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0일 월요일

나는 언제부터 팝을 듣지 않게 됐을까

며칠 전 하이스쿨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한국인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요새 너는 무슨 노래를 듣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나왔다.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낼모레면 나이가 50인 녀석이 아리아나 그란데를 듣는다?

나도 "젊게 살자 주의자"라서 트랜스, 하우스 등 클럽뮤직을 즐겨 들으므로 뭐라고 할 입장은 못된다. 하지만 아리아나 그란데?

그래서 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왠지 그 다음은 마일리 싸이러스(Miley Cyrus)일 것 같아서였다.

우리가 1020대였던 8090년대에는 신스팝(Synthpop), 뉴 웨이브(New Wave), 유로 디스코(Euro Disco), R&B, 쏘울(Soul),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등 다양한 쟝르의 팝이 유행했었다. 물론, 락과 메탈도 있지만, 가장 기억나는 8090년대 팝을 꼽아보라고 하면 위에 있는 쟝르의 곡들이 떠오른다.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까지는 나도 메인스트림 팝을 즐겨 들었다.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주는 당시 최신유행 팝을 즐겨 들었다. 레코드 스토어에 가서 구입하는 앨범들도 거의 모두 메인스트림 팝이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힙합을 많이 듣다가 바로 유로 댄스 쪽으로 옮겨탔지만, 그 사이사이를 메인스트림 팝이 메꿔줄 정도로 팝의 비중도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그 당시 같이 학교를 다녔던 미국 청소년들은 어떤 쟝르의 음악을 즐겨 들었을까?

남학생의 경우에는 크게 락과 힙합 두 쟝르로 나뉘었다.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등과 같은 락 아니면 N.W.A, 아이스 큐브(Ice Cube), 런 D.M.C(Run D.M.C) 등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하드코어 랩을 즐겨 듣는 남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하우스와 테크노는 90년대로 넘어오면서 클럽에서 인기가 좋았다. 8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유로 디스코, Hi-NRG 스타일을 대체할 새로운 차세대 클럽뮤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클럽 풍경은 하우스와 테크노가 나올 때는 댄스 플로어가 가득 찼지만, 갑자기 철지난 80년대 풍 유로 디스코, Hi-NRG 스타일의 곡이 나오면 순식간에 플로어가 텅비곤 했다.

그러나 당시에 알고 지내던 흑인 친구들은 하우스와 테크노를 아주 싫어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친구들은 모두 힙합을 즐겨 들었으며, 하우스와 테크노는 "게이들의 음악"이라며 인상을 썼다. 대개의 경우 흑인들이 리버럴 성향이 강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동성애 등 몇몇 이슈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보다 더 보수적이고 강경할 때가 있다.

그런데 메인스트림 팝은 어디로 갔냐고?

남학생 중에서는 메인스트림 팝을 즐겨 듣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바비 브라운(Bobby Brow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등 당시 인기가 높았던 팝 뮤지션들의 곡을 즐겨 듣는다는 남학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메인스트림 팝은 주로 여학생들이 즐겨 들었고, 남학생들은 팝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는 90년대 초까지는 팝을 비교적 즐겨 듣는 편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즈음 되자 팝 음악에 대한 흥미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90년대 말이 됐을 때에는 거의 듣지 않는 정도까지 됐다.

왜 팝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을까?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뀐 게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또한, 90년대에 와서는 다양한 쟝르 또는 스타일의 팝이 나오지 않고 가장 인기있는 스타일 하나로 전부 통일된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팝이 전부 비슷비슷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팝에 흥미를 잃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한국 음악에도 흥미를 잃어갔다. 90년대에는 당시 유행하던 한국 음악도 자주 즐겨 들었었다. 그 때는 한국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던 시절이라서 한국 음반을 많이 구입하곤 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한국 CD가 아직도 박스로 한개 정도는 남아있다. 아마도 거의 전부가 90년대 앨범들일 것이다. 왜냐면,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 음악을 거의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90년대까지 즐겨 들었던 팝과 힙합은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이로 따지자면, 30대로 접어들면서 팝과 힙합에서 완전히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트랜스, 하우스 등 클럽뮤직은 지금도 꾸준히 들을 정도로 변함없이 좋아하지만, 팝과 힙합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대부터 구입한 앨범들은 거의 전부가 클럽뮤직이다. 나머지 약간은 락 뮤직이 차지한다.

그런데 요새는 락뮤직이 상당히 시원찮아져서 트랜스 뮤직과 하우스 뮤직만으로 때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Statista의 2018년 쟝르별 미국 음반 판매 그래프를 봐도 알 수 있듯 락뮤직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가면 갈수록 들을 만한 락뮤직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 그런지 대충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아리아나 그란데를 듣는다는 내 친구 녀석은 20.1%에 포함되는구나...

왠지 나는 거기에 포함될 일이 없을 듯.

내 친구녀석이 아리아나 그란데를 즐겨 듣는다고 했을 때 "아니 지금 고등학생도 아닌데 그런 곡을 들을 수 있단 말이냐. 난 그런 노래 더이상 못 듣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내 친구 녀석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넌 하이스쿨 때 귀 뚫고 지금도 여전히 귀걸이 하고 다니잖아!"

".............."

그래, 네 놈이 이겼다...

그런데 말 나온 김에 하나는 똑바로 하고 넘어가자:

귀걸이가 하나가 아니고 셋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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