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8일 일요일

'에지 오브 투모로', 그럭저럭 볼 만했지만 여름철 영화론 약했다

톰 크루즈(Tom Cruise) 주연의 여름철 SF 영화 '에지 오브 투모로(Edge of Tomorrow)'가 개봉했다. '에지 오브 투모로'는 일본 소설가 히로시 사쿠라자카(Hiroshi Sakurazaka)가 쓴 SF 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All You Need is Kill)'을 기초로 한 영화로, 영화 제작 초기엔 영화 제목도 일본 소설 제목과 같은 '올 유 니드 이즈 킬'이었다가 '에지 오브 투모로'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바꿨다.

'에지 오브 투모로/올 유 니드 이즈 킬'의 핵심적인 플롯 디바이스는 타임 룹(Time Loop)이다.

공상과학물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더라도 빌 머레이(Bill Murray) 주연의 90년대 영화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나 타이 디그스(Taye Diggs) 주연의 2000년대 TV 시리즈 '데이 브레이크(Day Break)' 등을 기억한다면 타임 룹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에지 오브 투모로'의 스토리 역시 타임 룹에 걸려 내일로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똑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게 된 메인 캐릭터 윌리엄 케이지(톰 크루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라운드호그 데이'에선 하루가 지나 자고 일어나면 그 다음 날 아침으로 넘어가지 않고 똑같은 날이 다시 반복되었다면, '에지 오브 투모로'에선 외계 생명체와의 전투 도중 전사했다가 의식을 차려 보면 그가 전사한 날을 처음부터 다시 살게 되는 식이다. 우연히 이러한 타임 룹에 걸린 윌리엄 케이지(톰 크루즈)는 내일 없이 똑같은 날을 계속 반복해서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매일마다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해야 하는 고달픈 삶을 살게 된 캐릭터다.

히로시 사쿠라자카의 원작 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에선 지구를 침공한 외계 생명체에 저항하기 위해 군에 갓 입대한 신병 케이지 키리야가 그의 첫 전투에서 우연히 타임 룹에 빠지며 똑같은 날을 매일 반복하게 된다는 줄거리였다. 그러나 50대의 톰 크루즈가 갓 입대한 젊은 신병 역으로 어울리지 않는 만큼 영화 '에지 오브 투모로'에선 주인공 윌리엄 케이지를 전투 경험이 없는 장교로 바꿨다. 신병이 그의 첫 전투에서 타임 룹에 걸린다는 설정 대신 전투 경험이 없던 장교가 얼떨결에 전투에 나섰다가 타임 룹에 걸린다는 설정으로 변화를 준 것이다.

주인공 이름도 일본 이름 케이지(Keiji)에서 영어 이름 케이지(Cage)로 바뀌었다.  일본인 캐릭터를 미국인으로 바꿨지만 '케이지'라는 이름은 계속 유지했다.

윌리엄 케이지의 가장 큰 문제는 매일같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타임 룹에 걸려 똑같은 날을 여러 번 반복했기 때문에 케이지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 이미 다 기억하고 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매일마다 리셋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이전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케이지의 타임 룹 주장을 곧이 듣지 않는다.

그러나 케이지의 주장을 믿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여전사 리타 브라타스키(에밀리 블런트)다. 리타는 자신도 타임 룹에 걸렸다 빠져나왔다면서, 타임 룹의 이점을 살려 케이지와 힘을 합해 외계 몬스터를 퇴치할 방법 찾기에 나선다...


'에지 오브 투모로'는 비디오게이머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영화일 것이다. 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과 영화 '에지 오브 투모로' 모두 비디오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타임 룹을 이용해 전투 훈련을 받으며 기량을 쌓는 케이지의 모습은 일본산 RPG에서 레벨업을 하기 위해 의미 없는 배틀을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일본산 RPG 같은 비디오게임을 하다 보면 레벨업을 해야만 곧 상대할 보스전에서 이길 수 있으므로 싫든 좋든 똑같은 장소를 빙빙 맴돌며 지루한 레벨업 배틀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올 유 니드 이즈 킬/에지 오브 투모로'의 상황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 90년대 영화 '그라운드호그 데이'에서도 똑같은 날이 계속 반복되는 사이 주인공이 여러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씬이 나온 적이 있으므로 '타임 룹 소재 영화의 공통점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에지 오브 투모로'가 비디오게임 쪽에 훨씬 더 가까운 영화였기 때문인지 일본산 RPG의 레벨업 노가다를 기초 컨셉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벨업 노가다는 게임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그러나 '에지 오브 투모로'에선 그것이 영화의 전체였다. '에지 오브 투모로'는 타임 룹을 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로 스토리가 단순하고 스케일이 작았다. 일본산 RPG에 비유하자면, 게임 전체를 영화로 만든 게 아니라 게임 중간중간에 벌어지는 보스전 중 하나만을 영화로 옮긴 듯 했다.

물론 타임 룹 스토리는 여전히 흥미를 끌었고, 원작 소설에 나왔던 서버, 네트웍, 안테나 타령을 간소화한 것도 맘에 들었다. 각색이 전체적으로 아주 맘에 들진 않았어도 맘에 드는 부분도 많았다. 유머도 역시 풍부했다. 똑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 만큼 코믹한 상황이 자주 연출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역시 유머는 풍부한 편이었다. 그러나 타임 룹 소재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머들이 전부였을 뿐 새로운 건 없었다.

그렇다. 이처럼 '에지 오브 투모로'는 타임 룹 하나를 빼면 남는 게 없는 영화였다.

캐스팅에도 물음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 모두 잘 알려진 배우들이지만, 둘 다 영화와 썩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라는 두 영화배우의 이름이 주목을 끈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영화와 잘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 블런트까지는 그럭저럭 오케이였다. 그러나 톰 크루즈는 하이스쿨 프롬(Prom)에 학부형이 온 것처럼 보였다. 톰 크루즈와 같은 빅스타를 캐스팅한 것은 좋았지만, 크루즈가 영화와 캐릭터 등과 잘 어울리는가에 대해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듯 했다. 50대의 크루즈를 신병처럼 만들기 위해 준비한 플롯 설정부터 억지스럽게 얼렁뚱땅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빅스타 톰 크루즈의 네임밸류 하나에만 의존하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볼거리 위주의 여름철 영화에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빈틈 없이 타이트한 플롯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지만, '에지 오브 투모로'의 첫 인상은 '톰 크루즈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무리를 한 영화 같다'였다.

볼거리도 풍부한 편이 아니었다. 외계 생명체들과의 배틀 씬이 나오긴 했지만 액션과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화려한 VFX에만 올인한 'VFX 오버킬'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워낙 많은 탓에 적당한 수준을 유지한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 되었지만, '에지 오브 투모로'는 볼거리가 약간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액션 씬은 타임 룹 스토리라인에 밀려 비중이 줄었고 박진감도 부족했다. 해변에서 벌어지는 곤충처럼 생긴 미믹(Mimic)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와의 배틀 씬은 '스타쉽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와 비슷해 보였을 뿐 특별히 색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영화 개봉 시기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과 겹쳐진 만큼 당시 해변에서 벌어진 전투를 연상케 하려던 것이 제작진의 의도로 보였지만 '에지 오브 투모로'의 해변 전투 씬은 과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화 보는 도중에 지루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씬', '가장 기억에 남는 씬' 같은 게 없었다. '에지 오브 투모로'는 타임 룹에 대한 영화지 액션과 VFX에 올인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으므로 크게 놀랍진 않았지만, SF 영화 치고 액션 씬이 너무 평범하고 밋밋해 보였다.

이렇다 보니 '에지 오브 투모로'는 빈곤한 소재로 톱스타를 앞세워 블록버스터처럼 억지로 만든 영화로 보였다. 원작 소설부터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애니메나 비디오게임에 더욱 적합해 보였는데, 헐리우드 베테랑 톰 크루즈를 주연으로 세워 이를 상쇄해보려 했으나 이 또한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지 않은 것 같았다. 제작진이 어떤 영화를 만들려 했는지는 알 것 같았는데 어딘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에지 오브 투모로'가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에지 오브 투모로'는 그럭저럭 볼 만한 SF 영화였다. 스토리도 그만하면 2시간 남짓한 런타임 동안 흥미를 붙들어 둘 만했고, 유머도 풍부한 편이었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엔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그러나 여름철 블록버스터로썬 약해 보였다. 만약 작년의 '오블리비언(Oblivion)'처럼 여름철이 아닌 4월에 개봉했더라면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본 SF 영화"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여름철 블록버스터로썬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제작 비용은 여름철 블록버스터 수준이 들어갔지만 퀄리티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럴 듯 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루하진 않았어도,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터미네이터처럼 무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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