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2일 월요일

'오블리비언', 신선하지 않았지만 나쁘진 않았다

헐리우드 SF 영화들 중엔 '외계인 침공으로 파괴된 미래의 지구'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많다. 굳이 외계인이 아니더라도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시리즈처럼 기계들의 반란으로 파괴된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있다. 이처럼 외계인 침공, 기계들의 반란, 원인 모르는 질병, 핵전쟁 등으로 파괴되어 인류가 거의 멸망한 미래의 암울한 지구는 헐리우드 SF 영화의 단골 소잿감이다.

최근에 개봉한 유니버설의 '오블리비언(Oblivion)'도 그 중 하나다.

톰 크루즈(Tom Cruise), 모건 프리맨(Morgan Freeman), 앤드리아 라이스버러(Andrea Riseborough), 본드걸 출신 여배우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 주연의 SF 영화 '오블리비언'에도 '외계인 침공', '기계들의 반란', '파괴된 지구', '인류 멸망' 등이 모두 나온다.

또한, '오디세이'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타고 동면 상태로 장거리 우주 여행을 하는 씬은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의 하미지(Homage)가 분명해 보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온 AI 컴퓨터 HAL 9000이 '기계들의 반란'의 대선배 격이라는 점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 줄거리를 살짝 훑고 넘어가기로 하자.

2077년 지구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파괴된다. 미국 뉴욕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풋볼 경기장 등이 모두 파괴된 폐허로 변했다. 지구인들은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지구를 떠나 타이탄으로 이주했고, 잭 하퍼(톰 크루즈)와 빅토리아(앤드리아 라이스버러) 등 몇몇만 외계인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위험한 지구에 남아 나머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구인들이 전쟁에 이겼지만 그들은 지구를 떠났고, 외계인들은 전쟁에서 졌으나 지구에 남은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잭 하퍼(톰 크루즈)가 꿈에서 알 수 없는 여인의 얼굴(올가 쿠릴렌코)을 본다. 기억을 모두 지운 잭은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꿈에서 본 그녀가 실제로 그의 앞에 나타나면서 잭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지구에 추락한 우주선 안에서 동면 상태로 발견된 생존자 중 하나가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러나 잭은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구에 남아 있는 외계인들의 습격을 받아 그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외계인인 줄 알았던 그들의 정체를 알고 보니 지구인이었다. 잭이 적으로 알고 있었던 지구에 사는 외계인들이 실제로는 잭과 똑같은 지구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법 흥미진진해 보인다고?

스토리가 대단히 새롭고 흥미진진한 편은 아니었지만 크게 죽을 쑨 케이스도 아니었다. 배경 줄거리를 설명하는 첫 부분이 조금 더디게 느껴졌으나 그 이후부터는 도중에 늘어지거나 지루하지 않았으며, 스토리가 불필요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줄거리의 퀄리티는 비디오게임 수준이었다. 나름 그럴싸해 보였지만 'SF 클리셰' 투성이일 뿐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이 영화보다는 SF-판타지-RPG의 줄거리로 더욱 적합해 보였다. 물론 코믹북 수퍼히어로 SF 영화가 판치는 요즘에 이 정도 스토리면 그래도 준수한 편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여러 SF 영화들을 짜깁기한 게 전부일 뿐 참신하거나 독창적이지 않은 줄거리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SF 클리셰'였다.

톰 크루즈 주연의 SF 영화 '오블리비언'은 어디서 여러 번 본 듯 한, 새로울 게 거의 없는 영화였다. 여러 다른 SF 영화들을 짬뽕으로 리믹스한 흔적이 바로 눈에 띄었다. 외계인 침공, 핵전쟁 등으로 파괴된 미래의 지구, 기계의 공격에 맞서 저항하는 인간들의 모습,  파괴된 뉴욕 풍경(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맷라이프 스테디움)  등등 SF 영화 클리셰만 눈에 띄었을 뿐 '오블리비언'만의 독특한 특징과 참신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터미네이터', 찰튼 헤스턴(Charlton Heston) 주연의 1968년작 '혹성탈출/플래닛 오브 에입스(Planet of the Apes)' 등등 다른 SF 영화들의 흔적만 보였을 뿐 '오블리비언'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비쥬얼 역시 색다르고 처음 보는 듯한 씬은 없었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퀄리티가 아니었으며, 기억에 남을 정도의 인상적인 씬도 없었다. 하지만 매우 실망스럽거나 싸구려 영화처럼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비쥬얼에만 올인하다시피 한 다른 비싼 헐리우드 영화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진 않았어도 여전히 볼 만했다.

그러므로 '오블리비언'은 스토리도 보통, 비쥬얼도 보통인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스토리가 전혀 신선하지 않았어도 영화를 말아먹을 정도로 부실하진 않았으며, 비쥬얼도 아주 대단하진 않았어도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액션 씬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액션에 포커스를 맞춘 SF 영화가 아닌 것으로 보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 액션 씬은 볼 게 없었다. 오히려 무기를 비롯한 일부 소품들이 리얼해 보이지 않고 장난감처럼 보였던 게 신경에 거슬렸다. 그 중에서 가장 어색하게 보였던 것은 잭(톰 크루즈)이 사용했던 라이플이다. 미래의 무기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봐도 실제 무기보다 장난감에 가까워 보였다. 톰 크루즈가 들고 다니면 장난감 총도 진짜처럼 보이는 지 모르겠지만, '오블리비언' 라이플은 아무리 봐도 수상해 보였다.


그렇다면 '오블리비언'의 볼거리는 무엇이었을까?

세계적인 헐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 모건 프리맨, 그리고 매력적인 여배우 앤드리아 라이스버러와 올가 쿠릴렌코 정도가 될 듯 하다.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간 것이지 영화배우를 보러 간 것이 아닌 만큼  영화 자체보다 출연배우가 더 큰 볼거리였다면 문제가 있다고 해야겠지만, 이미 인정받은 헐리우드 A급 리딩맨 톰 크루즈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카리스마틱한 베테랑 영화배우 모건 프리맨이 후 불면 날아갈 듯 굉장히 가벼워 보이던 영화에 무게를 보태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톰 크루즈는 '잭 리처(Jack Reacher)'에서 잭이라는 이름의 메인 캐릭터를 맡은 데 이어 '오블리이언'에서도 또 잭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2회 연속으로 맡았다. 뿐만 아니라 '잭 리처'에 이어 '오블리비언'에서도 전직 본드걸들과 함께 출연했다. '잭 리처'에선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본드걸로 출연했던 로사먼드 파이크(Rosamund Pike), '오블리비언'에선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본드걸 올가 쿠릴렌코와 함께 했다.

그렇다면 '오블리비언'은 '엄지손가락 아래로' 영화?

'오블리비언'은 볼거리가 많지 않은 평범한 수준의 SF 영화였다. 그러나 '엄지손가락 아래로' 까지는 아니었다. 신선도 떨어지는 클리셰 투성이의 그렇고 그런 영화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럭저럭 보기엔 무난했다. 걸작으로 불릴 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지만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풍부한 상상력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SF 영화를 찾는다면 '오블리비언'은 건너뛰는 게 좋을 것이다. 요새 과연 그러한 SF 영화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블리비언'은 분명히 아니다.

댓글 4개 :

  1. 탐크루즈 우주선이 꼭 거시기 같아서 민망하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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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무래도 양쪽에 공...이 있다 보니...^^
      만약 조종석이 반대쪽(꼬리쪽)에 있었다면 좀 더 멋질 뻔 했겠는데요?
      근데 그 디자인이 원래 벨(Bell)사의 잠자리처럼 생긴 헬리콥터 벨47을 모델로 한 거라는군요.

      http://herocomplex.latimes.com/movies/oblivion-tom-cruise-bubble-ship-spacecraft-design-form-follows-fu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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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그렇군요. 전혀 몰랐네요.:)
      말씀하신 내용으로 찾아보니 확인기사가...
      'OBLIVION' DESIGNER CONFIRMS TOM CRUISE'S SHIP WASN'T MODELED AFTER A D**K

      재미있어요.ㅎ
      그나저나, 저는 이번 주는 건너뛰고 다음 주에 아이언맨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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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white testicles......
      프로펠러를 없애고 양쪽에 공 2개를 단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됐군요...^^
      양쪽에 공 2개, 중앙에 막대기 1개의 조합은 항상 그쪽으로 갈 위험이 높은 듯 합니다.

      저도 이번 주는 잘 모르겠고 아이언맨이나...
      보스턴 사건 때문인지 우리 동네 영화관엔 핸드건 찬 시큐리티들이 돌아다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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