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픽쳐스 해킹 사건으로 2015년 11월 개봉 예정인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의 많은 정보가 공개되었다. 이제 막 촬영에 들어간 만큼 공식적으로 알려진 정보는 얼마 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정보의 양이 상당하다. '007 스펙터' 스크립트가 유출되면서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엔딩까지의 줄거리부터 시작해서 등장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 등 상당량의 정보가 모두 새나왔다. '007 스펙터' 관련 정보가 소니 픽쳐스의 해킹 데이터들에 조금씩 묻어나오는 듯 하더니 스크립트 초안까지 유출되면서 궁금점들이 거의 대부분 해소되었다. 물론 완성된 영화는 이번에 공개된 스크립트 초안과 많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메인 스토리라인과 등장 캐릭터 등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007 스펙터' 스포일러를 훑어보니 영화가 기대됐냐고?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지난 '스카이폴(Skyfall)'을 본 이후부터 샘 멘데스(Sam Mendes) +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접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펙터' 스포일러를 훑어봤으나 결과는 "역시나" 였다. 그렇다고 아주 형편없는 정도는 아닌 듯 했지만,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클래식 본드팬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가 나오긴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소니 해킹으로 밝혀진 '007 스펙터'의 맘에 드는 점과 들지 않는 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스포일러 경고》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드러난 '007 스펙터'의 줄거리와 캐릭터 등 메이저급 스포일러가 나오므로 2015년 11월 개봉할 때까지 스포일러 없이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돌아가도록.
《스포일러 경고》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드러난 '007 스펙터'의 줄거리와 캐릭터 등 메이저급 스포일러가 나오므로 2015년 11월 개봉할 때까지 스포일러 없이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돌아가도록.
현재 '비공식' 루트로 공개된 '007 스펙터' 관련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007 제작진 측이 스크립트 유출을 공식 시인했으므로 유출된 정보의 신빙성이 높은 편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사항이 완성된 영화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유출된 정보 전체를 덮어놓고 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맞는 것도 있겠지만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포스팅은 이번에 유출된 공식 확인되지 않은 '007 스펙터' 관련 사항들을 토대로 영화의 윤곽을 보다 자세하게 더듬어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전편과 이어지는 줄거리
'스카이폴'에 실망한 본드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을 보면서 다음 번 영화부턴 보다 더 클래식 007 시리즈 쪽으로 이동할 것 같다는 희망을 본 본드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은 버리기 바란다. '007 스펙터'는 그러한 기대와 희망을 충족시켜줄 만한 영화가 못될 것으로 보인다.
'007 스펙터'의 가장 큰 문제는 줄거리가 연결된다는 데 있다.
물론 '스펙터'의 줄거리는 '스카이폴'과 바로 연결되진 않는다.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처럼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엔딩을 이어받아 스토리가 바로 이어지는 정도는 아니다. 영화감독 샘 멘데스도 '본드24'가 속편이긴 하지만 세계와 캐릭터만 이어질 뿐 줄거리는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줄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속편"이라면서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당시엔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카이폴'에서 죽은 M(주디 덴치)의 이야기 등을 꺼내면서 세계와 캐릭터가 이어진다는 느낌을 살리는 정도에서 그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007 스펙터'의 줄거리에 '스카이폴' 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배후에 스펙터가 있었다는 설정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세계와 캐릭터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스토리도 이어지는 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발생했던 사건의 배후에도 스펙터가 있었다면서 베스퍼, 미스터 화이트 등이 직-간접적으로 '007 스펙터'에 등장한다면 세계와 캐릭터만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전편들과 줄거리까지 이어진다고 해야 보다 정확하다.
007 시리즈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시리즈가 아니다. 다른 평범한 영화 시리즈에선 속편에서 전편의 줄거리를 언급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지만, 007 시리즈는 그런 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007 시리즈는 영화끼리의 연결성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시리즈다. 따라서 007 시리즈 최신작이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거나 전편에서 발생했던 이야기를 언급하는 씬이 나오면 이상해진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이 아니라서다.
"그럼 1963년작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질 수 있다. '위기일발'에서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1962년 영화 '닥터 노(Dr. No)'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언급하는 씬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007 스펙터'에서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이 언급되더라도 지난 '위기일발'에도 비슷한 씬이 나온 바 있으므로 '007 시리즈 룰'을 크게 깬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 한 편만을 놓고 따진다면 일리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위기일발'은 007 시리즈 첫 번째 속편이었다는 사실을 빼놓아선 안 된다. '위기일발'이 007 시리즈 2탄이라고 괜히 불리는 게 아니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은 문자 그대로 두 번째로 나온 제임스 본드 영화다. 007 시리즈 2탄이 제작됐던 60년대 초 당시엔 007 시리즈가 5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성공적인 장수 시리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따라서 당시엔 007 시리즈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나가겠다는 뚜렷한 컨셉트 같은 것이 없었다. 007 시리즈의 전통적인 특징과 스타일이 모두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위기일발'의 경우는 후속작의 줄거리를 전편과 연결되도록 만들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인 플롯의 영화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이전의 일이다. 모든 게 아직 불확실하던 007 시리즈 초창기에 한 번 발생했던 게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007 시리즈 24탄을 제작 중인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50년이 넘도록 007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여러 특징과 전통 같은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가 서로 줄거리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 모두 개별적인 플롯의 영화라는 점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이것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왜 자꾸 바꾸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007 제작진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다 신선하게 만들려 노력하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어떻게든 크고 작은 변화를 줄 부분을 찾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누차 지적해왔듯이, 개선하고 변화를 줄 부분과 보존, 유지해야 할 부분을 똑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듯 하다. 무조건 덮어놓고 과거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건드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건배럴 씬을 영화의 맨 마지막으로 이동시킨 것도 변화에 집착하는 007 제작진이 내놓은 유치한 아이디어 중 하나다. 모두 개별적인 플롯이던 007 시리즈를 서로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미니시리즈 스타일의 시리얼 시리즈로 바꾼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런 것을 건드리지 않고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제임스 본드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007 제작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것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계속되는 문제점이다.
유감스럽게도 '007 스펙터'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전망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완결편
'스카이폴'로 '제임스 본드 비긴스 3부작'을 마무리 짓고 '본드24'부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007 스펙터' 소식을 살펴보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미니시리즈 4부작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범죄조직 스펙터가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로 돌아옴과 함께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 등장했던 범죄조직 콴텀도 돌아온다.
이것은 사실 큰 스포일러는 아니다. 왜냐면, 며칠 전 '007 스펙터' 공식 발표 직후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 미스터 화이트 역으로 출연했던 제스퍼 크리스텐슨(Jesper Christensen)이 '스펙터'로 돌아온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콴텀 멤버였던 미스터 화이트가 '스펙터'에 등장한다는 소식은 범죄조직 콴텀의 컴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콴텀과 미스터 화이트가 '스펙터'로 돌아오는 이유는 범죄조직 콴텀과 스펙터를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이것도 물론 그리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콴텀과 스펙터를 연결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본드팬들 사이에서 오갔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007 제작진은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뿐만 아니라 콴텀이 등장하지 않았던 '스카이폴'의 배후에도 스펙터가 있었던 것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스펙터가 있었다는 쪽으로 줄거리를 몰고가려는 것이다.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콴텀 스토리와 무관했던 '스카이폴'까지 모두 한데 묶어서 하나의 스펙터 스토리로 짜맞춘다는 게 왠지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바로 이것이 007 제작진이 짜낸 '본드24' 아이디어인 것으로 밝혀졌다. 크레이그의 네 번째 영화 '스펙터'는 베스퍼, 미스터 화이트, 콴텀 등이 재등장하는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는 영화이며, '카지노 로얄'의 르 쉬프, '콴텀 오브 솔래스'의 도미닉 그린', '스카이폴'의 실바, M의 죽음 등을 모두 연결시킨 다음 "그 배후에 스펙터가 있었다"로 귀결되는 줄거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스펙터라는 새로운 범죄조직을 새로 소개하면서 굳이 이전 영화 줄거리와 연결시킬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없다. 007 시리즈는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물이 아니라 모든 영화가 독립된 줄거리를 가진 영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007 제작진은 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영화 전체를 스펙터와 억지로 연결시키려 한 것일까?
줄거리가 계속 연결되는 미니시리즈 스타일의 시리얼 시리즈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식으로밖에 줄거리를 만들지 못하는 007 시리즈 부적격자들이 제작진에 다수 포함됐기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007 스펙터'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시작한 제임스 본드 연속극(?)의 완결편에 해당하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에서 본드를 배후에서 괴롭혔던 악당을 '스펙터'에서 제거하면서 4부작 미니시리즈를 완결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리를 해가면서 크레이그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모두 스펙터와 연결시킬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스펙터'의 주제곡이 흐르는 메인 타이틀 씬에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 등 크레이그의 이전 제임스 본드 영화 씬들이 등장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물론 메인 타이틀 씬에 과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장면이 나온 적은 이전에도 있다.
007 시리즈 3탄 '골드핑거(Goldfinger)' 메인 타이틀 씬은 대부분 '골드핑거'의 씬으로 채워졌으나 2탄 '위기일발'의 씬이 잠깐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려워 보인다. '골드핑거'는 '위기일발'과 줄거리가 연결되지 않았으며, 스펙터가 적으로 나오는 영화도 아니었다.
007 시리즈 6탄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의 메인 타이틀 씬엔 1탄부터 5탄까지의 007 시리즈에 등장했던 본드걸과 악당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 '스펙터'의 경우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얼핏 보기엔 그렇게 보이지만 아니다. '여왕폐하의 007'의 메인 타이틀 씬에 지난 제임스 본드 영화의 씬이 나온 이유는 숀 코네리(Sean Connery)의 뒤를 이어 새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조지 레이전비(George Lazenby) 주연의 '여왕폐하의 007'이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보이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뀐 만큼 관객들이 낯설고 생소해 할 것을 염려해 "비록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뀌었지만 '여왕폐하의 007'도 지난 숀 코네리 시절의 바로 그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요즘엔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데 모두가 익숙하지만 1969년 당시엔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배우로 교체된 게 처음이었으므로 "얼굴만 바뀌었을 뿐 007 시리즈는 변함없이 그대로"라는 점에 포인트를 줄 필요성이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스펙터'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도 아니고, 주연배우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메인 타이틀 씬에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의 씬이 나온다면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나 싶다. 특별한 이유 없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어 보여서다.
물론 단지 "그 배후에 스펙터가 늘 있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전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썬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결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카지노 로얄'서부터 '스펙터'까지 네 편의 영화에 걸쳐 본드를 꾸준히 괴롭혔던 주범이 '스펙터'에서 해결되므로 지금까지 이어지던 스토리가 '스펙터'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또한, 이번 '스펙터'가 MGM과 소니 픽쳐스가 함께 제작하는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인 것으로 알려진 점도 '완결편' 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MGM과 소니 픽쳐스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부터 '스펙터'까지 네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제작에 함께했으나, 소니 픽쳐스 경영진과 007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가 주고받은 이메일에 의하면, '스펙터'가 마지막 영화라고 한다. MGM과 소니 픽쳐스가 앞으로 계속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도 남아있는 듯 하지만, 만약 '스펙터'가 MGM과 소니 픽쳐스가 함께 하는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라면 이들의 파트너쉽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도 '완결편'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영화?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스펙터' 스크립트 내용을 훑어보면 마지막에 본드가 핸드건을 물에 던져버린다고 하는데, 이는 007 제작진이 워너 브러더스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와 비슷한 스타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물러나게 하려는 아이디어로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완성 버전 엔딩이 현재 알려진 스크립트 내용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 전체를 마무리 짓는 의미를 띤 것만은 분명해 보이므로 크리스챤 베일(Christian Bale)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마지막으로 배트맨 수트를 벗었던 것처럼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베끼기 좋아하는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도 비슷한 방식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1968년생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나이가 '본드25'에 출연하기에 약간 많아 보인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크레이그는 46세이므로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적당한 나이지만 '스펙터'가 개봉하는 2015년엔 47세가 되며, '본드25'가 개봉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이 되면 만으로 50세가 된다. 만약 007 제작진이 '본드25'를 2017년에 개봉한다면 '50세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피할 수 있겠지만, '스펙터'의 테마가 '완결', '마무리'인 것으로 보이는데 007 제작진이 2년 안으로 '본드25'를 선보일 수 있겠는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재로썬 2015년 개봉 예정의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크레이그가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다면 아쉬워할 사람들도 물론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대가 막을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지나치게 이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카지노 로얄'로 희망차게 시작했지만 크레이그만의 개성있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창조하지 못하고 계속 '카지노 로얄' 시절의 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제자리 걸음만 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가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카지노 로얄'의 엔딩과 '콴텀 오브 솔래스'의 프리-타이틀 씬이 바로 연결될 정도였으므로 크레이그는 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도 그의 첫 번째 영화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줬던 설익은 애송이 007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일리지가 쌓이면서 노련한 베테랑이 돼가는 모습을 기대했던 본드팬들은 '카지노 로얄 파트 2'에 지나지 않았던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보여준 크레이그의 본드에 실망과 함께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레이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스카이폴'은 '콴텀 오브 솔래스'와 달리 줄거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크레이그가 '카지노 로얄' 때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서 졸업할 기회가 왔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스카이폴'에서도 그에 어울리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흉내내는 데 그치며 또 한 번 실망을 줬다. 진지하고 사실적인 이미지의 크레이그에게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겼으면 크레이그에게 그러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기회를 줬어야 했으나, 007 제작진과 크레이그는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수퍼히어로 영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 나오는 배트맨/브루스 웨인을 모델로 삼는 실수를 범했다. 크레이그에 어울리는 진지한 제임스 본드를 찾지 않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배트맨 캐릭터를 비슷하게 흉내내는 쪽으로 해결하고 넘어간 것이다. 아무리 제임스 본드가 영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나 다름 없다고 해도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서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흉내를 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크레이그가 '스카이폴'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는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의 모습이었다.
어찌됐든 그래도 '스카이폴'로 '제임스 본드 비긴스' 트릴로지가 막을 내린 듯 했으므로 크레이그의 네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약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곧 개봉할 '스펙터'에선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한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비긴스'가 지난 '스카이폴'을 끝으로 완결된 줄 알았는데,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을 둘러 보니 '스카이폴'로 끝난 게 아니라 2015년에 개봉하는 '스펙터'가 완결편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3~4부작 프로젝트 용으로 캐스팅된 듯 하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가 서로 줄거리가 이어지는 2부작 성격을 띤 영화였다는 점도 우연일 리 없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이 개봉한지 거의 10년이 돼가는데도 아직도 베스퍼, 콴텀 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007 스펙터'에서 지금까지 그를 괴롭혀왔던 주범을 찾아내 그를 없애버리고 정보부를 떠난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를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미니시리즈의 피날레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007 시리즈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007 시리즈가 이런 식으로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연속극/미니시리즈 스타일의 시리즈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겠지만, 007 제작진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선 처음부터 줄거리가 이어지는 연속극/미니시리즈 스타일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마지막도 미니시리즈 피날레 에피소드처럼 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물론 007 제작진이 이런 아이디어를 구상했다는 자체부터 맘에 들지 않지만,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만든다던 그 새롭디 새로운 21세기 제임스 본드 시리즈라는 게 이런 식이었으므로 내친 김에 마지막도 그렇게 끝내라고 하고 싶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007 스펙터'에선 본드가 강제 은퇴를 당하고 그가 속한 정보부도 존폐 여부가 불투명한 처지에 놓인다고 한다. '스카이폴'에서도 비슷한 화이트홀 드라마가 있었던 만큼 크게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이지만 이번 '스펙터'에선 본드가 여지껏 그를 괴롭혔던 원흉을 찾아내 없앨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정보부도 개판 5분 전 상황으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본드가 모든 볼일을 마친 뒤 핸드건을 집어던지며 은퇴를 암시하면서 끝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듯 하다.
그러나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스펙터'의 테마가 '마무리'라는 사실엔 큰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본드가 정보부를 완전히 떠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살리지 않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 엔딩에서도 본드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씬이 나온 바 있다.
'콴텀 오브 솔래스'의 마지막 씬에서 본드는 베스퍼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듯한 느낌을 주면서 베스퍼의 목걸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본드는 "I never left."라고 M에게 답하면서 정보부를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다.
007 제작진은 '스펙터' 엔딩도 '콴텀 오브 솔래스'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이번엔 본드가 진짜로 떠나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스펙터' 엔딩에선 진짜로 떠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건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코믹북 수준의 악당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악당이다. 제목부터 007 시리즈의 유명한 범죄조직을 의미하는 '스펙터'인 데다 '흰색 페르시아 고양이의 사나이'로 유명한 스펙터의 보스, 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의 귀환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007 스펙터'의 스토리를 훑어보니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 위해 등장하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007 제작진은 스펙터를 미래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계속 등장시킬 계획이 적어도 현재는 없는 듯 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007 제작진의 애초 계획은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이번 영화 한 편에 등장시키고 끝내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소니 픽쳐스 경연진의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007 제작진은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4부작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한 뒤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물러나게 한다는 계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007 제작진이 스펙터를 영화 한 편에 사용하고 그만 둘 생각을 했다는 게 뜻밖이긴 하다. 만약 현재 알려진 정보가 사실이라면, 007 제작진이 '스펙터'로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결지으려는 게 분명하다는 쪽으로 더욱 기울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오랜만에 007 시리즈로 돌아온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마무리' 역할을 맡는 바람에 범죄조직 스펙터의 귀환도 빛을 바랠 것으로 보인다. 스펙터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게 아니라 앞서 개봉한 세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마무리짓기 위해 등장하는 게 전부인 모양새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1971년작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이후 오피셜 007 시리즈에서 자취를 감췄던 범죄조직 스펙터와 스펙터의 리더 블로펠드가 아주 오랜만에 오피셜 007 시리즈로 다시 돌아온다는 게 큰 화제였고, 007 제작진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인지 영화 제목까지 '스펙터'로 정했지만 정작 스펙터가 맡은 역할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미니시리즈 4부작의 마무리를 짓는 게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산 속 비밀기지 등 지난 6070년대 스타일의 지나치게 과장된 코믹북 스타일 플롯까지 되돌아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겠지만, '007 스펙터'의 미지근한 플롯과 함께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제 역할을 다 하면서 화려한 컴백을 하는 게 아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망감을 드러내는 본드팬들이 눈에 띄고 있다. 본드팬들 뿐만 아니라 소니 픽쳐스 경연진 측에서도 스케일이 작다는 점 등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MGM과 소니 픽쳐스 측이 '스펙터' 스크립트의 제 3막에 집중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 또한 본드와 오버하우서가 만나면서 전개되는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건 크리스토프 발츠(Christoph Waltz)가 맡은 메인 악당 프란츠 오버하우서다. 프란츠 오버하우서는 예상했던대로 본드가 틴에이저였을 때 그에게 스키를 가르쳐준 스키 강사 한스 오버하우서의 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에선 한스 오버하우서가 본드의 수양아버지였던 것으로 나오며, 프란츠 오버하우서는 한스의 친아들이지만 한스가 자신보다 본드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척 시기했던 인물로 묘사됐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쌓이고 쌓여서 프란츠 오버하우서가 본드를 증오하게 됐으며, 평생 본드의 삶을 파괴하는 데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단 007 제작진이 이언 플레밍의 숏스토리 '옥토퍼시(Octopussy)'에 나왔던 한스 오버하우서의 이야기를 기초로 삼은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스펙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이고, '여왕폐하의 007'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알프스에서 펼쳐진 스키 씬이므로, '007 스펙터'에서 본드의 스키 강사였던 한스 오버하우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임스 본드를 자연스럽게 알프스 지역으로 다시 보내도록 하는 연결고리 역할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프란츠 오버하우서가 본드를 증오하면서 그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된 동기가 굉장히 빈약해 보였다. 틴에이저들이 주인공인 영화도 아니고 4050대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메인 악당이 본드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이유가 어렸을 때 본드가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악당 캐릭터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007 시리즈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Amazing Spider-Man)' 시리즈를 혼동하는 자들이 스크린플레이를 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영화엔 007 시리즈 아이콘 중 하나인 스펙터와 블로펠드까지 등장하는데도 줄거리를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카이폴'엔 M(주디 덴치)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실바(하비에르 바뎀)를 소개하더니 이번 '스펙터'에선 본드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로 똘똘 뭉친 오버하우서가 등장?
'스카이폴'엔 M의 과거사가 재앙으로 돌아오더니 이번 '스펙터'는 본드의 과거사의 차례?
007 제작진의 과거사 집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스펙터'는 본드가 현직 M(랄프 파인즈)이 아닌 전직 M(주디 덴치)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미션을 해결한다는 줄거리로 알려졌다.
제작진이 007 시리즈에 많은 변화를 주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단 007 시리즈다운 플롯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림직한 그럴싸한 스파이 스릴러 플롯을 우선 먼저 준비한 다음에 본드의 내면을 보여주든 뱃속을 보여주든 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지난 '스카이폴'에서부터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룰조차 무시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본드 영화를 007 시리즈가 아닌 다른 영화인 것처럼 만들고 있다. 지난 '스카이폴'과 이번 '스펙터'의 줄거리만 보더라도 007 제작진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어울리는 스파이 플롯을 준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라면서 스파이 스릴러에 어울림직한 플롯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사에 얽힌 스케일이 작은 드라마 수준에 그친 스토리를 준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007 시리즈에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007 시리즈를 파괴하는 것이다.
물론 00 섹션이 폐지될 위기에 처하자 M(랄프 파인즈)이 영국 정부 관료들과 나름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다. 지난 '스카이폴'에서 했던 비슷한 얘기를 이번 '스펙터'에서도 계속 이어서 할 모양인 듯 하다.
하지만 그런 낯 간지러운 애들 장난 수준의 말장난으로 진지한 정보부/폴리티컬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007 시리즈가 그런 폴리티컬 드라마인가? 다니엘 크레이그 스타일에 어울리는 진지하고 사실적인 스파이 스릴러 플롯을 준비하라고 했지 누가 폴리티컬 드라마를 만들라고 했나?
지난 '스카이폴'에 이어 이번 '스펙터'도 근본적인 데서부터 스크린플레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좋은 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007 제작진은 자신들이 007 시리즈를 만든다는 사실을 수시로 까먹는 것으로 보인다.
◆본드걸 리믹스
소니 해킹으로 공개된 '007 스펙터'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훑어보면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굉장히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물론 007 시리즈가 '신선도'와 거리가 먼 시리즈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번 '스펙터'는 오랜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최근에 나온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만을 다시 리믹스하는 데 그친 것처럼 보였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스펙터'가 '완결편'의 성격을 띠었다 해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이미 본 듯한 등장 캐릭터를 다시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특히 본드걸에서 이런 문제점이 바로 눈에 띄었다.
'007 스펙터'엔 이번에도 2명의 메인 본드걸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레아 세두(Léa Seydoux)가 메인 본드걸 역을 맡았고 모니카 벨루치(Monica Bellucci)가 서포팅 본드걸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007 스펙터'의 본드걸 2명이 모두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들이다.
레아 세두가 맡은 리딩 본드걸 매들린 스완은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가 맡았던 카밀과 많은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매들린 스완은 살해당한 아버지 때문에 사건에 휘말려 본드와 한 팀이 된다고 한다.
모니카 벨루치가 맡은 루씨아 씨아라는 '카지노 로얄'에서 카테리나 무리노(Caterina Murino)가 맡았던 솔랜지와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루씨아 씨아라는 본드가 살해한 남성의 아내이며, 본드가 루씨아를 유혹해 정보를 얻어낸다고 한다.
여기에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도 나온다.
'007 스펙터'엔 베스퍼가 생존했을 때가 담긴 비디오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카지노 로얄'에서 베스퍼 역을 맡았던 에바 그린(Eva Green)의 모습을 '스펙터'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가능성도 열려있는 듯 하다. 에바 그린의 모습이 직접 나오지 않더라도 '베스퍼'라는 이름이 영화에 나올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인다.
또한, '스펙터'의 리딩 본드걸인 매들린 스완이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를 연상케 하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카지노 로얄'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열차의 식당칸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이 나오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차이가 있다면, '스펙터'의 열차 식당칸 씬에선 끈끈한(?!) 내용의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따라서 '007 스펙터'의 본드걸 등장 씬들은 대부분 과거의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도 과거의 본드걸들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왔던 씬과 상당히 비슷한 장면이 다시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을 줄 것으로 보이므로 신선한 본드걸을 기대하긴 아무래도 어려울 듯 하다.
◆낯익은 액션 씬
007 제작진이 보낸 '스펙터' 스크립트를 검토한 MGM과 소니 픽쳐스 경영진이 여러 가지 불만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적으로 지난 '스카이폴'과 너무 비슷한 감이 있고, 액션 씬들도 대부분 새롭고 특별할 것이 없는 과장되고 낯익은 시퀀스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더이상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들어서 007 시리즈다운, 007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액션 씬을 더이상 찾아볼 수 없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실감과 격렬함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결과다. 이 덕분에 액션 씬은 과거 클래식 007 시리즈보다 훨씬 격렬하고 인텐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007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었던 멋과 스타일이 사라졌다. 다른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액션 씬이 전부였을 뿐 "007 시리즈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드는 "007 모멘트 시퀀스"가 사라졌다.
이번 '스펙터'엔 아주 오랜만에 멋진 설경을 배경으로 한 씬이 펼쳐지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지난 '스카이폴'처럼 무미건조하고 GENERIC한 액션 씬의 반복이 전부는 아닐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도 여전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이전 영화의 액션 씬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으로 보이므로 액션 씬에 큰 기대를 걸진 않지만, '스카이폴'보단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낯익은 액션 씬이 상당히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스카이폴'은 50주년 기념작이었으므로 과거 클래식 007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씬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번 '스펙터'도 전편 못지 않게 클래식 007 시리즈 오마쥬가 상당히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 007 시리즈 오마쥬'엔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화들도 포함된다. '스펙터'의 프리-타이틀 씬인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은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 등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본 듯한 액션 씬이 조금씩 모두 나올 뿐 아니라 '썬더볼(Thunderball)'을 연상케 하는 장면(카니발)과 캐릭터(흰색 옷의 사나이)도 등장한다.
또한, 로마에서 벌어지는 카 체이스 씬에서 본드를 추격하는 헨치맨 힝스(데이브 바티스타)가 모는 자동차가 재규어 스포츠카로 알려지면서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의 자동차 액션 씬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모로코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은 여러 편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떠올리게 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옥토퍼시(Octopussy)', 그리고 지난 '스카이폴' 등 여러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비슷해 보이는 씬을 꼽자면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열차 씬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열차 씬엔 식당칸 씬이 나오진 않았으나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오는 씬이 있었으며, 헨치맨 죠스(리처드 킬)가 본드를 공격해 한바탕 격투가 벌어진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열차 씬이 '스펙터'의 열차 씬과 완전히 똑같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지만, '스펙터'에서도 본드가 매들린과 식당칸에서 식사를 마친 뒤 헨치맨 힝스(데이브 바티스타)의 공격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007 임파서블 팀?
다니엘 크레이스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씬 중 하나는 M의 오피스 씬이다. 과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엔 거의 빠짐없이 나오던 씬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에 와선 M의 오피스에서 본드가 미션 브리핑을 받는 씬을 볼 수 없었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스카이폴' 마지막에 M의 오피스 씬이 잠깐 나온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스펙터'에선 M의 오피스 씬이 확실하게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왕폐하의 007'의 M의 오피스 씬처럼 본드가 M으로부터 기합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으므로 험상 굳은 씬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처음으로 M의 오피스에서 M과 본드가 대화하는 씬과 M의 여비서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가 근무하는 모습 등이 나올 전망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반가운 소식이다. 속도가 대단히 더디긴 해도 최근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007 시리즈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는 듯 해서다.
하지만 지금의 MI6 팀이 썩 맘에 들진 않는다. M(랄프 파인즈)은 정치인 쪽에 너무 가까워진 듯 하고 Q(벤 위샤)는 아직 존재감이 크게 부족하다.
그런데 이번 '스펙터'에선 Q와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 등이 본드와 거의 팀을 이뤄 협력하는 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니페니는 지난 '스카이폴'에서처럼 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스테로이드 맞은 머니페니의 모습을 또 보여주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순한 여비서가 아니라 본드의 미션을 여러 면으로 돕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Q도 '스펙터'에선 약간의 필드 타임을 갖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0년대엔 Q가 현장에서 본드와 함께 하는 씬이 종종 나왔으나 90년대 이후부턴 본부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아직 존재감이 크게 부족한 젊은 Q가 이번 '스펙터'에서 얼마나 비중있는 역할을 맡는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 본드, 머니페니, Q 등이 팀을 이뤄 행동한다는 설정을 보니 왠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007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화인데, 지난 '스카이폴'에서부터 MI6 오피스 멤버들이 본드와 팀을 이뤄 미션에 투입되더니 이번 '스펙터'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인지 신경 쓰인다. 물론 '미션 임파서블'과 비교될 정도로 팀이 발전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지만, MI6 오피스 멤버들이 지나칠 정도로 본드의 미션에 개입하는 것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은 문제될 게 없어도 본드가 계속해서 MI6 오피스 멤버들을 줄줄이 이끌고 다니면 보기에 좋지 않을 듯 하다.
◆가젯, 본드카, 그리고 Q의 연구실
이번 '스펙터'엔 007 시리즈에서 최근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씬이 하나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건 바로 Q의 연구실 씬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두 영화엔 Q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으며, '스카이폴'엔 젊은 Q(벤 위샤)가 새로 등장했지만 클래식 007 시리즈에서 매번 볼 수 있었던 Q의 연구실 씬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스펙터'에선 아주 오랜만에 Q의 연구실 씬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스펙터'에 나오는 Q의 연구실 씬엔 Q 섹션이 제작 중인 '본드카들'(하나가 아니다)이 나오며, 본드가 그 중 하나인 특수장치가 탑재된 '본드카'를 미션에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바로 이 '본드카'가 지난 '007 스펙터' 제작 발표 프레스 이벤트에서 공개된 아스톤 마틴 DB10이다.
아스톤 마틴 DB10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카 체이스 씬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드카' 뿐만 아니라 본드는 Q 섹션으로부터 시계 등의 추가 가젯을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007 제작진은 '스펙터'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클래식 007 시리즈와 멀어진 대신 007 시리즈에 거의 빠짐 없이 나왔던 Q의 연구실 씬과 가젯 등을 '스펙터'에 다시 등장시키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겉핥기식 제스쳐만으론 의미있는 효과를 일궈낼 수 없겠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전형적인 007 시리즈의 궤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는 비판을 약간이나마 의식한 듯 하다.
또한, 이번 영화에도 소니전자와 소니 모바일의 제품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측은 본드가 소니의 엑스페리아(Xperia)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007 제작진 측에 제품 배치와 마케팅 딜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스펙터'에도 소니 제품들이 영화에 사용되는 쪽으로 결정난 것으로 전해졌다.
◆유머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줄곧 지적받았던 점 중 하나는 유머의 부재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코믹 연기에 능한 배우가 아니므로 크게 놀라운 문제는 아니었으나, 영화가 어둡고 진지해지면서 영화가 너무 딱딱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사라졌으며 유머도 바짝 매말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007 제작진은 '스펙터' 스크립트 다듬기 작업을 하면서 유머 파트를 보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덕분인지, 이번 '스펙터'엔 본드와 여자 캐릭터(마이너 본드걸)가 연루된 다소 난감하고 유머러스한 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와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에 나왔던 씬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스펙터'의 스크립트 다듬기 작업을 맡았던 영국 스크린라이터 듀오 닐 퍼비스(Neil Purvis)와 로버트 웨이드(Robert Wade)가 지난 90년대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007 시리즈 스크린플레이를 썼던 작가들이라서 다니엘 크레이그 영화에 유머를 보탠다면서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 영화 스타일의 유머를 넣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던 적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작가들이 '스펙터'에 유머를 집어넣으려 노력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왠지 '어게인 90년대'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유머도 중요하지만 저런 유머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와 과히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아서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로저 무어나 피어스 브로스난처럼 핸썸한 플레이보이 이미지가 아니라서 저런 유머 씬이 자연스럽게 보일지, 아니면 다소 과하게 시도한 것으로 보일지 두고봐야 할 듯 하다.
하지만 본드가 자위행위를 하다가 머니페니에게 들키는 것보다는 나을 듯...
아무튼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007 스펙터' 스포일러를 훑어보니 영화가 기대됐냐고?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지난 '스카이폴(Skyfall)'을 본 이후부터 샘 멘데스(Sam Mendes) +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접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펙터' 스포일러를 훑어봤으나 결과는 "역시나" 였다. 그렇다고 아주 형편없는 정도는 아닌 듯 했지만,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클래식 본드팬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가 나오긴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소니 해킹으로 밝혀진 '007 스펙터'의 맘에 드는 점과 들지 않는 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스포일러 경고》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드러난 '007 스펙터'의 줄거리와 캐릭터 등 메이저급 스포일러가 나오므로 2015년 11월 개봉할 때까지 스포일러 없이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돌아가도록.
《스포일러 경고》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드러난 '007 스펙터'의 줄거리와 캐릭터 등 메이저급 스포일러가 나오므로 2015년 11월 개봉할 때까지 스포일러 없이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돌아가도록.
현재 '비공식' 루트로 공개된 '007 스펙터' 관련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007 제작진 측이 스크립트 유출을 공식 시인했으므로 유출된 정보의 신빙성이 높은 편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사항이 완성된 영화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유출된 정보 전체를 덮어놓고 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맞는 것도 있겠지만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포스팅은 이번에 유출된 공식 확인되지 않은 '007 스펙터' 관련 사항들을 토대로 영화의 윤곽을 보다 자세하게 더듬어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전편과 이어지는 줄거리
'스카이폴'에 실망한 본드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을 보면서 다음 번 영화부턴 보다 더 클래식 007 시리즈 쪽으로 이동할 것 같다는 희망을 본 본드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희망은 버리기 바란다. '007 스펙터'는 그러한 기대와 희망을 충족시켜줄 만한 영화가 못될 것으로 보인다.
'007 스펙터'의 가장 큰 문제는 줄거리가 연결된다는 데 있다.
물론 '스펙터'의 줄거리는 '스카이폴'과 바로 연결되진 않는다.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처럼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엔딩을 이어받아 스토리가 바로 이어지는 정도는 아니다. 영화감독 샘 멘데스도 '본드24'가 속편이긴 하지만 세계와 캐릭터만 이어질 뿐 줄거리는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줄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속편"이라면서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당시엔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카이폴'에서 죽은 M(주디 덴치)의 이야기 등을 꺼내면서 세계와 캐릭터가 이어진다는 느낌을 살리는 정도에서 그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007 스펙터'의 줄거리에 '스카이폴' 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배후에 스펙터가 있었다는 설정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세계와 캐릭터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스토리도 이어지는 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발생했던 사건의 배후에도 스펙터가 있었다면서 베스퍼, 미스터 화이트 등이 직-간접적으로 '007 스펙터'에 등장한다면 세계와 캐릭터만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전편들과 줄거리까지 이어진다고 해야 보다 정확하다.
007 시리즈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시리즈가 아니다. 다른 평범한 영화 시리즈에선 속편에서 전편의 줄거리를 언급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지만, 007 시리즈는 그런 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007 시리즈는 영화끼리의 연결성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시리즈다. 따라서 007 시리즈 최신작이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거나 전편에서 발생했던 이야기를 언급하는 씬이 나오면 이상해진다. 전통적인 007 시리즈 스타일이 아니라서다.
"그럼 1963년작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질 수 있다. '위기일발'에서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1962년 영화 '닥터 노(Dr. No)'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언급하는 씬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007 스펙터'에서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이 언급되더라도 지난 '위기일발'에도 비슷한 씬이 나온 바 있으므로 '007 시리즈 룰'을 크게 깬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 한 편만을 놓고 따진다면 일리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위기일발'은 007 시리즈 첫 번째 속편이었다는 사실을 빼놓아선 안 된다. '위기일발'이 007 시리즈 2탄이라고 괜히 불리는 게 아니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은 문자 그대로 두 번째로 나온 제임스 본드 영화다. 007 시리즈 2탄이 제작됐던 60년대 초 당시엔 007 시리즈가 5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성공적인 장수 시리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따라서 당시엔 007 시리즈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나가겠다는 뚜렷한 컨셉트 같은 것이 없었다. 007 시리즈의 전통적인 특징과 스타일이 모두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위기일발'의 경우는 후속작의 줄거리를 전편과 연결되도록 만들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인 플롯의 영화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이전의 일이다. 모든 게 아직 불확실하던 007 시리즈 초창기에 한 번 발생했던 게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007 시리즈 24탄을 제작 중인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50년이 넘도록 007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여러 특징과 전통 같은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가 서로 줄거리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 모두 개별적인 플롯의 영화라는 점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이것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왜 자꾸 바꾸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007 제작진이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다 신선하게 만들려 노력하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어떻게든 크고 작은 변화를 줄 부분을 찾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누차 지적해왔듯이, 개선하고 변화를 줄 부분과 보존, 유지해야 할 부분을 똑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듯 하다. 무조건 덮어놓고 과거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건드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서 건배럴 씬을 영화의 맨 마지막으로 이동시킨 것도 변화에 집착하는 007 제작진이 내놓은 유치한 아이디어 중 하나다. 모두 개별적인 플롯이던 007 시리즈를 서로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미니시리즈 스타일의 시리얼 시리즈로 바꾼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런 것을 건드리지 않고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제임스 본드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007 제작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것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계속되는 문제점이다.
유감스럽게도 '007 스펙터'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전망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완결편
'스카이폴'로 '제임스 본드 비긴스 3부작'을 마무리 짓고 '본드24'부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007 스펙터' 소식을 살펴보니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미니시리즈 4부작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범죄조직 스펙터가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로 돌아옴과 함께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 등장했던 범죄조직 콴텀도 돌아온다.
이것은 사실 큰 스포일러는 아니다. 왜냐면, 며칠 전 '007 스펙터' 공식 발표 직후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에 미스터 화이트 역으로 출연했던 제스퍼 크리스텐슨(Jesper Christensen)이 '스펙터'로 돌아온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콴텀 멤버였던 미스터 화이트가 '스펙터'에 등장한다는 소식은 범죄조직 콴텀의 컴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콴텀과 미스터 화이트가 '스펙터'로 돌아오는 이유는 범죄조직 콴텀과 스펙터를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이것도 물론 그리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콴텀과 스펙터를 연결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본드팬들 사이에서 오갔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007 제작진은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뿐만 아니라 콴텀이 등장하지 않았던 '스카이폴'의 배후에도 스펙터가 있었던 것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에서 벌어졌던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스펙터가 있었다는 쪽으로 줄거리를 몰고가려는 것이다. '카지노 로얄'과 '콴텀 오브 솔래스'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콴텀 스토리와 무관했던 '스카이폴'까지 모두 한데 묶어서 하나의 스펙터 스토리로 짜맞춘다는 게 왠지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바로 이것이 007 제작진이 짜낸 '본드24' 아이디어인 것으로 밝혀졌다. 크레이그의 네 번째 영화 '스펙터'는 베스퍼, 미스터 화이트, 콴텀 등이 재등장하는 전편과 줄거리가 이어지는 영화이며, '카지노 로얄'의 르 쉬프, '콴텀 오브 솔래스'의 도미닉 그린', '스카이폴'의 실바, M의 죽음 등을 모두 연결시킨 다음 "그 배후에 스펙터가 있었다"로 귀결되는 줄거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스펙터라는 새로운 범죄조직을 새로 소개하면서 굳이 이전 영화 줄거리와 연결시킬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없다. 007 시리즈는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물이 아니라 모든 영화가 독립된 줄거리를 가진 영화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007 제작진은 왜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영화 전체를 스펙터와 억지로 연결시키려 한 것일까?
줄거리가 계속 연결되는 미니시리즈 스타일의 시리얼 시리즈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식으로밖에 줄거리를 만들지 못하는 007 시리즈 부적격자들이 제작진에 다수 포함됐기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007 스펙터'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시작한 제임스 본드 연속극(?)의 완결편에 해당하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에서 본드를 배후에서 괴롭혔던 악당을 '스펙터'에서 제거하면서 4부작 미니시리즈를 완결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리를 해가면서 크레이그가 출연한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모두 스펙터와 연결시킬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스펙터'의 주제곡이 흐르는 메인 타이틀 씬에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 등 크레이그의 이전 제임스 본드 영화 씬들이 등장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물론 메인 타이틀 씬에 과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장면이 나온 적은 이전에도 있다.
007 시리즈 3탄 '골드핑거(Goldfinger)' 메인 타이틀 씬은 대부분 '골드핑거'의 씬으로 채워졌으나 2탄 '위기일발'의 씬이 잠깐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려워 보인다. '골드핑거'는 '위기일발'과 줄거리가 연결되지 않았으며, 스펙터가 적으로 나오는 영화도 아니었다.
007 시리즈 6탄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의 메인 타이틀 씬엔 1탄부터 5탄까지의 007 시리즈에 등장했던 본드걸과 악당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 '스펙터'의 경우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얼핏 보기엔 그렇게 보이지만 아니다. '여왕폐하의 007'의 메인 타이틀 씬에 지난 제임스 본드 영화의 씬이 나온 이유는 숀 코네리(Sean Connery)의 뒤를 이어 새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조지 레이전비(George Lazenby) 주연의 '여왕폐하의 007'이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보이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뀐 만큼 관객들이 낯설고 생소해 할 것을 염려해 "비록 제임스 본드의 얼굴이 바뀌었지만 '여왕폐하의 007'도 지난 숀 코네리 시절의 바로 그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요즘엔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데 모두가 익숙하지만 1969년 당시엔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배우로 교체된 게 처음이었으므로 "얼굴만 바뀌었을 뿐 007 시리즈는 변함없이 그대로"라는 점에 포인트를 줄 필요성이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스펙터'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도 아니고, 주연배우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메인 타이틀 씬에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의 씬이 나온다면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나 싶다. 특별한 이유 없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어 보여서다.
물론 단지 "그 배후에 스펙터가 늘 있었다"는 단순한 의미가 전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썬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결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카지노 로얄'서부터 '스펙터'까지 네 편의 영화에 걸쳐 본드를 꾸준히 괴롭혔던 주범이 '스펙터'에서 해결되므로 지금까지 이어지던 스토리가 '스펙터'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또한, 이번 '스펙터'가 MGM과 소니 픽쳐스가 함께 제작하는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인 것으로 알려진 점도 '완결편' 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MGM과 소니 픽쳐스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부터 '스펙터'까지 네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 제작에 함께했으나, 소니 픽쳐스 경영진과 007 프로듀서 바바라 브로콜리가 주고받은 이메일에 의하면, '스펙터'가 마지막 영화라고 한다. MGM과 소니 픽쳐스가 앞으로 계속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도 남아있는 듯 하지만, 만약 '스펙터'가 MGM과 소니 픽쳐스가 함께 하는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라면 이들의 파트너쉽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도 '완결편'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영화?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스펙터' 스크립트 내용을 훑어보면 마지막에 본드가 핸드건을 물에 던져버린다고 하는데, 이는 007 제작진이 워너 브러더스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와 비슷한 스타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물러나게 하려는 아이디어로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완성 버전 엔딩이 현재 알려진 스크립트 내용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 전체를 마무리 짓는 의미를 띤 것만은 분명해 보이므로 크리스챤 베일(Christian Bale)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마지막으로 배트맨 수트를 벗었던 것처럼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베끼기 좋아하는 007 제작진과 다니엘 크레이그도 비슷한 방식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1968년생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나이가 '본드25'에 출연하기에 약간 많아 보인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크레이그는 46세이므로 제임스 본드를 맡기에 적당한 나이지만 '스펙터'가 개봉하는 2015년엔 47세가 되며, '본드25'가 개봉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이 되면 만으로 50세가 된다. 만약 007 제작진이 '본드25'를 2017년에 개봉한다면 '50세 제임스 본드'의 탄생을 피할 수 있겠지만, '스펙터'의 테마가 '완결', '마무리'인 것으로 보이는데 007 제작진이 2년 안으로 '본드25'를 선보일 수 있겠는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재로썬 2015년 개봉 예정의 '스펙터'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크레이그가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007 시리즈를 떠난다면 아쉬워할 사람들도 물론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대가 막을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지나치게 이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카지노 로얄'로 희망차게 시작했지만 크레이그만의 개성있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창조하지 못하고 계속 '카지노 로얄' 시절의 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제자리 걸음만 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가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카지노 로얄'의 엔딩과 '콴텀 오브 솔래스'의 프리-타이틀 씬이 바로 연결될 정도였으므로 크레이그는 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도 그의 첫 번째 영화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줬던 설익은 애송이 007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일리지가 쌓이면서 노련한 베테랑이 돼가는 모습을 기대했던 본드팬들은 '카지노 로얄 파트 2'에 지나지 않았던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보여준 크레이그의 본드에 실망과 함께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레이그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스카이폴'은 '콴텀 오브 솔래스'와 달리 줄거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크레이그가 '카지노 로얄' 때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서 졸업할 기회가 왔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스카이폴'에서도 그에 어울리는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흉내내는 데 그치며 또 한 번 실망을 줬다. 진지하고 사실적인 이미지의 크레이그에게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겼으면 크레이그에게 그러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기회를 줬어야 했으나, 007 제작진과 크레이그는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수퍼히어로 영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 나오는 배트맨/브루스 웨인을 모델로 삼는 실수를 범했다. 크레이그에 어울리는 진지한 제임스 본드를 찾지 않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배트맨 캐릭터를 비슷하게 흉내내는 쪽으로 해결하고 넘어간 것이다. 아무리 제임스 본드가 영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나 다름 없다고 해도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서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흉내를 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크레이그가 '스카이폴'에서 보여준 제임스 본드는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의 모습이었다.
어찌됐든 그래도 '스카이폴'로 '제임스 본드 비긴스' 트릴로지가 막을 내린 듯 했으므로 크레이그의 네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약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곧 개봉할 '스펙터'에선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한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비긴스'가 지난 '스카이폴'을 끝으로 완결된 줄 알았는데,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을 둘러 보니 '스카이폴'로 끝난 게 아니라 2015년에 개봉하는 '스펙터'가 완결편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3~4부작 프로젝트 용으로 캐스팅된 듯 하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가 서로 줄거리가 이어지는 2부작 성격을 띤 영화였다는 점도 우연일 리 없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크레이그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이 개봉한지 거의 10년이 돼가는데도 아직도 베스퍼, 콴텀 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캐릭터가 '007 스펙터'에서 지금까지 그를 괴롭혀왔던 주범을 찾아내 그를 없애버리고 정보부를 떠난다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 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를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지도 모른다. 미니시리즈의 피날레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007 시리즈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007 시리즈가 이런 식으로 줄거리가 계속 이어지는 연속극/미니시리즈 스타일의 시리즈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겠지만, 007 제작진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와선 처음부터 줄거리가 이어지는 연속극/미니시리즈 스타일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마지막도 미니시리즈 피날레 에피소드처럼 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물론 007 제작진이 이런 아이디어를 구상했다는 자체부터 맘에 들지 않지만, 007 제작진이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만든다던 그 새롭디 새로운 21세기 제임스 본드 시리즈라는 게 이런 식이었으므로 내친 김에 마지막도 그렇게 끝내라고 하고 싶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007 스펙터'에선 본드가 강제 은퇴를 당하고 그가 속한 정보부도 존폐 여부가 불투명한 처지에 놓인다고 한다. '스카이폴'에서도 비슷한 화이트홀 드라마가 있었던 만큼 크게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이지만 이번 '스펙터'에선 본드가 여지껏 그를 괴롭혔던 원흉을 찾아내 없앨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정보부도 개판 5분 전 상황으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본드가 모든 볼일을 마친 뒤 핸드건을 집어던지며 은퇴를 암시하면서 끝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듯 하다.
그러나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스펙터'의 테마가 '마무리'라는 사실엔 큰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본드가 정보부를 완전히 떠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살리지 않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크레이그의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 엔딩에서도 본드가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씬이 나온 바 있다.
'콴텀 오브 솔래스'의 마지막 씬에서 본드는 베스퍼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듯한 느낌을 주면서 베스퍼의 목걸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본드는 "I never left."라고 M에게 답하면서 정보부를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님을 분명하게 밝혔다.
007 제작진은 '스펙터' 엔딩도 '콴텀 오브 솔래스'의 것과 비슷하게 만들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이번엔 본드가 진짜로 떠나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스펙터' 엔딩에선 진짜로 떠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건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코믹북 수준의 악당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악당이다. 제목부터 007 시리즈의 유명한 범죄조직을 의미하는 '스펙터'인 데다 '흰색 페르시아 고양이의 사나이'로 유명한 스펙터의 보스, 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의 귀환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007 스펙터'의 스토리를 훑어보니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 위해 등장하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007 제작진은 스펙터를 미래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계속 등장시킬 계획이 적어도 현재는 없는 듯 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007 제작진의 애초 계획은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이번 영화 한 편에 등장시키고 끝내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픽쳐스 해킹으로 유출된 소니 픽쳐스 경연진의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007 제작진은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4부작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한 뒤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물러나게 한다는 계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007 제작진이 스펙터를 영화 한 편에 사용하고 그만 둘 생각을 했다는 게 뜻밖이긴 하다. 만약 현재 알려진 정보가 사실이라면, 007 제작진이 '스펙터'로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결지으려는 게 분명하다는 쪽으로 더욱 기울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오랜만에 007 시리즈로 돌아온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마무리' 역할을 맡는 바람에 범죄조직 스펙터의 귀환도 빛을 바랠 것으로 보인다. 스펙터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게 아니라 앞서 개봉한 세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마무리짓기 위해 등장하는 게 전부인 모양새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1971년작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이후 오피셜 007 시리즈에서 자취를 감췄던 범죄조직 스펙터와 스펙터의 리더 블로펠드가 아주 오랜만에 오피셜 007 시리즈로 다시 돌아온다는 게 큰 화제였고, 007 제작진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인지 영화 제목까지 '스펙터'로 정했지만 정작 스펙터가 맡은 역할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미니시리즈 4부작의 마무리를 짓는 게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산 속 비밀기지 등 지난 6070년대 스타일의 지나치게 과장된 코믹북 스타일 플롯까지 되돌아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겠지만, '007 스펙터'의 미지근한 플롯과 함께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제 역할을 다 하면서 화려한 컴백을 하는 게 아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망감을 드러내는 본드팬들이 눈에 띄고 있다. 본드팬들 뿐만 아니라 소니 픽쳐스 경연진 측에서도 스케일이 작다는 점 등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MGM과 소니 픽쳐스 측이 '스펙터' 스크립트의 제 3막에 집중적으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 또한 본드와 오버하우서가 만나면서 전개되는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건 크리스토프 발츠(Christoph Waltz)가 맡은 메인 악당 프란츠 오버하우서다. 프란츠 오버하우서는 예상했던대로 본드가 틴에이저였을 때 그에게 스키를 가르쳐준 스키 강사 한스 오버하우서의 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에선 한스 오버하우서가 본드의 수양아버지였던 것으로 나오며, 프란츠 오버하우서는 한스의 친아들이지만 한스가 자신보다 본드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척 시기했던 인물로 묘사됐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쌓이고 쌓여서 프란츠 오버하우서가 본드를 증오하게 됐으며, 평생 본드의 삶을 파괴하는 데 집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단 007 제작진이 이언 플레밍의 숏스토리 '옥토퍼시(Octopussy)'에 나왔던 한스 오버하우서의 이야기를 기초로 삼은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스펙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이고, '여왕폐하의 007'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알프스에서 펼쳐진 스키 씬이므로, '007 스펙터'에서 본드의 스키 강사였던 한스 오버하우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임스 본드를 자연스럽게 알프스 지역으로 다시 보내도록 하는 연결고리 역할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프란츠 오버하우서가 본드를 증오하면서 그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된 동기가 굉장히 빈약해 보였다. 틴에이저들이 주인공인 영화도 아니고 4050대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메인 악당이 본드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이유가 어렸을 때 본드가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악당 캐릭터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007 시리즈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Amazing Spider-Man)' 시리즈를 혼동하는 자들이 스크린플레이를 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영화엔 007 시리즈 아이콘 중 하나인 스펙터와 블로펠드까지 등장하는데도 줄거리를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카이폴'엔 M(주디 덴치)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실바(하비에르 바뎀)를 소개하더니 이번 '스펙터'에선 본드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로 똘똘 뭉친 오버하우서가 등장?
'스카이폴'엔 M의 과거사가 재앙으로 돌아오더니 이번 '스펙터'는 본드의 과거사의 차례?
007 제작진의 과거사 집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스펙터'는 본드가 현직 M(랄프 파인즈)이 아닌 전직 M(주디 덴치)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미션을 해결한다는 줄거리로 알려졌다.
제작진이 007 시리즈에 많은 변화를 주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단 007 시리즈다운 플롯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 잘 어울림직한 그럴싸한 스파이 스릴러 플롯을 우선 먼저 준비한 다음에 본드의 내면을 보여주든 뱃속을 보여주든 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지난 '스카이폴'에서부터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룰조차 무시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본드 영화를 007 시리즈가 아닌 다른 영화인 것처럼 만들고 있다. 지난 '스카이폴'과 이번 '스펙터'의 줄거리만 보더라도 007 제작진이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어울리는 스파이 플롯을 준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라면서 스파이 스릴러에 어울림직한 플롯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사에 얽힌 스케일이 작은 드라마 수준에 그친 스토리를 준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건 007 시리즈에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007 시리즈를 파괴하는 것이다.
물론 00 섹션이 폐지될 위기에 처하자 M(랄프 파인즈)이 영국 정부 관료들과 나름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긴 했다. 지난 '스카이폴'에서 했던 비슷한 얘기를 이번 '스펙터'에서도 계속 이어서 할 모양인 듯 하다.
하지만 그런 낯 간지러운 애들 장난 수준의 말장난으로 진지한 정보부/폴리티컬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007 시리즈가 그런 폴리티컬 드라마인가? 다니엘 크레이그 스타일에 어울리는 진지하고 사실적인 스파이 스릴러 플롯을 준비하라고 했지 누가 폴리티컬 드라마를 만들라고 했나?
지난 '스카이폴'에 이어 이번 '스펙터'도 근본적인 데서부터 스크린플레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좋은 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007 제작진은 자신들이 007 시리즈를 만든다는 사실을 수시로 까먹는 것으로 보인다.
◆본드걸 리믹스
소니 해킹으로 공개된 '007 스펙터'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훑어보면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굉장히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물론 007 시리즈가 '신선도'와 거리가 먼 시리즈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번 '스펙터'는 오랜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최근에 나온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제임스 본드 영화만을 다시 리믹스하는 데 그친 것처럼 보였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스펙터'가 '완결편'의 성격을 띠었다 해도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이미 본 듯한 등장 캐릭터를 다시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특히 본드걸에서 이런 문제점이 바로 눈에 띄었다.
'007 스펙터'엔 이번에도 2명의 메인 본드걸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레아 세두(Léa Seydoux)가 메인 본드걸 역을 맡았고 모니카 벨루치(Monica Bellucci)가 서포팅 본드걸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007 스펙터'의 본드걸 2명이 모두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들이다.
레아 세두가 맡은 리딩 본드걸 매들린 스완은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가 맡았던 카밀과 많은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매들린 스완은 살해당한 아버지 때문에 사건에 휘말려 본드와 한 팀이 된다고 한다.
모니카 벨루치가 맡은 루씨아 씨아라는 '카지노 로얄'에서 카테리나 무리노(Caterina Murino)가 맡았던 솔랜지와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루씨아 씨아라는 본드가 살해한 남성의 아내이며, 본드가 루씨아를 유혹해 정보를 얻어낸다고 한다.
여기에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도 나온다.
'007 스펙터'엔 베스퍼가 생존했을 때가 담긴 비디오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카지노 로얄'에서 베스퍼 역을 맡았던 에바 그린(Eva Green)의 모습을 '스펙터'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가능성도 열려있는 듯 하다. 에바 그린의 모습이 직접 나오지 않더라도 '베스퍼'라는 이름이 영화에 나올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인다.
또한, '스펙터'의 리딩 본드걸인 매들린 스완이 '카지노 로얄'의 베스퍼를 연상케 하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카지노 로얄'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열차의 식당칸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이 나오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차이가 있다면, '스펙터'의 열차 식당칸 씬에선 끈끈한(?!) 내용의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따라서 '007 스펙터'의 본드걸 등장 씬들은 대부분 과거의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도 과거의 본드걸들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왔던 씬과 상당히 비슷한 장면이 다시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을 줄 것으로 보이므로 신선한 본드걸을 기대하긴 아무래도 어려울 듯 하다.
◆낯익은 액션 씬
007 제작진이 보낸 '스펙터' 스크립트를 검토한 MGM과 소니 픽쳐스 경영진이 여러 가지 불만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적으로 지난 '스카이폴'과 너무 비슷한 감이 있고, 액션 씬들도 대부분 새롭고 특별할 것이 없는 과장되고 낯익은 시퀀스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더이상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에 들어서 007 시리즈다운, 007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액션 씬을 더이상 찾아볼 수 없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실감과 격렬함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결과다. 이 덕분에 액션 씬은 과거 클래식 007 시리즈보다 훨씬 격렬하고 인텐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007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었던 멋과 스타일이 사라졌다. 다른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액션 씬이 전부였을 뿐 "007 시리즈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드는 "007 모멘트 시퀀스"가 사라졌다.
이번 '스펙터'엔 아주 오랜만에 멋진 설경을 배경으로 한 씬이 펼쳐지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지난 '스카이폴'처럼 무미건조하고 GENERIC한 액션 씬의 반복이 전부는 아닐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도 여전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이전 영화의 액션 씬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으로 보이므로 액션 씬에 큰 기대를 걸진 않지만, '스카이폴'보단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낯익은 액션 씬이 상당히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스카이폴'은 50주년 기념작이었으므로 과거 클래식 007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씬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번 '스펙터'도 전편 못지 않게 클래식 007 시리즈 오마쥬가 상당히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 007 시리즈 오마쥬'엔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화들도 포함된다. '스펙터'의 프리-타이틀 씬인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은 '카지노 로얄', '콴텀 오브 솔래스', '스카이폴' 등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본 듯한 액션 씬이 조금씩 모두 나올 뿐 아니라 '썬더볼(Thunderball)'을 연상케 하는 장면(카니발)과 캐릭터(흰색 옷의 사나이)도 등장한다.
또한, 로마에서 벌어지는 카 체이스 씬에서 본드를 추격하는 헨치맨 힝스(데이브 바티스타)가 모는 자동차가 재규어 스포츠카로 알려지면서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의 자동차 액션 씬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모로코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은 여러 편의 클래식 제임스 본드 영화를 떠올리게 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 '옥토퍼시(Octopussy)', 그리고 지난 '스카이폴' 등 여러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열차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비슷해 보이는 씬을 꼽자면 1977년작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열차 씬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열차 씬엔 식당칸 씬이 나오진 않았으나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오는 씬이 있었으며, 헨치맨 죠스(리처드 킬)가 본드를 공격해 한바탕 격투가 벌어진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열차 씬이 '스펙터'의 열차 씬과 완전히 똑같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지만, '스펙터'에서도 본드가 매들린과 식당칸에서 식사를 마친 뒤 헨치맨 힝스(데이브 바티스타)의 공격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007 임파서블 팀?
다니엘 크레이스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씬 중 하나는 M의 오피스 씬이다. 과거의 제임스 본드 영화엔 거의 빠짐없이 나오던 씬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니엘 크레이그의 시대에 와선 M의 오피스에서 본드가 미션 브리핑을 받는 씬을 볼 수 없었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스카이폴' 마지막에 M의 오피스 씬이 잠깐 나온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스펙터'에선 M의 오피스 씬이 확실하게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왕폐하의 007'의 M의 오피스 씬처럼 본드가 M으로부터 기합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으므로 험상 굳은 씬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처음으로 M의 오피스에서 M과 본드가 대화하는 씬과 M의 여비서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가 근무하는 모습 등이 나올 전망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반가운 소식이다. 속도가 대단히 더디긴 해도 최근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007 시리즈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는 듯 해서다.
하지만 지금의 MI6 팀이 썩 맘에 들진 않는다. M(랄프 파인즈)은 정치인 쪽에 너무 가까워진 듯 하고 Q(벤 위샤)는 아직 존재감이 크게 부족하다.
그런데 이번 '스펙터'에선 Q와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 등이 본드와 거의 팀을 이뤄 협력하는 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니페니는 지난 '스카이폴'에서처럼 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스테로이드 맞은 머니페니의 모습을 또 보여주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순한 여비서가 아니라 본드의 미션을 여러 면으로 돕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Q도 '스펙터'에선 약간의 필드 타임을 갖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0년대엔 Q가 현장에서 본드와 함께 하는 씬이 종종 나왔으나 90년대 이후부턴 본부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아직 존재감이 크게 부족한 젊은 Q가 이번 '스펙터'에서 얼마나 비중있는 역할을 맡는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 본드, 머니페니, Q 등이 팀을 이뤄 행동한다는 설정을 보니 왠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007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화인데, 지난 '스카이폴'에서부터 MI6 오피스 멤버들이 본드와 팀을 이뤄 미션에 투입되더니 이번 '스펙터'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인지 신경 쓰인다. 물론 '미션 임파서블'과 비교될 정도로 팀이 발전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지만, MI6 오피스 멤버들이 지나칠 정도로 본드의 미션에 개입하는 것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은 문제될 게 없어도 본드가 계속해서 MI6 오피스 멤버들을 줄줄이 이끌고 다니면 보기에 좋지 않을 듯 하다.
◆가젯, 본드카, 그리고 Q의 연구실
이번 '스펙터'엔 007 시리즈에서 최근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씬이 하나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건 바로 Q의 연구실 씬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두 영화엔 Q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으며, '스카이폴'엔 젊은 Q(벤 위샤)가 새로 등장했지만 클래식 007 시리즈에서 매번 볼 수 있었던 Q의 연구실 씬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스펙터'에선 아주 오랜만에 Q의 연구실 씬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스펙터'에 나오는 Q의 연구실 씬엔 Q 섹션이 제작 중인 '본드카들'(하나가 아니다)이 나오며, 본드가 그 중 하나인 특수장치가 탑재된 '본드카'를 미션에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바로 이 '본드카'가 지난 '007 스펙터' 제작 발표 프레스 이벤트에서 공개된 아스톤 마틴 DB10이다.
아스톤 마틴 DB10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카 체이스 씬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드카' 뿐만 아니라 본드는 Q 섹션으로부터 시계 등의 추가 가젯을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007 제작진은 '스펙터'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클래식 007 시리즈와 멀어진 대신 007 시리즈에 거의 빠짐 없이 나왔던 Q의 연구실 씬과 가젯 등을 '스펙터'에 다시 등장시키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겉핥기식 제스쳐만으론 의미있는 효과를 일궈낼 수 없겠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전형적인 007 시리즈의 궤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는 비판을 약간이나마 의식한 듯 하다.
또한, 이번 영화에도 소니전자와 소니 모바일의 제품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측은 본드가 소니의 엑스페리아(Xperia)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007 제작진 측에 제품 배치와 마케팅 딜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스펙터'에도 소니 제품들이 영화에 사용되는 쪽으로 결정난 것으로 전해졌다.
◆유머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줄곧 지적받았던 점 중 하나는 유머의 부재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코믹 연기에 능한 배우가 아니므로 크게 놀라운 문제는 아니었으나, 영화가 어둡고 진지해지면서 영화가 너무 딱딱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사라졌으며 유머도 바짝 매말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007 제작진은 '스펙터' 스크립트 다듬기 작업을 하면서 유머 파트를 보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덕분인지, 이번 '스펙터'엔 본드와 여자 캐릭터(마이너 본드걸)가 연루된 다소 난감하고 유머러스한 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작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와 1997년작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에 나왔던 씬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스펙터'의 스크립트 다듬기 작업을 맡았던 영국 스크린라이터 듀오 닐 퍼비스(Neil Purvis)와 로버트 웨이드(Robert Wade)가 지난 90년대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007 시리즈 스크린플레이를 썼던 작가들이라서 다니엘 크레이그 영화에 유머를 보탠다면서 지난 피어스 브로스난 영화 스타일의 유머를 넣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던 적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해 보면 작가들이 '스펙터'에 유머를 집어넣으려 노력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왠지 '어게인 90년대'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긴다. 유머도 중요하지만 저런 유머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와 과히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아서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로저 무어나 피어스 브로스난처럼 핸썸한 플레이보이 이미지가 아니라서 저런 유머 씬이 자연스럽게 보일지, 아니면 다소 과하게 시도한 것으로 보일지 두고봐야 할 듯 하다.
하지만 본드가 자위행위를 하다가 머니페니에게 들키는 것보다는 나을 듯...
아무튼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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