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6일 목요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이 007 시리즈에 미칠 영향

영국의 유명한 스파이 소설 작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가 극장용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했다. 지난 70년대 말 BBC가 TV 미니 시리즈로 제작한 적은 있어도 극장용 영화로 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북미지역 관객들은 영화 버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기 위해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만 했다. 북미지역에서도 2011년 가을 전역에서 개봉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스케쥴이 제한상영으로 바뀌어 12월 말이 되어서야 북미지역에서 제한적으로 개봉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보부 내부에 침투해 오랫동안 소련을 위해 활동해온 배신자를 색출하는 냉전시대 배경의 스파이 스릴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2012년 아카데미 남우 주연, 각색, 음악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선 작품상, 남우 주연, 각색, 편집을 비롯해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미국 아카데미에선 3개 부문에만 후보에 올랐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받을 만 한 자격이 있는 영화냐고?

물론이다. 스파이 영화라고 하면 대개의 경우 제임스 본드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제이슨 본 시리즈 등 엉터리같은 영화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무늬만 스파이인 장난 수준의 헐리우드 액션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영화다. 꽤 많은 등장 캐릭터들과 복잡하게 얽힌 원작소설의 스토리를 영화로 제대로 옮길 수 있겠는지 의심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며, 이 부분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개리 올드맨(Gary Oldman) 주연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기대했던 것 보다 만족스러웠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점이다.

물론 약간 터무니 없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제임스 본드의 세계와 존 르 카레의 세계가 천지차이가 난다는 정도는 상식 수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존 르 카레 역시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스파이 붐을 만들어 놓은 덕을 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는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 액션 어드벤쳐 위주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사실적인 스파이물을 성공적으로 탄생시켰다. 그러므로 제임스 본드의 세계와 존 르 카레의 세계는 부분적으로 비슷한 점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서로 교차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도록 돼있다.

그런데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로부터 무슨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스크린라이터에서부터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버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영국 스크린라이터 피터 모갠(Peter Morgan)이다. 그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스크린플레이 작업에선 손을 떼었으나 프로듀서 중 하나로 잔류했다.

바로 이 피터 모갠이 007 시리즈 23탄 '본드23' 스크린플레이를 담당할 작가로 발표된 적이 있다. 지난 2009년 EON 프로덕션이 피터 모갠을 '본드23' 스크린라이터로 발표했으나 그는 결국 '본드23' 프로젝트에서도 중도하차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패밀리 영화 '휴고(Hugo)'로 2012년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스크린라이터 존 로갠(John Logan)으로 교체됐다.

흥미로운 점은, 피터 모갠이 'SKYFALL'로 명명된 '본드23' 프로젝트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핵심 아이디어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힌 점이다.

현재로썬 'SKYFALL'의 스토리에 대한 정보조차 충분치 않으므로 피터 모갠이 '본드23'에 남긴 흔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피터 모갠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본드23'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본드23'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007 제작진 쪽에서 '존 르 카레'의 이름이 들렸던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Quantum of Solace)' 제작 시에도 존 르 카레 소설의 분위기를 영화에 섞고자 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리곤 했다.

여기서 '본드23', 'SKYFALL'로 넘어가보자.

'SKYFALL'의 연출은 샘 멘데즈(Sam Mendes)가 맡았다. 그리고, 비록 이후에 교체되긴 했으나, '본드23' 스크린플레이는 피터 모갠이 맡을 뻔 했다.

샘 멘데스와 피터 모갠은 007 시리즈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들이다. 둘 다 훌륭한 영화인인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007 영화 시리즈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름들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카데미상 수상 경력도 있는 사람들인 만큼 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007 시리즈는 '이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유명인이더라도 007 시리즈에 대한 비전과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유명배우와 유명감독이 만든 영화라고 무조건 대단한 작품이 나오는 게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샘 멘데즈와 피터 모갠이라니 어떻게 보면  007 제작진이 적임자에 일을 맡기는 것인지 의심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작년에 '샘 멘데스가 '본드23'의 액션을 줄이고 오스카-프렌들리로 만든다'는 넌센스에 가까워 보이는 루머가 나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다.

진짜로 멘데즈가 'SKYFALL'을 오스카-프렌들리로 만들까?

일단 멘데즈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액션도 풍부할 것(Lots of action)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SKYFALL'에 영국 정치인 캐릭터들이 꽤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액션영화가 아니라 드라마가 되는 게 아니냐"는 루머가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SKYFALL'에 출연하는 것으로 확인된 영국배우 알버트 피니(Albert Finney)와 헬렌 맥크로리(Helen McCrory) 모두 영국 정부와 관련있는 캐릭터 또는 정치인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지거나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도 'Government Agent'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진이 화려하다는 점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겹치는 점 중 하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출연진은 개리 올드맨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은 콜린 퍼스(Colin Firth), 주목받는 터프가이 미남스타 톰 하디(Tom Hardy), "CHARMING"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BBC '셜록(Sherlock)'의 셜록 홈즈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 마크 스트롱(Mark Strong), 토비 존스(Toby Jones), 존 허트(John Hurt), 키어런 하인즈(Ciaran Hinds) 등 젊은 배우부터 중견 베테랑 배우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빵빵하다. 007 시리즈 23탄 'SKYFALL'도 만만치 않다.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은 하비에르 바뎀(Javier Bardem), 랄프  파인즈, 알버트 피니, 헬렌 맥크로리, 나오미 해리스(Naomie Harris), 주디 덴치(Judi Dench), 벤 위샤(Ben Whishaw) 등 'SKYFALL'에도 헤비급 영국배우들이 여럿 출연할 예정이다.

현재 공개된 'SKYFALL' 오피셜 시놉시스도 내용이 심상치 않다. M(주디 덴치)의 과거사로 인해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와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007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설정이다. 일부 본드팬들은 "과거에 M이 KGB 장군과 찍은 섹스 비디오라도 나오는 것이냐"는 우스겟 소리를 하고 있으나, 혹시 줄거리가 정보부를 둘러싼 음모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처럼 정보부 내부에 침투한 몰까지는 나오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와 비슷한 쪽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을 만한 세팅으로 보인다.

또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BAFTA 11개 부문, 미국 아카데미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니 007 제작진도 슬쩍 상 욕심이 날 수도 있다. 비록 007 시리즈는 존 르 카레의 세계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로 넘어오면서 나름 진지해진 만큼 내친 김에 조금 더 신경써서 오스카-프렌들리로 만들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 영화가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인 만큼 아카데미가 007 시리즈에 후한 인심을 쓸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007 제작진이 조금만 박자를 맞춰주면 제법 그럴싸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수도 있다. 007 제작진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샘 멘데즈 감독, 스크린라이터 피터 모갠/존 로갠, 음악은 토마스 뉴맨(Thomas Newman) 등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거나 후보에 오른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SKYFALL'  제작에 참여한 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 'SKYFALL' 스코어는 데이빗 아놀드(David Arnold)가 아닌 미국인 음악가 토마스 뉴맨이 맡았다. 처음엔 데이빗 아놀드가 2012년 런던 올림픽 음악을 맡으면서 스케쥴상 007 스코어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영화감독 샘 멘데즈가 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뉴맨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마스 뉴맨은 지금까지 10차례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받은 뮤지션이다. 사실 토마스 뉴맨보다 그의 아버지가 더욱 유명한 헐리우드 뮤지션이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무려 9차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 알프레드 뉴맨(Alfred Newman: 1900~1970)이다.

그렇다면 'SKYFALL'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루트를 따르는 것일까?

007 시리즈에 아무리 변화를 준다고 해도 존 르 카레의 세계로 바뀐다는 건 상식적으로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엄청난'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007 시리즈처럼 화려하고 자극적인 부분 대신 보다 진지한 스토리 쪽에 포커스를 맞추려 할 가능성은 있다. 007 제작진이 시리즈의 쟝르를 액션에서 드라마로 바꾸기 위해 샘 멘데스, 피터 모갠/존 로갠 등을 불러들인 것은 분명히 아니므로 엄청난 변화는 없을 것이지만 액션과 드라마의 균형을 맞추려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SKYFALL'의 성패는 이들이 균형을 제대로 맞추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007 제작진은 지난 '콴텀 오브 솔래스'에서도 폴 해기스(Paul Haggis), 마크 포스터(Marc Forster) 등과 함께 같은 목표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과연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이 되면 답을 알 수 있을 듯...



댓글 4개 :

  1. 吳공본드님 말슴대로 균형감각에 달린 것 같습니다.
    드라마와 액션의 조화.
    피지컬한 액션과 가젯의 조화.
    소설과 영화의 조화.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난 시절의 가벼운 본드와 무거운 본드의 조화.
    이번 영화에 따라 다니엘 크레이그의 지속여부와 전체 시리즈의 향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번 작품이 지난번 카지노 로얄 때보다 더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마틴 캠벨 옹께서 메가폰을 을 잡았다면 조금은 안심이 될듯한데요.
    사실 샘 멘데스가 거장의 반열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훌륭한 감독이긴 하지만, 본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적절한 균형감각을 이끌어낼수 있는 감독은 마틴 켐벨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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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틴 캠벨은 알고 보면 스파미물 전문가입니다.
    영국의 여러 스파이 TV 시리즈를 연출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액션(프로페셔널), 스타일(라일리), 음모와 미스테리(에지 오브 다크니스) 등등...
    이런 데서 쌓은 노우하우가 제임스 본드 연출에 큰 도움이 됐을겁니다.
    캠벨 감독 영화 보세요. 007 빼고 다른 건 다 말아잡수고 있죠...^^
    이 양반은 007 시리즈 적임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샘 멘데즈...는 글쎄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과연 그에게도 마틴 캠벨과 같은 007 센스가 있는지 두고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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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틴 캠벨아저씨는 007에 모든힘을 쏟은 나머지

    이어지는 작품에서 거짓말처럼 망작을 쏟아내니...

    예전에는 안그렇던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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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90년대 이후 나온 007 시리즈 중 기억에 남는 건 골든아이와 카지노 로얄 2개인데,
    그 2개가 모두 마틴 캠벨 감독의 영화입니다.
    근데 캠벨 감독의 영화 중 007 이외의 영화들은 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캠벨 감독의 최신작 그린 랜턴도 참 마술같은 영화였죠.
    영화가 끝난 뒤 좌석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의 얼굴을 죄다 그린으로 만들어놨으니...^^
    제 기억으론 제가 처음 본 캠벨 감독의 극장용 영화는 노 에스케이프였는데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재미없게 본 기억이 생생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캠벨이 골든아이를 연출한단 소리를 듣고 움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골든아이를 제가 극장에서 일곱번인가 봤습니다...^^
    그리고 11년 뒤 카지노 로얄로 돌아와 007 전문가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셨죠.
    만약 제가 007 프로듀서라면 어떻게든 이 양반을 붙잡아뒀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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