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일 월요일

'본드23'가 성공하려면...(1) - 스토리

아직 개봉일이 결정되지 않았다. 제작에 돌입한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MGM의 미래도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게 있다: 제임스 본드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2006년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로 여섯 번째 제임스 본드가 된 영국배우,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의 세 번째 영화가 될 '본드23'는 007 시리즈 뿐만 아니라 크레이그에게도 매우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그의 첫 번째 007 영화 '카지노 로얄'로 솟아올랐다가 두 번째 영화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로 미끄러진 것을 다시 만회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가 '카지노 로얄'보다 못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시 스토리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원작에 비교적 충실하게 영화화됐던 '카지노 로얄'과는 달리 '콴텀 오브 솔래스'는 제목만 원작에서 따온 게 전부였을 뿐 스토리는 스크린라이터의 작품이었다. 플레밍이 '콴텀 오브 솔래스'라는 숏스토리를 쓴 건 사실이지만 영화 줄거리와는 전혀 무관했던 것. 그럼에도 007 제작진이 영화 제목을 '콴텀 오브 솔래스'로 정한 이유는 영화관객들이 '카지노 로얄'처럼 플레밍의 원작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로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카지노 로얄'과 줄거리가 이어지게끔 한 이유 역시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콴텀 오브 솔래스'는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말로만 원작의 분위기를 살린다고 했을 뿐 이를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지노 로얄'은 플레밍의 원작을 베이스로 한 영화이지만 '콴텀 오브 솔래스'는 아니라는 사실을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제목을 원작에서 따오고 줄거리를 '카지노 로얄'과 연결시키는 등 준비는 나름 한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제임스 본드 스타, 다니엘 크레이그는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베이스로 하지 않았다고 큰일나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한 바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플레밍의 원작을 기초로 하지 않고 스크린라이터에 전적으로 의존하더라도 훌륭한 스토리가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성공한 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플레밍의 원작을 많이 참고한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se to Kill)'과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까지는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어도 나머지는 처참한 수준이다.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서 스크린라이터들이 얼마나 일을 한심하게 했는지 벌써 잊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망가졌던 007 시리즈를 제위치로 되돌려놓은 게 바로 '카지노 로얄'이다.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 이후 19년만에 처음으로 플레밍의 원작으로 돌아간 2006년작 '카지노 로얄'은 "Unwatchable이던 007 시리즈를 다시 Watchable로 바꿔놓았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작품인 '콴텀 오브 솔래스'는 사정이 달랐다. 전편 '카지노 로얄'처럼 원작을 베이스로 삼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위해 나름 노력한 듯 했지만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원작을 기초로 삼지 않았다는 게 바로 티가 났던 것. 억지로 줄거리를 이어가면서까지 원작의 분위기를 살린다고 법석을 떨어놓고도 이런 수준밖에 안 되었다.

이런 데도 베이스로 삼은 원작소설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고 원작을 기초로 하지 않고 스크린라이터에게 모든 걸 맡기면 무조건 실패한다는 건 아니다. 원작을 베이스로 하지 않고도 플레밍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스크립트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까지 성공한 스크린라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재능있는 스크린라이터이든 상관없이 007 스크립트를 쓰라고만 하면 항상 수상해 진다. 액션 스릴러 영화의 스크린플레이를 쓴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언 플레밍의 뒤를 이어 제임스 본드 소설을 쓴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엔 플레밍의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하면 되는데, 이게 그렇게도 안 되는 모양이다.

They just don't get it!

이언 플레밍 탄생 100주년 기념작을 쓴 세바스찬 펄크스(Sebastian Faulks)의 '데블 메이 케어(Devil May Care)'를 보면 소설가들도 플레밍 스타일을 모방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듯 하니 스크린라이터만 탓할 건 아닌 지도 모르겠다.

007 시리즈 프로듀서 마이클 G. 윌슨(Michael G. Wilson)이 이미 영화로 제작된 플레밍의 소설들을 다시 리메이크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으므로 큰 이변이 없는 한 '본드23' 줄거리도 '콴텀 오브 솔래스'와 마찬가지로 원작을 기초로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금 무리한다면 제목까지는 원작에서 따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토리는 100% 스크린라이터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번엔 누가 '본드23' 스토리를 쓸까?

이번엔 피터 모갠(Peter Morgan)의 차례다. 모갠은 '퀸(The Queen)', '프로스트/닉슨(Frost/Nixon)' 등을 맡았던 베테랑 스크린라이터다.

과연 모갠이 해낼 수 있을까?

폴 해기스(Paul Haggis)가 '카지노 로얄'에서 했던 것처럼 클래식 플레밍 소설을 현대판으로 각색하는 작업을 맡긴다면 아주 잘 해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로 옮기지 않은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이 더이상 없으므로 이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꼭 리메이크가 아니더라도 '라이센스 투 킬', '골든아이'에서 했던 것처럼 여러 편의 제임스 본드 소설들을 뒤섞는 방법이 남아있긴 하지만, 피터 모갠이 플레밍의 원작소설을 얼마나 참고할 것인 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 걱정된다. 재능있는 스크린라이터인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선보일 것으로 믿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스토리가 007 시리즈와 얼마나 잘 어울릴 지도 의문이다. 피터 모갠이 오스트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드23'가 쇼킹한 스토리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고 덜컥 겁이 다 나더라.

모갠에게 이언 플레밍 스타일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걸리는 점 중 하나다. 모갠이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들을 줄줄이 꿰고 있고, 어떻게 하면 그 분위기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지, 어떻게 플레밍 스타일을 모방할 것인 지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걱정할 게 없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수상해질 수도 있을 듯 하다. 잘못하다간 '콴텀 오브 솔래스'보다 한 술 더 떠 폴리티컬 스릴러를 만들어 놓는 건 아니냔 걱정도 생긴다. 제작진이 007 센스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기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모든 걸 의심해 보게 된다.

물론 피터 모갠이 007 박사일 수도 있다. '본드23'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앞으로 계속해서 007 시리즈 스크린플레이를 맡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모갠이 '본드23'의 스토리를 망친다면 이것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콴텀 오브 솔래스'는 '카지노 로얄' 덕분에 얼떨결에 흥행성공했지만, '본드23'에서는 이런 요행을 또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제대로 못한다면 'That's it'이 될 수 있다.

이번엔 007 제작진과 피터 모갠이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지켜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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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

  1. 제 생각엔 차라리 무리가 가더라도, 아예 원작 베이스로 나가는 건 어떨까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어렵겠죠.
    그냥 1편 카지노 로얄, 2편 리브 앤 렛 다이... 뭐 이런 식으로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차라리 소재가 고갈되면, 솔직하게 그냥 플레밍 스토리를 카지노 로얄처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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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그렇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프로듀서들은 그걸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좀 시원찮긴 해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유명한 프랜챠이스라서 대충해도 본전은 한다고도 생각하겠죠.

    다시 플레밍의 원작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카지노 로얄'과 같은 작품은 다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없이 '카지노 로얄'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노력이야 해보겠지만 쉽지않을겁니다. 그러다가 맘처럼 안 되면 로저 무어 포뮬라로 돌아가겠죠. 제 생각엔 '본드23'에서 무언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본드24'부터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그쪽이 007 제작진 전문이기도 하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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