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007은 '나를 파산시킨 스파이'

"The Spy Who Bankrupted Me"...

본드팬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본드팬이 007 시리즈 관련 상품 구입에 돈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본드팬은 지나가다 007 시리즈 관련 상품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스톤 마틴 DB5 등과 같은 형편상 건드리기 어려운 고가 상품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자질구레한 007 시리즈 관련 콜렉티블은 눈에 띄는 대로 모두 구입하려 노력한다.

그 중 제일 흔하고 만만한 게 홈 비디오 관련 상품이다.

나름대로 VHS부터 아이튠스의 디지털 포맷까지 차곡차곡 수집하고 있는데, 2013년 새로운(?) 007 시리즈 박스 세트가 또 하나 출시됐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2012년 출시된 '본드 50' 블루레이 박스 세트와 똑같아 보인다. 박스와 커버 디자인이 똑같기 때문에 얼핏 봐선 2012년판인지 2013년판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박스의 오른쪽 하단에 붙어 있는 'LIMITED EDITION' 스티커를 읽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2012년 박스 세트엔 'INCLUDES ALL 22 BOND FILMS TOGETHER FOR THE FIRST TIME ON BLU-RAY'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2013년판은 약간 다르다. 2013년 박스 세트엔 "ALL 23 BOND FILMS TOGETHER FOR THE FIRST TIME INCLUDING SKYFALL"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렇다. 2012년 박스 세트엔 22편의 영화가 포함된 반면 2013년 박스 세트엔 '스카이폴(Skyfall)'까지 포함한 23편의 영화가 들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2012년판 박스 세트를 구입한 데다 '스카이폴'도 블루레이로 별도로 구입했으면 2013년 출시된 박스 세트는 구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더군다나 박스 세트에 이어 낱개로도 전체 007 시리즈를 블루레이 포맷으로 모두 수집했다면 2013년 출시된 새로운 박스 세트를 또 구입할 필요가 더욱 없어 보인다고?



그런데 본드팬의 입장에서 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2012년 박스 세트는 22편의 영화를 처음으로(THE FIRST TIME) 한데 모은 블루레이 박스 세트라는 데 의미가 있고 2013년 박스 세트는 1탄부터 시작해서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스카이폴'까지 23편의 영화를 처음으로(THE FIRST TIME) 한데 모은 블루레이 박스세트라는 또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THE FIRST TIME'이 키워드다.


'FIRST TIME' 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또 하나 있다면...


아무튼,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도저히 건너뛸 수 없었다. 그러니 또 사는 수밖에...


영화를 보기 위해 007 시리즈를 홈 비디오로 구입하던 초보 시절은 80년대 이야기다. 요샌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집하는 재미로 구입한다. 지난 007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으면 아이튠스를 통해 구입한 디지털 HD 포맷으로 보면 되므로 구입한 블루레이를 굳이 개봉할 필요도 없다. 이 덕분에 최근에 출시된 007 시리즈 블루레이는 모두 밀봉 상태로 보관 중이다. 박스 세트들도 밀봉 상태로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보관용 박스 속으로 들어간다. 낱개로 구입한 007 시리즈 블루레이는 진열해놨지만 역시 밀봉 상태이며 이들도 조만간 박스 속으로 사라질 정리 대상이다.

개별로 구입한 007 시리즈 DVD는 대부분 개봉된 상태이지만 '제임스 본드 얼티메이트 콜렉터 세트(James Bond Ultimate Collector's Set)'부터 밀봉 상태로 모으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제임스 본드를 '나를 파산시킨 스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007 시리즈에 돈을 쓰지 않는 자는 본드팬이라 부를 자격이 없다. 이것도 돈이 들어가는 취미 생활 중 하나다.

홈 비디오는 007 시리즈 콜렉티블 중에서 귀중하게 따지는 것도 아니지만 - 어떻게 보면 가장 하찮은 007 시리즈 콜렉티블인지도 모른다 - 가장 눈에 흔히 띄는 상품이라서 새로운 버전이 출시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눈에 띈다. 매번 계속 구입할 필요와 가치가 없지만 눈에 흔히 띄다 보니 자꾸 구입하게 되는 듯 하다.

아무튼 다음부턴 콜렉터들을 위해 성의를 기울인 흔적이 보였으면 좋겠다. 이번엔 무성의한 구성의 '본드 50' 블루레이 박스 세트로 두 번 울궈먹으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쌍거풀 해줬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그럴 지 약속하기 어렵다. 지난 90년대부터 별 생각 없이 구입하기 시작했던 DVD가 이제 와서 생각 밖으로 큰 짐이 되면서 디스크 포맷으로의 영화 구입을 되도록이면 피하게 되었으므로 007 시리즈도 예외가 아니다. 매번 새로운 버전을 계속 구입할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면 더이상 사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댓글 2개 :

  1. 그래도 이건 좀... 22장은 똑같은건데...
    저도 칼과 멀티툴 수집하는데, 옵션 하나 다른 버젼도 구입하고 그럽니다.
    하지만 이건 스티커 하나 다른것 아닐까요?

    답글삭제
    답글
    1. 아, 이걸 빼먹은 듯 하군요. 디스크 프린트 디자인이 개별 버전과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개별로 출시된 스카이폴 블루레이 디스크엔 흰색 바탕의 포스터가 프린트되었는데,
      새 박스세트엔 다른 디스크와 통일된 검정 바탕에 푸른 띠 디자인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박스세트를 안 열어봐서 직접 확인한 건 아닙니다만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