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3일 월요일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에 '본드25' 스토리 맡기는 건 실수

007 시리즈 베테랑 스크린라이터, 닐 퍼비스(Neal Purvis)와 로버트 웨이드(Robert Wade)'가 아직 제목이 공개되지 않은 007 시리즈 25탄 '본드25(임시제목)'의 스크린플레이 작업을 맡을 모양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007 제작진이 닐 버피스와 로버트 웨이드에 '본드25' 스토리 작업을 맡길 예정이라고 전했다.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는 1999년작 '월드 이스 낫 이너프(The World is not Enough)'부터 2015년작 '스펙터(SPECTRE)'까지 모두 여섯 편의 007 시리즈 스크린플레이 작업을 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복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데일리 메일이 전했다.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크레이그가 그의 다섯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정나지 않았다고 한다.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올 가능성과 새로운 영화배우로 교체될 가능성 모두가 아직까지 열려있는 듯 하다.


007 제작진 입장에선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오고 여러 편의 007 시리즈 스크린플레이 작업을 한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에게 스크린플레이를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한 코스일 듯 하다. "올드 멤버들끼리 다시 뭉쳐서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 번 더 울궈먹기" 코스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니엘 크레이그도 '본드25'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크레이그가 '본드25'로 돌아온다는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그가 '본드25'로 돌아오더라도 크게 놀라운 뉴스는 아니다. 다니엘 크레이그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 스타일에서 벗어나 분위기를 바꿔볼 때가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이것은 크레이그의 리턴 가능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007 제작진은 똑같은 포뮬라로 울궈먹을 수 있을 때까지 울궈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 만큼, 007 제작진이 크레이그와 한 번 더 함께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에 공개된 다니엘 크레이그의 이미지를 봐도 헤어스타일이 크레이그 버전 제임스 본드 헤어스타일로 돌아갔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따라서 '본드25'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노래 제목처럼 다니엘 크레이그, 닐 퍼비스, 로버트 웨이드가 다시 뭉친 "Baby One More Time"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에게 '본드25' 스토리를 맡기는 건 실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는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창조한 제임스 본드의 세계를 제대로 옮기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플레밍의 원작 소설을 기초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엔 얼마나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로 옮겼나를 떠나 원작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나 스크린라이터들이 독자적으로 쓴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공개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부턴 원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해졌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댄엔 플롯 수준이 형편없었고,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제임스 본드 영화"라는 사실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체성을 잃었다. 피어스 브로스난 시대엔 6070년대 클래식 007 시리즈를 무성의하게 모방하는 데 그쳤고,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제이슨 본(Jason Bourne) 시리즈와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를 모방하는 데 그쳤다. 007 제작진들은 "시대의 흐름을 따른 것"이라고 반박하겠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007 시리즈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는 007 시리즈답고 21세기 제임스 본드 어드벤쳐에 잘 어울리는 플롯과 악당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제임스 본드의 세계와 캐릭터를 똑바로 묘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퍼비스와 웨이드도 "헐리우드 리버럴" 그룹에 속하기 때문인지 제임스 본드의 결점과 어두운 부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제임스 본드는 롤모델도 아니고 수퍼히어로도 아니며, 술과 담배를 심하게 즐길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할 때도 많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언 플레밍 원작 소설의 제임스 본드는 "Bigot", "Racist", "Sexist", "Misogynist", "Homophobic", "Jingoist", "Chauvinist" 등의 딱지를 늘 달고 다닌다. 그럼에도 제임스 본드는 매번 영국을 위협하는 "외국인 악당"을 해치우고 돌아오는 "WINNER"다.

싫든 좋든 간에 이런 게 제임스 본드다.

그러나 때로는 공격적이고 때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는 "성공한 백인-남성-이성애자"가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요즘엔 제임스 본드도 결점이 없는 "완벽남"으로 둔갑했다. 때로는 무자비하고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던 본드가 거의 항상 윤리적으로 올바른 "모범생 본드"로 변했다. 그래야만 하찮은 것에도 쉽게 불쾌감을 느끼는 민감한 "SNOWFLAKE"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 특유의 "BAD BOY" 이미지가 지나치게 희석되면서 맹탕이 돼버렸다. "안티-히어로"적인 매력 포인트를 전부 잃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른 "무난한" 캐릭터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항상 논란을 몰고다니던 본드를 흥미가 덜 끌리는 재미없는 캐릭터로 만들어 놓았다.

또다른 "BAD BOY",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은 "MAKE 007 FUN AGAIN"에 재도전하기 좋은 기회다. 논란이 생길 수도 있고 몇몇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POLITICAL CORRECTNESS" 때문에 007 시리즈에서 자취를 감춘 본드의 "BAD BOY" 이미지를 다시 살려보기에 좋은 기회다.

그러나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에게 이런 걸 기대하기 힘들다. 이들은 트럼프를 "본드 빌런(Villain)"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퍼비스와 웨이드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본드 빌런"에 비유한 바 있다. 따라서 퍼비스와 웨이드가 본드를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는 컬러풀한 캐릭터로 다시 되돌려놓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현재 시끌벅적한 "러시아 의혹"에서 모티브를 얻은 플롯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지,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능청스럽게 직설적으로 하는 코믹하고 공격적인 본드 캐릭터를 되돌려놓을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007 제작진은 지난 영화 '스펙터(SPECTRE)'에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플롯을 선보이는 등 현재진행형 이슈에서 모티브를 얻으려는 버릇이 있으므로, 퍼비스와 웨이드가 '본드25'를 "안티-트럼프" 성격을 띤 영화로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러시아와 뒷거래를 하는 안티-글로벌리스트 억만장자 비즈니스맨이 악당으로 등장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007 영화 시리즈는 현실 정세와 거리를 둔 스파이 액션 영화 시리즈라는 특징이 있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에도 007 제작진은 냉전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플레밍이 '스펙터'라 불리는 범죄조직을 만든 이유도 동서 냉전 구도에서 벗어나 제 3의 적을 만들려던 목적이었다. 007 제작진이 애초부터 되도록이면 정치와 무관한 어드벤쳐 영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재가 고갈된 요즘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007 시리즈와 잘 어울리는 소재를 찾지 못하고 아무 것이나 끌어오고 있다. 따라서 퍼비스와 웨이드가 "안티-트럼프" 여론에 편승한 플롯을 선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이 그런 플롯을 내놓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뜻밖일 것이다.

현재진행형 이슈에서 모티브를 얻은 플롯까지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퍼비스와 웨이드에겐 007 시리즈에 어울리는 제법 그럴 듯한 스파이 플롯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퍼비스와 웨이드에게 '본드25' 스토리를 맡기면 1999년작 '월드 이스 낫 이너프(The World is not Enough)' 수준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이 베테랑 007 시리즈 스크린라이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럴 듯한 스파이 스릴러 플롯에 소질있는 작가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러 차례 007 시리즈 작업을 했으므로 007 제작진 입장에선 퍼비스와 웨이드가 믿음직스러운 베테랑처럼 보이겠지만, 흥미로운 스파이 스릴러 플롯을 기대할 만한 작가들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007 제작진이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에게 '본드25' 스토리를 맡겼다는 보도가 반갑지 않다. 007 시리즈 작업을 여러 본 해본 베테랑들과 함께 비슷비슷한 제임스 본드 영화를 한 번 더 만들어서 울궈먹겠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드25' '관련 소식이 전해져서 반갑긴 했으나,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누차 강조했지만, 007 제작진이 그럴 듯한 스파이 스릴러 플롯을 원한다면 그쪽 분야 전문 작가에게 스토리를 맡겨야 한다.  

댓글 2개 :

  1. MAKE 007 FUN AGAIN!!!
    세상이 다 바뀌고 나야 할리우드는 마지못해 그 굼뜬 엉덩이를 천천히 움직일까요? 할리우드 리버럴의 패권주의가 끝나는 날이 오긴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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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옳고그름만 따지면서 이름만 제임스 본드인 캐릭터를 만들어가면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요샌 하찮은 것에도 불쾌하다고 투덜대는 리버럴들이 많은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수위 조절을 통해 논란을 콘트롤해야지 문제될 만한 걸 전부 걷어내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007 시리즈가 애국주의와 남성 판타지 성향이 강해서 좌파, 페미니스트의 주요 타겟입니다.
      헐리우드가 항상 예의바른 것도 아닙니다. 보수우파를 공격할 땐 인정사정 없죠.
      007 제작진이 이런 공격에 굴복해 007 시리즈를 꾸준히 왼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버럴들이 문제 제기를 해도 007 시리즈는 007 시리즈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헐리우드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리버럴들만 상대하려는 공통된 문제점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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