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6일 화요일

제임스 본드까지 중동으로 가야 하나

제임스 본드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갈 지 모른다는 영국 가디언의 보도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확인 안 된 소식에 불과하지만 며칠 전 007 제작진이 '본드23' 스크린라이터들을 발표한 것과 맞물리면서 '본드23'의 아프가니스탄행 여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제임스 본드가 중동으로 갈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007 시리즈에 리얼리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007 시리즈가 중동문제에 손 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아프가니스탄 아편문제가 '본드23'에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중동문제를 다룬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편밀매에만 촛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비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임스 본드까지 중동 테러리스트 꽁무니를 쫓으려 한다'는 것처럼 비춰지기 딱 알맞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제임스 본드가 중동 테러리스트를 쫓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고?

요새 나오는 미국산 첩보소설들이 십중팔구 중동 테러리즘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실바(Daniel Silva), 알렉스 베렌슨(Alex Berenson), 데이빗 이그내시어스(David Ignatius) 등 미국작가들이 최근에 선보인 첩보소설에는 알 카에다(Al Queda)가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2008년 영화로 제작되었던 리오나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주연의 '바디 오브 라이스(Body of Lies)'도 데이빗 이그내시어스의 동명소설을 기초로 한 중동배경의 첩보영화다. 다니엘 실바의 소설은 아예 이스라엘 모사드 에이전트들이 주인공이며, 유니버설 픽쳐스가 영화 라이센스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제임스 본드까지 중동쪽에서 기우적거리려 하면 상당히 우습게 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이런 식의 테러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007 제작진은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 테러플롯을 슬쩍 집어넣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쓸데 없었지만 카지노 얘기만으로는 따분해 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쪽에 계속 미련을 두려 해선 안된다. 007 시리즈 쟝르의 특성상 현재진행형인 분쟁을 영화의 소재로 삼고싶겠지만 제작진은 제임스 본드가 테러리스트를 뒤쫓도록 만들거나 어설픈 전쟁영화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낼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꾸 이런 쪽으로 옮겨가면 더이상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닌 정체불명의 영화가 된다. 그러므로, 다니엘 실바의 소설이나 '바디 오브 라이스'처럼 중동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007 시리즈가 아닌 다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는 게 낫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중동관련 뉴스에 지쳐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된다.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 스릴러 소잿감으로는 중동 테러리스트를 뒤쫓는 플롯이 쓸만 해 보일 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영화관객들이 007 시리즈에서까지 텔레반, 알카에다 등을 보고싶어 할 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

죽든 까물어치든 아프가니스탄 아편밀매 플롯을 반드시 영화에 포함시키고 싶다면 1964년 영화 '골드핑거(Goldfinger)'에서 했던 것처럼 프리타이틀씬에서 제임스 본드가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창고를 폭파시켜버리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듯 하다. 이 정도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차선책으로는, 1971년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에서처럼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이 밀수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산 아편밀수 과정이 설명된다면 영화 줄거리와도 관련있다는 의미가 되지만, 제임스 본드가 직접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면 별 문제 없을 듯 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아프가니스탄 아편과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를 접목시키는 것이다. 소설 '죽느냐 사느냐'는 마약과 무관한 내용이었지만 영화는 마약밀매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소설과 영화 모두 '밀수'라는 공통분모를 갖고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스크린라이터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프간 아편밀매와 '죽느냐 사느냐'를 엮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제임스 본드가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지만, 쿼렐(Quarrel)을 연상시키는 현지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죽느냐 사느냐' 분위기를 낼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 하필이면 '죽느냐 사느냐'냐고?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 '죽느냐 사느냐'는 '카지노 로얄'에 이은 두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이다. 2008년 개봉한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까지 '카지노 로얄'의 일부분으로 친다면 그 다음 번 영화는 '죽느냐 사느냐'가 되는 게 순서에 맞다.

하지만, 007 프로듀서,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이 리메이크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바 있으므로 '본드23'가 '죽느냐 사느냐'라는 제목을 달고 개봉할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아쉽게도 낮아 보인다. 하지만, 윌슨도 '카지노 로얄'로 시작한 스토리를 '콴텀 오브 솔래스'로 정리한 다음으로는 '죽느냐 사느냐'가 옳다는 것을 알고있을 것이므로 오피셜 리메이크는 아니되 '죽느냐 사느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분명하게 눈에 띄는 '언오피셜 리메이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이 좋은 예다. '라이센스 투 킬'에서 제임스 본드(티모시 달튼)을 돕는 샤키라는 흑인 캐릭터가 80년대판 쿼렐이었다는 사실을 어지간한 본드팬들은 다들 알고있을 것이다. 본드의 절친한 미국인 친구, 필릭스 라이터가 상어에 물린다는 설정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007 제작진이 '본드23'를 '언오피셜 죽느냐 사느냐'로 만들고자 한다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하필이면 '아프간 리믹스'라는 게 걸리는 부분이다. 무대를 지금의 중동으로 삼으면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라 '바디 오브 라이스'와 같은 미국산 CIA 영화처럼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제임스 본드의 중동행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본드23'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다면 가장 기뻐할 사람들은 인도 여배우들일 것이다.

왜냐고?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 때부터 인도 여배우의 본드걸 캐스팅 루머가 끊이지 않았으며, 최근에도 '슬럼덕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의 프리다 핀토(Freida Pinto)가 본드걸 후보라는 영국 타블로이드발 루머가 나돌았다. 그러므로, 만약 '본드23'가 중동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확인되면 인도 여배우 본드걸 루머가 또다시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번엔 루머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발탁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제목은 무엇이 좋을까? 'Poppyfield Millionaire'? 아니면 'Passage to Indian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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