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7일 수요일

'마이클 쉰 본드23 블로펠드 설'이 루머인 이유

'본드23' 스크린라이터가 발표되니까 바로 엉뚱한 루머가 떴다. '프로스트/닉슨(Frost/Nixon)'에 출연했던 영국배우 마이클 쉰(Michael Sheen)이 '본드23'에서 블로펠드 역을 맡을 지 모른다는 것!

마이클 쉰이 '본드23'에 출연할 수도 있다는 정도까지는 오케이다.

그가 '본드23'에서 악역을 맡는다는 것까지도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블로펠드?

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Ernst Stavro Blofeld)??

이 루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한가지만큼은 확실하다: '프로스트/닉슨'의 스크립트를 썼던 피터 모갠(Peter Morgan)이 '본드23' 스크린플레이를 맡은 것으로 발표되자 '프로스트/닉슨'에 출연했던 마이클 쉰까지 '본드23'에 붙여놓은 것이다.

워낙 터무니 없는 얘기라서 어지간 하면 이런 루머는 건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여러 군데에서 '마이클 쉰 본드23 캐스팅 설' 기사를 띄웠더라.


▲영국의 데일리 익스프레스


▲영국의 가디언

가디언까지 저런 기사를 실었다는 게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영국이야 원래 제임스 본드 루머의 천국인만큼 그려러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가 도버해협을 건넜다. 독일의 BILD도 이 기사를 픽업했더라.


▲독일의 BILD

독일뿐만이 아니다. '마이클 쉰 블로펠드 설'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왔다.


▲미국의 MTV

아니 다들 왜 이럴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보도기 때문 아니겠냐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빙성이 매우 낮은 루머로 보인다. 007 제작진이 블로펠드를 '본드23'에 등장시키고 싶다고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기 때문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제임스 본스 소설 시리즈를 쓴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과 아일랜드인 영화 프로듀서, 케빈 맥클로리(Kevin McClory)와의 법정분쟁으로 '썬더볼(Thunderball)' 영화제작권을 확보한 맥클로리가 007 시리즈에서 '블로펠드', '스펙터' 등을 일체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플레밍과 맥클로리가 무슨 원수를 졌길래 법정싸움까지 벌였냐고?

플레밍이 EON 프로덕션의 알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와 해리 살츠만(Harry Saltman)을 만나기 전에 제임스 본드 영화제작을 위해 함께 일했던 영화 프로듀서가 바로 맥클로리였는데, 플레밍과 맥클로리가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프로젝트였던 '썬더볼'의 스크립트를 함께 제작했다.

맥클로리 측의 주장에 의하면 '썬더볼'의 스토리와 '스펙터', '블로펠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있는 영화버전 제임스 본드 캐릭터 자체를 맥클로리가 창조했다고 한다. 소설상의 캐릭터는 플레밍의 창조물이지만 영화상의 제임스 본드는 맥클로리가 창조했는 것. 어디까지가 진실이든 간에 맥클로리가 '썬더볼' 스크립트를 제작하는 데 일정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플레밍이 맥클로리의 허락 없이 영화제작용으로 준비했던 '썬더볼' 스크립트를 기초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이에 격분한 맥클로리가 플레밍을 고소하게 되었고, 결국 승소하여 '썬더볼' 영화제작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맥클로리는 1965년 EON 프로덕션과 함께 '썬더볼'을 영화로 제작했으나 자신이 직접 새로운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만들기로 하면서 EON 프로덕션이 영화에서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맥클로리는 1983년 그가 제작한 제임스 본드 영화를 발표했는데, 바로 이것이 숀 코네리(Sean Connery) 주연의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이다.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제목만 다를 뿐 사실상 '썬더볼'의 리메이크다.



맥클로리는 2000년대초까지 '썬더볼'을 기초로 한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007 시리즈를 제작하는 EON 프로덕션과 MGM을 상대로 여러 차례 법정싸움을 벌였다. 맥클로리는 그만의 제임스 본드 프랜챠이스를 만들려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스펙터', '블로펠드' 라이센스를 여전히 쥔 채 2006년 세상을 떠났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누가 '스펙터', '블로펠드'를 비롯한 '썬더볼'의 영화제작권을 갖고있는 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맥클로리가 세상을 뜬 뒤 EON 프로덕션과 MGM이 '썬더볼' 영화제작권을 획득했다면 또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피터 모갠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가 '본드23' 스크립트를 쓴다고 해도 '블로펠드'와 '스펙터'를 EON 프로덕션의 007 시리즈에서 볼 수 없게 되어있다.

혹시 EON과 MGM이 '썬더볼' 영화제작권을 맥클로리 측으로부터 넘겨받았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물론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BIG, BIG, BIG 뉴스다.

하지만, '마이클 쉰 블로펠드 보도'에는 피터 모갠과 마이클 쉰이 친구사이라는 것만 나올 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제작권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때문에 '마이클 쉰 본드23 블로펠드 설'은 현재로써는 근거없는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MTV에선 마른 배우는 블로펠드 역으로 어울리지 않는다(The skinny actor doesn’t quite fit Ian Fleming’s original description of evil mastermind Ernst Stavro Blofeld)고까지 했지만, 마이클 쉰이 블로펠드 역으로 어울리느냐 따위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이런데도 이 소식이 사방으로 퍼진 것을 보니 머리를 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아니다. 오늘 머리 감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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