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런타임 3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제목에 '월 스트리트(Wall Street)'가 들어갔거나 그쪽 동네 관련 이야기의 영화는 어지간하면 피하는 버릇이 있다. 그쪽에 관심이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그쪽 관련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3년 크리스마스 날 영화 제목에 '월 스트리트'가 들어간 영화가 개봉했다.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 연출에 레오나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주연의 월 스트리트 드라마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도 별 흥미 없는 돈 얘기만 하는 지루한 영화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월 스트리트 비즈니스 얘기만 하는 그런 '월 스트리트' 영화가 아니었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지난 90년대 주식 사기로 큰 돈을 벌며 멋지고 호화로운 삶을 즐기다 결국 FBI에 붙잡혔던 실존 인물 조단 벨포트(Jordan Belfort)의 회고록을 영화로 옮긴 바이오픽이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도 사건 자체보다 캐릭터 이야기에 중점을 둔 점은 또다른 화이트컬러 범죄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아메리칸 허슬'에선 캐릭터 이야기보다 FBI와 사기꾼이 함께 함정수사를 벌이는 과정에 흥미가 더 끌렸기 때문에 사건 파트가 만족스럽게 묘사되지 않은 게 아쉬웠다. 반면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월 스트리트 사기 사건보다 조단 벨포트와 그의 재밌는 친구들이 많은 돈을 펑펑 쓰면서 술, 마약, 섹스로 범벅이 된 난장판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것이 볼거리였기 때문에, 자칫 헷갈리고 지루해질 수 있는 사기 파트를 간략하고 스피디하게 처리한 다음 벨포트의 요란했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렇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메인 파트는 사기와 범죄가 아니라 메인 캐릭터들의 쿨한(?)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벨포트가 어떤 불법을 어떻게 저질렀나는 필요한 만큼만 적당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다음 나머지는 그의 화끈했던(?) 라이프스타일로 채워진 영화였다. 벨포트가 주식 중개회사를 차려 놓고 어떤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였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벨포트(레오나도 디카프리오)가 독백을 통해 그가 저지른 불법 행위를 죽 설명하다 도중에 중단했듯이 그가 저지른 범죄 내용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벨포트의 탐욕스러운 욕망, 벌어들인 큰 돈을 광란의 섹스-마약 파티에 쓰는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크게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성공하기 위한 방법이 약간 또는 상당히 불법적이더라도 기회가 보이면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아지면 호사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지나서 마약 등 엉뚱한 쪽으로 빠지게 된다는 점도 크게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보는 도중에 마약 딜러를 하다 체포되었던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마약을 팔려면 절대 마약을 해선 안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돈도 많고 마약도 많다 보니 마약을 즐기게 됐다가 약기운 때문에 판단을 제대로 못해 체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는데,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눈에 띄었다.

이처럼 과한 욕심과 향락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월 스트리트 사기꾼 얘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월 스트리트를 타겟으로 삼았지만 사기와 범죄로 번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망나니 생활을 하는 자는 월 스트리트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헐리우드도 2등이라고 하면 섭섭해 할 것이며, 헐리우드나 월 스트리트보다 스케일이 작더라도 성격이 비슷한 사기, 범죄, 탐욕, 비리, 부도덕한 이야기 등을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재밌게 볼 수 있도록 만든 듯 하다. 별 볼 일 없던 청년이 - 비록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했지만 - 주식업으로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분명 색다르지만, '사기와 범죄로 큰 돈을 모았다가 향락에 빠지며 쇠고랑 찬다'는 굵은 스토리라인은 흔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별다른 생소함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픽션인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해도 여전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여러 군데 있겠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면서도 굉장히 수상한 짓을 거침없이 하는 골때리는 괴짜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므로 사실 내용과 다를 수는 있어도 전혀 터무니 없어 보이는 부분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골치 아픈 주식거래 관련 사기 사건 이야기를 멍하니 들어야 하는 따분한 영화가 절대 아니었다. 주식 사기범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망나니 짓을 하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월 스트리트 관련 영화이므로 지루하고 따분한 파트가 제법 자주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런타임 3시간이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소 과장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충분히 짐작 가능한 상황이 전개되는 등 대단히 새롭거나 흥미로울 것은 없었지만 술, 마약, 섹스, 호화생활의 반복이 지루하지 않았다. 다소 오버하거나 유치할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유머는 풍부한 편이었고, 사기로 번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온갖 사고와 해프닝에 휘말리는 벨포트와 사고뭉치 괴짜 친구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즐기기에 충분했다.

레오나도 디카프리오는 젊음, 패기, 욕망이 넘치는 부유한 핸썸-플레이보이-망나니 조단 벨포트 역에 아주 잘 어울렸다. 탐욕스러운 비즈니스 맨의 비열함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낼모레면 마흔인데도 여전히 미소년같은 디카프리오는 부유한 플레이보이 역에 잘 어울려 보였다. 어떻게 보면 스타일 면에서 금년 여름 개봉했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개츠비 역과 겹쳐지기도 했지만 디카프리오에겐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가 잘 어울려 보였다.

'위대한 개츠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도 눈에 띄는 호주 출신 여배우가 하나 있었다. 벨포트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은 블론드 뷰티, 네이오미 역을 맡은 마고 로비(Margot Robbie)가 바로 그녀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다른 건 둘 째 치고 이 친구를 구경하는 재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생각보다 재밌게 본 영화였다. 아주 특별하게 잘 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짧지 않은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성공한 것이다.

월 스트리트 얘기에 관심이 없어서 건너뛰려 했던 영화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댓글 2개 :

  1. 이 영화를 모두 지루하지 않는 영화 뭐 이렇게만 보시네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길..
    그저 부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홍보하는 영화인지..

    조단 벨포트가 감옥에 다녀온 뒤 강연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뜬금없이 객석에 앉은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보이죠

    이게 중요한겁니다. 거기서 부자가 되기위해 벨포트의 강의를 들으러 온 순박한 얼굴들의 호구들이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 자신이라는 것 입니다.
    그는 아무리 감옥에 가더라도 다시 부활할겁니다. 그의 성공수단은 바로 성공을 꿈꾸는 순진한 호구들이고 이 세상은 그런 호구들로 넘쳐나니까요 그는 절대 망하지 않을겁니다.

    이 영화 또한 벨포트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거고 이 영화를 보기위해 돈을 냈다면 그 돈 또한
    벨포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겁니다. 정말 영화를 본 관객들도 벨포트의 재기를 도운 셈이죠

    하지만 많은 관객들은 마지막 장면의 이 고발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밌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뜬금없었다며 흠으로 꼽을 뿐입니다.

    대놓고 고발해도 호구들은 못알아들으니 이 세상은 1%의 똑똑한 부자들의 것이죠
    영화 내에서도 그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의 구호를 인용한 대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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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벨포트 강연 씬은 뜬금없다기 보다 그가 원래 강연자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벨포트는 실제로 현재 MOTIVATIONAL SPEAKER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벨포트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 걸로 봐야 할 듯 합니다.
      벨포트가 강연한다면 사람들이 몰리는 게 현실일 테므로 그리 놀라울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벨포트는 영화제작에도 조언자로 참여했으므로 벨포트 수익 문제도 얘기할 게 없어 보입니다.
      벨포트가 자신을 망나니로 묘사하며 책, 영화 등으로 돈버는 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죠.
      벨포트가 절대로 재기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의 능력과 수완에 달린 문제죠.
      월스트리트를 소재로 한 영화니까 오큐파이 얘기가 살짝 나온 건 사실 놀라울 게 없습니다.
      당연히 나올 줄 알았습니다. 월스트리트 배경 헐리우드 영화에 그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죠.
      다만 모두가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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