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8일 수요일

토마스 뉴맨, 007 시리즈 음악 되살릴 수 있을까?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007 시리즈 스코어를 맡을 작곡가가 교체되었다. 금년 말 개봉을 목표로 현재 촬영중인 007 시리즈 23탄 'SKYFALL'은 지난 18탄 '투모로 네버 다이스(Tomorrow Never Dies)'부터 22탄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까지 맡았던 영국 뮤지션 데이빗 아놀드(David Arnold)가 아닌 미국 뮤지션 토마스 뉴맨(Thomas Newman)으로 교체되었다.

토마스 뉴맨이 'SKYFALL' 스코어를 맡게 된 것은 영화감독 샘 멘데즈(Sam Mendes)가 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뉴맨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작곡가 교체는 본드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방향을 잃은 데이빗 아놀드의 음악에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로 유명한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를 끝으로 시리즈를 떠난 이후 007 시리즈 음악은 한마디로 'MESS'였다.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의 스코어를 맡았던 미국 작곡가 마이클 케이맨(Michael Kaman),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의 프랑스 뮤지션 에릭 세라(Eric Serra)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007 시리즈 사운드트랙을 매력없는 곡들로 채우자 본드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존 배리의 주옥같은 곡들 덕분에 귀가 고급이 된 본드팬들을 조금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 나타난 것이 '젊은' 데이빗 아놀드였다. 아놀드는 귀에 익은 제임스 본드 테마와 브래스 사운드에 90년대에 유행한 테크노 스타일을 결합시킨 '투모로 네버 다이스' 사운드트랙으로 본드팬들을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존 배리 퀄리티는 물론 아니었으나 적어도 마이클 케이맨과 에릭 세라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문제는 아놀드의 스타일이 쉽게 식상하는 것이었다는 점.

너무 자주 나오는 제임스 본드 테마와 시도 때도 없이 부르짖는 브래스 코러스로 클래식 제임스 본드 음악 분위기를 살리면서 브레이크비트  스타일의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로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려 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같은 스타일이 매번 계속해서 통할 수는 없었다.

피로 현상은 '투모로 네버 다이스'의 바로 다음 영화인 1999년작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투모로 네버 다이스' 때에만 해도 상당히 신선하게 들렸던 아놀드의 음악이 2년 뒤에 개봉한 '언리미티드'에선 지나치게 과장되고 싸구려틱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기회가 오는대로 존 배리의 흉내를 내던 데이빗 아놀드는 2002년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서 이러한 곡을 선보였다. 아래 샘플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 'Going Down Together'라는 곡으로, 영화의 러브테마 격으로 사용된 곡이다.


그렇다. 바로 이 곡은 1967년작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의 메인 타이틀 곡의 스트링 파트를 엉거주춤하게 흉내낸 곡이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딸,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가 부른 보컬 버전 메인 타이틀도 좋지만, 이번엔 인스트루멘탈 버전으로 들어보자.



2006년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선 이러한 곡을 선보였다. 씬과 음악이 그리 잘 어울리진 않았지만, 이 곡 역시 영화의 러브테마 격으로 사용되었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순간 스트링 파트가 무척 친숙하게 들렸다. 이 곡 또한 존 배리의 이전 사운드트랙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온 게 분명해 보였다.

이번엔 어떤 곡이었나 생각해보니 존 배리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겼던 1985년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메인 타이틀 'I Had a Farm in Africa'였다. 1분12초부터 시작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메인 타이틀의 스트링 파트와 '카지노 로얄'의 'City of Lovers' 스트링 파트가 비슷하게 들렸던 것이다.



이와 같이 데이빗 아놀드가 현대적인 테크노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과거 존 배리의 사운드를 접목시키려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놀드의 테크노 스타일 사운드트랙은 사구려틱하게 들렸고, 존 배리 스타일을 모방한 곡들은 사운드는 비슷했으나 멜로디가 신통치 않았다. 한마디로 그다지 뛰어난 작곡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씬과 잘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된 듯한 느낌도 신경에 거슬렸다. 간단하게 줄여서 말하자면, 흉내낸 건 알겠는데 'NOT-EVEN-CLOSE'였다는 얘기다.

데이빗 아놀드의 다른 영화음악은 모르겠어도 그가 만든 007 시리즈 음악을 들어보면 007 시리즈에 어울리는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 완전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 듯 하다. 존 배리의 스타일을 모방해서 본드팬들을 만족시키려 한 것은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곡가로써의 실력이 부족했으며, 씬과 어울리지 않은 음악으로 되레 유치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그쳤다.

이런 와중에 007 작곡가가 데이빗 아놀드에서 토마스 뉴맨으로 교체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다른 뮤지션으로 교체되기를 희망했으나 실제로 이뤄질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토마스 뉴맨으로 교체됐다.

과연 토마스 뉴맨은 잘 할 수 있을까?

일단 뉴맨의 경력이 데이빗 아놀드보다 화려한 것만은 사실이다. 토마스 뉴맨은 지금까지 무려 10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뉴맨(Alfred Newman)은 무려 9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이다. 그러므로 데이빗 아놀드에서 업그레이드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얼마나 업그레이드될 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토마스 뉴맨의 음악 스타일이 007 시리즈와 썩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아서다.

우선 영화감독 샘 멘데스, 영화배우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작곡가 토마스 뉴맨이 모두 함께 했었던 영화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의 메인 타이틀부터 들어보자.



잔잔하면서도 전원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것이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의 전형적인 배경음악으로 들린다.

뉴맨이 음악을 맡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의 메인 타이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분위기가 더욱 다른 영화 '굳 저맨(The Good German'의 메인 타이틀 'Unrecht Oder Recht'를 들어보자.



4~50년대 영화 오마쥬 의미에서 흑백으로 제작된 '굳 저맨'은 음악 역시 그 때 그 시절 영화음악을 연상시켰다. 그 시절엔 토마스 뉴맨의 아버지 알프레드 뉴맨이 활동하던 때인데, 뉴맨이 그 때 분위기를 비교적 잘 살려냈다. 그러나 1분52초부터 뉴맨의 전원적 스타일이 되살아나면서 곡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망쳤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망친 적이 또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샘플에서도 잘 나가다가 25초부터 옆길로 또 샌다.


이런 배경음악들이 '굳 저맨'을 보면서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다. 토마스 뉴맨이 영화와 잘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왜 자꾸 반복해서 사용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토마스 뉴맨의 액션-서스펜스-스릴러 쟝르 영화음악은 어떨까?

정확하게 쟝르가 일치하진 않아도 'The Adjustment Bureau'의 사운드트랙을 참고자료로 삼을 수 있을 듯 하다.



전자음악 스타일과 빠른 스피드의 퍼커션 사운드 등 최근에 나오는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스타일의 배경음악이다. 특별하다고 할 부분이 거의 없는 매우 흔한 스타일의 곡이다.

최근에 뉴맨이 스파이 영화음악을 한 적도 있다. 이스라엘 모사드 에이전트의 이야기를 그린 '데트(The Debt)'의 음악을 그가 맡았다. 아무래도 영화 쟝르만으로 따졌을 때 007 시리즈와 가장 가까운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선 어떤 스타일의 곡을 선보였는지 들어보자.



그렇다. 또다시 퍼커션 사운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배경음악이다.

영화 쟝르의 성격상 은밀하게 무언가를 벌이는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기위해 저런 스타일을 택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저런 음악은 요새 나온 액션-SF-스파이-스릴러 영화에서 캐릭터가 어딘가에 몰래 잡입하거나 탈출하는 씬에 워낙 흔하게 나오는 바람에 식상한 지 오래라서다. 영화 뿐만 아니라 비디오게임에서도 저런 스타일의 배경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예로 하나 들자면, 코나미의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가 좋을 듯 하다.

그렇다면 '미스터 사운드 오브 제임스 본드' 존 배리는 제임스 본드가 몰래 잠입 또는 탈출하는 긴장감이 넘치는 씬의 배경음악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1983년작 '옥토퍼시(Octopussy)'의 프리 타이틀 씬에서 본드(로저 무어)가 남미의 어느 나라 군부대에 몰래 잠입하는 씬에 나왔던 곡인 'Bond Look Alike'을 들어보자.


1분53초부터는 본드를 돕는 MI6 에이전트 비앙카(티나 허드슨)가 체포된 본드를 구출하기 위해 치마를 걷어올리며 남미 병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씬에서 나온다.




요새 영화같으면 위에서 들었던 'The Adjustment Bureau', '데트' 스타일의 곡이 사용됐겠지만, 존 배리는 굵직한 제임스 본드 테마로 밀고 나갔다. 제임스 본드 테마 자체가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만큼 퍼커션 등등을 이용해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억지로 낼 필요가 없었는 듯 하다.

다음은 1985년작 '뷰투어킬'에서 본드(로저 무어)가 스쿠바 장비를 갖추고 조린(크리스토퍼 워큰)의 석유 시설을 몰래 조사하는 씬에서 나온 'Bond Underwater'.




마지막으로 들을 곡은 1987년작 '리빙 데이라이트(The Living Daylights)'에서 본드(티모시 달튼)가 위태커(조 돈 베이커)의 저택에 잠입하는 씬에서 나온 'Final Confrontation'.




지금까지 들어본 존 배리의 80년대 제임스 본드 음악 세 곡을 보면 요즘 영화음악처럼 딸랑딸랑거리며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는데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카메라를 흔들고 난리를 치며 긴장감 넘치는 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게 하지 않고도 긴장감 넘치는 씬을 연출할 줄 아는 요령을 아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음악에서도 관객들을 압도하는 웅장한 사운드와 '다다다다'거리는 퍼커션 사운드로 폼을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게 하지 않고도 멋진 영화음악을 만들 줄 아는 요령을 아는 사람이 있다.

과연 토마스 뉴맨에게 그러한 센스가 있을까?

아무래도 오는 가을 영화를 본 이후에나 답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뉴맨이 영화와 잘 어울리지 않는 전원적인 분위기로 가거나 일렉트릭 사운드의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영화음악 쪽으로 기울면 어느 쪽으로 가든 간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SKYFALL'에선 지금까지 들었던 뉴맨의 영화음악과는 스타일이 조금 다른 곡들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연 토마스 뉴맨이 지지부진하던 데이빗 아놀드를 뒤로 하고 007 시리즈 음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지 지켜보기로 하자.

댓글 2개 :

  1. 예전엔 부득이한 사정으로 존 배리가 담당하지 않은 사운드트랙도 참 좋았었는데요.
    "죽느냐 사느냐"나 "나를 사랑한 스파이", "유어 아이즈 온리" 같은 작품 보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70년대에 괜찮은 곡들이 많이 나왔던 것도, 약한 이미지의 로저무어로도 흥행에 성공해 롱런할수 있었던 원인 인것 같습니다.
    암튼, 주제곡과 스코어의 조화가 중요한데요. 스코어가 좀 떨어져도 주제곡이 좋으면 나름대로 커버가 될텐데, 80년대 존 배리가 손 뗀다음부터는 둘다 엉망입니다.
    토마스 뉴먼이 어느 정도 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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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죽느냐 사느냐의 조지 마틴은 007 음악과 인연이 깊은 분이었고,
    마빈 햄리쉬와 빌 콘티는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이니...^^
    말씀하신대로 스코어와 주제곡의 조화도 중요한데요,
    뉴맨의 스타일을 보아하니 'Nobody Does It Better' 쪽으로 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특징이 뚜렷하지 않은 흐리멍텅한 곡이 나오는건데...
    최악의 시나리오는, 주제곡은 잔잔하지만 지루하고 스코어는 에릭 세라 스타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자음악을 하라고 뉴맨을 데려온 것은 아닐테지만 뉴맨의 스타일이 초원의 집이므로,
    양쪽을 어설프게 섞다가 에릭 세라처럼 될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007 시리즈에 맞춰 어떻게 변화를 주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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