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TV 시리즈 '맨 프롬 엉클(Man from U.N.C.L.E.)'을 영화로 제작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워너 브러더스가 '맨 프롬 엉클'을 영화로 옮긴다는 보도가 꾸준히 나왔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를 비롯한 여러 영화배우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모두 프로젝트를 떠나면서 '맨 프롬 엉클' 프로젝트는 몇 해 동안 진전이 없었다.
'맨 프롬 엉클' 프로젝트가 다시 진전을 보이기 시작한 건 2013년이 돼서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던 제작진이 드디어 출연진과 영화감독을 모두 찾은 듯 했다.
톰 크루즈(Tom Cruise), 아미 해머(Armie Hammer), 앨리씨아 비캔더(Alicia Vikander)로 출연진이 결정되고, 연출은 영국 영화감독 가이 리치(Guy Richie)가 맡는 것으로 확정되는 듯 했다. 크루즈가 미국 에이전트, 나폴레옹 솔로(Napoleon Solo) 역을 맡고 아미 해머가 러시안 에이전트, 일리야 쿠리야킨(Illya Kuryakin) 역을 맡는 것으로 주연배우 캐스팅이 마무리된 듯 했다.
그러나 톰 크루즈가 '맨 프롬 엉클' 프로젝트에서 드롭아웃하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폴레옹 솔로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일이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새로운 주연배우를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작진은 영국 영화배우 헨리 카빌(Henry Cavill)을 나폴레옹 솔로 역으로 새로 캐스팅했다.
그리고 더이상의 변동은 없었다.
제작진은 헨리 카빌, 아미 해머, 앨리씨아 비캔더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출연했던 호주 여배우 엘리자베스 데비키(Elizabeth Debicki), 영국 영화배우 제리드 해리스(Jared Harris)와 휴 그랜트(Hugh Grant) 등을 추가로 캐스팅하면서 2013년 9월 드디어 촬영에 들어갔다.
연출과 스크린플레이는 워너 브러더스의 버디 액션 스릴러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를 연출한 가이 리치가 맡았다.
영화 버전 '맨 프롬 엉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나치 잔당이 독일 과학자의 도움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음모를 미국 에이전트, 나폴레옹 솔로(헨리 카빌)와 소련 에이전트, 일리야 쿠리야킨(아미 해머)이 함께 힘을 합해 저지한다는 줄거리다. 솔로는 독일 과학자의 딸, 개비(앨리씨아 비캔더)를 포섭한 다음 쿠리야킨과 함께 빅토리아(엘리자베스 데비키)가 이끄는 나치 조직에 접근한다...
'맨 프롬 엉클'은 얼핏보기엔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제목과 캐릭터도 낯익었고, 60년대 배경의 코믹 터치 스파이 스릴러 분위기도 제법 풍겼다. 007 시리즈의 흔적도 놓칠 수 없었다. 미국 에이전트와 소련 에이전트 간의 '데탕트'는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와 바로 겹쳤고, 야간에 솔로와 쿠리야킨이 급하게 호텔로 돌아가는 씬은 '뷰투어킬(A View to a Kill)'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핵무기를 실은 배가 등장하는 씬에선 '썬더볼(Thunberall)'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스토리는 빈약했다. 이런 류의 영화에 대단한 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맨 프롬 엉클'의 줄거리는 이미 골백번은 본 듯한 신선도 제로의 스토리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화의 시대 배경이 60년대였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냉전", "핵무기" 어쩌구 하는 순간 바로 지겨움이 밀려왔다. 냉전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스파이물의 향수를 되살리려 한 것으로 보였으나, 클리셰 투성이의 신선도 제로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을 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플롯이 아주 형편없었던 건 아니지만, 영화에 집중하도록 만들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크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특징이 없는 지극히도 밋밋하고 평범한 수준에 그쳤다.
영화 버전 '맨 프롬 엉클'의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에 있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20대 초반이던 헨리 카빌이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의 제임스 본드 후보에 올랐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007 제작진이 젊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젊은 배우를 물색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당시 20대 초반의 헨리 카빌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에 너무 어렸다. 제작진이 아무리 젊은 제임스 본드를 원했다고 해도 20대 초반의 '아이'는 곤란했던 것이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30대 초반이 된 헨리 카빌은 이젠 진지하게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꼽을 만한 나이의 배우로 성장했다. 카빌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이후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007 시리즈와 공통점이 많은 '맨 프롬 엉클'의 나폴레옹 솔로 역이 '007 오디션 테이프'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맨 프롬 엉클'의 헨리 카빌에 많은 실망을 했다.
제작진이 왜 카빌을 택했는가는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는 얘기다. 카빌이 이미 제임스 본드 후보로 오르내린 바 있으며, 그런 역할에 제법 잘 어울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카빌에 어울리는 나폴레옹 솔로 캐릭터를 준비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6070년대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캐릭터를 준비했을 뿐 카빌에 어울리는 '맞춤형' 캐릭터를 준비하지 않았다. 문제는 카빌이 그런 타잎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모 면에선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지만 농담에 능한 플레이보이 타잎 스파이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다. '맨 프롬 엉클'에서 카빌이 연기한 나폴레옹 솔로는 로저 무어(Roger Moore),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스타일과 겹치는 데가 많은 캐릭터였으나 그런 스타일은 헨리 카빌과 어울리지 않았다. 말투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예고편을 보면서도 헨리 카빌의 어색한 말투와 행동이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지만 영화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헨리 카빌의 60년대 스타일 '쿨 가이' 스파이 캐릭터 연기는 굉장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카빌은 능글맞고 여유만만한 로저 무어 스타일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영화를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주연배우만 로저 무어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로 바꾸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이 갈 것이다. '맨 프롬 엉클'의 헨리 카빌이 딱 그런 경우였다. 헨리 카빌이 차기 제임스 본드 유력 후보 중 하나라는 생각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카빌의 연기력이 부쩍 좋아지지 않는 한 로저 무어 타잎의 플레이보이 스타일 제임스 본드는 불가능해 보였다. 아직은 '모델'이지 여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만한 '배우'는 아닌 듯 했다.
만약 '맨 프롬 엉클'이 60년대가 아닌 21세기 현재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고, 헨리 카빌이 진지한 나폴레옹 솔로를 연기했다면 훨씬 보기 편한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한편, 독일 과학자의 딸 개비 역을 맡은 앨리씨아 비캔더, 핵무기를 만들려 하는 빅토리아 역의 엘리자베스 데비키는 제 역할을 해냈다.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비캔더와 차갑고 늘씬한 데비키는 영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최근 들어 본드걸이 영 시원찮아졌는데, '엉클걸(?)'들이 더 맘에 들었다. 비캔더와 데비키는 본드걸로 출연해도 멋질 것 같았다. 비캔더는 '맨 프롬 엉클'에 이어 맷 데이먼(Matt Damon) 주연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5탄에도 출연 예정이다. 과거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이고 남성팬이 대부분인 007 시리즈에 섹시한 여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부터는 본드가 빤스만 입고 섹시한 척 하는 동안 매력적인 여배우들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맨 프롬 엉클', 제이슨 본 시리즈 등 다른 스파이 시리즈로 옮겨가는 듯 하다.
코믹 연기가 되는 아미 해머는 '맨 프롬 엉클'의 세계와 잘 어울려 보였고, 헨리 카빌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다. 만약 '맨 프롬 엉클'이 투톱이 아닌 아미 해머 원톱의 영화였더라면 차라리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아미 해머가 나폴레옹 솔로 역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미 해머가 나폴레옹 솔로 역으로 잘 어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해머 원톱의 영화였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 만큼 '맨 프롬 엉클'은 헨리 카빌보다 아미 해머에 보다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물론 '맨 프롬 엉클'을 원톱 주인공의 영화로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맨 프롬 엉클'이라고 하면 솔로와 쿠리야킨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리메이크를 한다고 해도 60년대 원작 TV 시리즈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나폴레옹 솔로를 창조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플레밍의 초창기 아이디어는 나폴레옹 솔로 원톱이었다. 그러나 플레밍이 여러 이유로 인해 '솔로'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이후에 TV 제작진에 의해 투톱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물론 클래식 TV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원톱 아이디어는 불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와 '촌수'가 가장 가까운 미국 스파이 캐릭터가 나폴레옹 솔로이므로 '미국판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키고자 한다면 나폴레옹 솔로 원톱 옵션이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다. 초기 플레밍 아이디어처럼 나폴레옹 솔로를 원톱으로 세우고 플레밍이 솔로와 함께 창조한 여자 캐릭터 에이프릴 댄서(April Dancer)를 쿠리야킨 대신 붙이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반드시 쿠리야킨을 집어넣어야 하겠다면 007 시리즈의 머니페니처럼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기면 된다. 이것만으로 섭섭하다면 마블 코믹스가 잘 하고 있는 'SHARED UNIVERSE'처럼 만들어서 쿠리야킨은 쿠리야킨대로 그의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풀어가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맨 프롬 엉클' 영화로는 시리즈의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많아서다. '맨 프롬 엉클'은 썩 맘에 드는 영화가 아니었다. 제작진이 어떤 영화를 만들려 했는지는 알 수 있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맨 프롬 엉클'은 얼핏 보기엔 액션과 유머가 풍부한 스타일리쉬한 스파이 스릴러 영화 같지만 실제로는 개성이 부족한 지극히도 평범한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엔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는 영화였지만 재미있게 보기엔 어려운 영화였다.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많지 않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눈에 띄는 게 없었으며, 어색함과 진부함을 극복해야만 하는 영화였다.
속편이 제작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계속 이어가는 것 보다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폴레옹 솔로는 미국판 제임스 본드가 되고싶어 하지만 헨리 카빌과 아미 해머 주연의 영화로 계속 가면 '이룰 수 없는 꿈'에 그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가 작곡한 '맨 프롬 엉클' 테마 곡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맨 프롬 엉클' 테마 곡이 제임스 본드 테마, 미션 임파서블 테마 곡 만큼 유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귀에 익은 클래식 '맨 프롬 엉클' 테마 곡이 영화에 나왔더라면 더욱 분위기가 살았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 테마와 미션 임파서블 테마가 영화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말이다. 영화 버전이 21세기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6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시대물이었는데, 60년대를 연상케 하는 TV 시리즈 메인 테마 곡을 영화에서 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몰라도 오리지날 테마 곡을 사용하지 않은 건 실수라고 본다.
'맨 프롬 엉클' 프로젝트가 다시 진전을 보이기 시작한 건 2013년이 돼서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던 제작진이 드디어 출연진과 영화감독을 모두 찾은 듯 했다.
톰 크루즈(Tom Cruise), 아미 해머(Armie Hammer), 앨리씨아 비캔더(Alicia Vikander)로 출연진이 결정되고, 연출은 영국 영화감독 가이 리치(Guy Richie)가 맡는 것으로 확정되는 듯 했다. 크루즈가 미국 에이전트, 나폴레옹 솔로(Napoleon Solo) 역을 맡고 아미 해머가 러시안 에이전트, 일리야 쿠리야킨(Illya Kuryakin) 역을 맡는 것으로 주연배우 캐스팅이 마무리된 듯 했다.
그러나 톰 크루즈가 '맨 프롬 엉클' 프로젝트에서 드롭아웃하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폴레옹 솔로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일이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새로운 주연배우를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작진은 영국 영화배우 헨리 카빌(Henry Cavill)을 나폴레옹 솔로 역으로 새로 캐스팅했다.
그리고 더이상의 변동은 없었다.
제작진은 헨리 카빌, 아미 해머, 앨리씨아 비캔더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출연했던 호주 여배우 엘리자베스 데비키(Elizabeth Debicki), 영국 영화배우 제리드 해리스(Jared Harris)와 휴 그랜트(Hugh Grant) 등을 추가로 캐스팅하면서 2013년 9월 드디어 촬영에 들어갔다.
연출과 스크린플레이는 워너 브러더스의 버디 액션 스릴러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를 연출한 가이 리치가 맡았다.
영화 버전 '맨 프롬 엉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나치 잔당이 독일 과학자의 도움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음모를 미국 에이전트, 나폴레옹 솔로(헨리 카빌)와 소련 에이전트, 일리야 쿠리야킨(아미 해머)이 함께 힘을 합해 저지한다는 줄거리다. 솔로는 독일 과학자의 딸, 개비(앨리씨아 비캔더)를 포섭한 다음 쿠리야킨과 함께 빅토리아(엘리자베스 데비키)가 이끄는 나치 조직에 접근한다...
'맨 프롬 엉클'은 얼핏보기엔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제목과 캐릭터도 낯익었고, 60년대 배경의 코믹 터치 스파이 스릴러 분위기도 제법 풍겼다. 007 시리즈의 흔적도 놓칠 수 없었다. 미국 에이전트와 소련 에이전트 간의 '데탕트'는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와 바로 겹쳤고, 야간에 솔로와 쿠리야킨이 급하게 호텔로 돌아가는 씬은 '뷰투어킬(A View to a Kill)'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핵무기를 실은 배가 등장하는 씬에선 '썬더볼(Thunberall)'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스토리는 빈약했다. 이런 류의 영화에 대단한 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맨 프롬 엉클'의 줄거리는 이미 골백번은 본 듯한 신선도 제로의 스토리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화의 시대 배경이 60년대였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냉전", "핵무기" 어쩌구 하는 순간 바로 지겨움이 밀려왔다. 냉전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스파이물의 향수를 되살리려 한 것으로 보였으나, 클리셰 투성이의 신선도 제로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을 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플롯이 아주 형편없었던 건 아니지만, 영화에 집중하도록 만들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크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특징이 없는 지극히도 밋밋하고 평범한 수준에 그쳤다.
영화 버전 '맨 프롬 엉클'의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에 있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20대 초반이던 헨리 카빌이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의 제임스 본드 후보에 올랐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007 제작진이 젊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젊은 배우를 물색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당시 20대 초반의 헨리 카빌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에 너무 어렸다. 제작진이 아무리 젊은 제임스 본드를 원했다고 해도 20대 초반의 '아이'는 곤란했던 것이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30대 초반이 된 헨리 카빌은 이젠 진지하게 제임스 본드 후보감으로 꼽을 만한 나이의 배우로 성장했다. 카빌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이후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을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007 시리즈와 공통점이 많은 '맨 프롬 엉클'의 나폴레옹 솔로 역이 '007 오디션 테이프'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맨 프롬 엉클'의 헨리 카빌에 많은 실망을 했다.
제작진이 왜 카빌을 택했는가는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는 얘기다. 카빌이 이미 제임스 본드 후보로 오르내린 바 있으며, 그런 역할에 제법 잘 어울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카빌에 어울리는 나폴레옹 솔로 캐릭터를 준비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6070년대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캐릭터를 준비했을 뿐 카빌에 어울리는 '맞춤형' 캐릭터를 준비하지 않았다. 문제는 카빌이 그런 타잎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모 면에선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지만 농담에 능한 플레이보이 타잎 스파이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다. '맨 프롬 엉클'에서 카빌이 연기한 나폴레옹 솔로는 로저 무어(Roger Moore),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스타일과 겹치는 데가 많은 캐릭터였으나 그런 스타일은 헨리 카빌과 어울리지 않았다. 말투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예고편을 보면서도 헨리 카빌의 어색한 말투와 행동이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지만 영화를 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헨리 카빌의 60년대 스타일 '쿨 가이' 스파이 캐릭터 연기는 굉장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카빌은 능글맞고 여유만만한 로저 무어 스타일 제임스 본드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영화를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주연배우만 로저 무어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로 바꾸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이 갈 것이다. '맨 프롬 엉클'의 헨리 카빌이 딱 그런 경우였다. 헨리 카빌이 차기 제임스 본드 유력 후보 중 하나라는 생각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카빌의 연기력이 부쩍 좋아지지 않는 한 로저 무어 타잎의 플레이보이 스타일 제임스 본드는 불가능해 보였다. 아직은 '모델'이지 여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만한 '배우'는 아닌 듯 했다.
만약 '맨 프롬 엉클'이 60년대가 아닌 21세기 현재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고, 헨리 카빌이 진지한 나폴레옹 솔로를 연기했다면 훨씬 보기 편한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한편, 독일 과학자의 딸 개비 역을 맡은 앨리씨아 비캔더, 핵무기를 만들려 하는 빅토리아 역의 엘리자베스 데비키는 제 역할을 해냈다.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비캔더와 차갑고 늘씬한 데비키는 영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최근 들어 본드걸이 영 시원찮아졌는데, '엉클걸(?)'들이 더 맘에 들었다. 비캔더와 데비키는 본드걸로 출연해도 멋질 것 같았다. 비캔더는 '맨 프롬 엉클'에 이어 맷 데이먼(Matt Damon) 주연의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 5탄에도 출연 예정이다. 과거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이고 남성팬이 대부분인 007 시리즈에 섹시한 여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가 된 이후부터는 본드가 빤스만 입고 섹시한 척 하는 동안 매력적인 여배우들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맨 프롬 엉클', 제이슨 본 시리즈 등 다른 스파이 시리즈로 옮겨가는 듯 하다.
코믹 연기가 되는 아미 해머는 '맨 프롬 엉클'의 세계와 잘 어울려 보였고, 헨리 카빌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다. 만약 '맨 프롬 엉클'이 투톱이 아닌 아미 해머 원톱의 영화였더라면 차라리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아미 해머가 나폴레옹 솔로 역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미 해머가 나폴레옹 솔로 역으로 잘 어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해머 원톱의 영화였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 만큼 '맨 프롬 엉클'은 헨리 카빌보다 아미 해머에 보다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물론 '맨 프롬 엉클'을 원톱 주인공의 영화로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맨 프롬 엉클'이라고 하면 솔로와 쿠리야킨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리메이크를 한다고 해도 60년대 원작 TV 시리즈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나폴레옹 솔로를 창조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플레밍의 초창기 아이디어는 나폴레옹 솔로 원톱이었다. 그러나 플레밍이 여러 이유로 인해 '솔로' 프로젝트에서 손을 뗀 이후에 TV 제작진에 의해 투톱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물론 클래식 TV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원톱 아이디어는 불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와 '촌수'가 가장 가까운 미국 스파이 캐릭터가 나폴레옹 솔로이므로 '미국판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키고자 한다면 나폴레옹 솔로 원톱 옵션이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다. 초기 플레밍 아이디어처럼 나폴레옹 솔로를 원톱으로 세우고 플레밍이 솔로와 함께 창조한 여자 캐릭터 에이프릴 댄서(April Dancer)를 쿠리야킨 대신 붙이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반드시 쿠리야킨을 집어넣어야 하겠다면 007 시리즈의 머니페니처럼 비중이 작은 역할을 맡기면 된다. 이것만으로 섭섭하다면 마블 코믹스가 잘 하고 있는 'SHARED UNIVERSE'처럼 만들어서 쿠리야킨은 쿠리야킨대로 그의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풀어가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맨 프롬 엉클' 영화로는 시리즈의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많아서다. '맨 프롬 엉클'은 썩 맘에 드는 영화가 아니었다. 제작진이 어떤 영화를 만들려 했는지는 알 수 있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맨 프롬 엉클'은 얼핏 보기엔 액션과 유머가 풍부한 스타일리쉬한 스파이 스릴러 영화 같지만 실제로는 개성이 부족한 지극히도 평범한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엔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는 영화였지만 재미있게 보기엔 어려운 영화였다.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많지 않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눈에 띄는 게 없었으며, 어색함과 진부함을 극복해야만 하는 영화였다.
속편이 제작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계속 이어가는 것 보다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폴레옹 솔로는 미국판 제임스 본드가 되고싶어 하지만 헨리 카빌과 아미 해머 주연의 영화로 계속 가면 '이룰 수 없는 꿈'에 그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가 작곡한 '맨 프롬 엉클' 테마 곡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맨 프롬 엉클' 테마 곡이 제임스 본드 테마, 미션 임파서블 테마 곡 만큼 유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귀에 익은 클래식 '맨 프롬 엉클' 테마 곡이 영화에 나왔더라면 더욱 분위기가 살았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 테마와 미션 임파서블 테마가 영화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말이다. 영화 버전이 21세기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6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시대물이었는데, 60년대를 연상케 하는 TV 시리즈 메인 테마 곡을 영화에서 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몰라도 오리지날 테마 곡을 사용하지 않은 건 실수라고 본다.
한국에서는 지금에야 개봉했는데 전 재밌게 봤습니다. 근데 미국에서 망해서 배급사가 별 기대를 안해서인지 한국 영화에 상영관을 뺏겨서인지 개봉날 상영 타임이 5회(....)
답글삭제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보더군요. 거의 만석일 정도. 저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습니다만 뭔가 속시원한 클라이막스, 액션씬이 없어 좀 아쉬운 느낌이었습니다. 나치 잔당이 주적이라길래 나를 사랑한 스파이 후반부에서 보여준 적병들과의 대단위 전투신을 기대했는데 전투신은 야밤에 침투해서 뭔가 스타일을 살린답시고 어지럽게 화면 분할....
다른 007 아류작들과 달리 007의 창조주인 이안 플레밍이 직접 개입한 정통성 있는 작품으로 제대로 된 미국판 007 시리즈를 제대로 부활시킬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듯 해서 이래저래 아쉽네요. 007의 방계 아닌 방계인데....
헨리 카빌은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로저 무어스러운 첩보원 분위기가 나는듯 하면서도 어색하네요. 그래도 능글맞은 도둑 느낌은 꽤 좋았어요. 아미 해머는 (망한)론레인저에서는 멀끔하고 잘생겼지만 뭔가 어리버리하고 순진한듯한 모습만으로 나온걸 기억하다가 본작에서는 아예 딴판으로 야성미 넘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이 영화가 좀 늦게 들어갔군요.
삭제영국적이어야 할 007 시리즈는 갈수록 흔해빠진 미국산 액션 코믹북 영화처럼 돼가고,
미국판 007 시리즈가 돼야 할 맨 프롬 엉클은 진부한 6070년대 007 시리즈를 연상케 하고...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뭔가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007 시리즈가 거칠어진 틈을 노리고 6070년대 스파이 픽션 향수를 되살리려 한 듯 합니다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생소한 나폴레옹 솔로를 새로 소개하는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60년대 첩보물을 현대 감각을 살린 영화로 탈바꿈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은 듯 합니다.
요새는 6070년대 007 시리즈같은 스파이 픽션을 잘 못만드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범죄조직이 꾸미는 스케일이 큰 음모는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가 가져갔죠.
그래도 6070년대 007 시리즈 스타일을 밀어붙이면 낡은 영화라는 평이 나올 게 뻔하죠.
게다가 격렬한 액션영화는 흔하고, 그렇다고 전부 다 존 르 카레 영화처럼 만들 수도 없고...
제 생각엔 맨 프롬 엉클 영화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