 보이도록 만들 생각이 아닌 이상 이런 씬이 반복되진 않을 듯 하다.

반복 되어서도 안 된다. 제임스 본드는 본부에 있는 Q와 헤드셋으로 교신하면서 작전을 펼치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카이폴'에선 프리-타이틀 씬에서부터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이어폰을 꼽고 나왔는데, 이것은 제임스 본드 스타일이 아니다. 제임스 본드를 보다 사실적으로 보이는 MI6 에이전트로 묘사하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현실감을 살리려 하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하게 보인다.

마카오 카지노 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드와 이브가 카지노에서 헤드셋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씬은 제임스 본드 영화의 한 장면이라기 보다 TV 시리즈 '척(Chuck)'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스카이폴'에선 유독 본드가 헤드셋을 사용하는 씬이 무척 많이 나왔는데, 앞으로 사라져야 할 점 중 하나다. 그러므로 앞으로 Q가 MI6 작전상황실에서 활동하는 씬은 없어야 할 것이며, 다음 번 영화에선 새롭게 마련된 그의 실험실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도 달라진 새로운 Q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다. '스카이폴'에선  왠지 Q로 보이지 않는 바람에 되레 어색함이 덜했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머리 속으로 상상했을 때엔 젊은 Q도 나름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막상 실제로 빅스크린으로 보니 영 어색했다. 현재로써는 젊은 Q로 바뀌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듯 하다. 그렇다고 곧 죽어도 무조건 할아버지 Q를 원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Q가 젊은 컴퓨터 전문가로 변신한 바람에 과거처럼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씬을 더이상 볼 수 없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이번 '스카이폴'이 벤 위샤의 첫 번째 영화였기 때문에 어색했던 것일 뿐 앞으로 차차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007 시리즈의 고정멤버로 장수할 수 있을 지는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60년대 숀 코네리(Sean Connery) 시절부터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90년대 영화까지 출연했던 데스몬드 류웰린의 뒤를 이어 새로운 Q가 되었던 영국 영화배우 존 클리스(John Cleese)는 단 두 편의 영화를 끝으로 브로스난 시대가 막을 내림과 함께 007 시리즈를 떠난 바 있다. 이처럼 벤 위샤도 크레이그 시대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떠날 운명일 수도 있다. 이번 '스카이폴'에서 M, Q, 머니페니 등 MI6 멤버들이 아주 오랜만에 모두 새로 정해진 만큼 이들이 하루 아침에 해산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지난 브로스난 시대의 머니페니(사만다 본드)와 Q(존 클리스)처럼 제임스 본드가 교체되면서 같이 교체될 가능성도 크다.

여전히 아줌마 또는 할머니 Q가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어쩌겠수?

썩 맘에 드는 초이스는 아니지만 벤 위샤의 Q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4개 :

  1. 듣고보니 "할머니 Q"도 괜찮네요. 제작자들이 의도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Q 할아버지"가 계속 늙어가고,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Q와 007의 관계는 '장난끼넘치는 나이많은 조카와 툴툴대는 삼촌'같은 이미지였고,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른 이미지는 상상하기 힘들었거든요. 이제 반대로 '젊고 툴툴대는 Q'와 '삼촌이면서' 투덜거리는 007이 티켝태격하는 모습으로 컨셉을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젊은 여성들을 타켓으로 하여 (벌써 젊은Q 마음에 들어하는 여성팬들도 꽤있더군요) 개성있는 젊은 조연을 박아넣었는지도 모르겠구요. '할머니 또는 아줌마 Q' 이거 괜찮은데...... 맘씨 좋은 아줌마틱하면서 가끔 철없는 007 구박도좀 하고, 어찌보면 007영화시리즈내에서 007과 가장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본드걸이 아닌 Q라고 생각합니다. 19탄에서 "바로 은퇴하시진 않을거지요?'라고 다소 섭섭한듯 물어보는 장면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마음에드는 명대사중 하나거든요. 본드가 주위 동료들에대하여 그렇게 애정표현을 하는 장면이라는게 솔직히 드무니까요. 큰누나 혹은 큰이모 정도의 역할을 해줄수 있는 여성Q, 이거 괜찮은것 같은데..... 쓰신글은 아직 못읽어 보았구요 가서보아야 겠네요


    말씀하신대로 이번 SKYFALL에서의 교신장면들은 '국내방첩부'인 MI5의 내용을 다룬 영국드라마 '스푹스'의 장면들을 보는듯했습니다. 설마 현실적인것으로 한다면서 너무 스케일을 줄여갈것 아닌지 걱정도 되구요 현실적인것도 좋지만 제작진이 최소한 앞으로 MI6와 MI5 구분은 해줄것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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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벤 위쇼의 캐스팅은 아마도 젊은 여성 팬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로 20대의 젊은 여성 팬을 공략하기는 한계가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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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DREAM1848:
    아줌마 Q도 괜찮을 것 같죠?^^

    말씀하신대로 MI5와 MI6를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런던 씬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과 마카오에서도 헤드셋을 자꾸 사용하는 게 맘에 영 안 들었습니다.
    현재 007 시리즈는 현실적이면서도 LARGER-THAN-LIFE이고,
    격렬하면서도 패밀리-프렌들리인 영화가 목표입니다.
    좀 헷갈리긴 하지만 몇 년전에 바바라 브로콜리가 크레이그의 본드 영화를 그런 식으로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 룰에 맞추다 보니 스카이폴 같은 아리송한 영화가 나온 것 같습니다.
    스카이폴은 중도의 영화가 아니라 정체불명의 영화였죠.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가 나오는데 이번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제작진이 좀 더 현명하다면 같은 조건 하에서도 보다 본드 영화답게 만들 수 있을텐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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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J:
    제가 듣기론 벤 위샤는 커밍아웃 안한 게이라고 하던데요?
    뭐 이런 건 중요하지 않지만...^^
    007 시리즈로 젊은 여성팬까지 공략하려는 건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본드24를 헝거 게임처럼 만든다고 나올까봐 걱정되는 이 판국에 말입니다...^^
    지금 007 시리즈는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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