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오너 블랙맨 "다니엘 크레이그는 진정한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다"

007 시리즈 역대 본드걸 이름 중 베스트는 단연 1964년 제임스 본드 영화 '골드핑거(Goldfinger)'의 리딩 본드걸 푸씨 갈로어(Pussy Galore)다. 매리 굳나잇(Marry Goodnight), 추 미(Chew Mee), 홀리 굳헤드(Holly Goodhead) 등 재밌는 이름을 가진 본드걸들이 종종 등장했지만, 푸씨 갈로어를 능가하는 이름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푸씨 갈로어는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본드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멋진 이름 덕분도 있겠지만 007 시리즈의 블루프린트 격인 영화로 불리는 영화 '골드핑거' 또한 베스트 제임스 본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므로 크게 놀라울 건 없다.

1964년 영화 '골드핑거'에서 푸씨 갈로어 역을 맡았던 배우는 영국 여배우 오너 블랙맨(Honor Blackman).

그녀가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대해 입을 열었다.

'푸씨'가 움직이면 집중하게 돼있는 법. 과연 그녀는 뭐라고 했을까?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오너 블랙맨은 지금 제임스 본드 역을 맡고 있는 영국 영화배우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는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의도했던 진정한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블랙맨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훌륭한 배우이긴 하지만 요샌 과거 숀 코네리가 했던 것처럼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플레밍의 본드는 여자와 함께 침대에 올래 재미를 본 직후 침착하게 그녀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고 아무렇지 않게 마티니를 마시는 캐릭터였으며 코네리는 바로 그러한 본드를 완벽하게 연기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는 그런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는 것이 더이상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는 여자를 돌봐야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과거의 본드는 그런 바보스러운 짓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 블랙맨은 말했다.

“The Bond that Ian Fleming wrote, they are not allowed to be now. That Bond was suave, good looking. Sean played him perfectly because you believed that he would bed a woman and then calmly put a bullet through her head and then go and have a martini and not bother. Dan could do anything but he’s not allowed to any more. He has to care about his women – he has to fall in love and Bond never did anything so silly.” - Honor Blackman


한마디로 말해 제임스 본드가 물렁해졌다는 것이다.

오너 블랙맨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대해서 작년에 썼던 글이 생각나기도 한다.

제임스 본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결점이 없는 롤모델 수퍼히어로가 아니라 술, 담배를 심하게 즐기고 여자 관계가 흥미진진하며 점잖은 신사처럼 보이다가도 냉혹하고 잔인한 이면이 숨어있는 캐릭터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의 이러한 성격과 바이스(Vice)가 영화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007 제작진이 너무 지나치게 이 부분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제임스 본드의 '다크 사이드'를 보여주는 데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선 '트와일라잇(Twilight)' 등과 비슷한 틴에이저 소녀들을 겨냥한 여성용 영화 주인공처럼 보일 정도로 착하고 나약하고 소프트한 캐릭터가 됐다.

물론 이언 플레밍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둘러 보면 현재 기준으론 다루기가 다소 곤란한 부분들이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21세기 제임스 본드가 5060년대 제임스 본드와 크고 작은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너 블랙맨의 주장대로 5060년대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진정한 제임스 본드인 것은 사실이며 앞으로 그러한 캐릭터를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란 점 또한 사실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약간의 변화를 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007 제작진이 이런 몇몇 큰 문제만 손을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굉장히 몸을 사리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영국의 스파이 스릴러 소설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가 제임스 본드를 "Neo-Fascist Gangster"라 했고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는 제임스 본드를 "Right Wing Fuckface"라고 한 적이 있는데, 007 제작진이 이런 비난에 겁을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본드가 항상 올바른 행동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고 때로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말 또는 행동을 할 때도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항상 올바르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 등도 특징 중 하나인데 007 제작진은 이런 것들을 마일드하게나마 영화에서 보여줄 배짱이 없어 보인다. 제임스 본드를 항상 바른 행동만 하는 따분한 모범학생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렇다 보니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토요타 TV 광고에 나오는 남성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런 광고를 보면서 제임스 본드 영화가 저렇게 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의 '다크 사이드'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프리 타이틀 씬과 같은 장면은 가능할 듯 하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가장 제임스 본드다워 보였던 씬은 아마도 '카지노 로얄'의 프리 타이틀 씬일 것이다. 크레이그의 본드에게선 이 정도의 'Cold-Blooded-Bastard' 이미지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 듯 하다. 제임스 본드가 조금만 난폭하고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게 행동하면 "이건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악당"이라며 칭얼댈 사람들이 쌔고 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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